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71
371화
아놀드는 결국 제임스 리드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강경파와 파티의 은근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나 마초맨은 미국의 영웅이자 리그 토벌 작전 당시 12궁의 일원을 제거한 실력자였다.
전부 구워삶아 놓은 대상을 어느 정도 풀어줘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한 차례 양보를 해준다는 것은 그 뒤로 양보를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기에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청와대에 만남 요청을 넣었을 때,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다.
천명국 대통령이 독대를 요구했던 것. 아니, 대통령과 아놀드, 그리고 제임스 리드를 포함한 세 명만 모이자는 은밀한 제안이었다.
“역시 계산이 잘 서는 대통령입니다.”
“…….”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명국은 ‘특급’으로 분류되는 시뮬레이션 기프트 소유자인 걸 미국에서 파악하고 있다.
끊임없는 Try&Again이 가능한 이 기프트는 예언보다 더 까다로운 기프트 중 하나로, 이대로 대한민국이 더 강해지면 천명국의 능력과 결합되어 감당할 수 없음을 인지한 상태였다.
지금처럼 강경하게 나가는 것도 기를 한 차례 꺾어놓기 위함이고.
“왜 그러십니까.”
“그냥, 찜찜해서.”
“복잡하게 생각할 게 있습니까. 현재 위기에 몰린 건 대통령 측입니다. 헤드 브레이커가 없고, 버서커는 통제가 불분명합니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 좋은 조건으로 협상하려는 게 분명합니다. 오히려 칭찬하고 싶군요.”
“그것뿐일까.”
“뭐가 더 있습니까.”
“내가 본 한국 대통령은 절대 쉽게 물러나지 않아. 아마 다른 수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어.”
“상대를 경계하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서는 좋지 않습니다. 아마 비밀스럽게 만남을 요청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아놀드는 의기양양하게 두 손가락을 펼쳐들었다.
“하나는 현재 열세를 인정하고 우리에게 자비를 바라는 것.”
비 정치인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천명국의 능력은 독보적인 수준으로 꼽히고 있다.
얼마나 정치를 잘했느냐면 천명국의 국정 운영 능력에 힘입어 다음 총선에서 여당이 개헌선을 넘느냐를 놓고 연일 화제가 되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들에게 굽히면 지지율이 곤두박질 칠 테니 속도조절을 필요로 할 것이다.
두 번째 의도는 첫 번째의 연장 선상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거래입니다.”
지지 기반이 이전 대통령과 최준호가 전부인 천명국의 입장에서 이번 총선에 자기를 따르는 사람을 대거 꽂아 넣고 싶은 게 사실일 것이다.
제임스 리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아놀드의 자신감이 워낙 강해서 더 태클을 걸지 않기로 했다.
“난 조용히 지켜보도록 하지.”
“직접 제가 담판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얕보는 건 이쪽 같은데.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순순히 수긍했다.
*
* *
제임스 리드와 아놀드가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는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침통함으로 이해한 아놀드의 기세가 더욱 등등해졌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입니다, 마초맨.”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한국에 오랫동안 계셨던 마초맨이라면 이 자리를 더 부드럽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진짜 포기한 걸까.
천명국의 태도에 제임스 리드가 느끼는 혼란은 더욱 커졌다.
그만큼 헤드 브레이커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가 없다면 길들여진 마물이나 버서커 모두 고삐가 풀린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하지만 고작 1년, 이제 슬슬 헤드 브레이커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시점에 포기하는 게 맞는 걸까.
‘모르겠어.’
최준호라는 변수는 워낙 상상을 초월하다 보니 두뇌 회전이 둔해진 기분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가는 걸 느끼면서 천명국과 아놀드의 대화에 집중했다.
“오늘 초청한 건 저번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함입니다.”
“당연히 귀국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상황도. 저희는 이러한 사정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시군요.”
“음?”
지나치게 여유로운 천명국의 태도를 보며 아놀드는 의아함을, 제임스 리드는 불안함을 느꼈다.
“제가 초대한 건 대외적으로 강경한 발언을 멈췄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왜입니까?”
“대사의 발언이 한미 양국의 관계를 악화 시키고 있어서입니다.”
“대통령님, 제 발언이 그런 의미가 아님을 잘 아실 텐데요.”
“아놀드 대사.”
말을 끊은 천명국이 아놀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아놀드가 일방적인 공세를 퍼붓는 쪽이었지만 천명국은 레벨 7에 도달한 각성자. 그것도 기프트를 보유한 실력자였다.
“읏…….”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압도된 아놀드가 신음을 흘렸다.
“본국은 대사의 뜻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습니다.”
“…정녕 끝까지 가려는 것입니까.”
“기간이 정해진 계약을 뒤집으려고 하는 건 대사입니다. 무모한 요구를 한 건 그쪽입니다. 그러니 지금 하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전신을 압박하던 기세가 사라지자 아놀드는 가볍게 숨을 몰아쉰 뒤 말했다.
“상황은 언제든 바뀌는 법입니다. 1년 전과 현재 귀국의 상황이 동일하다고 생각합니까?”
“바뀐 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는군요.”
헤드 브레이커는 죽었다.
아놀드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선을 넘지 않았다.
눈앞의 천명국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 챘을 것이다.
그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전혀. 이 세상에 저만큼 현실적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건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걸 알게 될…….”
위협적으로 말을 하던 아놀드는 천명국 뒤로 다가오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젊은 참모가 아닐까 생각했다. 얼굴만 보고 뽑은 게 아닌지 코웃음이 나올 만큼. 장소를 분간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청와대 상황이 개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옆에 있던 제임스 리드가 굳어버린 걸 느꼈다. 그리고 저 얼굴이 익숙하다는 걸 느낀 아놀드는 그가 이 자리에 있어서도, 등장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 어어? 설마…….”
