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7
37화
만독불침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자 버서커 녀석이 신났다.
“만독불침라니, 이것만 있으면 너와 좀 더 뜨거운 대결을······.”
광기에 물든 얼굴로 웃던 녀석이 날 보고 있었다. 어느새 두 눈은 호승심 가득해져 있었다.
지금 해 보자는 건가.
덤비면 얼마든지 어울려 주겠다고 말하려 했다. 만독불침, 탐이 났다.
하지만 내 대답보다 녀석이 정신 차리는 게 더 빨랐다.
“···아니군, 지금 자살할 이유가 없지.”
···귀신같은 자식.
아무튼 정산이 끝나고, 버서커 녀석은 짐을 챙기며 작별을 고했다.
“필요하면 다시 연락다오. 저 어린양의 재능이 상당하던데 별의 순간을 볼 수 있도록 기꺼이 협력하지. 그리고, 누구와 달리 난 가르치는 재능도 꽤 있는 것 같으니까. 크크크!”
오늘 만남에서 제일 이득 본 녀석이 버서커라고 생각되면 내가 이상한 걸까.
나는 상념을 털어 내고 멀어지는 버서커의 캠핑카를 멍하니 바라보는 정다현에게 말했다.
“가자.”
“네.”
우리 둘은 서울로 향했다.
“······.”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정다현은 생각할 것이 많아 보였다.
나 같은 경우는 만독불침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뺏고 싶다는 말은 사실 농담이고, 그동안 녀석이 해 온 기행이 피에 새겨져 그만한 기프트 개방 가능성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도 그만한 가능성을 새겼다면 좋았을 텐데.
정작 내 피에 새겨진 기프트는 읽어 낼 수 없었다. 왜 그런 걸까.
그러다 실소가 흘러나왔다.
열 개나 되는 기프트를 보유하고도 욕심을 내고 있다니.
서울로 진입할 무렵, 상념에서 빠져나온 정다현이 입을 열었다.
“버서커는 생각보다 더 재밌던 사람이었어요.”
“그래?”
내가 보기에는 그냥 미친놈인데.
“빌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선입견을 배제하고 보면 그냥 유쾌한 분이던데요.”
“빌런이란 게 악하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
주위 환경 때문에, 사람에게 휩쓸려서, 가정환경 때문에, 한순간의 실수 등등 빌런이 되는 경위는 다양했다.
하지만 처음에 악하지 않을지라도 빌런이 된 순간 결국 악에 물든다.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 한 나도, 혈종도, 버서커도 모두 악이다.
나는 악이 되기 전 시기로 되돌아왔지만 한 번 악에 발을 들여놓으면 발을 빼는 건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제 안의 정의가 모호해지는 기분이에요. 뭐가 정의고 뭐가 악인지 구분이 어려워지면서 이게 맞나 의구심이 들어요.”
“보이고 느끼는 걸 믿어. 네 기준은 흔들리지 않고 있으니까.”
“네. 그리고······.”
정다현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다.
“뭔데?”
“듀얼 기프트는 어떻게 가능한 거죠?”
듀얼 기프트는 말 그대로 두 개의 기프트를 가진 각성자를 말한다. 이는 매우 희박한 확률로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힘들어. 각성자는 기본적으로 기프트에 특화되니까. 다른 기프트를 각성하면 효율이 떨어지게 돼.”
그래서 듀얼 기프트를 가진 각성자 중 높은 수준에 도달한 자는 거의 없다.
“그럼 오빠는··· 아니, 괜한 걸 물었네요. 죄송해요.”
“난 경우가 다르니까.”
나는 열 개의 기프트를 가졌지만 모두 ‘누군가가’ 특화시켜 놓은 기프트를 가져왔다.
좋게 말하면 복사, 나쁘게 말하면 강탈이다.
“지금은 레벨 7의 감각을 네 것으로 만드는데 집중해. 느낌만 잡으면 바로 올라갈 수 있으니까.”
“네, 감사해요.”
결연하게 눈을 빛낸 정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윤희를 보고 느끼는 부분이지만 On/Off 스위치가 확실하다 싶었다.
신성 길드에 출근할 땐 매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집에서는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늘러 붙어 있었다.
정작 나는 윤희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언제나 스위치가 켜진 채로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레벨 8로 인정받으면서 주변 대우도 바뀌다 보니 그 점이 더 커진 것 같다.
현재 내 상황은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다만 지금 시점은 허니문 기간으로 초인으로서 직위를 누리고 있는 단계다. 이제 슬슬 내가 해야 할 의무들이 닥쳐올 것이다.
국가는 내 힘을 써먹기 위해 그만한 투자를 하고 나도 동의한 거니까.
나 또한 거래에서 밀고 당기기가 있을지언정 상대에게 일방적인 손해를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저걸 어떻게 굴리지.
