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81
381화
이세희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재계 서열 1위, 대한민국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재벌 그룹의 회장이 되었지만 수행하는 인원 다섯 명만 데리고 온 그녀는 단출한 미팅룸에서 현재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네, 준호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에요.”
“구체적으로 어떻지?”
“위하오 주석이 치른 대가를 보고 경악하고 있어요. 위 주석이 치른 대가가 그 정도라면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대가는 어느 정도인지 감이오지 않는 거죠.”
당연하게도 처음 순서니 어느 정도 감안해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 순번이 치러야 할 대가는 더 클 텐데 이걸 순순히 감수할 국가 수장은 없었다.
말로는 국가를 위한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명예, 자기 보신이 더 중요한 법이니까.
“특히 무역을 방해하던 홍콩 광둥 연합은 애걸복걸 매달리고 있는 중이에요.”
그들은 이세희의 도움으로 독립의 꿈을 키우고 끝내 독립까지 해냈지만 내가 실종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등을 돌려 칼을 꽂았다고 한다.
매 순간 어깃장을 놓고 가격을 놓고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더 악랄하게 굴었다고 하니 이세희가 독기를 품은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비위도 좋아, 나라면 머리부터 부숴버렸을 텐데.”
“저야 물건 파는 사람이니까요. 고객에게 합법적으로 바가지를 씌울 기회가 생겼는데 그걸 저버리는 건 상인의 자세가 아니거든요.”
“너한테 잘못 걸리면 탈탈 털린다는 게 맞는 말이었어.”
“어폐가 있네요. 언제나 저는 서로 수긍할 제안을 하고 있어요. 뒤늦게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할 수 있어도 거래에 이상은 없는 거죠.”
강매가 아닌 걸 자랑스러워하는 건가.
당당한 이세희를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순순히 넘어가기로 했다.
“다만 이 정도 되었으면 어느 정도 탈출구는 필요해요.”
“봐주자고?”
“그것보다는 가이드라인이요. 지금 저들은 자신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해서 혼란스러워 하는 거거든요.”
위하오가 팔이었으나 더 큰 대가라면 뭘까.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기에 팔보다 더 중요한 부위를 떠올렸을 것이고, 극단적인 몇몇은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며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적어도 죽지는 않을 거란 확신은 줘야겠죠.”
“음.”
“설마… 목까지 요구하실 생각이셨어요?”
“몇 명은 죽어야 두 번 다시 같은 짓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할 걸.”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위하오가 팔을 내놓고 갔다고 해도 의수를 붙일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멀쩡하게 활동하면 경고의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가장 효과가 좋은 경고는 확실하게 죽이는 것이다.
“그랬다가는 더 격렬하게 저항하려 들 거예요. 퇴로가 완전히 가로막히면 이판사판이 되는 법이죠.”
“그것도 나쁘지 않아.”
내게 저항하면 그 끝은 몰살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면 알릴수록 좋을 테니까.
다만 이걸 이세희가 바라지 않겠지.
“그래서는 물건을 팔아치울 수 없겠지?”
“네, 바가지 씌워서 두고두고 뽑아먹는 게 더 이득이거든요.”
당연하게도 바가지를 쓰는 것은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될 테고, 그들은 물건을 비싸게 팔아치우는 신성그룹에 분노하더라도 끝내 그 분노의 대상은 정부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되면 그것도 의미 있는 결과물일 거라고.
“내 방식에 맞진 않지만 죽여 없애는 것보다 생산적이겠지.”
그동안 고통을 감내한 쪽의 의견이니 한 번 들어줘볼까.
이세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해요!”
“어느 정도가 좋을지 의논은 필요할 거야. 대신 위하오보다 더 대가를 치러야 하고.”
용기를 내서 가장 먼저 대가를 치렀는데 알고 보니 자기가 가장 크게 당했다고 하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고객 만족도를 위해서라도 그 뒤 녀석들은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세밀하게 조정해야겠어요.”
어느 정도가 좋을지는 차차 논의하기로 하고, 이세희는 내게 한 가지 도움을 더 요청했다.
당연히 사업에 관련된 내용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세희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생각과 전혀 달랐다.
“훈련 지도?”
“네, 요즘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죠?”
