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79
379화
대화의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은 채 끝이 났다.
최소한의 윤리 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최준호와 어떻게든 선을 지키려던 연구원의 대치였다.
좀 더 고민해보라는 말을 남긴 최준호가 돌아가자, 제임스 리드 앞으로 성난 시선이 모여들었다.
“이번 연구는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 아무래도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겠어.”
“발머 말이 맞아. 이번 연구는 우리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어.”
“다른 것도 아니고 생체 실험이라니! 이건 천륜을 벗어난 거라고!”
최준호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그들의 뇌리에 깊숙이 남아 있었다.
여기에 제임스 리드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래서 이 연구를 그만두자고? 다른 것도 아닌 기프트의 근원을 파헤치는 건데?”
“…….”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마음에 걸리는 것과 별개로 최준호가 제시한 것은 그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준호가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게 맞아. 하지만 우리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아니야. 이 나라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있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얼마든지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 최준호는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이진 않다.
이미 그는 나름대로 체득하고 있는 것이 있다. 단지 그걸 이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뿐, 그 정도는 머리 좋은 연구원이 받쳐주면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
모두 제임스 리드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에릭 클락슨이 반론했다.
“하지만 선이라는 게 필요한 건 맞다. 인정사정 가리지 않고 연구에 임하면 우리가 리그와 다를 바가 뭐지?”
“맞아, 이건 선을 정해놔야 돼. 안 그러면 어디까지 넘어갈지 알 수 없어.”
“생체실험이라는 게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박사 보디빌더들은 다가올 후폭풍에 대해 걱정하며 쑥덕거렸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제임스 리드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착각하는 게 있는데.”
친구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이미 준호를 통해 생체실험을 했어. 설마 잊고 있던 건 아니지?”
“그건…….”
“…….”
에릭 클락슨이 반론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그들은 기프트 자아를 연구하면서 최준호를 통해 많은 실험을 한 뒤였다.
그것 또한 생체실험이라 부르면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실험대상이던 최준호가 아무렇지 않아 보여 아무 느낌도 없었을 뿐.
“준호가 튼튼하다고 해서 생체실험이라는 게 부인되지 않아.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선을 넘었다고.”
단지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기에 저마다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제임스 말이 옳아. 준호와 다른 각성자를 다른 기준으로 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그래서 선을 넘자고?”
“이미 선을 넘었으면 그 다음은 쉬운 법이지.”
간단하게 발머의 반론을 막아 세운 크리스텐센은 제임스 리드를 보며 말했다.
“대신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 이래서는 온전히 연구에 집중할 수 없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크리스텐센의 중재안에 제임스 리드는 공감을 표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두뇌들인 만큼 각자가 정해놓은 선은 엄격했다. 공범이 되었다는 걸로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그들이 거둬온 성과가 견고했다.
“그럼 어느 선에서 합의를 볼지 얘기를 해보자. 그것만 해결되면 이 연구는 모두 하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나도 기프트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고 싶어.”
“만약 이걸 해결한다면… 세계의 판도가 달라지겠지.”
모두 공감을 표했다.
누구도 파헤치지 못한 비밀에 다가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리는 건 절대 생각할 수 없다.
“그럼 선을 정해볼까.”
* * *
“서랏!”
한 무리의 각성자들이 세 방향을 점유한 채 시시각각 포위망을 좁혀왔다.
하지만 쫓기는 이는 마치 어린 아이의 재롱을 보는 것처럼 그들이 구성한 포위망의 빈틈을 파고들어 유유히 추격을 피하는데 성공한다.
몇 번이고 집요하게 쫓았지만 끝내 남자의 날랜 움직임을 멈추지 못했다.
“키힛! 키히힛! 그런 굼벵이 같은 속도로 날 쫓겠다고?”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난 채 조소를 흘리는 그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 모습은 마치 소설에 나오는 악귀에 비견될 만큼 기괴했다.
결국 추격대는 남자를 쫓는데 실패했다.
“이번에도 꽤 좋단 말이지.”