소파에 붙은 녀석을 떼어 놓을 고민을 할 때 귀신같이 눈치 채고 소리쳤다.
“그만 스탑! 지금 나한테 잔소리 하려고 했지?”
“귀신이냐.”
기프트로 불굴이 아니고 독심술을 개방했나.
“애초에 나보다 열심히 수련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놈의 불굴! 불굴! 아예 기프트 이름을 백절불굴이라 하지 그랬어?”
어디서 삼강오륜 주워 보고 아는 척 하고 싶었군.
그런 것치고 윤희의 저항이 생각보다 강력했다.
지금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데, 터진 모습이 궁금했지만 두 눈에 살기가 줄줄 흐르는 걸 보고 생각을 접었다.
“괜찮은 집은 좀 알아봤어?”
“어, 사무처에 말하니 몇 가지 조건 기입하더니 바로 추천해 주던데? 돈만 준비되면 돼.”
“금방 준비될 거야.”
“누구는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서 간신히 사냥하는데 누구는 산책 나가듯 가서 잡아오고, 세상 참 불공평해.”
“나처럼 되고 싶으면 열심히 하면 돼.”
대신 꽤 다이내믹한 삶을 살아야 하겠지만.
근데 장난기를 지운 윤희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마물은 오빠가 혼자 잡은 거야?”
“어, 왜?”
“아니, 그냥. 주변에서 아무 말도 없나 싶어서.”
“별말 없던데.”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리 말하면서 윤희는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몸을 들썩였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윤희가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내게 꼭 알려 주고 싶지만 입으로 꺼내기 부담스럽다는 의미였다.
마물에 관련된 것 같은데 나중에 분위기를 만들어서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나 간다.”
“응.”
의문을 접어 둔 나는 시간을 확인한 뒤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이세희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신성그룹의 행사가 있어 미리 꾸민 이세희는 평소보다 더 화려한 모습을 맞아 줬다.
일로 만난 터라 곧장 일 얘기로 들어갔다.
“준호 씨가 건네준 마물의 심장 가치는 동급 레벨에서 효율면으로 월등해요. 저번에는 3배였지만 프리미엄을 붙이면 5배까지 오를 수 있겠어요.”
“그건 좋은 현상인데.”
“네. 그런 의미에서 저희랑 같이 사업을 해 보는 건 어떠세요? 이 세공 방식을 잠깐이라도 독점하면 떼돈을 벌 수 있어요.”
이세희가 말하길, 내가 배운 세공은 앞서 나간 기술이긴 하지만 기술 독점을 오랫동안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앞서 나간 시간 동안 브랜드를 공고히 하여 마물의 심장 세공 분야 업계 1위에 올라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없어.”
“네, 하지만 저희 그룹 세공사분들 모두 일류에요.”
그리 말하지만 이건 천부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감각이 없어 무지막지한 양의 포스로 활성화 시킨 면이 있고.
역시 원조가 있어야 된다.
“일단 나보다 이 기술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녀석을 소개시켜 줄게.”
“그런 분이 있다고요? 저는 왜 여태까지 몰랐죠?”
“음지에 있으니까.”
“아, 음지, 암시장······.”
난 이세희에게 조만간 저번 생의 하트워커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내게 기술을 전수해 줬으니 이번 생에 결자해지로 풀어야겠지. 돈독 오른 녀석이긴 하지만 이세희가 말하는 규모를 들어 보면 충분히 그 욕심도 채워 줄 수 있을 듯했다.
사업 이야기는 나중에 이어하자는 말에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물 사냥할 때 어떠세요?”
“어떠냐니?”
“어려움은 없나 싶어서요.”
“없는데?”
“그럼 다행이고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분야라서 의아함을 느꼈다.
“아니요, 없어요.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갈까요?”
이세희가 서두르는 척하며 날 외면했다. 아까 윤희도 그렇고 이세희 행동도 그렇고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신성그룹은 각성자들을 위한 신성 백화점 프리미엄 갤러리를 개관한다.
이 행사에 나도 초대를 받아서 이세희를 에스코트하기로 했다.
“근데······.”
“무슨 문제라도?”
“내 차에 태워 달라고? 흠, 상관은 없지만.”
보석 하나에 수억 하는 걸 걸치고 경차를 타고 가도 되려나.
치렁치렁한 드레스 끝자락이 걸릴지도.
이세희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제 차로 가야죠.”
* * *
신성 백화점의 각성자 갤러리는 이세희의 주도로 이루어진 곳으로, 각성자에게 필요한 모든 용품들이 구비되어 있는 곳이다.
마물을 상대할 때 필요한 방어구부터 시작하여 각종 무기 종류와 포스를 활용한 회복제, 해독제 같은 상태 이상 회복제는 물론 각종 일회용 용품과 생존 용품이 진열되어 있다.