이세희는 그게 두고두고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동안 길드 일에 주력하랴, 그룹 일에 주력하랴, 몸이 열 개여도 부족했다고 한다.
“이제 바쁜 일은 전부 끝냈거든요.”
“그래서 훈련이다?”
“네. 다현이도 초인이 되었고, 제 주변 사람들 모두 강해지고 있는데 저 혼자 정체되어 있어서요. 저도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준호 씨가 도와주면 더더욱 빠르게 가능할 테고요.”
자신감을 드러내다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번 일을 겪으면서 몸이 약하니 정신도 약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어요.”
[저 인간이 약하다고? 저 정도면 인간 중에 상위 중 상위인데?]용용이의 비교 대상에는 일반인도 포함되어 있어서 그렇다. 이세희 주변에 한정하면 다들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데 본인은 뒤처지는 느낌을 받아도 이상할 건 없다.
[혹시 너한테 연약한 걸 어필하려는 게 아닐까? 인간 여자들은 그런 짓 많이 하던데.]용용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드라마의 부작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레벨 7 각성자가 연약한 척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내 말이 맞을 걸?]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며 이세희 제안을 받아들였다.
“도와주지.”
“정말요? 감사해요!”
“대신 어중간한 건 없어. 뒤처졌다는 건, 지금 시작해서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더 해야 한다는 의미니까.”
“오히려 더 좋아요. 전 신경 쓰지 말고 더 세게, 더 강하게 굴려주세요!”
“그러지.”
[연약한 척 맞는 거 같은데…….]*
* *
이세희와의 대화를 토대로 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가장 쉬운 건 개인방송을 통해 얘기하는 것도 있겠지만 언론도 내 편으로 만들어서 내가 하려는 얘기를 재확산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더 이상 언론의 집중이 필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자극적으로 버무려서 더 많은 노출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걸 위해 고예진을 불러들였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인님!”
언론의 MSG, 언론계의 어그로, 클또고(클릭하면 또 고예진)이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고예진이 인터뷰 제안에 곧장 달려왔다.
위하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니 처음에 얼어붙어 있던 고예진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네! 맞아요! 현재 대한민국 주변국의 최대 관심사는 자국 정치인이 어느 정도 선에서 책임질지 여부거든요.”
내가 복귀하고, 그동안 뒤틀려가던 것들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동안 억눌려있던 주변국이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그들은 내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였고,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이 위하오였다.
용기 있게 선봉에 섰지만 결과는 씻을 수 없는 치욕과 팔 하나였다.
십대초인이던 그마저도 어떤 반항조차 못한 채 대가를 치른 것이 그들에게 경악을 선사했다.
“여기에 대해 초인님의 구체적인 코멘트도 없으셨고요.”
“내 코멘트가 중요합니까?”
“네, 중요해요.”
“평소에 할 말 다 하는데.”
“아무래도 언론과 인터뷰는 좀 더 깊은 속마음이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그들은 초인님이 가진 깊은 의중을 읽고 싶을 거예요.”
“사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네?”
“내가 말하면 딱 그만큼만 책임을 지겠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 그렇죠?”
1을 제시하면 1대로, 10을 제시하면 10을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별로였다.
“내가 원하는 건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책임 있는 자세인데 정작 나서는 사람은 위하오밖에 없더군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당장 찾아가서 다 뒤집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
[너 지금 속마음이 나왔어.]내 중얼거림을 들은 고예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 말씀은 일을 저지른 측의 책임감 있는 모습이 중요하다는 거로군요.”
속마음이 나왔으니 솔직하게 얘기해야겠다.
“맞습니다. 원래 피해자가 수긍할 만큼 무조건적인 사과가 동반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눈치만 보고 있으니 상당히 실망스럽네요.”
[네가 피해자라는 게 어폐가 있긴 하지만 말이야.]내가 피해자 이미지가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맞다. 그것들이 내가 돌아오니 바로 잡혀가는 중이고.
단지 그 피해가 내게는 미미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럼 초인님이 말씀하시는 책임지는 자세란 건 어떤 걸까요?”
“먼저 자기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거면 될까요?”
“당연히 반성하는 의미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책임은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대가라면 어떤…….”
“위하오는 팔 하나를 내놨습니다. 먼저 나선 용기에 그걸로 봐줬으니 그 다음은 그 이상의 것을 내놓아야겠지요.”
