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이세희를 둘러싼 신성그룹 주도권 다툼은 생각보다 스케일이 컸다.
비단 수연그룹뿐만 아니라 범 신성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빠짐없이 연관되어 있었다.
이세희는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료를 준비해뒀는데, 내 부재중일 때를 노린 녀석들이라 봐줄 것 없이 바로 행동에 옮겼다.
난 곧바로 손을 쓸 생각을 했지만 이세희는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죽이는 것도 좋지만 재벌에게는 재벌의 방식이 있거든요. 제게 맡겨주실 수 있으세요?”
“살려둔다고?”
“그게 더 비참할 수 있거든요.”
“후환이 생길 수도 있어.”
“그런 걱정 들지 않게 확실히 처리할게요.”
“좋아.”
처음에는 봐주려고 하는 것 같아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이세희의 설명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가장 먼저 손을 쓴 것은 수연그룹이었다.
이세희 축출을 위해 정인철이 앞장섰던 만큼 첫 타깃이 된 것이다.
내 방식대로라면 이번 일에 관련된 녀석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으로 끝을 냈겠지만 이세희가 제시한 방법은 정인철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현재 수연그룹은 정인철과 정인혜가 계열 분리를 진행 중이었으나, 이번 일을 명분 삼아 정인철을 축출, 정인혜 단독 체제를 완성했다.
고작 쫓겨난 걸로 복수의 마무리라고?
“재벌에게 가장 무서운 건 죽음이 아니거든요. 재벌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더 이상 권력을 갖지 못하는 거예요.”
누대에 걸쳐 구축해온 정재계 인맥과 인프라를 자기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재벌가 총수다.
하지만 그 자리에 밀려나면?
그저 돈 많은 부자에 지나지 않는다.
“돈이 아니라 권력을 잃는 거로군.”
과연 그게 죽음보다 더 잔인한 일일까 생각도 들었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하던 정인혜의 표정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번 일로 대한민국 범 신성가는 대대적인 세대 교체가 일어났다.
어느 그룹이나 강경파가 있다면 온건파가 있기 마련이고, 이세희는 날 앞세워서 그룹의 소멸이냐 주류의 교체냐를 놓고 밀어붙였다.
이세희는 이것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 덕을 봤으니 제게 이를 드러내지 못하고요.”
“사람은 언제든 배신해.”
“맞아요.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주류가 바뀐 이상 혼란은 불가피하고 혼란을 수습할 때쯤이면 저와 차이는 더 벌어져 있을 거거든요.”
“그래.”
자기 실력에 확신을 갖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나는 이세희의 자신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이번 일을 획책한 녀석들의 정체를 놓고 대화에 들어갔다.
“사방에서 다 달려들었군.”
“그러네요.”
천명국은 완강하게 버티니 공략 대상이 이세희로 되었나보다. 이번 신성그룹을 향한 공격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북중국, 남중국, 홍콩 세력과 일본이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신성그룹을 흔들려고 한 것이다. 다만 미국은 백악관의 정보 제공에 의하면 의회 내 반대파와 파티가 손을 잡았다고 한다.
미국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더 생겨나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하나씩 처리해야겠지.”
예전 혈종일 때와 다른 점이라면 수작을 부린 녀석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불같이 분노하여 손을 쓸 생각이 들지 않는 점이다.
어차피 녀석들은 한 곳에 자리하고 있을 수밖에 없고 언제든 책임을 물으러 가면 된다.
이런 여유도 내가 정상이 되었기에 나오는 것이겠지.
[상대는 오히려 불확실함에 더 큰 공포를 느끼게 될 거 같은데.]그리 되면 나야 더 좋고.
아무튼 언제든지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에 옮길 수 있다.
“그 전에 행동으로 옮기는 곳도 나오지 않을까요?”
“그게 가능할까.”
권력을 가진 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아가 비대하여 자기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법이 없다.
“이번 경우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어서요.”
“어물쩍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아마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준호 씨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거든요.”
