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신성그룹 회장의 자리에 올라선 이세희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적응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세계 각국을 위협하던 빌런 조직인 리그가 사라졌다고 해서 세계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리그가 사라진 뒤 세계는 더 큰 혼란에 빠졌고, 그 혼란은 가중될 상황에 처했다.
그 중심에는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최준호가 한 몫 했다.
“주변 기류가 심상치 않습니다, 회장님.”
상념에 빠진 이세희를 현실로 되돌려 놓은 것은 무겁게 가라앉은 비서실장의 목소리였다.
“어딘가요?”
“저희와 거래하는 모든 곳에서 일제히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심한 곳은…….”
“중국일 테죠. 북군과 남군 모두.”
“그렇습니다.”
현재 신성그룹은 난감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그동안 신성그룹은 최준호와 밀착 관계를 이어나가면서 재계 1위 자리를 넘어서 마물의 시대 이후 사라진 글로벌 기업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준호가 사라지면서 견고한 성벽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으로 나오는 것이 분열된 중국이다.
네 개로 나뉜 중국은 남과 북이 여전히 첨예한 대립을 하는 중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신성그룹에 전부 적대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많이 해먹기는 했죠.”
그중에서 정통 정부를 주장하는 남군에서는 신성그룹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청구서가 날아오나 보네요.”
“그렇습니다.”
“그 정도면 많이 눈치보고 있는 거네요. 예전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을 텐데.”
“예. 아직 작은 가능성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비서실장은 동감을 표했다.
남군 입장에서 신성그룹은 잘근잘근 씹어도 부족하지 않은 대상이었다.
내전 당시 막후에서 맹활약을 한 그녀만 없었다면 홍콩과 광둥성으로 통칭되는 남부 연합, 서부가 중심이 된 쓰촨성이 독립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있는 건 최준호가 살아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죽었을 것으로 유력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한 존재감이라니.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회장님.”
“말씀하세요.”
하지만 비서실장은 입을 열기 어려운 듯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최준호 초인의 죽음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최준호 초인은 죽지 않았어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만한 사람이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무엇보다,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이세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또 외부 이야기인가요?”
“…요즘 들어 눈에 띄게 회동이 잦아졌다는 보고입니다.”
최준호의 죽음은 갓 신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세희를 흔들고 있었다.
이영문의 유일한 핏줄이라고 하지만 그 친척의 숫자는 여전히 많았다. 그들이 대한민국 내에서 압도적인 재계 1위인 신성그룹에 눈독 들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최준호가 살아있을 때 이런 일은 벌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숨어 다니느라 바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 욕심에 비해 지난 1년 동안 참은 게 대단한 일이었다.
“이대로 내부에서 분탕을 치면 회장님께 누가 될 것입니다.”
“실장님이 보기에는 어떻죠?”
“타협을 해야 합니다.”
그룹의 안정을 위한 비서실장의 제안이다.
그러나 그 ‘타협’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아는 이세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또 결혼 이야기인가요?”
“실종된 사람을 기다리는 것보다 안정을 이루는 걸 바라는 듯합니다.”
“실장님이 보시기에 어떠세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봅니다.”
“…….”
이세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비서실장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현재 회장님의 모든 정책은 최준호 초인이 살아있다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살아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점점 그가 죽었을 거라는데 가능성을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타협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룹에 각국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가 돌아오게 되면 모든 게 정상화가 될 일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회장님과 같은 믿음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최준호 초인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만큼 그룹에 피해는 커질 것입니다. 그것은 곧…….”
다음 말은 이세희도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거겠지.
“하지만 최준호 초인이 돌아오면 제 입지는 어느 때보다 탄탄해지겠죠.”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에 대한 제 믿음은 확고해요. 그러니 실장님도 절 믿고 지지해주세요. 괴상한 제안은 전부 물리치고요.”
다행히도 자신이 보유한 주식과 최준호 지인들이 보유한 주식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비서실장은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했지만 더 해봤자 선을 넘는다는 걸 느꼈는지 조용히 물러났다.
