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75
375화
“…….”
적막에 휩싸인 공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집중되었다.
정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파티였다.
그들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떠올라 있었다.
이렇게 보고 나니 내가 죽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았구나 싶었다.
그리고 은연중 내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나름 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죽길 바라는 사람이 많다니, 섭섭하군.
[부와 권력을 가진 입장에서는 네가 사라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지.]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저쪽이나 나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난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이세희를 살짝 외면하고는 조금 전까지 신나게 떠들던 녀석에게 시선을 옮겼다.
수연가의 장자라고 하던데 이세희한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떠들던 모습이 꽤 인상 깊었다.
자랑거리라고는 좋은 집안에 태어난 게 전부인데 그렇게 자랑스러울까?
하지만 어쩌나,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래서, 살아있으면 어쩔 건데?”
“그, 그건…….”
“직접 들어주려고 왔잖아. 말해봐.”
“…….”
정인철의 입이 닫혔다. 뭐라 더 말하는 기개를 보일 줄 알았는데 거기까지였군.
“그럼 내 차례인가.”
“나, 난 수연가의 회장이다! 여기 세희의 사촌 오빠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친오빠마저도 내 손에 죽었는데 사촌 오빠가 뭐라고 유세인지 모르겠다.
“이익!”
이를 꽉 문 녀석이 도망치려고 했지만 내 손이 더 빨랐다.
팔을 낚아챈 뒤 망설이지 않고 부러뜨렸고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 정강이뼈를 산산조각 냈다.
음, 매번 팔다리 부러뜨리는 레퍼토리가 너무 똑같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가장 효율적이다.
여기에 부러진 뼈를 짓이겨주면 자잘하게 부서지면서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통증을 효율적으로 선사할 수 있다.
물론 내가 겪어본 건 아니고 수도 없이 많은 빌런들을 상대호 터득한 요령이다.
“끄아아악!”
추잡한 욕망을 드러낸 주제에 끝까지 자기가 잘 났다고 소리를 질러댄다.
이런 녀석이 이세희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고?
세상의 모든 좋은 자리가 능력대로 돌아가지 않는 건 알고 있지만 한 눈에 봐도 현격한 차이가 존재함에도 자기 욕망을 위해 수렁으로 뛰어들려는 행태가 어처구니없었다.
녀석의 비명을 배경음악 삼아 밟아주는 힘에 강약을 조절했다.
“보이는 족족 다 없애버리면 나아질까.”
[아닐 걸.]인간의 행태라는 게 그러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냥 푸념을 했을 뿐이다.
“끄으, 끄아아아! 마, 막아!”
정인철의 간신히 쥐어짜낸 외침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각성자들이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내가 손끝을 모아 칼날폭풍을 시전하니, 다섯 경호원의 다리가 그대로 분리되었다.
“끄아아악!”
“내, 내 다리!”
“아악! 아파! 아파!”
난 버둥거리는 경호원들에게 시선을 뗀 뒤 넋이 나간 정인철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야.”
“히, 히익!”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이 혼자서 저지른 일 같지 않다.
“너 누구한테 사주 받고 그렇게 나댄 거냐?”
수연그룹도 신성가 방계로 재계 서열 상위권에 위치해 있지만 감히 신성그룹을 넘볼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감 있게 나설 수 있다고? 웬만큼 개념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그건…….”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머릿속에 든 정보를 뽑아낼 방법은 무궁무진했으니까.
내가 머리 위로 손을 뻗으려고 할 때였다.
“준호 씨.”
“왜?”
이세희가 날 불렀다.
설마 이런 녀석도 사촌이랍시고 봐주길 바라는 건가.
“여기는 듣는 귀가 많아요. 따로 자리를 옮겨서 정보를 얻어내는 게 어떨까요?”
“그러지.”
평소라면 망설이지 않고 손을 썼을 테지만 날 믿고 기다리다가 이런 고초를 겪은 거니까.
조마조마한 눈으로 보던 이세희의 표정이 확 밝아지더니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빨리 수습해 가세요. 늦지 않으면 붙일 수 있을 거예요.”
그제야 내게 다리가 잘린 경호원들에 대한 응급조치가 이루어졌고, 사지가 부러진 채 버둥거리던 정인철도 질질 끌려가며 사라졌다.
도망칠 수도 있었으나 상관없다. 기득권을 족칠 때 가장 좋은 점은, 나고 자란 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도망칠 수 없다는데 있으니까.
