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84
384화
최준호가 일본으로 왔을 때까지만 해도 다케다 측의 분위기는 초상집과 같았다.
누가 봐도 일을 벌인 것은 그였고, 최준호가 책임을 물리려고 한다면 피해 갈 수 없어서였다.
유일하게 해 볼 수 있는 것은 혼자 죽지 않기 위해 히가 총리를 끌어들이는 것.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 거라고 전망되는 가운데 실낱같은 희망이 그들을 찾아왔다.
“최준호가 히가의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고?”
“그렇습니다!”
“일본으로 들어올 때 반응은?”
“무덤덤했습니다.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크게 바뀌는 건 없을 테니까. 하지만 희망이 생겼어.”
다케다의 눈이 번뜩였다.
일개 소수계파 수장을 총리로 올려줬더니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히가 총리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마 최준호는 자신에게 손을 쓸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만큼 명예롭게 내줄 것은 내주면서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는 게 그의 전략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 조금 더 많은 걸 노려볼 수 있게 된다.
“대신, 히가의 팔도 받아간다.”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녀석과 나, 두 사람 중에 한 명은 크게 당해야 한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함부로 덤비는 녀석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꽉 문 다케다는 반드시 히가 총리만은 죽이겠다는 살기를 드러냈다.
*
* *
숙소 안에 들어서는 내내 박영후의 눈치가 이상했다.
오는 도중 총리실의 제안 때문인 건가? 난 아닌 척 하다가 곁눈질을 하다가 고개를 돌리길 반복하는 박영후를 보며 혀를 찼다.
“궁금한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그래도 됩니까?”
“총리의 제안 때문인 겁니까?”
“예, 맞습니다. 어째서 총리의 제안을 거부하신 겁니까?”
“대충 자료를 받아보니 서로 견제가 심각한 거 같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재탕에 삼중탕을 거쳐 사중탕을 넘게 본 일본 정치 계파간 갈등. 이것은 책임을 뒤집어씌울 아주 좋은 수단이 되었다.
양측 모두 자기만 살겠다고 아우성을 지르는데 나한테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 견제는 내가 알 바 아니고, 세력 구도도 내가 알 바가 아닙니다.”
내가 보는 건 오직 누가 잘못을 저질렀느냐다.
그리고 그 잘잘못의 여부에 따라 져야 할 책임이 달라지겠지.
“그럼 더더욱 이야기를 들어보셔야 하는 건…….”
“어차피 서로 자기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만 할 거 아닙니까.”
내가 제법 길다면 긴 삶을 살아왔지만 여태까지 자기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녀석을 본 적이 없다.
죽을 죄를 지은 녀석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거짓말이 먹히면 무사할 수 있으니 거짓말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당연히 거짓말은 죽음을 부르는 법이고.
“그러니 서로 진실을 알려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
“더 하실 말씀이라도?”
“분명 서로가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할 것입니다. 그것은 초인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테고.”
“그걸로 죽이진 않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거짓말 치고 있네. 네 신경에 거슬리면 바로 죽일 거잖아.]용용이가 바로 반박했다. 앞에 있는 박영후도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나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몸 성하게 지나갈 거라 생각하는 녀석은 없을 겁니다.”
“그건 초인님이 정치인의 속성을 모르셔서 그런 겁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희생양을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고, 자신만 무사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그 수단과 방법이란 게 대체 뭘까.
설마 이곳으로 날 불러들여놓고 암살이라도 하려고?
안타깝지만 만득이가 있는 이상 어떠한 독으로도 날 죽이는 건 불가능하고 초재생이 있어서 기습적으로 부상을 입혀도 바로 회복한다.
이렇게 말하니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르기에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넌 네가 아직도 인간인 줄 알았어? 으갸갸갸갸!]참다참다 못해서 용용이를 붙잡고 정성스럽게 만져줬다.
감정을 듬뿍 실어서.
“…뭐하시는 겁니까?”
용용이를 볼 수 없는 박영후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모르는 게 낫긴 하다.
*
* *
도쿄에서 이틀 동안 푹 쉬면서 나는 숙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세계에서 안전하기로 손에 꼽히는 도쿄였으나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나 특이할 뿐, 내가 보기에는 서울이 훨씬 더 안전한 도시였다.
그 안전함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이 모여들 정도여서 마물이 등장한 세계가 예상치 못한 관광 역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도쿄가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도시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며, 내게는 큰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곳이란 이야기가 된다.
본래 일본에서 이틀만 머무를 생각이었던 내가 사흘이나 머물게 된 것은 순전히 일본 정치인들 탓이다.
그들은 서로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일정 조율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했고, 그 신경전이 길어지면서 장소 선정이나 인원 선정 등 사소한 걸 가지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애초에 자존심을 내세운 대립이란 건 그런 것이다.
하나라도 양보하는 순간, 모든 걸 다 내어준 것처럼 충격을 받는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형태를 강요받지.
이런 대립을 종식시킬 수 있는 건 압도적인 힘이다.
지켜보다 못한 내가 후보지 중 한 곳을 골랐고 인원도 정했다.
안 그러면 양측에 모두 책임을 묻겠다고 하니 바로 입을 다물었다.
누가 보면 책임을 물지 않을 것처럼 보이겠다.
“모시겠습니다.”
주최 장소로 이동할 때, 날 맞이한 것은 무려 이백 명이 넘는 수행 인원이었다.
하나같이 기세가 대단한 것으로 보아 일본 각성자 중에서 정예들만 동원한 게 눈에 보였다.