오해할 거 같아 적어도 목은 아니라고 확실하게 얘기했다.
이걸로 목숨을 잃지 않는 건 확인했으니 마음을 놓겠지.
“…….”
그런데 고예진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
* *
최준호의 인터뷰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목까지 내놓으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수많은 밈을 제조해내며 대한민국과 신성그룹에 수작을 부리려던 이들에게 조롱을 받았다.
주된 요지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정주호 또한 인터뷰를 보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대체 이런 인터뷰는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오히려 역효과 아냐?”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각국의 정부 수장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정점의 위치에 오른 그들이 녹록한 인물일 리 없었다. 그런데 최준호가 하는 행동은 한참 밑바닥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듯했다.
“이래서는 더 발악할 수도 있겠는데.”
“효과는 있어.”
정주호의 말에 반박한 것은 천명국이었다.
“이걸 받을 거라고?”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는 거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수습해야할 테지.”
시간이 지날수록 최준호의 위협은 현실화가 될 것이다.
그 누가 그를 막아설 것이란 말인가.
리그의 빌런보다, 강력한 마물보다 최준호의 위협이 더 무섭게 다가온다.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않으면 앞으로 최준호가 주도하는 질서에서 배제되는 것도 문제가 되고.
결국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대신 책임 공방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게 될 것이다.
고려해야 할 것 투성이임을 알게 된 정주호가 천명국을 보며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이 고생이 많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래도 준호가 돌아와서 총선은 승리하게 됐으니까 잘 됐지. 미국 놈들이 같잖게 협박해대던 걸 생각하면 천지개벽한 수준이야.”
“그렇지.”
“근데 날 부른 이유는 뭐유?”
“이번 총선에 네가 추천할 사람은 없고?”
“나? 난 정치는 상관없어.”
바로 경기를 일으키는 정주호.
천명국은 그를 살살 구슬렸다.
“그래도 괜찮은 사람은 알고 있을 거 아니냐.”
“있기는 한데 그때부터 정치에 개입하게 되는 거 아냐? 난 그런 거 질색이야.”
“괜찮은 사람은 부족하니까. 네가 추천하면 믿을 수 있고.”
“하긴, 내가 괜찮은 사람을 많이 알긴 하지.”
“그러니 너도 협조해라. 국가 소속 초인이잖냐.”
평생 공직에 있던 정주호의 인맥은 굉장했다.
“어쩔 수 없나.”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정주호를 보며 천명국은 속으로 미소지었다.
“근데 대부분 각성잔데 괜찮겠어?”
“나도 각성자다.”
“정계에 각성자가 많이 진출하면 분명 말이 나올 텐데. 리그 사상이랑 비슷하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각성자와 일반인의 차별 이야기는 식지 않은 논쟁거리였다.
“일반인이든 각성자든 자기 역할만 잘해내면 상관없지.”
“하긴, 이론이 나쁜 건 아니지. 사람이 나쁜 거니.”
“그래서 부탁하는 거다.”
“알았수다.”
그렇게 정주호가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근데 그렇게 신경 많이 쓰면 버틸 수 있어?”
“…그래서 더 강해지는 길을 선택했다.”
“건강을 위해 더 강해져야 한다는 건가. 대단하군.”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다음 대통령은 괜찮은 사람으로 잘 뽑아버려. 그리고 미리 인수인계를 해버리는 거지.”
“나쁘지 않아.”
전한철 대통령이 했던 걸 그대로 얘기하는 것이다.
천명국이 맞장구를 치자 정주호가 신이 나서 말을 이어 나갔다.
“최준호 감당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 나도 녀석을 이끌 때 하루에 머리가 얼마나 빠졌던지.”
그러면서 지금은 괜찮다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혼자만 살기 위해 빠져나갔던 걸 천명국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최준호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그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다.
당사자는 아직 모르게 하고.
“나도 옆에서 도울 테니 좀 더 힘내고.”
“그래, 많이 도와줘라.”
지금, 그리고 다음, 그 다음까지도.
정주호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천명국은 다음 대선, 그리고 그 다음 대선까지 보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자신을 원망할 테지만 원망 받는 건 익숙하니까.
최준호만 떠넘길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다.
“나만 믿으슈.”
그 사실을 모르는 정주호는 호탕하게 가슴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