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머리가 하얗게 물든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너무 놀라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윤희는 체험하고 있었다.
그래, 언제나 그렇듯 최준호가 이렇게 불쑥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그런 양반이니까.
배려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고, 언제나 자기 좋을 대로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을 비롯하여 가족들을 위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헛된 희망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곳곳에 최준호가 살아있는 징조가 있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희망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고, 냉정하게 볼 때 1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죽었을 확률이 높음을 의미했다.
아니라면 모습을 드러냈을 테니까.
단지 오빠가 살아있는 걸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척 했을 뿐이다.
내심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려던 차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겨내고 윤희는 목소리를 높였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나타나는 건데!”
“오랜만.”
“지금 그게 1년 만에 나타나서 하는 소리냐!”
“사정이 있었다.”
“그게 무슨 사정인데! 오빠가 없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 줄 알아?”
반가운 마음도 잠시, 최준호가 사라져서 그동안 겪었던 상황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 원망을 오빠에게 분출하면 안 되는 것인데 자꾸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래, 자신의 실수였다.
“…….”
하지만 최준호는 그 모든 걸 담담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물컵을 내밀어서 그걸 받아들고는 단번에 들이켰다.
“하아!”
한껏 감정을 분출해서일까.
짙은 탈력감이 전신을 휘감는 기분이다.
“앉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
* *
1년이라는 시간은 한없이 짧으면서도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길게 느껴질 수 있다.
윤희의 말을 듣고 있으니 나와 얽힌 사람들은 지난 1년이 희망 고문 수준의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겨우 1년 만에 이를 드러낼 줄 몰랐는데.”
“의도했던 게 아니야?”
“반은 맞고 반은 아니지.”
“뭔 소리래.”
“의도적으로 1년 동안 모습을 감춘 게 아니란 의미다.”
“…부상이 심했던 거였어?”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윤희가 짚어내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장 편한 핑계기도 했고.
“그래서 좀 걸렸다.”
“헬 마스터가 강하긴 강했나 보네. 천하의 헤드 브레이커가 죽을 뻔했다는 걸 보면.”
“…….”
평소라면 실없는 소리로 치부했을 테지만 헬 마스터로 인해 큰 부상을 입은 건 맞으니까.
특히 혈종을 제거하기 위해 이용했던 것은 다시 생각해도 죽을 뻔한 큰 위기였다.
초재생조차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으니. 이렇게 보면 혈종의 말이 맞는 것도 있었다. 자신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말. 내가 과거에 머무르고 더 강해지지 않았다면 나 역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괜찮은 거야?”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어.”
“그걸로 끝?”
“뭐가 더 필요한데.”
“예전처럼 지낼 수 있는 거냐고.”
그 속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가장 큰 건 역시 내 힘에 관련된 부분이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무리가 가지 않으니까 온 거다.”
자꾸 내 상태를 캐묻는 윤희를 진정 시키고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자세히 캐물었다.
아직 흥분이 덜 가셨는지 윤희는 두서없이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결과 자세히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을 둘러싼 주변국의 상황과 내 주변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개판이군.”
“누가 만든 개판인데.”
“나라는 거냐?”
“그럼 아니었어?”
“어째 당사자가 제일 태평해. 주변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있는데.”
“이젠 다른 녀석들도 죽을 거니 괜찮을 거다.”
“어?”
내 말을 듣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멈칫했던 윤희는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짓고는 경악했다.
“설마 내가 말했다고 다 죽이려는 거야?”
“당장은 아니지.”
“결국 다 죽인다는 거잖아.”
“네 말만 듣고 어떻게 다 죽이냐.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봐야지.”
“…의외네? 당장 뛰어가서 다 죽일 줄 알았는데.”
“네 말에 얼마만큼 신뢰가 있느냐 부터 생각해봐야하지 않냐.”
얘는 충분히 원한 감정 있는 놈을 섞고도 남았다.
뭐, 윤희의 원한을 샀으면 그만한 각오를 하는 것도 맞지만.
그제야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윤희의 눈동자에 불꽃이 튀었다.