인원이 단출한 우리가 중앙에서 가다 보니 그림이 어째.
“이거 연행되는 거 같은데요.”
“…귀빈 중의 귀빈이다 보니 각별히 신경 쓰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 보여요?”
“…….”
박영후도 입을 다물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봤자 상황을 호전시키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챈 걸 테지.
그나저나 이 정도 인원을 동원한 게 뭘까. 이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하면 시간이라도 끌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칼날폭풍이 있으니 별 차이가 없을 텐데 말이지.”
내게 가장 익숙한 기뢰는 누구든 부숴버릴 수 있고, 칼날폭풍은 밀집한 다수의 적을 육편으로 다져놓을 수 있다. 그리고 내 공격을 피해 도망간다고 해도 저격으로 머리에 구멍을 뚫는 것이 가능하다.
설사 공간 이동을 시전해서 지구 반대편으로 도망간다고 해도, 고속 비행이 있는 나는 어떤 환경이든 어떤 상황이든 내가 원한다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그 정도로 멍청한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고, 이들이 갖고 있는 본래 시스템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이 정도면 얼마나 걸리려나.”
5분? 아니다, 요즘 내가 더 강해졌으니 전력을 쏟아낸다면 칼날폭풍 범위를 늘릴 수 있을 테니 3분이면 충분할 거 같다.
헬 마스터와 대결은 내게 또 다른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그로 인해 몇 차례 죽음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역시 사람이 성장하는 순간은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감을 느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만하는 게 좋지 않을까? 옆에 기절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옆을 보니 박영후가 사색이 된 채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 생각을 하면서 쥐었다 폈다 한 게 적잖은 위협으로 보였나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그렇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세력을 보게 되었다.
한쪽은 현 총리인 히가를 중심으로 뭉쳐있고 다른 한 쪽은 예전에 날 맞이했던 전 총리 다케다가 자기 계파를 거느린 채 앉아 있었다.
각기 인원은 서른 명.
둘 모두 인원을 최소화하려고 했지만 내가 굳이 그런 것 까지 배려할 이유가 없었다.
양측 모두 날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다.
죽을 짓을 한 양측 세력이 자기 목을 걸고 내게 결정을 내려달라고 하는 게.
이렇게 보니 재판장 느낌도 난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혈종이 되기 전, 빌런이 된 나는 각성자들을 죽이고 기프트를 취하면서 극심한 악몽에 시달렸다. 당시 추격해오는 각성자들에게 붙잡혀서 재판을 받는 꿈은 백 번쯤 꾼 것 같다.
결국 추격대를 전멸시키고 기프트를 추가하고 추가하다가 미쳐버려서 잡혀가는 일은 없었지만.
하지만 당시에는 재판을 받더라도 가족에게 돌아갈 순 없을까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정도로 그리웠던 기억이다.
이젠 그럴 필요가 사라졌지만.
“룰은 간단합니다.”
양측의 쏟아지는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내면서 나는 양측에 내가 정한 기준을 제시했다.
조건은 복잡하게 할 것 없이 간단하다.
일본 측이 신성그룹과 한국 정부에 저지른 짓을 이야기 할 것. 그리고 그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한 게 누구인지, 누가 실행에 옮겼는지, 어떤 피해를 입혔고 종래에는 어떤 노림수가 있었는지 말하는 것이다.
그래야 누가 죽을 짓을 했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겠는가.
“…….”
내 말이 끝났을 때 장내는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현 총리 측이나 전 총리 측 인물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 채 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왜 그럽니까? 그럼 어떤 악의가 있었는지 얘기하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습니까?”
당연히 상황을 자세히 알려줘야 누구 잘못이 더 큰지 가늠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아, 거짓말을 하면 그쪽은 무조건 목부터 뽑을 것입니다.”
내 말에 다케다 전 총리의 표정이 하얗게 질리더니, 옆에 앉아있던 측근이 일본어로 질문했다.
난 알아들었지만 박영후가 정확한 번역을 위해 통역을 해주었다.
“설마 목을 뽑을 대상이 이곳에 모인 전부냐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러라고 모이라고 한 겁니다.”
한 마디로 사냥감들이 자기 사냥당할 자리인지 모르고 사냥터로 모여든 것이다.
나야 당연하게도 한 자리에 모아놓는 게 처리하기 편했고.
“…….”
그 의도를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얼굴이 사색으로 바뀌는 사람이 많았다.
“그럼 들어보죠.”
“예, 저희가 먼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소상히 밝히겠습니다.”
“그걸 왜 당신들이 합니까?”
“이미 합의된 사안 아닙니까!”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지!”
발언의 순서나 스스로 변호하는 것도 아주 치열한 신경전을 통해 정해졌다.
양측 모두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데려왔는데 내가 볼 때 헛수고였다.
아무리 현란한 언변을 발휘한다고 한들 일단 나는 외국인이 배워 말귀를 간신히 알아듣는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수사를 가져다 붙여도 결국 본질이 중요한 것이다.
누가 장난질을 친 것이고 그 의도가 무엇인 것이냐. 본질을 보면 나머지는 다 곁가지다.
처음에는 차분하던 이야기가 순서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될수록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서로가 서로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난 그 광경을 재미있게 지켜봤다.
정말로 재미있게 봤다.
왜냐하면 둘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한다고 해도 결국 했던 짓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포장을 씌우고 뉘앙스를 바꿔서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냐가 핵심이다.
이걸 보고 내린 내 감상은.
“둘 다 죽을 짓을 했네.”
“…….”
내 말이 통역되자 장내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