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77
377화
“…….”
당황한 기색이 느껴진다.
나는 그런 위하오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녀석이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값싼 대가’라는 건 나와 녀석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했다.
고작 무릎 한 번 꿇는 것 가지고 해결될 거라 생각하다니
눈 한 번 질끈 감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사람이란 동물은 참 간사하다.
지금은 무릎을 꿇지만 뒤돌아서면 언제든지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진정한 사과란 건 대상이 만족해야 진정한 사과란 것이다.
딱히 성에 차진 않겠지만 팔 하나 정도라면 너그러이 납득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팔이 잘린 허전한 자리를 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야겠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까?
[진짜 그렇게 생각해?]그럴 리가.
반성은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저걸 보고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만 심어주면 성공이다.
그것이야 말로 실질적인 교훈인 셈이지.
“잘라.”
“…….”
녀석은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이런 행동이 결국 얄팍한 계산에 의한 것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셈이었다.
“스스로 자르기 힘들면 내가 도와줘?”
수락하면 바로 잘라줄 생각이었다.
“내가 이곳까지 온 것만으로도 큰 각오를 한 거다.”
“무슨 각오?”
“…네놈은 우리에 대한 존중이 조금도 없군. 여러 개로 나뉘었어도 중화의 자존심이라는 건 네놈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크고 높다.”
위하오의 말마따나 중국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어도 국가마다 규모는 대한민국을 상회했다.
평화가 찾아오면 언제든지 국력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존재하며, 하나가 되려는 특성상 다시 합쳐지게 되면 위협적인 적이 될 것이다.
그랬기에 천명국도, 이세희도 분열 정책을 통해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저 녀석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원한을 갖고 수작을 부렸던 것이고.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결말은 힘 있는 자가 정의가 되는 것이다.
그게 불만이라면.
“나보다 강하지 그랬냐.”
“…….”
“네 스스로 비싸다고 금칠한 무릎을 굽히면 내가 감격해서 받아줄 줄 알았냐? 날 처음 만났던 순간을 생각해라, 위하오.”
사이비종교를 쫓아 의주에 갔을 때 처음 본 녀석은 자기 의지도 발휘할 수 없는 꼭두각시 신세였다.
아무것도 없는 녀석을 분열되었지만 북군의 수장으로 만들어줬고.
권력을 쥐기 전과 후가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람을 봐가면서 했어야지.
개수작이 실패한 이상 녀석은 내 앞에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그 정도 각오도 없었다면 실망이다. 내 나름대로 대가를 받아가는 수밖에.”
“자르겠다.”
내가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를 꽉 문 위하오는 그대로 자신의 왼팔을 내리쳤다.
서걱!
팔꿈치 아래로 팔이 떨어져나가고 피분수가 자욱하게 뿜어졌다.
“큭!”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은 위하오가 이를 꽉 물었다.
잘린 고통 때문일까, 아니면 자존심이 짓밟혀서 그런 걸까.
[어쨌든 너 때문에 자존심이 철저하게 무너졌네.]누구보다 고고한 존재였기에 현재 하찮아진 자신의 모습이 보였나.
용용이가 위하오를 동정하는 모습은 꼴불견이었다.
난 지혈하는 위하오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했다.
“넌 네 위치에서 난 나대로 최선을 다 하자. 개수작은 부리지 말고.”
“…유의하지.”
“대신 너희가 부린 수작은 넘어가기로 하지.”
이 정도면 아주 값싸게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
* *
위하오의 방문은 극비리에 이루어졌지만 사람의 입을 모두 막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준호의 1년만의 귀환, 그것은 최준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물밑에서 수작을 부리던 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특히 십대초인의 일원이자 북중국이라 불리는 국가의 주석이 직접 찾아와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충격과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비록 분열되었어도 북중국은 여전히 거대한 국가다. 능히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규모에 실전으로 단련된 각성자들을 보유한 곳이다.