“지금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거라서 못 믿는 거였어? 지금 장난하냐!”
열을 내기는 했지만 1년 동안 못 만나서 서먹했던 건 완전히 풀렸다.
저번 생에서는 저걸 풀어낼 용기조차 없었는데.
이제 혈종이 사라지고 나를 둘러싼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 쉬자.”
오랜만에 온 집에서 좀 쉬려고 했지만 윤희가 순순히 놔주지 않았다.
“응, 부모님부터 보고.”
“좀 천천히 가면 안 되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엄마아빠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아? 빨리 가자! 가자고!”
윤희는 망설이는 나를 강제로 잡아끌다시피 해서 데리고 갔다.
저번 생의 경험 때문일까. 집을 오랫동안 떠나 있으면 다시 가는 것이 망설여지는 게 있었다.
과연 내가 집에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 나로 인해 가족이 짐을 짊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다.
내가 혈종일 때 평생 창살 없는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야 했던 가족의 모습이 꽤 큰 상처로 남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망설였던 것인데 윤희로 인해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혈종이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던 걱정이 완전히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우리 준호, 엄마가 뭐 해줄까?”
“된장찌개요.”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서일까, 어머니가 해준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다.
“너 방금 전까지 된장전골에 밥 세 그릇 먹었잖아!”
그 와중에 윤희는 시비를 잊지 않았다.
*
* *
오랜만에 어머니가 해주신 된장찌개로 배부르게 배를 채운 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내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냄새를 맡은 녀석이 슬슬 나타날 때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은밀한 기척과 함께 불쑥 모습을 드러낸 녀석이 있었다.
바로 용용이였다.
[오랜만! 잘 지냈어?]“어.”
[흔적이 끊겨서 걱정했어. 네가 죽을 리가 없는데 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는지 이상했거든.]용용이한테 가장 약한 순간을 드러낼 필요가 없지.
신수라는 녀석들은 자기 자신이 제일 잘난 맛에 사는 종족이다.
그 자부심에 금이 가면 손을 쓰는 걸 주저하지 않지.
이번에 헬 마스터를 죽이고, 즉사 기프트를 얻으려고 했던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결과적으로 즉사 기프트는 얻지 못했다. 그로 인해 죽음의 위기도 겪었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수의 본질을 파악하고 더 강해질 수 있었다.
“넌 어떻게 지냈냐.”
[나야 평소대로 지냈지. 네가 언제 나타나나 기다리면서 네 걱정이 돼서 추적도 해보고, 흠흠!]말을 하면서 검은 속내가 줄줄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무튼 축하해! 그 기프트는 진짜 만만한 게 아니었는데 그걸 이용해서 걱정거리도 없애버렸네?]용용이는 내가 즉사 기프트를 이용해서 혈종을 제거하려 하는 걸 알던 장본인이다.
처음에는 미친 발상이라고 하면서 펄쩍 뛰더니 가능할 수도 있다면서 관심을 보였었다.
그리고 성공을 했지.
대신 그 과정에서 나는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래도 피해가 컸을 텐데 용케 잘 극복했네.]“내 일부가 사라진 상태였으니까.”
혈종이 말했던 것 중 전부가 거짓은 아니었다.
혈중섭식을 얻으면서 나는 그 기프트에 내 모든 걸 내주었다.
그 결과 혈중섭식에 잡아먹히면서 내가 곧 혈중섭식이고, 혈중섭식이 내가 되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이미 동화가 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이것은 누군가를 떼어놓으려고 해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떼어놓는 순간 존재 자체가 위험할 수 있어서다.
그걸 헬 마스터의 즉사 기프트로 잘라버린 것이다.
물론 혈종의 말 대부분은 거짓이었다.
녀석이 곧 나고 내가 혈종이라면 즉사 기프트에 나도 죽었을 테니까.
별개의 인격이었기에 혈종만 죽고 사라졌다.
제 꾀에 스스로 당한 셈이지.
하지만 녀석이 내게 기생하면서 차지하던 비중은 만만치 않아 목숨이 위태로웠다.
