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80
380화
“연구 진척은 어떠냐?”
“…새로운 게 너무 많아서 정리가 되지 않을 정도야. 하지만 좋아. 이런 새로운 소재들은 어디에도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니까.”
내가 데려온 여러 명의 각성자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연구는 순조로웠다.
각성자가 보유한 기프트를 코어로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일종의 코드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버서커가 완전회복을 다시 한 번 사용하게 된 것도 이 코드가 존재해서다.
아마 내가 혈중섭식으로 기프트를 복사하는 원리 또한 이 코드를 복사해서 내게 옮겨오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졸라맨은 여기에 한 발 더 들어가서 한 가지 발견을 해냈다.
“각성자에게는 하나의 코드만 존재하는 게 아냐. 듀얼 기프트 같은 것도 복수의 코드가 발현된 거야. 졸라 신기한 경우지.”
“그럼 코드 종류만 알아내면 전부 여러 개 기프트를 보유할 수 있다는 거로군.”
“맞아. 하지만 인간이 버텨내는 건 별개의 문제야.”
“왜?”
“모든 각성자가 준호처럼 졸라 용량이 큰 게 아니거든.”
졸라맨이 말하길, 각성자마다 보유한 용량은 다르다는 것이다. 기프트가 차지하는 용량은 종류마다 다르며, 각성자마다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숫자는 다르다.
무차별적으로 여러 개 기프트를 보유하다가 용량이 초과되면 그때는 균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내가 미쳐버렸던 것도 비슷한 전개였군.
당시 보유했던 기프트가 50개를 넘어가면서 세는 걸 멈췄었지.
나중에는 나도 내가 무슨 기프트를 보유했는지 헷갈릴 정도로 기프트를 복사하는데 여념이 없었으니까.
그 점에서 볼 때 내 용량은 매우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용량을 넓히는 게 중요하겠어.”
“응. 결국 기본 역량 향상을 위해 졸라 열심히 훈련해야 된다는 이야기야.”
기프트의 원리를 밝혀낸 것만으로 세계가 뒤집힐 결과라며 졸라맨이 흥분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난 녀석의 수다를 중간에 끊어버리고 다음 연구 과제를 언급했다.
“이 다음은 기프트 변형인가.”
“맞아. 하지만 이건 졸라 어려울 거야.”
“왜?”
“코드라는 건 결국 설계한 사람만 알고 있는 암호야. 자신만 알아볼 수 있게 졸라 지독하게 꼬아놓거든. 이걸 손대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풀렸지만 그 다음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오래 걸릴 것이란 게 졸라맨의 설명이었다.
그 정도로 어려운 건가?
[정직하게 하지 않고 중간에 장난을 쳤다면 그럴 걸.]그렇다면 무조건 장난을 쳤겠군.
[정직할 수도 있는 거 아냐?]그 누구도 자신의 방법에 장난을 안 쳐놓은 걸 본 적이 없다.
결국 이 장난을 파훼하고 원리를 파악하는 게 관건이다.
그러려면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하고 더 많은 실험 대상이 필요하다.
“세상은 넓고 빌런은 많으니까. 더 잡아오지.”
“…알았어.”
여전히 빌런을 데려오는 것에 께름칙한 표정이었지만 계약을 맺었다면 그대로 진행하는 거다.
요즘 슬슬 알려지는 거 같던데 좀 더 멀리 가봐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
* *
“최근 일본과 북중국, 남중국에서 빌런이 실종되는 사태를 놓고 시끄러워요.”
진세정은 주변 국가의 동향에 대해 내게 언급했다. 외국의 소식을 어떻게 알았나 싶었더니 나에 관한 내용은 타국이라고 해도 흘러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위하오 주석이 대가를 치르면서 수작을 부린 곳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거든요.”
당연하게도 위하오는 처음이기에 값싼 대가를 치렀다.
그 말은 다른 곳은 더 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어느 정도 선인지 알 수가 없어 치열한 눈치 싸움 중이라고 한다.
“그 덕에 신성그룹이 혜택을 보고 있어요.”
“왜?”
“초인님의 심기가 조금이라도 누그러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나한테 직접 접촉을 하기 무서우니 가장 많이 찔러보는 것이 자신과 신성그룹이라고 진세정이 말했다.
“다만 저는 빙빙 돌아서 살짝 떠보는 정도고 격이 훨씬 높다고 생각되는 신성그룹에 몰리는 형국이죠.”
“이세희가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네, 맞아요. 이세희 회장님의 수완이 여기에서 발휘되고 있죠.”
이세희는 접촉을 해오는 이들에게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조금이라도 대화를 하고 싶은 곳은 신성그룹에 특혜를 베풀어서라도 대화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신성그룹에 빨대가 꼽힌 상태로 온갖 이권을 약속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철저하게 초인님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하고요.”
“잘하고 있네.”
애초에 협상 상대로 이세희는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덤벼들면 홀라당 털린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게다가 내가 허락하지 않을 선을 허용할 리도 없으니 특혜란 특혜는 다 받으면 된다.
“팀장님한테 접촉하는 건 누구입니까?”
“여러 곳인데 그 중에서 일본 측이 가장 적극적이에요.”
그러고 보니 일본은 이세희와 협상에서 탈탈 털려 질색하다 못해 두려워하는 걸 알고 있다.
저번에 물어보니 가장 손쉬운 상대라고 했었지.
얼마 전에 총리가 바뀌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별 관심을 두지 않아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뭐랍니까?”
“제발 초인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네요.”
“분노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난 녀석들이 수작을 부린 것에 딱히 분노하지 않았다. 그럴 녀석들이 그럴 짓을 했다고 생각할 뿐이지.