“방금 전까지 말 잘하던데, 왜 말문이 막혔냐?”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오만한 말투. 사정없이 자신을 깔아뭉개는 기세에 아놀드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헤, 헤드 브레이커?”
헤드 브레이커, 최준호는 씩 웃으며 손을 뻗어 아놀드의 목을 틀어쥐었다.
“뭘 믿고 그렇게 지껄였는지 들어보자.”
*
* *
천명국에게 죽일 놈 리스트를 요구했을 때, 미국에서 하고 있는 무리한 요구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변심한 녀석들을 모조리 처리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니 천명국이 경악하더라.
그는 필사적으로 그것이 미국 전체의 의견은 아니라고 하면서 현재 미국 내 대통령과 의회간 알력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죽은 줄 알고 실컷 지껄이던 녀석도 의회와 야당에 밀접해 있는 녀석이다.
“사람이 앞뒤가 다르면 크게 실망을 한다고. 자꾸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잖아.”
내가 사라지면 한국이 누리던 이전의 혜택이 사라지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간 정도는 준수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급한 녀석들이 많다 싶었다.
힘없는 약소국은 이런 비참한 신세를 견뎌내야 할 테지.
다만 그건 내가 없을 때 이야기였다.
난 천명국 옆에 앉고 번지르르하게 생긴 녀석을 바라보았다.
“계속 말해봐. 들어주려고 하는데 왜 말을 안 해.”
버둥거리던 녀석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선 무사히 돌아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헌신 덕분에 전 세계가 리그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말이 막힘이 없는데?]바로 화제 전환을 해서 내 공을 추켜세우는 모습을 보면 내 죽음을 빌미로 천명국을 몰아붙이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세계를 가로막는 리그라는 벽이 사라졌으니 보다 평등한 조약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정계에서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틈을 탔다?”
“…….”
말을 현란하게 구사해봤자 그 내면에 서린 의미를 파악하면 내용은 간단하다.
“어쩌냐, 내가 살아 돌아와서.”
“준호! 잠까…….”
졸라맨이 외치는 순간, 이미 아놀드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켁!”
숨이 턱 막힌 녀석의 눈이 두려움으로 부릅 뜨였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팔다리를 부러뜨렸다.
콰드득!
“끄, 끄아아악!”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바닥에 내팽개치고 버둥거리는 녀석을 발로 짓밟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통증이 전신을 집어삼켰을 것이다.
이 정도로 끝나면 곤란하지.
애초에 나는 약속을 어기는 족속들을 질색한다. 나로 인해 이득을 본 건 그렇다 치고, 기간이 끝난 뒤 갱신할 때 이랬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냈다. 힘의 논리로 약한 상대를 짓밟으려고 했다면 같은 처지에 놓여도 납득해야겠지.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은 녀석의 통각을 건드렸다. 고통이 한계치가 넘어가면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법인데 그 상태로 몰고 가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끄으으으.”
조금 전까지 한 나라의 권력자를 압박하던 녀석도 결국 폭력 앞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닐 뿐이다.
다시 한 번 짓밟으려고 할 때였다.
쾅!
내 발을 막아낸 졸라맨이 나와 아놀드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만! 그만하라고!”
“너도 같은 죽고 싶냐?”
“아냐! 얘가 졸라 잘못한 거 맞아! 그러니 내 말을 들어봐!”
“내가 왜?”
“이 녀석의 생각이 모두의 생각이 아니니까! 준호도 들어서 알고 있을 거 아냐!”
“그런다고 저 녀석이 저지른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물론 저놈을 처리하고 미국까지 뒤집어놓을 생각은 없다.
대통령이 간곡하게 만류했거든.
하지만 내가 미국에 갔을 때 저 녀석에게 사주한 놈들을 발견하게 되면 손을 쓸 생각이다.
저 녀석도 입을 놀린 대가로 다리병신을 만들어줬고.
걸어 다닐 수 없어도 외교는 할 수 있잖아?
대신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넌 다시 여기에 머물러라.”
“뭐?”
“저번에 연구하던 거 안 끝내고 왜 미국으로 돌아갔냐? 너도 내가 죽은 줄 알았냐?”
“아, 아냐! 본국에 처리할 일들이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그럼 올 거지?”
“…….”
“싫냐?”
콰드드득!
“끄으으, 끄아아아악!”
짓밟은 발에 힘을 주자 아놀드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 갈게!”
“좋은 판단이야.”
밟고 있던 발을 치운 뒤 졸라맨 앞으로 차줬다.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아놀드를 보면 결국 세상의 일이라는 건, 남의 위세를 빌어봤자 본인의 역량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만든다.
“근데 저번에 연구한 건 대부분 끝나지 않았어?”
“새로 할 게 있어.”
“뭔데?”
“그건 나중에 얘기하지.”
난 졸라맨과 그 친구들이 합류하면 헬 마스터를 잡으면서 알게 된 내용을 공유하려고 한다.
인간과 신수, 그리고 신수와 권능. 권능과 기프트.
이것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머지는 머리 좋은 녀석들을 모아 넣고 연구 시키면 알아서 잘 하겠지.
“얼마나 걸릴까?”
“얼마 안 걸릴 거다.”
한 5년 정도?
내 대답에 졸라맨의 표정이 풀어졌다.
뭐, 각자 생각하는 시간은 다른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