“하아.”
홀로 남은 이세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엄습하는 압박감을 해소시키려 애썼다.
힘들었다.
비서실장 앞에서는 어떤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했지만 안팎에서 시시각각 가해지는 공격을 버텨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지만 비서실장의 말이 옳았다. 이쯤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움직임을 보여야 했다.
그럼에도 버텨낸 것은 최준호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는 절대 죽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봐왔기에 확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이기에 시시각각 가해지는 압박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도 견뎌내야 한다. 믿음의 대가는 달콤할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도 사람이기에 흔들릴 때가 있었다.
“나도 다현이처럼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럴 때만큼은 정다현이 부러웠다.
자신 또한 맹목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그 믿음을 가진다면 좀 더 편안했을 텐데.
“나도 초인이 되었다면 달랐을까.”
한 발, 두 발 앞서 나가던 친구가 저 멀리 나아간 걸 보면서 이세희는 부러움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꼈다.
비슷한 시기에 최준호를 만났지만 그를 향한 믿음에 차이가 존재한다.
자신 또한 굳건한 믿음은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정다현을 보면 별 거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이래서는 다른 부분도 뒤처지게 될 것이다.
이세희는 얼마 전 브루나이 인근에서 벌어진 사건 서류를 들여다보였다.
그룹 일과 전혀 관련 없는 사건이지만 그녀 개인에게는 관련이 존재한다.
바로 최준호가 벌인 걸로 추정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가만히 최준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룹의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서 최준호를 찾고 있었다.
여기에 청와대도 적극 협력했다.
한 차례 독대했던 천명국 대통령이 말하길, 이런 증거를 내세워 최준호가 살아있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걸로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이득이라고.
이세희도 같은 작전을 펼쳤지만 이익에 훨씬 민감한 기업은 더 많은 증거와 확신을 요구했다.
그래도 수확은 존재했다.
그 아래에는 최근 1년 사이 신수 혹은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의 소행으로 보이는 큰 사고들이 있었다.
이 사건의 공통점은 주범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고 전부 빌런을 겨냥한 점이다.
“틀림없어, 준호 씨야.”
이세희는 이 사건이 최준호가 벌인 것이라 확신했다.
처음에는 확증 편향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을 내려놓고 거듭 살펴봐도 이것은 최준호가 아니고서는 벌일 수 없는 일이다.
“돌아오기만 하면…….”
이세희는 자신을 힘들게 만들던 얼굴들을 떠올렸다.
내부에서는 친척들이, 외부에서는 경쟁 기업들이 흔들었다.
특히 빅뱅 시리즈로 점유율을 빼앗긴 미국 기업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최근 매파가 움직인다는 말이 있었지.
전부 최준호가 돌아오면 쓸려나갈 것들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건 별개의 문제.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와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고는 한다.
“이렇게 가버릴 거면 애라도 하나 남겨두고 가지. 아니, 그건 너무 많이 나갔네.”
찰싹!
자꾸 이상한 망상이 이어지자 손바닥으로 뺨을 두드린 이세희는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잡았다.
최준호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
* *
최준호가 실종되고 가장 애매해진 곳이 있다면 바로 최준호 팀이었다.
처음 3개월은 진세정도 최준호의 생존을 확신하며 팀원들을 독려하며 버텼다. 그 기간 동안 최준호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등, 나름 바쁘게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최준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버서커와 이세희, 정다현의 도움이 없었다면 흔적도 없이 공중분해가 되었을 것이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진세정에게 의외의 우군이 되어준 것은 윤희였다.
어느 날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진세정에게 끝까지 팀을 유지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리 그래도…….”
“에이, 뭐 어때요. 제 돈도 아니고 오빠 돈인데. 그리고.”
말을 멈춘 윤희는 진세정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오빠도 그걸 바랄 거예요. 자기는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왜 죽은 사람 취급하고 멀쩡한 팀을 해체했냐고 말을 할 걸요? 나중에 팀장님이 책임져야 할 수 있어요.”