일본의 네임드 아귀, 야마다 카즈오.
일본 사이타마 현에서 활동하는 빌런으로 최근 3년 사이 무려 227건의 범죄를 저지른 빌런이다.
그중에 수십 건의 범죄는 엽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일본 열도를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추정 되는 레벨은 무려 7로, 일본 내에서는 야마다 카즈오를 붙잡기 위해 추격대를 특별 편성할 정도로 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야마다 카즈오는 그 추격을 비웃듯 유유히 피해가며 범죄 숫자를 늘리고 있었다.
단순히 피에 취한 빌런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움직임이 너무나 지능적이었다.
광기로 물든 그의 눈동자는 본래대로 되돌아오길 반복했으나 그 시간은 매우 짧았다.
“다음은 어느 녀석을 잡아먹을까…….”
은신처로 이동해서 다음 표적을 물색하려던 야마다 카즈오는 발이 땅에 붙어버린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고 아우성이었다.
이 경험. 해본 적 있다.
지금은 떠났지만 환월 나카야마를 봤을 때 이렇게 위축되었다.
아니, 이 정도는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감은 나카야마 그 이상이다.
힘겹게 눈을 굴린 그는 자신 앞에 검은색 야행복을 입은 젊은 청년이 서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얼굴에 감정을 지워버린 채 자신을 향한 눈동자는 같은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닌 ‘물건’을 품평하는 것과 같았다.
“야마다 카즈오, 맞나?”
“너, 넌 누구…….”
“그건 네가 알 필요가 없고. 내 말에 대답이나 해라.”
“…맞다. 왜 날 찾아왔지? 각성장관이 보냈나?”
“각성장관이 키우는 개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
“별로 궁금한 건 아니니 상관없어.”
“큭!”
숨겨졌던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 야마다 카즈오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마저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상대에게서 발산되는 기세가 간단하게 자신의 기세를 지워버렸던 것이다.
“어, 어떻게…….”
“키우던 개가 짖어봤자 매 앞에 비굴해지는 법이지. 이 정도면 쓸모가 있겠어. 기프트 종류는 섭취해서 일부를 얻어내는 건가.”
야마다 카즈오는 기겁했다. 자신의 ‘포식’ 기프트를 상대가 단숨에 꿰뚫어 본 것이다.
두려움이 전신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대체 녀석은 누구란 말인가.
아니, 이런 초인은 한 명밖에 없다.
“처음은 소박하게 시작하는 법이니 어쩔 수 없지.”
“서, 설마 헤드 브레이커?”
남자는 대답 대신 공간을 지워버리듯 단숨에 자신 앞에 도달하여 손을 뻗었다.
간신히 반응한 야마다 카즈오는 남자의 손을 쳐낸 뒤 반대 소매에 숨겨둔 독으로 시간을 벌어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손을 쳐낸다는 것부터 실패였다. 남자의 손에 붙들려 손목이 부러지고 그 다음은 팔꿈치가, 마지막으로 반대 손에 목이 붙들리는 신세가 되었다.
콰드드드드!
꼼짝없이 죽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할 무렵, 목을 잡은 손에 힘이 풀렸다.
“아, 맞다. 목을 부러뜨리면 죽지. 살려서 가야하는데 실수할 뻔했어.”
그로부터 의식의 단절.
야마다 카즈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장소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두컴컴한 실험실이었다.
* * *
네임드 빌런이 박멸된 대한민국과 다르게 일본과 중국에는 심심하면 네임드 빌런이 나타나고는 했다.
국가의 통제력이 느슨해진 틈을 타 범죄를 저지르는 녀석들은 활동 지역이 좁다하며 사방을 누비고 다녔다.
각국 정부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였지만 내게는 아주 훌륭한 실험체들이었다.
난 상하이에서 하나, 도쿄 인근에서 싱싱한 실험체를 잡아서 복귀했다.
어차피 세상에 해악을 끼친 빌런들이니 갑자기 사라졌다고 해서 누구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임자 만나서 죽었다며 기뻐했겠지. 시민들 입장에서는 네임드 빌런이 사라져서 좋고, 나는 싱싱한 실험체를 확보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전개인 셈이다.