여기에 마물의 심장과 부산물을 매입하는 매장까지 들여놓아 각성자가 필요한 물건을 한 곳에서 구입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중 백미는 전세계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들과 콜라보한 방어구였다.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잡아 여성 각성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사로잡았다.
이제 패션쇼를 방어구 걸치고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건강 문제로 일선에 나서는 걸 자제하는 이영문 회장을 대신해서 나타난 이세희는 행사의 중심이었다.
난 옆에 서서 사방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제 것처럼 즐기는 이세희를 바라보았다.
“어때요?”
“각성자 애인을 둔 사람은 다 이리로 오겠는데?”
“정답. 그걸 노렸어요. 이제 성능은 상향평준화가 이뤄졌거든요. 그렇다면 경쟁력은 얼마나 예쁜가에 달렸죠.”
적어도 여성 각성자들한테는 이게 확실히 먹힌단다.
그리고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은 것처럼 남성 각성자들도 조금 더 비싸더라도 멋진 걸 선호했다.
헌터 지망생 천만 명인 시대였다. 정부에서는 대중이 초월적인 힘을 지닌 각성자를 적보다 영웅시하길 원했다.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이 헌터가 되어야 국가의 힘이 강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실력이 뛰어난 미남미녀 헌터는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어 나날이 장비의 디자인이 중요해지고 있었다.
나라면 눈에 띄어서 별로··· 아니다. 이건 도망다니던 빌런의 마인드였다. 레벨 8 초인으로 주목을 받는 이상 나도 화려한 걸 좋아해야 한다.
다시 보니 예쁜 것 같기도 하고.
이세희는 인터뷰도 능수능란했고 신성길드의 행보와 신성그룹이 지향하는 바를 재치 있게 풀어서 얘기했다.
“응?”
그때 한쪽에서 웅성거리더니 말쑥하게 차려입은 훤칠한 외모의 청년이 다가왔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남자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사람 좋은 미소를 하고 있지만 음험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이다, 세희야. 잘 지냈냐.”
“···오빠가 여기 어쩐 일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이세희의 오빠이자 신성그룹의 장남 이세찬이었다. 그리고 신성그룹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동생이 이렇게 멋진 성과를 이뤄 냈는데 와야지.”
“와 줘서 고마워.”
남매끼리 대화였지만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세희를 일별한 이세찬이 날 보며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세희 오빠 이세찬입니다.”
“최준호입니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장안의 화제이신 최연소 초인님.”
어딘가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이세찬이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녀석의 손에 핏줄이 불거지면서 힘을 주는 게 보였다. 효자손으로 살살 긁는 정도의 강도였다. 무슨 생각인가 싶어 얼굴을 봤더니 표정이 기괴했다.
“우리 세희가 남자 경험이 없어서 사람 보는 눈이 약합니다. 주변에 잘 보이려고 하는 남자들이 천지거든요. 다 별 알맹이도 없는 녀석들이고. 세희가 그걸 구분할 능력이 모자랍니다. 오빠 말을 잘 들으면 좀 나아질 텐데 말이죠.”
이거 지금 날 멕이는 거로군.
사실 난 눈치가 빠르다.
“이 팀장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수완이 좋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시야가 좁은 사람은 큰 뜻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확실한 역량 차이죠.”
이세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지금 그거 나한테 하는 말입니까?”
“듣는 사람이 판단하면 될 일입니다.”
“이 반쪽짜리가······.”
반쪽?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지?
설마 새로운 이명인가. 안 그래도 헤드 브레이커니, 말소자도 마음에 안 드는데. 반쪽은 뭘까. 반으로 접어 버려서 그런 건가.
난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난 힘을 과하게 줘서 부들부들 떨리는 녀석의 손을 보다 가볍게 힘을 줬다.
“끄으읍!”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이 착각하게 있는데 자신은 아무런 위해를 입지 않을 거라 생각하더군요. 제가 지병이 있어서 그런 머저리를 볼 때마다 자기주제를 파악하게 짓밟아 주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여기서 좀 더 힘을 주면 이세찬의 손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손을 걸 보며 나도 힘 조절이 좋아졌음을 느꼈다.
“한 번 보고 싶으신지?”
“흐읍! 흡!”
이세찬은 가까스로 고개를 한 번 저어 보였다. 내가 손에 힘을 풀자 휘청거리다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전무님!”
“도, 돌아가자.”
이세찬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혼비백산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둘러싸고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나저나 반쪽짜리라.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걸 눈치 챈 이세희가 다가왔다.
“준호 씨, 무슨 일 있었어요?”
“별거 아냐.”
왜 사람은 꼭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는 건지 모르겠다. 마물은 죽어서 심장과 부산물이라도 남기지만 사람은 그것도 없는데.
