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확실히 얘기는 이세희와 해야 진행이 된다. 내 몇 마디로 이세희는 내가 원하는 것이 어떤 건지 바로 캐치하고 곧바로 그걸 얻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선두주자인 신성그룹은 각국에 깊은 끈을 갖고 있고, 각국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들과 친분을 맺고 있다.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된 곳은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하지만 개발도상국은 금방 얻어낼 수 있어요.”
그것은 시스템의 차이이며, 권력을 손에 쥐었던 사람들의 마인드에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수의 존재가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가에 대해선 오래 전부터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 사람들에게 접근한다면 금방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겠지.
이세희는 이세희대로, 천명국이 안정되면 정부 차원에서도 알아볼 수 있게 요청해볼 생각이다.
“하나씩 만나봐야 하나.”
신수 목록이 완성되면 그 다음은 일일이 찾아가보는 것. 다만 이 녀석들이 인간에게 우호적일 수도 있고 적대할 수도 있으니 용용이를 이용해야겠다.
근데 벌써 다음 대선을 논할 때인가. 몇 달 뒤에 총선이 있기는 하지만 이세희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건 처음 들었다.
“준호 씨 덕분에 여당이 대승을 거둘 거거든요.”
“내가 사고를 쳐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외교적으로 시끄러울 뿐, 악재는 전혀 없거든요.”
물론 이웃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할 조짐이 보이고, 천명국이 국경으로 군을 움직이는 등,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으로 번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게 이세희의 설명이다.
“현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거죠.”
시뮬레이션 기프트의 보유자이자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정치행위에 실패가 없던 정치란 괴물의 정점에 서 있는 자.
그것이 바로 천명국에 대한 이미지였다.
실제로 미래에 벌어질 일을 사고 속에서 재생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기프트는 천명국의 등장 이후 연일 재조명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건 현 대통령이라서 가능한 건데 말이죠.”
온갖 상황에서 피가 마르는 경험을 통해 갈고 닦은 능력이기에 저만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정주호 초인이 대선에 나오는 건 확실한가요?”
“응, 왜?”
“아직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헛소문이죠?”
아무래도 슬슬 정주호 대망론이 나오고 있나보다.
그런데 이 양반은 아직도 자신이 후보로 낙점된 걸 모르고 있나보다.
나중에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이세희와 헤어지고 신성그룹 본사를 벗어날 무렵, 희끄무레한 신형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내 옆을 맴돌았다.
용용이다.
[나 왔어.]“왔냐.”
[좀 반겨줘라. 무슨 인간이 이렇게 야박해?]“현아랑 내 욕 실컷 하다 와놓고 나더러 반겨달라고까지 한다고?”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물론 반쯤 농담이었지만.
그런데 용용이 반응이 진짜였다.
[어, 어? 내가 네 욕을 왜 해.]“일부러 욕하라고 먼저 갔던 거다. 나한테 쌓인 게 하도 많아 보여서.”
[…….]용용이 녀석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지만 본전도 건지기 힘들다는 걸 눈치 챘는지 더 말하지 않았다.
[진짜 그런 의도였어?]“아니. 농담한 건데 그게 진심일 줄은 몰랐다.”
[어? 어?]“현아랑 신수끼리 논의할 게 있으면 논의하라고 남겨뒀더니 내 욕이나 하고 앉았냐?”
[아, 아냐! 나 네 욕 안했어! 그래, 현아! 현아가 네 욕 했어! 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고! 난 억울해!]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신수도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리수를 사용하나보다.
난 한심한 용용이를 보며 혀를 찼다.
“친구까지 팔아먹긴.”
[아냐!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현아가 보기보다 너한테 불만이 많다니까? 그러니 내 말을 좀 들어봐.]그러면서 용용이가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래서 현아랑 얘기 나눈 성과는?”
[없어.]“그래놓고 잘도 내 앞에서 당당하군.”
“그럼 기프트가 신수의 권능에서 출발한 건?”
[그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어. 기프트는 우리가 보유한 권능만큼이나 신비한 힘이야. 어떤 원리에서 비롯된 건지 나도 현아도 알지 못해.]“다른 신수가 알 수도 있잖아.”
[그러네?]“넌 대체 아는 게 뭐냐.”
[아, 아냐! 이건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고. 다른 신수들도 모를 걸?]애초에 용용이한테 거는 기대가 없었기에 실망도 생기지 않았다.
녀석이 그러면 그런 거 아니겠는가.