먼저 상하이에서 잡아온 녀석은 천사음제(天邪音帝)라 불린 녀석으로, 음공이라는 독특한 기프트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던 녀석이다.
자칭 소리의 끝을 탐구한다고 하던데, 그 연구를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했다.
대치할 당시만 해도 제법 고고한 척 해서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허약하네.”
잡혀놓고 신세를 비관하여 자살하고 말았다.
생에 대한 집착이 없는 녀석이었다.
각성자의 목숨을 향한 집착도 실험의 중요한 요소였기에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이미 죽은 녀석을 갖고 더 이상 미련을 가져봤자 의미 없지.
남은 하나는 아귀라 불린 녀석으로, 일본 각성장관과 연관있는 듯했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천사음제가 죽어버렸을 때 박사 보디빌더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내가 죽인 건 아니라서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아귀로 실험에 착수했다.
자기 기프트를 이용해서 자살하던 천사음제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먼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적을 무력화 시키면 이것도 가능하지.”
난 무력화 된 아귀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컥! 커헉! 끄아아아!”
“……!”
내 손이 곧바로 안으로 파고들자 아귀는 괴성을 질렀고, 졸라맨과 박사들은 경악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손끝의 감각을 집중했다. 즉사기를 얻고 기프트의 원리를 파악하면서 나는 아무 저항도 못하는 적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었다.
녀석의 기프트 ‘포식’은 제법 괜찮은 기프트였으나 혈중섭식보다 수십 단계 더 떨어지는 열화판이라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약 3분여가 지나고 아귀의 가슴에 파고든 손을 빼낼 때, 내 손안에는 하얀 코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붉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가운데 하얀빛을 발산하는 코어는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빛을 발산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졸라맨이 날 붙잡고 캐물었다.
“주, 준호! 그게 뭐야? 어떻게 한 거야?”
“기프트 코어.”
“기프트 코어? 그럼 지금 이 사람의 기프트는 지금…….”
“나로 인해 제거된 상태지.”
하지만 버서커의 경우를 보듯이 연구가 진척되면 사라진 기프트도 다시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딴 짓 못하게 만들어놓은 거다.”
“…오히려 그게 더 절망을 느낄 거 같은데.”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내가 눈짓하자 졸라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했다.
생체실험이라고 해도 거창한 건 아니다. 기프트에 관한 연구였기에 각성자마다 기프트가 발동할 때 일어나는 변화와 부하가 걸리는 부분 등을 체크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것을 다른 각성자에게 권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측정을 하고, 졸라맨과 박사들도 측정을 하여 기본 데이터를 구축한 뒤 내가 데려오는 빌런들로 비교해보기로 했다.
일련의 과정을 마쳤을 때 나는 처분하는 걸 원했지만 졸라맨과 박사들은 그것에 거부감을 가졌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죽이는 것이었으나 이게 최후의 마지노선이라고 해서 더 권하지 않았다.
참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다.
대신 다른 방법이 있지.
뒤처리는 귀찮지만 그 다음으로 확실한 방법이.
모든 실험을 마친 뒤, 나는 야마다 카즈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곧바로 브레인워싱을 시전했다.
“그, 그그그극!”
한순간 정신이 돌아온 녀석은 저항하려고 했으나 이내 눈이 풀리며 백치 신세로 전락했다.
참고로 정보는 뽑아내지 않았다.
그 정도로 녀석에게 궁금한 게 없어서.
“녀석이 사라졌던 곳 근처에 던져두지.”
근처에 버렸다가 발견되면 내가 저지른 일인 걸 알아차릴 테니 데려온 곳에 둘 생각이다.
그럼 일본에서 체포하고 공을 세웠다며 알아서 홍보할 것이다.
이런 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에릭 클락슨이 졸라맨에게 속삭였다.
“…저럴 거면 차라리 죽이는 게 더 낫지 않아?”
“…….”
졸라맨은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