내가 1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여기에 몇 가지 소소한 게 더 있긴 하지만.
그 사이 용용이는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킁킁, 이건 현아 냄샌데?]“그 근처를 들르면서 만나갖고 얘기 좀 나눴지.”
[난 왜 빼놔!]“그럼 내가 현아랑 얘기하려고 백두산에 있는 널 불러와야 한다는 거냐?”
[그,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섭섭하잖아.]하긴, 친구라고는 현아밖에 없는 용용이로서는 그 행동마저도 섭섭하게 느껴질 수도.
[…취급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아. 1년이 되었어도 역시 넌 바뀌지 않았네.]사람은 원래 죽을 때 바뀌는 법이다. 그리고 내가 무수히 많은 빌런들을 죽여 본 결과 죽기 전에 바뀌는 것도 시늉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혼의 반이 사라졌으니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그 녀석이 영혼의 반이라고?”
[응.]“죽고 싶나 보군.”
용용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가 하도 그 녀석 때문에 미쳤던 거라고 주장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 넌 너였어.]“무슨 의미냐?”
[유통 기한이 최대로 지나간 건 너라고. 축하해. 넌 내가 본 인간 중 가장 유통 기한이 많이 지난 인간이야! 기쁘지? 으갸갸갸갸갹!]하도 깐족거리길래 난 용용이를 붙잡고 사정없이 구기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더 아파졌어!]“신수에 대한 이해도가 좀 높아졌거든.”
헬 마스터의 즉사 기프트는 혈종을 제거했고 동시에 나는 헬 마스터의 즉사 기프트를 얻으려고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기프트를 얻었지만 사용하는 건 실패했다. 그 안에 무척 많은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지만 굳이 용용이한테 해서 좋을 건 없었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내 기프트와 신수와 관계였다.
이건 차차 알아볼 생각이다.
“앞으로 까불지 마라.”
[씨, 이렇게 되면 나도 대책을 세워야 되나.]“덤벼보던가.”
[넌 왜 대책을 세운다는 게 다 덤비는 걸로 생각해?]“아니면 말고.”
[에휴, 성격은 여전하네. 그럼 당분간 좀 쉬겠네?]용용이는 내 상태가 상태이니 만큼 쉴 것을 예견했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움직여야지.”
[움직인다고?]“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죽일 놈들이 늘어났더군.”
세상은 넓고 죽일 놈은 많다는 진리가 여기에도 적용되었다.
[이래서 인간은 어리석다니까. 그 사이를 못 참고 너한테 찍혔어?]“찍힌 건 아니고, 자기들 욕심을 드러낸 거지.”
나한테 자발적으로 양보했지만 내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이상 양보할 의미를 느끼지 못할 걸 테고.
다시 회수하려고 했지만 내가 나타난 것이다.
마음만 먹었다면 문제가 없지만 행동에 나섰다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내가 부상을 회복하는 시간이 본의 아니게 옥석을 가리는 시간이 되었다.
[그걸 못 참고 움직이려는 너도 대단하다, 대단해.]조만간 용용이 널 위한 시간도 내줄 테니 얌전히 기다리도록.
[내가 애완동물이냐? 평소대로 해.]평소에도 비슷한 취급이었는데 말이지.
[어떻게 나서려고? 공개적으로 등장?]“그것도 생각해봤는데.”
예전의 나였다면 당연히 용용이 말대로 하겠지만 기왕 1년을 묵혔으니 이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가족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으니, 우선 청와대로 가볼 생각이다.
내가 아는 천명국이라면 내게 제공하기 위해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놨을 가능성이 100%였다.
[그 덜 미친 인간은 안 만나고?]덜 미친 인간? 버서커를 말하는 건가 보군.
당연히 만날 예정이다.
“걘 가장 나중에 만나야지.”
다만 메인 요리인 만큼 입맛을 먼저 돋워놓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음미할 생각이었다.
나한테 완전회복을 숨긴 걸 추궁해야 하니까.
우선 청와대로 가서 천명국에게 죽일 놈이 누구인지 리스트를 작성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