용용이라서 놀라움이 하나도 없는 게 포인트였다.
[와, 실망스럽네.]“헛소리는 그만하고.”
결국 득실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용용이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아직 해야 할 일은 많이 남아 있었다.
*
* *
천명국에게 당분간 조용히 지내겠다고 말을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의 이해에는 엄연한 온도 차이가 존재했다.
보통 여기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은 쥐 죽은 듯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면 내가 조용히 지낸다는 것은 가급적 한국을 벗어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내는 걸 의미했다.
그동안 얼마나 진도가 나가 있나 연구소를 방문했다.
그런데 날 맞이하는 졸라맨의 태도가 평소와 달랐다.
“주, 준호! 어서 와! 무사히 돌아온 걸 졸라 환영해!”
“뭐 잘못 먹었냐?”
“지금 내가 이상한 거라고? 이상한 건 준호야!”
“난 정상인데.”
“준호! 준호는 자신이 벌인 일을 졸라 자각할 필요가 있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한 준호가 졸라 이상한 거라고!”
“난 또 뭐라고.”
졸라맨도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기존에 나라는 사람은 바뀌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처리한 상대가 달라졌을 뿐.
죽을 짓을 누가 했던 결과는 같은 것이다. 졸라맨은 그 차이를 놓고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던 것이고.
물론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게 있지만.
“됐고, 뭐 숨기는 거 있냐?”
“어? 아, 아니?”
“숨기다 걸리면 수습 못하는 건 알지?”
“그게…….”
마치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 대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더니 졸라맨의 뒤에서 예상치 못한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다, 헤드 브레이커. 건강해 보이는군.”
태연하게 말을 걸어오는 녀석은 다름 아닌 막심 게데스였다. 미국에 있어야 할 녀석이 이곳에 온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고작 1년 가지고 무슨. 이곳엔 웬일이냐?”
“네게 볼 일 있어서. 그런데 마초맨이 안 된다고 가로막더군.”
“쟤가 왜?”
“보려다가 죽을 수도 있다나. 손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대화를 이어나가도 된다는 의미로 봐도 되겠지?”
“이번 일 때문에 그런 건가.”
“연관이 없다고 볼 수 없지. 그곳에 일어난 것도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니.”
막심 게데스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옆에 선 졸라맨은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다 나와 녀석을 번갈아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가 보면 일이라도 터진 줄 알겠군.
근데 대화는 나누고 있지만 용건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난 너랑 딱히 볼 일이 없어서. 이쪽이랑 얘기를 더 해야 되는데?”
“그럼 짧게 묻고 가겠다.”
“말해.”
“현재 우리 파티, 네 사정권에 들어와 있나?”
“그럼 아니겠냐.”
“낙관론을 펼치는 녀석들이 있어서.”
“너희들이 부린 수작을 보면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 잘 알 텐데?”
파티가 벌인 짓이라고 하면 미의회를 움직여서 견제에 들어온 것이다.
아놀드가 강경책을 내세우려고 했던 것도 파티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백악관은 철저하게 말리는 입장이었고.
그래서 미국 문제만큼은 미국 전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백악관과 의회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해야 한다.
여기에 파티가 곁들여져 있고.
“의회는 반드시 손을 봐야 한다면 파티는 절대로 손 봐야 하는 정도겠지.”
[대충 둘 다 죽이겠다는 말을 참신하게도 하네.]“…역시.”
막심 게데스는 이미 예상했다는 얼굴이다.
그 말은 파티 내에서도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이게 듣고 싶은 말 아니었나?”
“맞다.”
“그럼 가라.”
“우리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고민이 깊어졌지. 팬텀은 네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자기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고.”
“넌 생각이 다르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난 다르다.”
“달라?”
“네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의왼데.”
희망사항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아는 녀석이 있긴 했다.
“그래서 이곳에 수작을 부리는 것도 반대했지. 허버트를 견제하는 것도 반대했고.”
“그럼 파티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른 게 아닌가?”
“우린 더 이상 암중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단체가 아니니까. 현실을 받아들여야 그 다음을 바라볼 수 있지. 그 부분에서 팬텀은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어.”
“네가 팬텀 자리를 대신하고 싶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이 정도 대화를 나눴으면 녀석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맞다.”
“난 딱히 널 도울 생각이 없는데.”
“나도 직접적인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네가 미국에 왔을 때 네 죽음을 바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주길 바랄 뿐.”
“구분은 네가 하고?”
“그래.”
“내가 왜 그런 귀찮은 작업을 해야 하지?”