[너 뒤끝 쩐다는데?]차분한 조언을 아주 개떡같이 만드는 재주가 용용이한테는 있었다.
내가 그동안 보인 행보는 상상을 뛰어넘으며, 이것을 감당하려면 조기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게 이세희의 설명이었다.
“지켜보면 되겠지.”
사람은 어리석고,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
*
* *
한바탕 순회 공연을 한 뒤 나는 정다현의 강력한 러브콜을 받아 실력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안전한 환경에서 실력을 쌓아온 인상이지만 정다현의 무위는 철저하게 실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빌런과 마물을 상대로 쌓아온 무수한 실전 경험이 재능과 어우러져 만개했다.
천재적인 재능에 야성까지 더해졌다고 보면 되겠다. 과거로 돌아온 뒤 가장 충격적인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한 번쯤은 성공할 줄 알았는데 실패네요.”
“놀랐다. 이 정도로 강해졌을 줄 몰랐어.”
가장 놀란 건 직감의 활용이었다. 보다 스스로를 믿게 된 영향인지 정다현의 움직임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직감을 통한 확신은 예측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면서 상대의 주도권을 빼앗기가 용이해졌다.
이게 대단한 점은 상대보다 한 수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는 큰 충격을 줄 수 없어도 동급, 적어도 한 수 위 상대에게 충분히 먹힐 수 있는 패였다.
“다만 지금 방향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맞아. 그러니 계속 훈련해.”
“그럼 다행이네요. 전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거든요. 오늘보다 내일이 더.”
“그 마음이 유지되는 한 넌 더 강해질 거야.”
“그럼 오빠한테 버려지지도 않을까요?”
[저 말만 들으면 너 완전 쓰레기 같아. 개쓰레기.]아무래도 용용이의 드라마 시청을 막아야겠다. 나날이 헛소리가 느는 거 같다.
“아직 모자라지.”
“그래서 더 노력하려고요.”
“넌 잘할 거다.”
그럴 재능도 실력도, 의욕도 있으니까.
정다현도 위안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빠를 건든 사람 처리하는 건 언제 하나요?”
“일단 가만히 있으려고.”
“아직 몸 상태가 안 좋아요?”
“아니, 어차피 어디 도망갈 녀석들도 아니니 내가 내킬 때 처리하려고.”
“만약 먼저 사과하면요?”
정다현도 이세희와 같은 소리였다.
“그럴 일이 있을까?”
“당연히 있을 거예요. 오빠는 오빠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영향력이 강하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켕기는 감정 하나만으로 움직여서 사과하러 올 거다?”
“네, 그게 모든 걸 잃는 것보다 낫죠.”
“그 정도로 양심 있는 녀석들은 아닐 텐데.”
“저는 사과하러 올 거라 생각해요. 아무리 자존심이 강하더라도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행동을 보여야 하거든요. 내기해도 좋아요.”
“내기?”
“네, 제가 이기면 오빠가 버리지 않는…….”
“아니, 됐다.”
버려지는 거에 한이 맺혔나, 난 집착을 뛰어넘어 광기마저 엿보이는 정다현을 단호하게 외면했다.
*
* *
사방에서 곧 반응이 올 거라 말했다.
…그런 확신들이 무색하게도 며칠 동안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았다.
오직 미국 정부만이 고자질을 하듯 파티가 저지른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해올 뿐, 다른 곳은 어디에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말은 아니라고 하면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나 봐?]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기미가 보일 줄 알았지. 하지만 역시는 역시나였다.
뒤에서 수작을 부려놓고 앞에서는 아닌 척 하는 꼴이라니, 아무래도 조만간 시간을 따로 내서라도 녀석들을 처리하러 나서야겠다.
[오히려 화를 더 나게 만들었네. 그건 걔네 탓이 아니잖아.]화라니, 그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다.
[괜히 기대해서 더 화가 난 게 아니고?]아니라니까.
[응, 믿어줄게.]네가 믿는 건 필요 없는데.
