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66
366화
세계 전역을 집어삼킬 것처럼 세력을 키워나가던 리그가 소멸되고, 세계최강이라 불리던 초인 최준호가 사라지고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세계는 후폭풍을 수습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리그의 통제를 잃은 빌런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폭주하기 시작했고, 리그로 인해 정권을 잡았던 국가에서도 반대파의 물결에 휩쓸려 홍역을 치렀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제2의 리그를 자처하면서 세력을 확장해나가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압되었지만.
이러한 혼란 속에서 세계는 리그의 잔재를 치우기 위한 움직임에 착수했다.
빌런은 차근차근 토벌되었고, 날뛰는 마물을 사냥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존재했지만 적어도 차별주의자들인 리그가 세계를 지배할 거란 우려는 하지 않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는 말이다.
리그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고, 무차별적인 폭력을 선사하던 세계최강 초인이 사라진 지금, 새로운 질서를 놓고 끝없이 갈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임스 리드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굳이 이렇게 멀리 돌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조언을 구하러 온 건 너야, 아놀드.”
“저는 당신이 좀 더 생산적인 조언을 해줄 줄 알았습니다.”
“…….”
오히려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는 남자를 보며 제임스 리드는 미간을 모았다.
눈앞의 잘생긴 40대 초반의 각진 얼굴형이 인상적인 남자, 아놀드 하우저는 며칠 뒤 주한 미국대사가 될 인물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에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다. 그런 곳의 대사를 40대 초반의 아놀드가 맡게 되었다는 건 그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결정적인 결점이 존재했다.
바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점이 과거 동맹 하위 파트너에 고정되었다는 것이다.
허버트 대통령을 비롯한 다니엘 부통령은 여전히 대한민국에 친화적이다. 그러나 그 밑에서 일하는 이들은 헤드 브레이커가 있던 시절 대한민국과 맺은 불공평한 계약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내세웠다.
그렇다, 미국 내 강경파는 헤드 브레이커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헤드 브레이커는 죽었습니다, 마초맨.”
“왜 죽었다고 생각하지?”
“그의 성향상 살아있다면 1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리 없습니다. 헤드 브레이커는 어떤 상황에서도 참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아 있었다면 즉시 존재감을 외부에 알리려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보부나 다른 곳에서 분석한 것을 보면 아놀드의 말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제임스 리드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그 무시무시한 인물이 죽었을 거라고?
세계 최고 두뇌라 불리는 평가와 달리 감정적인 평가였지만 제임스 리드는 최준호가 죽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부상을 회복하면서 이것들이 어떻게 나오나 기다리면 기다렸겠지.
“그러다 불시에 나타나게 되면 그동안 허튼 짓을 한 녀석들의 목이 비틀릴 걸.”
“우려할 만큼 어설프게 접근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는 잘 포장된 포장지에 속지 않아. 내부에 실린 내용물만 확인하지. 네가 하려던 건 헤드 브레이커라면 바로 알아차릴 영역이고.”
“겁을 먹었군요.”
“…….”
녀석은 초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다.
“리그가 사라지고 헤드 브레이커가 사라진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 서야 하는 게 바로 우리입니다. 파티라는 성가신 내부의 적이 있지만 서로 이익이 된다면 기꺼이 대화가 가능합니다. 한국도 헤드 브레이커가 없지만 버서커를 보유한 만큼 훌륭한 파트너로 대우하면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니야.”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합니다.”
아놀드가 열변을 토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임스 리드가 한 발자국 물러났다.
“난 여전히 헤드 브레이커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네 말도 일리가 있으니 더 말릴 수 없겠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책임은 네가 져야겠지.”
“당연한 말입니다. 대신, 공도 전부 제 것입니다.”
“난 분명히 경고했다.”
“두고 보십시오. 우리는 빠르게 헤드 브레이커의 그림자를 지우고 옛 영광을 차지할 것입니다.”
패기 넘치는 말을 남긴 아놀드가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과연 준호가 죽었을까. …졸라 헷갈리잖아.”
몇 번이고 가정을 해봤지만 그가 죽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
* *
“1년이군.”
“1년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오해가 생길 법도 해.”