“그게 네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법 당당하지만 권력 다툼에 날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내 스타일은 모르지 않을 테고, 무슨 자신감으로 말하는 건지 궁금했다.
“뭐 때문에 도움이 되는지 말해봐.”
“파티가 보관하고 있는 모든 신수의 상세한 정보에 대해 알려주겠다.”
[뭐야! 인간들이 어떻게 그걸 상세하게 알고 있는 건데!]“신수의 정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기에 난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 반응을 본 녀석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너만 신수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우리도 천둥새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고, 헬 마스터를 통해 신수의 힘을 기프트화 시킬 수 있다는 걸 확인했지. 1년 동안 사라졌던 게 그것과 관련 있다고 생각했다.”
“…….”
확실히, 그 부분에서 파티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었다. 웬만한 국가보다 더 거대한 곳인데.
“근데 지금은 모르는 걸로 얘기하는군.”
“맞다. 팬텀은 그걸 자신만의 자산으로 삼고 있었으니까.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했지만 내가 알기로는 성공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고.”
구린내가 나는군. 하지만 내게는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이긴 했다.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준다면 못할 것도 없지.”
“거래 성립인가?”
“잘 분리해놓고.”
과연 그 구분이 어느 정도로 잘될지는 나도 미지수였다.
[착각했다 하고 다 죽일 각이네.]그럴 리가.
[넌 그러고도 남아.]*
* *
“잘 한다, 아주 잘해. 정말 대단한 분 납셨어. 그치? 응?”
날 향한 윤희의 눈빛이 싸늘한 비수가 되어 틀어박혔다.
“죽일 놈을 죽였을 뿐이다만?”
“얼씨구, 그 와중에 자기가 잘했다고 주장하는 것 보면 대단하셔. 그치?”
“넌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나보다.”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응?”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었다. 분명 표정을 못생기게 구기면서 한껏 쏘아붙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극과 극을 오가는 거 같아서 말이야. 예전 모습 떠오르는 거 알지?”
“언제적 예전?”
“처음 공무원 헌터 되던 시절.”
“아아, 그때가 가장 순수하던 시절이었지.”
혈종에게 벗어나서 가장 나다웠던 모습이었던 시절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부드러워져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사람은 얽힌 게 적을수록, 고려해야 할 게 적을수록 과감하게 손을 쓸 수 있나보다.
“진짜 미쳤어.”
“안 미쳤다.”
“아무튼, 그때의 오빠는 진짜 위험했다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습 그 자체였는데 지금 다시 그 기미가 보이고 있잖아.”
“안 그럴 테니 걱정 말고.”
“거짓말.”
“진짜다.”
“그 말에 한두 번 당하냐. 앞으로 무슨 짓 벌일 거면 제발 얘기 좀 해!”
[말하면서도 전혀 기대하는 기색이 아니네.]자기가 날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나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
이런 걸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한다.
난 화제를 돌릴 겸해서 윤희에게 궁금했던 부분을 물어보기로 했다.
“말 나온 김에 너한테도 하나 물어보자.”
“뭘?”
“너도 신수에 대해 알고 있을 거 아냐.”
[갑자기 신수 얘기로 넘어가는 거야?]“신수? 알긴 하지.”
이미 신수의 존재 자체는 널리 알려져서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정보가 되었다.
사람들은 신수에 대해 호기심과 동시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는데, 기존 마물들과 달리 초월적인 힘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간신히 이뤄놓은 평화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야만적인 존재가 아닌데 말이지.]원래 미지의 존재는 상상력을 자극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신수에게는 권능이 있지.”
“기프트 같은 거야?”
“…….”
이게 내게 윤희에게 물어본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 상식선에서 벗어나 있기에 대단한 진실이 아무렇지 않게 툭 튀어나왔다.
“그래, 그리고 그 신수 정도 되는 존재가 기프트를 변형 시켰지.”
“불법 개조인가 보네.”
“만약 그걸 불법 개조해서 인간에게 건넸다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세상 모든 만사를 단순하게 보는 시점에서 신수의 행동이 어떻게 보일까.
“별 거 없을 거 같은데?”
“뭐?”
“말 그대로야. 신수에게 인간은 한없이 하찮은 존재일 거잖아. 그럼 심심풀이로 줄 수 있지 않겠어? 우리가 개미 꼬이게 하려고 음식물 놓아뒀다가 치워버리는 것처럼.”
“…….”
상상을 뛰어넘는 가설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