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70
370화
“어디 가?”
용용이와 대화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니 거실에 지박령 하나가 날 불러 세웠다.
마치 내가 어디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감시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나갔다 오려고.”
“세상을 그렇게 뒤집어놓고 본인은 편안하게 나간다고? 하, 내가 지금 들은 게 말인지 방구인지.”
“1년 만에 온 오빠한테 시비밖에 걸게 없냐.”
“있는 걱정이라고는 전부 끼친 사람한테 이 정도도 사치야, 사치. 진짜 내 동생이기라도 했으면 내가 버르장머리를 바로 잡아줬을 텐데.”
“내가 네 동생이어도 내가 더 강할 걸.”
“…진짜 말 한 마디도 안 지는 게 더 짜증나.”
그러면서도 내가 더 강할 건 아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윤희의 정신은 아직 멀쩡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다.
“어디로 갈 건데?”
“청와대.”
“죽일 놈 리스트 만들려고?”
“…아닌데?”
“거짓말 하지 마라. 내가 오빠를 한두 번 봐? 딱 봐도 그동안 누가 죽을 짓 했는지 체크하러 가는 거잖아.”
“…….”
나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다니, 솔직히 말해 굉장히 놀라웠다.
친남매면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하는 걸까? 근데 정작 나는 윤희의 속에 대해 잘 모른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친동생이 친오빠에 대해 잘 아는 게 뭐 그리 놀랄 일이란 거야?]원래 남매 사이만큼 무심한 게 없는 법이다. 용용이 녀석이 그 진리를 알 리 없지.
[뭐만 말하면 시비네.]“가는 길에 다현 언니랑 세희 언니도 만나. 두 사람 전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많이 걱정했나?”
“응. 다현 언니는 주변에서 정신이 이상하다는 취급을 받을 정도고, 세희 언니는 오빠 생존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어. 둘 다 지금 사회적으로 받고 있는 압력이 장난 아냐.”
“그 정도로?”
“다른 곳도 아닌 대한민국 제일의 그룹이니까.”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 이세희의 경우는 내가 장기간 자리를 비우더라도 입지가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이영문의 안배도 있고 나도 몇 가지 조치를 취해놓았기 때문이다.
“오빠가 옆에 없으면 다 말짱 도루묵이라는 거지.”
“역시 다 죽였어야 했나.”
“떠오르는 방법이 그거밖에 없어?”
“확실하잖아.”
“그, 그렇기는 해.”
윤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순순히 수긍했다.
역시 사람은 빨리 망각하고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군.
이거, 생각보다 죽일 놈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오랜만에 축제가 벌어지겠네.]“일단 청와대로 가서 상황 파악부터 하고. 언제가 좋을지 가늠해보는 건 대통령이 잘 파악하겠지.”
“…그건 알아서 해. 대신 빨리 만나. 난 두 언니한테 언제까지 표정 관리 할 수 있을지 자신 없어.”
그래도 비밀로 하고 있겠다는 전제를 깔아주겠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나도 내 참을성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응.”
*
* *
대통령이 된 천명국은 청와대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다.
젊은 시절,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술을 정확하게 이행해내는 각성자로 명성을 높였다.
그에 비해 실력이 고강하다는 평가는 받지 못했는데, 말년에 최준호를 만나고 기프트를 개방하게 되면서 뒤늦게 성장에 눈을 떴다.
비록 초인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지금이 자신의 전성기임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청와대 경호 시스템 또한 무조건 철저하게 구성하기보다 본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로 개편했다.
실력을 과신해서가 아니다. 자신에게 최적화를 시킨다면 여러모로 비용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단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개편된 시스템은 꽤 만족스러웠다.
가상의 적국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언제든 자리를 피할 수 있다고 자신할 정도였으니까.
지금 가장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자신의 감각과 경호 시스템이 겸비되면 누가 와도 감지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뜬 그는 눈앞에 느껴지는 인기척이 가슴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만약 상대가 조금이라도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은 의식조차 찾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이만한 실력자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눈을 굴린 그는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
“오랜만입니다, 대통령님.”
요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건가? 왜 헛것이 보이는 거지?
최준호 얼굴을 본 천명국은 혼란에 휩싸였다.
“왜 그러시는지? 무슨 이상이라도 발생한 겁니까?”
이상하다고 중얼거리면서 대화가 어려우면 브레인워싱이라도 써야 하나 중얼거리는 모습에 천명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속이 쓰려오게 만드는 사람.
저런 미친 소리를 할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다.
“최준호 초인님, 본인 맞는 겁니까?”
“변장 기프트를 사용하는 빌런이 아니라면요.”
“아…….”
순간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토록 걱정하게 만든 당사자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최준호를 둘러싼 상황이 너무나 갑갑하여 전한철을 찾아가서 몇 차례 조언을 구했던 천명국은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만성 복통은 씻은 듯 사라졌다. 혈변을 보던 것도 멈췄고.
하지만 최준호를 보는 순간 다시 그 증상이 발동했다.
그래도 좋았다. 이렇게 무사히 나타났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아니, 아니지. 그건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시고, 몸 상태는 좀 괜찮으십니까?”
“막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좋지는 않습니다.”
천명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최준호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
* *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적당히 각색하여 설명해줬다.
헬 마스터와 전투에서 기프트에 입은 피해가 꽤 컸던 점, 내가 파티와 미국 정부, 남미의 모인 초인들을 신뢰하지 않았기에 조용한 곳에서 회복했던 것까지.