능히 세계의 패권국 중 하나로 자부심을 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곳에서 최준호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국가의 수장이 직접 사과하러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소식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무릎을 꿇었다고 알려진 위하오가 돌아올 때는 팔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갖 상상을 자극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에 지켜보던 이들 모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진세정이 히죽 웃었다.
“다른 곳은 알게 된 거지, 위 주석이 치른 대가가 그나마 가장 저렴하다는 걸.”
그런데 그 저렴한 대가가 남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쌌다.
십대초인이자 한 국가의 수장이 무릎을 꿇고도 팔을 내놔야 하다니.
아마 지금쯤 패닉에 빠진 채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쁠 것이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을 걸. 우리 초인님은 그런 개수작에 말려들지 않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치러야 할 대가는 더 비싸질 것이고, 권력자들은 자신이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가 시간을 지체하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채무불이행이 이어지면 차압에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두 눈으로 직접 못 보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인터넷 여론 전문가이기도 한 진세정은 최준호가 사라졌을 때 실시간으로 바뀌어가던 여론을 모두 지켜봤다.
그것은 정상적인 흐름이라고 보기 힘들었는데,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업자들이 대거 들어온 게 보였다.
최준호가 복귀하면서 씻은 듯 사라졌지만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결과를 유도하려고 했는지 진세정은 모두 지켜본 후였다.
“이번 일을 교훈 삼게 해줘야지.”
원래 있을 땐 당연하게 여기다가 사라지면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최준호가 사라진 지난 1년 동안 여론이 어떻게 흘러가고 대한민국의 위상이 실시간으로 추락하는 걸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 대단한 주석이라는 양반이 사과하러 오는 클라스 ㄷㄷ
-위하오가 직접 왔다고? 사과의 대가로 무릎 꿇고 팔 하나를 내놓는 게 말이 돼?
-그것도 그냥 주석이 아닌 십대초인 출신임.
-미쳤네, 최준호가 세계최강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던 거임?
-최준호가 실종되었다고 알려지고 각국 태도 바뀌었던 거 보면 이해가 됨.
-그 미국도 태도 변화를 보이려다가 최준호가 나타나니까 바로 머리 박고 기는 중.
-진짜 최준호 없으니 대한민국 위상 개떡락하는 거 엄청났지.
-이런 초인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앞으로 최준호와 나는 한 몸임을 선언한다. 최준호에 대한 공격은 곧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한 번 있다가 없으니 알 거 같네. 진짜 최준호 없으면 대한민국 암울해진다.
-버서커도 그렇고 정다현도, 심지어 정주호도 전부 최준호 라인임. 이 나라는 이제 최준호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지경임.
-당장 대통령도 최준호 담당이었는데 뭐.
-이렇게 보니 사우디가 진짜 대인배네. 최준호가 실종되어도 계속 기름 보내주고.
-의리 지킨 것도 대단하고, 1년을 못 참고 이를 드러낸 녀석들도 대단하다.
-1빠가 저 정도니 그 뒤를 잇는 녀석들은 죽어날 듯.
여론은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이제 최준호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타국 프락치 혹은 정세를 읽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정도.
이런 흐름은 진세정이 만든 게 아니었다.
최준호가 실종된 뒤 차곡차곡 누적되었던 것에 살짝 물꼬만 텄을 뿐.
원래 옆에서 살짝 거들도 여론이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가야 진정한 프로의 작품이다.
“원래 누려야 할 거였는데 오래 걸렸네.”
그녀가 원하는 건 최준호의 성역화였다.
그가 사라질 거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사라졌을 때 느꼈던 상실감이 컸다. 그래서 다음에 자리를 비우더라도 누구도 헛소리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그걸 위해 진세정은 키보드를 두드렸다.
사무실 한구석에서 최준호 위인 만들기 프로젝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
* *
팔이 잘린 위하오가 돌아갔다. 천명국은 앞으로 외교 정세가 더욱 재밌어질 거라면서 미소를 보였다.