“실제로 심각합니다.”
청와대 내부에서 버서커와 천명국은 조용히 티타임을 가졌다.
전혀 어울리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리그 토벌 작전 이후,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버서커는 여전히 최준호 팀에 속한 초인이었지만 최준호가 사라지면서 그를 대신하여 여러 번 일을 나섰고,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요즘도 귀찮게 구는 녀석들이 득실거리나?”
“성가실 정도는 아닙니다.”
“우리 대통령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보통 성가신 게 아니겠어.”
“하하.”
“누구지?”
“거의 모든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처음 최준호가 사라졌을 때 주변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장소에서 헬 마스터의 시체가 발견되고, 모습을 감춘 것으로 보아 부상이 심각하여 회복에 전념하려고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1년이 지나가자 반응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간을 초월한 무시무시한 무위를 선보인 최준호의 사망 가능성이 조금씩 거론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변화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번번이 당하며 갈가리 찢겨나간 중국에서는 노골적인 견제를 해오기 시작했고, 납작 엎드려 있던 일본도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대등한 파트너가 아닌 하위 파트너로 대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한 곳이 특출나게 잘 나가면 필연적으로 견제를 받는 법이다.
그동안 최준호의 존재로 그 견제가 파고들 틈이 없었지만 1년이 지나면서 그 생각들이 조금씩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형국이었다.
버서커가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 내가 녀석만큼 힘만 있었으면 모조리 머리를 으깨버렸을 텐데.”
“지금도 큰 힘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오히려 예상보다 늦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지?”
“그만큼 최준호 초인님에 대한 두려움이 깊이 각인되어 있던 것입니다.”
“하긴, 녀석에게 당해봤으면 그 상처가 빨리 치유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그래도 1년만에 고개를 든다고? 너무 빠른데. 최소 3년은 가야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한다.
“아마 그렇게 믿고 싶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한테 내어준 건 뼈 아프게 다가오는 걸 테지요.”
세상 일이라는 게 다 그런 법이다. 대한민국을 견제하려는 세력 누구도 세력 구도가 대한민국 중심으로 이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대책을 세워둬야 할 텐데?”
“당연히 대책이 있습니다.”
“물어봐도 되나?”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선을 넘는 곳을 향해 최준호 초인님이 복귀할 때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경고를 보냈을 뿐입니다. 전부 조용해져서는 물러나더군요.”
“뭐? 크크, 크하하하하!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
“이 약빨도 내성이 생길 겁니다. 하지만 최준호 초인님이 복귀할 거라 믿기에 내성이 생기더라도 최대한 많이 사용하면서 버티려고 합니다.”
“그럼 나는 북쪽으로 산책이나 가야겠어.”
“예?”
“요즘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정체불명 녀석들이 많이 넘어온다며? 딱 봐도 개수작인데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안 그래도 요즘 천명국을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드는 일 중 하나였다.
비단 그곳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요소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감사합니다.”
“요즘 대우받고 있으니 그 값을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녀석이 돌아올 때까지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경고를 해줘야하거든.”
그래야 짓밟히는 녀석들의 반응이 더 재밌을 거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말은 그랬지만 버서커가 아니었다면 상황은 더욱 어렵게 돌아갔을 것이다.
천명국은 거듭 감사 인사를 건넸다.
*
* *
“…쉽지 않아.”
버서커가 돌아가고 나서도 천명국의 얼굴에는 근심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상황은 시시각각 최악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리그가 사라지고, 질서를 유지하던 강력한 억제력 역할을 하던 최준호가 사라졌다는 걸 확신하는 곳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빠른 속도로 선을 넘고 있었다. 자신들은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천명국이 보기에는 선수를 빼앗길까 싶어 전력질주를 하고들 있었다.
“하긴, 그들도 어느 정도 조사를 했을 테니 지금 상황에 대한 확신이 생긴 걸 테지.”
최준호가 무사했다면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리 없다.
그것은 천명국이 보유한 시뮬레이션에서도 나온 결과였다. 그를 믿는 것과 별개로 여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신상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했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천명국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최준호가 사라졌을 경우를 대비해서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당장 최준호가 사라졌을 경우를 가정하자.