“그런 책임이라면 백만 번도 더 질 수 있어요.”
“어, 어? 전 그런 의미로 얘기한 게 아닌데…….”
“저도 농담이에요.”
전의를 잃어가던 진세정은 윤희의 지지에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말마따나 최준호는 죽은 것이 아니다. 비록 각성자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최준호의 강함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진세정이고 그가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그동안 해온 것이 아깝거니와 최준호가 무사히 돌아왔을 때 할 수 있을 반격이 아쉽게 느껴졌다.
이제껏 두들겨 맞았으니 최소 천 배 이상으로 갚아줘야 하지 않는가.
가만히 듣고 있던 윤희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천 배는 좀…….”
“그게 헤드 브레이커의 정신이거든요.”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어도 돼요. 그래야 다음 번에 같은 실수를 안 하겠죠.”
“…….”
왜 최준호와 진세정이 그렇게 죽이 잘 맞았는지 편린을 엿본 기분이었다.
“근데 팀장님을 보니 오빠가 잘못되었을 거란 생각은 조금도 안하고 계시네요.”
“초인님이 잘못되었다고요? 제가 볼 때 세상이 멸망해도 초인님은 혼자서 살아남을 분이세요.”
“그, 그 정도까지요?”
“지금은 즐겁게 기다리는 순간이에요.”
진세정의 얼굴에는 짙은 확신이 실려 있었다.
“윤희 씨는 시원한 맥주를 맛있게 먹는 법을 아세요?”
“맛있는 안주? 아니면 좋은 사람과 자리?”
“그것도 맞지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갈증을 증폭시키는 거예요. 무더운 여름 날 5층에 있는 호프집을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으로 올라가는 거죠. 그리고 가게 안에 들어가 시원한 생맥을 받아드는 거죠. 그리고 원샷.”
꼴깍.
그 생생한 설명에 윤희는 침을 삼켰다.
“초인님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제 심정이 그래요. 계단으로 치면 4층쯤?”
“곧 시원한 생맥이 나오겠네요.”
“네. 아마 초인님이 돌아오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테니까요.”
자신의 임무는 최준호가 무사히 돌아왔을 때 이빨을 드러낸 녀석들을 쓸어버릴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거란다.
맛있는 생맥은 무슨, 윤희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사람을 버려놨어…….”
“버려놓다니요, 저는 초인님 밑에서 아주 재밌게 일하고 있어요. 기대되네요, 맛있는 생맥을 마시게 될 그 순간이.”
갈증 어린 진세정의 얼굴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
* *
“아무리 그래도 믿음이 좀 과한 거 같은데…….”
진세정 앞에서 수긍했지만 그 막연한 믿음은 윤희로 하여금 가슴이 따끔하게 만들었다.
정다현과 진세정의 믿음은 종교적인 수준이고, 이세희는 그룹의 명운을 걸고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러다 만약 오빠의 죽음이 확인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윤희 또한 최준호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떠도는 말들이 하도 많다 보니 듣다 보면 조금씩 헷갈릴 때가 있었다.
“애초에 그 인간이 그런 참을성이 있다고? 그 전에 나타나서 싹 다 죽여 버렸을 거 같은데.”
그것이 일반적인 최준호의 모습이었으니까.
오히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심각한 부상 때문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최준호가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에게 무력감도 느끼기 싫었고.
마음 같아서는 멀쩡하게 나타나서 이 불안감을 종식시켜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부모님을 위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을 걸 알면서도 집안에 들어올 때 인사하는 것도 일종의 버릇이었다.
부질없는 희망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집안에 인기척이 감지되었다.
“어?”
부모님인가?
아니다, 오히려 실의에 빠진 부모님은 집에서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 대체 누가?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간 윤희는 식탁에 앉아있는 인영을 발견하고 굳어버렸다.
“어, 어?”
“왔냐?”
된장이 잘 배어든 밥알과 아울보어 눈알을 숟가락 위에 얹어 입에 밀어 넣고 있는 최준호의 모습.
주방에 온 윤희가 본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