그런데 청와대에서 급히 와달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무슨 급한 일이 터졌나 싶어서 찾아갔더니 천명국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하오 주석이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위하오?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을 텐데.”
“예, 이번이 처음입니다.”
버서커와 대치할 때 잠깐 국경을 넘어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비공식적인 일정이고 위하오는 자국 내에 머무르는 걸로 알려져 있다.
강대한 초인인 그가 없으면 북군은 언제든 사분오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결정타는 천마갑귀 사태이긴 했지.
남군의 음모였으나, 당시 베이징이 소멸되면서 북군이 수권 능력을 보이지 못한 게 치명타가 되었다.
옆에서 보좌하는 리전후오가 있지만 그 또한 1인자로 활동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비공식적인 방문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의아함을 드러내는 내게 천명국은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방문 이유는 북군이 신성그룹에 불온한 수작을 부린 것을 사과하기 위함입니다.”
“…….”
[인간 여자들의 말이 맞았네. 너에 대해 오히려 잘 모르는 건 너 자신이었네.]어김없이 용용이의 깐족거림이 작렬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자존심을 빼면 시체라고 해도 과언아 아닌 녀석이 사과하러 온다고?
“세계최강 초인의 심기를 거스른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게 부담이 되었나봅니다.”
“예상 밖이네요.”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은 초인님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적어도 방문하겠다는 걸 막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잘못을 저질러놓고 사과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이곳에 와서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는 했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죠.”
“현명한 판단입니다.”
죽을 자리를 알아서 찾아오는 걸 막을 이유는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위하오가 은밀하게 한국으로 입국했다.
불과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수행원만 데리고 온, 말 그대로 비밀 방문이었다.
천명국도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극비리에 위하오를 맞이했다.
녀석은 차분한 표정으로 천명국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갑작스러운 방문을 받아줘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양국의 번영을 위해 당연한 조치였을 뿐입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큼 신경전이 끊이질 않았지만 반대로 서로가 필요로 하는 걸 얻어낼 수 있는 관계였다.
한동안 천명국과 입에 발린 말을 주고받던 위하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를 보는 녀석의 눈은 내가 어딘가 부상을 입었나 탐색하는 듯했다.
“무사했군.”
“많이 섭섭하겠어.”
“…그럴 리가.”
“내가 살아있길 원했다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믿지 않겠지.”
마치 날 걱정했다는 뉘앙스였다.
사과하러 왔다면서 왜 매를 버는 거지?
“그 정도로 헛짓거리를 해놓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 뭐냐. 날 놀리고 싶은 거냐?”
“널 놀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오는 짓을 하지 않았을 거다.”
“글쎄다.”
녀석이 뭐라고 말을 해봤자 신뢰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오히려 바로 손을 쓰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지.
지금도 고민 중이다.
말뿐인 사과를 들어줘야 하는 걸까, 무시하는 게 나은 걸까.
잠깐 충동을 접어두고 녀석의 반응부터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사과한다며?”
오히려 어떤 방식으로 사과를 할 건지 궁금했다.
그냥 말 몇 마디로 때우고 체면을 차리려고 하면 더 가혹하게 굴 생각이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천명국도 위하오가 어떻게 사과할지 궁금한 기색이었다.
그때, 나를 보던 위하오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마로 바닥을 쿵! 찧더니 사과했다.
“섣부른 판단으로 널 불편하게 만들었다. 부디 이번 일을 넘어가줬으면 좋겠다.”
“……!”
천명국은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사과였나보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지만.
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위하오의 뒤통수를 바라보다 한 마디 던졌다.
“그게 끝이냐?”
“…….”
“고작 무릎 꿇고 머리 박았다고 내가 감격하고 받아들일 줄 알았냐?”
“이걸로 부족하다면 뭘 원하나?”
“팔.”
“뭐?”
“팔 하나 내놓고 가라고.”
솔직히 사지를 전부 내놔야 성에 찰까 말까였지만, 그래도 예상을 깨고 처음 사과하러 온 거니까 통 크게 양보하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