“자리 옮겨요.”
난 이세희와 인적이 드문 테라스로 이동했다. 그때까지도 따라붙던 시선들은 자리를 완전히 옮기고 나서야 산산이 흩어졌다.
어둠 속 조명 사이에 드러난 이세희의 얼굴에 안도가 서려 있었다.
“무사했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부상이 커서, 회복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
“다행이에요. 진짜 어떻게라도 된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던지…….”
“멀쩡하게 돌아올 거라고 믿었던 게 아니고?”
“믿었죠. 믿었는데 시간이 흘러가면 믿음도 흔들리는 법이에요.”
“하지만 넌 버텨냈지. 이 정도는 버텨낼 거라 생각했고.”
“진짜 준호 씨가 맞네요. 사람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어.”
위태롭게 흔들리던 이세희의 눈이 본래 위치로 되돌아왔다. 당연한 걸 뭘 새삼스럽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배후를 알아내야 하는데.”
“배후를 파악하는 건 쉬운 일이에요. 제가 밀려나고 신성그룹이 고전할 때 이익을 얻게 될 이들이 전부 배후라고 보면 돼요.”
“죽일 놈이 많겠어.”
“전부 죽이려고요?”
이세희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지 않고 희열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의심한 것만으로 죽이지 않아. 대신 행동으로 옮겼다면 책임을 져야겠지.”
신성그룹의 회장은 이세희지만 동시에 신성그룹에는 내 재산이 투자되어 있기도 하다.
이세희를 몰아내려고 한 녀석들은 감히 내 재산에 장난질을 하려고 한 것이다.
돈에 큰 관심은 없지만 내 걸 건드리는 건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그 책임을 져야겠지.
“저도 도울게요.”
“그래.”
역시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꿰고 있었다. 손발이 착착 맞으니 앞으로 죽일 놈들을 찾아다니는데 어려움은 없겠다 싶었다.
그러다 별안간 이세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다현이가 오지 않고 손님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그럼 준호 씨는 저보다 다현이를 먼저 본 거네요.”
“그렇지?”
[야야, 눈치 없게 그걸…….]용용이가 경악을 하는데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정다현을 먼저 만난 게 사실이잖아?
[넌 지금 뇌관을 건드린 거야.]“…….”
용용이가 헛소리를 한다 싶었지만 가라앉은 이세희의 말을 보니 그게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네가 얽힌 게 많으니까.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면 그게 제일 낫다고 생각했어.”
딱히 누구를 먼저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없다.
가장 먼저 가족을 만난 뒤 흐름에 따라 움직였을 뿐.
내 말이 납득이 가서일까. 이세희의 표정이 활짝 피어났다.
“그렇죠? 제가 가장 마지막인 게 가장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였네요. 피날레 같은!”
어째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발자국 더 나가서 생각하는 거 같은데.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야. 그러니 입 닫고 가만히 있어. 그럼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용용이의 말에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활짝 피어난 이세희의 표정을 보면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그랬다.
“우후후후!”
[봐, 내가 너보다 낫지? 진짜 답답해서 나선다. 앞으로 내 말대로 따라.]“…….”
나대는 용용이 말에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살짝 짜증이 났다.
*
* *
최준호가 돌아왔다!
수연 호텔에 모습을 드러낸 소식은 순식간에 대한민국 전역을 뛰어넘어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 종합주가지수는 일제히 폭등을 거듭, 일 주일 만에 지난 1년 동안 하락한 걸 단숨에 만회했다.
헤드 브레이커, 최준호. 그 이름에는 그만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세계최강 초인이며, 그 어떤 마물도, 빌런도 어찌할 수 없는 절대자였다.
리그가 토벌 작전 이후 산산이 흩어지면서 세계정세는 급변했다.
미국 정부는 기존의 고립된 체제를 깨고 남미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유럽에서는 통일된 전력으로 리그를 몰아붙였다.
리그로 인해 세워졌던 괴뢰 정부는 연일 반군에 의해 신경전을 벌였다.
복잡하게 뒤엉킨 정세는 언제고 새로운 질서를 찾기 마련이고, 그 속에서 가장 큰 축을 차지하는 것이 미국도, 유럽도 아닌 바로 최준호라는 존재였다.
개인이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어 사라지길 간절히 바랄 정도였으니.