“초인님은 분노하지 않으셨는데, 번지수를 잘못 잡았죠.”
“분노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연히 저들에게 원하는 것도 없으실 테고요. 저 사람들은 큰일 났네요.”
큰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위하오도 개인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뿐, 국가적으로 큰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일을 벌인 녀석이 책임을 지면되는 일이다.
진세정은 그거야 말로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전개라고 말했다.
“원하는 게 없는 상대가 제일 까다롭거든요.”
극찬이군.
*
* *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지.”
집으로 돌아오니 윤희가 날 빤히 바라보며 집요하게 쫓았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빨리 해.”
“요즘 이상한 짓하고 있지?”
“내가 언제 이상한 짓을 했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상한 짓이거든?”
오늘도 어김없이 모함을 하는군.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혹시 주변 국가 빌런들이 실종되는 거, 오빠가 벌인 짓이야?”
진세정에 이어 윤희까지 물어보는군. 그리고 둘 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내가 벌인 거라 확신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 물음에 윤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밖에 그런 짓을 벌일 사람이 없잖아.”
[간단하지만 가장 확실한 말이긴 하네.]용용이 말에 의문이 들었다. 진짜 저런 짓을 벌일 사람이 나밖에 없어 보이나?
이젠 뭐만 하면 나라고 하는 수준이군.
그게 맞긴 하지만.
“아니라고 하면 믿을 거냐?”
“아니!”
“그럼 내가 한 걸로 하자.”
“그런 게 어디 있어. 오빠가 한 거면 오빠가 한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윤희는 포기하지 않고 달라붙으며 집요하게 내 답을 요구했다.
내 답을 듣기로 무슨 내기라도 했나 싶은 집요함이었다.
“왜 그렇게 듣고 싶은 거냐?”
“그야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재밌으니까!”
“어떤 점에서 재밌는데?”
“지금 오빠가 하는 행동으로 난리가 나 있거든.”
그러면서 윤희는 나로 인해 현재 각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
* *
최준호의 실종되었을 당시, 일본 내각에서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비록 실질적인 이득은 하나도 없지만 이웃국가의 강대함은 곧 자국의 피해로 다가오는 법이었다.
최준호의 등장으로 옛 북한의 영토를 수복하고 강대한 초인과 신예 초인들이 등장하면서 쫓아가기에도 벅찬 전력 강화가 이어졌다.
기점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실종에 일본은 축포를 터뜨리며 조금씩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중국에 맞춰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돌연 최준호가 복귀했다. 그리고 사과하러 방문한 위하오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것으로 모자라 팔 하나를 헌납하고 돌아갔다.
그 뒤를 잇는 국가는 최소 저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다케다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직에 오른 히가 총리는 위하오의 상태에 관한 소식을 듣고 사색이 되었다.
본래 온건파에 당내에서 소수 계파 수장이라 다수 계파에 의해 옹립된 총리인 그였다.
절묘한 권력 구도를 이용해서 총리가 된 것까지 좋았지만 졸지에 팔 하나를 헌납해야 할 상황이 되자 난리가 난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각성장관을 불러 상황파악에 나섰다.
“…현재까지 실종되었다가 나타난 숫자가 몇이지?”
“공식적으로 발견된 것만 일곱 명, 비공식적으로 열두 명입니다.”
“모두 상당한 실력을 가진 자들일 텐데?”
“그렇습니다. 당국에서도 체포에 애를 먹던 빌런들입니다.”
최소 레벨 6에서 레벨 7까지 포진되어 있는 빌런들은 국가적으로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얼마 전 이 빌런들은 차례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숨어서 무슨 짓을 벌일지 긴장이 되었지만 활개치지 않으니 안도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도 잠시, 차례대로 실종되었던 빌런이 발견되자 내각은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실종되었던 빌런들은 하나같이 백치가 되었다. 의식이 3세 이하 수준으로 퇴화된 빌런들은 제대로 된 인지 능력마저도 상실한 채 체포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충격적인 건 각성자로서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점이다.
이건 비단 일본만이 아니었다. 다른 국가에서도 백치가 된 빌런들이 발견되었다.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바로 최준호다.
내각에서는 이를 최준호의 무력시위로 받아들이고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최준호 팀의 반응은?”
“그게, 결국 직접 초인님을 찾아오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그 녀석을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팔을 잘라 내밀라는 건가!”
“…….”
각성장관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임으로써 긍정을 표했다.
히가 총리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전임 총리는 좋겠어. 일은 자기가 벌여놓고 책임은 나한테 전부 떠밀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케다 의원의 심복인 자네가?”
히가 총리가 비꼬듯 말했지만 각성장관은 발끈하기는커녕 한숨을 내쉬었다.
“최준호는 총리님만이 아닌 더 많은 책임을 원할 것입니다. 그 대상을 선정하면 저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그렇군. 내가 생각이 짧았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지는군.”
“저도 그렇습니다.”
최준호에 대한 자료는 그 어떤 국가보다 많이 수집한 게 일본이다. 그리고 그의 성향상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물 때, 자신은 물론이고 각성장관까지 아니, 어쩌면 내각 전체에 책임을 물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그걸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조금 늦어지는 것 가지고 저런 식으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더 늦으면 빌런을 상대로 한 것이 자국의 초인, 정부의 유력자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자네나 나나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어.”
나란히 팔이 잘리는 건 물론이고 어쩌면 목이 날아갈 수 있다.
총리와 각성장관의 시선이 마주쳤다.
같은 당이지만 계파 갈등으로 20년 넘게 충돌하던 사이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동지애가 넘쳐흘렀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기는 히가 총리나 각성장관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선이 마주친 둘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