그리 되면 대한민국은 그동안 누려온 압도적인 초인 강국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블랙하운드를 죽이면서 십대초인 반열에 올라선 버서커가 있으나 그는 공식적으로 국가 소속이 아니었다. 그 사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중국은 내실을 다지고 있고, 일본에서도 신예 초인 둘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전력을 회복했다.
주변 국가 어디도 대들지 못하는 지역 강국과 인접한 모든 국가에서 분쟁이 벌어지는 국가의 위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최준호가 있기에 모든 불만을 찍어 눌렀지만 그가 사라진 상황에서 분쟁은 필연이다.
여기에 미국과 파티까지.
최준호로 인해 양보했던 자들이기에 원금에 이자까지 뜯어먹으려고 달려들 것이다.
“…골치 아프군.”
엄습하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 누르면서 천명국은 타개책을 마련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최준호로 시작해서 최준호로 끝날 일이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종된 최준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다.
“있을 때도 골치고 없을 때도 골치란 말이지.”
지금 해야 할 건 무사히 돌아올 걸 믿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여전한 존재감에 천명국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
* *
천명국은 별 거 아닌 거처럼 이야기했지만 압록강 신의주 인근은 최근 들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었다.
“고작 녀석이 자리를 비웠다고 별 잡종들이 다 날뛰는군.”
국경을 그어놓고 철저하게 단속을 한다고 하나 모든 전력으로 국경을 감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틈을 타 북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눌러앉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한민국 측에서는 적발하는 즉시 쫓아내는 작업을 펼쳤지만 문제는 그 속에 각성자들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몇몇 각성자가 죽으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었다.
문제는 북군에서 이 사태를 묵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협조를 구할 수도 없는 것이, 자칫 북군 전력이 남진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었다.
신의주로 가서 상황 파악을 한 버서커는 가차 없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불법으로 자리 잡은 마을 사람들이 모조리 북쪽으로 쫓겨났다.
그 과정에서 반항하던 각성자들은 버서커에 의해 팔다리가 부러지고, 선을 넘은 녀석들은 목이 비틀리거나 머리가 으깨져서 최후를 맞이했다.
처음 북군은 이 사태를 조용히 지켜보는 듯했다. 그런데 버서커의 손에 죽거나 쫓겨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천 단위를 넘어서 만 단위로 향하려 하자 이례적으로 개입에 나섰다.
버서커를 상대하기 위해 나선 것은 북군의 주석인 위하오였다.
압도적인 무위로 몰아붙이다가 돌연 나타난 북군의 절대자에 의해 장내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대어가 납셨군.”
블랙하운드까지 물리친 버서커는 위하오를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덤덤한 표정으로 그 기세를 흘려낸 위하오가 입을 열었다.
“적당한 선에서 해결하는 게 낫지 않나.”
“골칫거리가 많은 얼굴이군. 고생을 했나봐? 크크, 알 만한 얼굴이군.”
“…….”
본래 통통하던 체격의 위하오는 짧은 시간 동안 살이 빠져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버서커의 도발은 계속되었다.
“구차해졌군. 권력이란 걸 잡으면 그렇게 되나.”
위하오의 눈이 싸늘해졌다.
“…최준호가 사라진 상황에서 널 비롯한 이 국가는 언제든지 쓸어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아라.”
“마치 녀석이 죽은 것처럼 얘기하는군.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놈이 살아있나?”
“녀석은 살아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이 실린 말이었다.
잠깐 멈칫했던 위하오가 말했다.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
“증거가 없어도 난 알 수 있다. 녀석은 돌아올 거다. 그리고 지금 네놈들의 행동을 보고 나서겠지.”
그 후에 들이닥칠 것은 무자비한 숙청일 것이다.
확신이 실린 말 때문일까.
위하오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운이 좋은 줄 알도록.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없었으니.”
“크크, 그 운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은데.”
“다음에도 그 운이 따를 거래 생각하지 마라.”
더 상대하기 싫다는 듯 몸을 돌린 위하오가 멀어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버서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난 네놈이 아니라 그 녀석한테 죽겠지.”
부디 완전회복에 대한 걸 잊어주길 바라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란 걸 버서커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