그런 초인마저도 즉사기를 피하지 못했다고 알려졌으나 1년이 지나고 나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마치 1년간 살생부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던 것처럼.
특히 최준호가 죽은 걸로 판단하고 압박을 가하던 국가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큰일이지, 큰일이야. 아마 지금쯤 어떻게 해야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을 거다.”
최준호 복귀에 대한 비보(?)는 미국에도 전해졌다.
미국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허버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반면 반대편에 앉은 다니엘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건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일이다.”
“알지, 알아. 뭣도 모르는 멍청이들이 일을 아주 거하게 벌여놓았으니까.”
최준호의 생환 소식이 알려지기 전, 한국에서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백악관에 도착했다.
당시 자세한 내막이 알려지지 않아서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최준호가 돌아왔다는 게 알려지자 모든 의문이 한순간에 해결되었다.
“의회가 뒤집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야. 야당이나 여당이나 꼴이 잘 돌아가게 되었어.”
이번에 한국으로 간 아놀드는 여당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인사였다. 여기에는 야당도 동조한다는 걸 허버트는 알고 있었다.
“나 때문이지.”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거니까.”
리그 토벌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남미에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허버트의 지지율은 일시적으로 80%가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하락하긴 했지만 60% 후반대에서 70% 초반대를 유지할 만큼 정권의 지지는 강력했다.
오죽하면 다음 정권도 여당에서 나올 거란 말이 나오겠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벌어졌으니, 허버트가 밀고 있는 후보와 여당에서 미는 후보가 다르다는 점이다.
본래 다니엘은 권력욕이 그리 크지 않아 다음 대선에 유력한 후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허버트가 다니엘을 내세워 굵직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밀어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러다 보니 허버트의 흠이 될 걸 찾아야 했고, 그러던 중 발견된 것이 대한민국에 대한 일방적인 퍼주기였다.
그걸 바로잡기 위한 아놀드 인사는 여당에서 백악관을 견제한 거라 봐도 무방했다.
그들은 선명성을 내세워 대한민국과 맺은 계약을 문제 삼아 개정해서 자신들의 성과로 삼으려고 마음먹었다.
최준호가 죽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허버트와 백악관에서는 그가 죽었을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그 결과가 지금 나온 것이다.
“죽을 위기를 넘기고 오면 사람이 바뀐다고 하던데 헤드 브레이커한테는 전혀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닌가봐.”
“덕분에 우리는 소중한 외교관이 부상 입었다.”
“그의 말마따나 걸을 수 없다고 외교를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나중에 개발될 신약으로 회복할 여지가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겠지.”
“큰 희생이 일어날 수 있다.”
허버트는 반대파를 위축시키기 위해 방치했지만 그로 인해 최준호는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었다.
아놀드에게 손을 쓴 것만 봐도 최준호의 성격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과격해지지 않았나 하는 전망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럼 입국 금지 조치를 해버릴까?”
“지금 장난할 때가 아니다.”
“나도 장난은 아니야. 하지만 이 정도 긴장감은 필요해.”
적수가 없는 강자는 느슨해진다. 하지만 최준호와 파티라는 견제 대상은 미국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거라 허버트는 믿었다.
“헤드 브레이커가 죽었다고 알려지니 파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너도 봤잖아?”
“…….”
다시 자기 세상이 온 것 마냥 날뛰는 걸 봤기에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세계엔 새로운 질서가 도래했어. 파티는 그 질서의 주축이 아니라 퍼즐 조각 하나에 불과하지. 정작 자신들은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고.”
이번 일도 그 부분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허버트는 아놀드가 날뛴 이유가 파티에도 일부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헤드 브레이커 생각은 다를 거다.”
“오해가 커지기 전에 자세한 내용을 전달해뒀지.”
“넌 진짜…….”
“우리가 저지르지 않은 일을 책임지는 건 싫으니까. 이건 나나 네게도 부담이 될 수 있는 일이고.”
“…….”
바로 고자질을 하는 허버트의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틀린 건 없다.
이미 헤드 브레이커는 아놀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신성그룹에 이빨을 드러낸 한국의 수연그룹의 회장을 갈아 치워버리는 과정에서 성격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감당할 수 없는 재해라면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시대의 흐름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순응하고 기회를 기다리는 거야.”
그걸 위해서는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최준호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늙어죽을 것 같지만.”
허버트의 너스레에 다니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