난 이세희에게 카메라 셔터를 눈짓했다.
“저기 기자가 찍는다. 오늘 주인공이 더 빛나 줘야지.”
“네.”
이세희가 내 말을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 * *
행사를 마친 뒤 나는 빌런 소탕 건 보고를 위해 천명국과 만났다.
첫날 핼쑥해졌던 그는 건강 이상이 있나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빌런 소탕 작전부터 시작해서 각종 행사까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다만 외국인 빌런들은······.”
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며 난 의아함을 느꼈다.
“해결된 게 아니었습니까?”
“여러 가지로 골치가 아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죽일 타이밍을 놓쳤다면 시민증을 발급하고 주민등록을 해 놓는 건 어떻습니까?”
“시민증과 주민등록을?”
“그럼 우리 국민이니까요.”
“···매우 끌리는 방법입니다.”
천명국이 감탄 섞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고민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인으로서 며칠 어떠셨습니까.”
“만족스럽습니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날 땐 헬리콥터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작전 지역으로 출동하기 수월하겠네요.”
“초인님이 필요한 걸 맞춰 드리기 위해 노력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초인님께서도 대한민국 소속 초인으로서 역할을 해 주셔야하지요.”
말을 멈춘 천명국이 조용히 날 바라봤다. 내 대답을 바라는 얼굴이다.
“당연히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서로 주고받는 거래니까요.”
“그런데······.”
곤란한 듯 머뭇거리는 천명국에게 내가 말했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실은 최준호 초인님에 대해 최근 일각의 우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우려? 설마 말소자의 행적이 드러난 건가?
정체를 짐작할 사람은 이세희와 버서커밖에 없는데.
버서커 이 녀석이 내가 입맛 좀 다셨다고 떠들고 다녔나.
“국가 소속 초인은 외부,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 권력을 수호하고 빌런의 위협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마지막. 국가 소속 초인은 마물의 위협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 합니다.”
“······.”
천명국은 날 보며 말했는데 난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마물을 잡는 건 당연한 일이다.
“빌런 조직 소탕도 좋고, 국가 권력 수호도 좋습니다. 하지만 국가 소속 초인이 진정으로 빛을 발할 때는 마물을 사냥할 때입니다.”
그는 대형 길드가 국가 권력마저 넘볼 수 있을 정도로 커진 이유를 마물 사냥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돈이다. 마물의 부산물은 돈이 되니까.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부산물로 장비를 제작하니 세력이 커지는 것이다.
근데 이 말을 왜 나한테 하는 거지.
“일각에서 최준호 초인님의 마물 사냥 능력을 놓고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입니까?”
“마물 사냥을 못하는 반쪽짜리 초인이라고······.”
그래서 이세찬이 아까 나더러 반쪽짜리라고 한 건가.
다행이군. 헤드 브레이커, 말소자처럼 이상한 이명 하나가 는 줄 알았다.
그래서 윤희가 내게 그런 태도를 보였던 거였나.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시죠.”
“···그저 뒤에서 떠도는 소문일 뿐입니다. 신경 안 쓰셨으면 합니다.”
“예.”
이어진 말은 말 그대로 황당한 날조였다.
내가 레벨 8 초인이 되었지만 경험이라고는 하위 레벨 빌런을 잡은 게 전부이며, 최대 실적이 인형술사 제거지만 인형술사는 불사신으로 유명했을 뿐 전투력은 하위에 불과하단다.
특히 내가 마물 사냥에 나서지 않는 건 ‘마물 공포증’을 겪고 있어서고, 정부에서는 마물 사냥도 못하는 초인을 붙잡기 위해 호구 계약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 증거가 마물 사냥에 나서지 않는 거란다.
공식적으로 난 마물 사냥을 단 한 차례도 나서지 않긴 했다.
천명국은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혹시 마물 사냥을 못하는 비밀이 있다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이 양반도 내가 숨기고 있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황당한 마음뿐이다.
내가 혈종일 땐 세계를 멸망시킬 거라며 과장하더니 이제는 마물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반쪽짜리 취급을 한다.
실소만 나왔다.
“곧 증명을 해 보이겠습니다.”
저번 생을 살아 본 나는 기억하고 있다.
한 달 후, 제8호 괴수인 ‘누리’가 서울에 나타난다. 그때 모든 게 밝혀질 것이다.
내 말에 천명국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그리고 실장님.”
“예.”
“그거 떠든 사람들 리스트 작성을 지금부터 해서, 제가 마물을 잡으면 저한테 주실 수 있습니까?”
“······.”
“그냥 궁금해서 그런 겁니다. 궁금해서. 보기만 할게요.”
“······.”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다.
이러면 왠지 기대에 부응해 줘야 할 거 같잖아?
“제발 좀······.”
천명국의 안색이 흙빛이 되며 배를 부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