그 과정에 생략된 게 많았지만 천명국은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니, 무사한 게 천만 다행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내 반이라고 할 수 있던 혈종이 억지로 뜯겨져 나간 일이니까.
“…….”
천명국은 시종일관 내 이야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누가 보면 세상 근심 걱정을 모두 떠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다.
“실례되는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그럼 초인님은 현재 온전한 무위를 발휘할 수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답하기 힘들다면 안 해주셔도 됩니다.”
“70% 정도 될 겁니다.”
상태는 꾸준히 나아지고 있고,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천명국의 표정이 환해졌다.
“아! 그래도 다행입니다.”
말은 그랬지만 나는 천명국의 표정에 스치고 지나갔던 걱정을 놓치지 않았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네요.”
“제가 실수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까?”
“제 실력이 예전하고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요.”
“……!”
“70% 정도면 예전의 전력하고 비슷할 겁니다.
세상에 부상 회복에만 전념하면 지루해서 어쩌나. 당연히 더 강해지기 위한 고민도 병행했다. 혈종이 뜯겨나갈 만큼 큰 부상을 입은 피해가 결코 잘못된 것만은 아니어서 더 강해지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그 말씀은 지난 1년 동안 더 강해지셨다는 겁니까?”
혼비백산한 표정에 내가 말을 잘못한 건가 싶었다.
“예.”
“…하하, 사실 걱정이 무의미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제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싶었다. 당연하지만 주변에서 시달리게 만들었을 테고.
내 생각보다 죽일 놈이 훨씬 더 많을지도.
“제 상황은 설명했으니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듣고 싶습니다.”
“초기에는 모두가 초인님의 죽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심이 싹 틔기 시작하고, 얼마 전부터 초인님의 죽음을 믿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다.
내게 호되게 당한 녀석들이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경계심을 갖고 조심할 터.
하지만 인간의 망각은 놀라운 수준이어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예전 기억을 싹 잊어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러다 내가 죽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경계가 풀리고 선을 넘을 테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대통령님부터 찾아온 것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초인님이라면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알려주십시오, 죽일 놈이 누군지.”
“죽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저들의 속이 더 쓰린 방향으로 가보는 게 어떻습니까?”
“우선 듣겠습니다.”
천명국이 입을 열었다.
*
* *
제임스 리드가 한국으로 입국했다.
옆에서 두고두고 귀찮게 구는 잔소리꾼의 등장은 강경 일변도를 걷고 있는 아놀드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아놀드, 너무 심했어.”
“최준호는 죽었습니다.”
“서로 생각은 다를 수 있어. 하지만 한국과 관계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문제라고.”
헤드 브레이커가 사라진 대한민국은 여전히 강국이며, 미국이 예전의 패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하는 파트너였다.
“제가 본 것과 다르군요.”
“뭐가 다른데?”
“현재 대한민국은 추락할 일밖에 남지 않은 곳입니다.”
아놀드의 목소리에 확신이 실려 있었다.
“재계를 주름 잡던 신성그룹은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고 외부에서 강력한 견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준호가 사라진 신성그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일지언정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은 행사할 수 없을 겁니다.”
“각성자 전력은? 버서커가 있어!”
블랙하운드를 꺾음으로써 버서커는 십대초인의 반열에 올라선 것을 세상에 증명했다. 여기에 정다현이라는 천재가 20대의 나이에 초인이 되었고. 세계 어느 곳을 둘러봐도 이만 한 전력을 보유한 곳은 없다.
하지만 아놀드의 생각은 달랐다.
“마초맨은 진심으로 버서커가 대한민국에 충성을 바칠 거라 생각합니까?”
“…….”
“누명이었다고 하나 그의 본질이 광기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최준호라는 족쇄가 사라진 버서커는 자기 마음이 가는 방향대로 움직일 사람이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이것도 미국에 기회가 되겠습니다.”
“그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제가 추구하는 건 미국의 이익이지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닙니다.”
“…….”
“그리고 블랙 프린세스 또한 마찬가지. 올곧은 신념을 가졌지만 고지식하고 정치에 약한 그녀는 대한민국이 제대로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적당한 시점에 그녀의 가족을 활용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버서커와 블랙 프린세스라.”
“상상만 해도 기대되지 않습니까?”
늘 기계 같던 아놀드가 기대감을 실어 말했다.
“…….”
반대로 그 말은 제임스 리드의 마음을 차갑게 식혔다.
상상하는 방향대로 일이 이루어질 거 같지만 모든 것은 최준호가 돌아오면 무산될 일이다.
아니, 허튼 짓을 한 것으로 머리가 부서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최준호에 대한 무지인가.
아니다, 서류에는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머릿속으로 모든 걸 계산해낼 수 있다는 자만에서 오는 실수였고.
자신의 말이 먹혀들지 않을 걸 알고 있지만 제임스 리드는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대통령께서도 우려하고 있다고.”
“그래서 제가 멈추길 바라는 것입니까?”
“적당히 하길 원하지.”
“그건 제 역량에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아놀드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회에서는 제 방향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가려고?”
“예.”
양자가 모두 윈윈하는 것은 소설이나 만화에서 나오는 일이다.
누군가가 이득을 보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한다.
지금은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바뀌었을 뿐이다.
“모든 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성공도, 실패도 결과는 모두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아놀드는 어디까지나 책임감에 기반 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최준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제임스 리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 혼자 책임질 수 없어서 그래.”
잘못은 혼자 저질러도 책임은 전체에게 묻는다.
그게 최준호란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