힘을 쓰는 것 말고 외교는 천명국의 영역, 나는 나머지 일처리는 그에게 맡기기로 한 뒤 돌아왔다.
[진짜 위하오라는 인간이 있는 국가는 용서할 거야?]“약속했으니 용서해야지.”
[진짜로 용서해주는 거였네.]“왜?”
[평소의 너와 달라서.]“다를 수밖에.”
내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던 혈종이 사라졌을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 내게 지긋지긋한 악연이지만 녀석은 오랫동안 동고동락 해온 존재였다. 내 절반이 뜯겨져 나갔으니 타격이 없다면 거짓이겠지.
악연이 사라졌으니 기존에 내가 보인 것과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것치고 별로 자비롭진 않던데.]“나한테 이를 드러낸 녀석을 봐줘야 할 이유가 있나?”
[예전 같으면 당장 달려갔을 거잖아? 근데 지금은 봐주고 있고.]“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으니까.”
그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예전처럼 악착같이 손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마음이 내키면 바로 달려가서 처리해버리면 되니까.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거든.”
[상대는 피가 더 마를 거 같은데.]“그 재미 아니겠어?”
[…악마다.]신수가 악마를 찾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지는군.
그래도 용용이 말마따나 내게 여유가 생긴 것은 사실이었다. 예전이라면 눈앞에 거슬리는 녀석이 있다면 곧바로 손을 써야 했지만 이제 와서는 그걸 참고 한 번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차치하더라도 한 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내게 나쁘지 않다.
그건 그렇고, 슬슬 궁금증을 풀어야겠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뭔데?]“신수가 자신의 권능을 인위적으로 기프트로 만들어낼 수 있냐?”
[어? 갑자기 그건 왜?]용용이의 어리둥절한 표정.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저 표정에 여러 번 그냥 지나쳤었다.
“아마 가능할 거야. 내 말이 맞지?”
[난 안 해봐서 몰라.]“하지만 너라면 할 수 있겠지. 위대한 신수잖아. 그 정도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거야.”
[왜 그러는 거야?]나는 즉사기를 얻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혈종이 뜯겨나가면서 치명상을 입었던 상태는 당장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기프트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신수의 존재를 감지했다.
그것은 헬 마스터가 모시던 ‘신’이라는 존재였다.
신은 헬 마스터에게 모든 것을 내준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상은 녀석의 모든 걸 차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존재감을 지운 녀석에게서 혈종의 그림자를 본 나는 곧장 처치에 나섰다.
녀석은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내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악전고투 끝에 녀석을 소멸시킨 나는 육체를 구성하는데 실패하거나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 신수가 이 방식으로 숙주를 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수는 단지 존재만으로 고고하지 않다. 내가 본 녀석은 지독할 정도로 생에 집착하고 자신에게 맞는 숙주를 찾아 탐욕스럽게 움직였다.
정신체인 녀석을 처리하고 파편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나는 즉사기에 얽힌 비밀을 엿보게 되었다.
“결국 기프트는 신수의 권능을 흉내 낸 형태라고 볼 수 있어.”
그러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내가 처음 보유하게 된 기프트 혈중섭식.
타인의 기프트를 복사할 수 있는 이 대단한 권능이 어떻게 내 앞에 뚝 떨어졌을까.
다수의 기프트를 복사해서 폭주하여 미쳐버리고 혈종에게 육체를 빼앗긴 게 헬 마스터가 맞이했을 결과와 같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혈종이 신수였던 것일까?
아니면 이걸 만들어서 따로 의도한 바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과거로 돌아온 걸까.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그것들이 더 이상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필연이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필연.
[…….]“이걸 의도한 녀석이 있다는 거지. 그리고 내가 신이라 생각할 수 있는 녀석이고.”
그리고 용용이도 그 비밀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프트는 신수가 만든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