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
“…….”
이만한 충격을 받았던 게 대체 언제일까.
윤희의 말은 내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혈중섭식은 큰 힘과 동시에 씻을 수 없는 후회를 가져다주었다. 혈종이라는 기프트의 자아에 먹혀 육체의 통제권을 잃었고, 실수에 실수를 거듭 반복하면서 과거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기어이 과거로 돌아와 틀어진 과정을 바로잡는 과정에 있었다.
나는 혈중섭식을 만든 녀석이 누구인지 알고자 했고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그래, 별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신수에게는 가벼운 장난이 인간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막상 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받는 충격은 굉장히 컸다.
[널 위해 말하지 않고 있긴 했는데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했어. 신수가 인간을 고평가 했으면 얼마나 고평가 했겠어?]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태연하게 기름을 붓고 있는 용용이 녀석까지.
이런 게 바로 대환장 파티인가 싶었다.
“그래도 찾아볼 거다.”
[그 정도로 네가 포기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어.]그 신수의 얼굴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인지 물어보고 싶긴 했다.
만약 윤희의 말마따나 정말 아무런 의미 없이 저지른 일이라면 그땐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내가 볼 때 그렇게 죽을 짓을 한 거 같지 않은데.]상황에 따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내가 과거로 돌아왔으니 심지어 일을 저지르기 전일 수도 있다.
일단 범인을 찾고 나서 더 깊게 생각하도록 하자.
내가 충격 받은 것 때문인지 내 눈치를 살피던 용용이가 조심스럽게 화제 돌리기를 시전했다.
[근데 그 인간의 부탁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아, 그거.”
[다른 생각이 있는 거 같던데.]“있겠지.”
[뭐야, 눈치 채고 있던 거야?]“어.”
막심 게데스는 파티에 대한 애정이 깊은 녀석이었다. 팬텀이 일을 저지를 때까지만 해도 가만히 있던 녀석이 이제 와서 그걸 바로잡겠다고 나선다고?
만약 파티에서 반대 의견이 컸다면 졸라맨이 내게 말을 안했을 리 없다. 그걸로 정상 참작을 하려는 시도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아무런 조짐도 없다가 불쑥 찾아와서 말을 건넨 이유는 하나다.
“최소한 피해로 살을 도려내겠다는 거겠지.”
[역시.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내가 책임을 묻는다는 건 이미 행동으로 보여준 상황이다. 그러니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려는 거겠지.”
어설프게 책임을 전가하다가는 전체가 몰살당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테니까.
오랫동안 암중에서 세계를 조종해온 단체다운 과감한 결단이다.
[그래서 그걸 받아주려고?]“받아주지 못할 것도 없지.”
내가 상대를 가리지 않는 것처럼 단체가 크고 작음에 따라 책임의 크기를 달리하지 않는다.
자기 책임 질 것만 책임 지면 문제가 될 게 전혀 없다는 이야기지.
[너그럽네.]“더 신경 쓰기 귀찮은 것도 있고.”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다가 결정을 내리면 되는 일이고.
상황이 조용해지고 내가 하는 일도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면 근시일 내에 미국에 갈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누구나 말은 번지르르 한 법이다.”
말로는 목숨을 못 내놓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사람의 생명에 대한 집착은 실로 대단한 수준이며,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마음이 바뀌는 사람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또 모르지.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할지도.”
그걸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 포인트가 될 것이다.
*
* *
“…….”
팬텀은 뉴욕의 펜트하우스에서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마물의 등장 이후, 예전의 빛을 잃었다고 하지만 뉴욕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도시였다.
한때 이곳에서 세상 전체를 거머쥐었던 적이 있다. 마물의 등장 이후 쇠퇴했지만 다시 영광을 되찾을 거라고 믿었고.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지금, 빛바랜 옛 영광일 뿐이었다.
“팬텀.”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랫동안 파티의 구성원으로 참여해온 고양이 가면이었다.
“손님은 받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모든 전말을 들었어요. 정말 책임을 지겠다고요?”
묵묵히 뉴욕 풍경을 지켜보던 팬텀이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40대 중반에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붉은 머리의 여인이 팬텀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 가득 담겨있는 걱정에 팬텀이 웃었다.
“지금 날 걱정하는 건가.”
“상대가 헤드 브레이커라면 누구나 걱정할 수밖에 없어요.”
“틀린 말이 아니로군. 녀석이라면 누구나 목숨 걱정을 해야겠지. 루쥔이 그렇게 죽을 줄 누가 알았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지만 루쥔은 파티의 지원을 받아 주석의 자리에 올랐다. 그와 연대를 강화하여 다시 한 번 세계를 장악하겠다는 것이 팬텀의 계획이었지만 시작 단계에서 산산조각 났다.
도리어 루쥔과 연관성을 숨기기 급급한 처지가 되었고.
“내가 책임 지지 않으면 우리 전체가 몰살당할 것이다.”
“설령 헤드 브레이커라고 해도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어요.”
“그 말을 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전부 헤드 브레이커를 만난 적이 없다는 거지.”
“그가 그렇게 대단해요?”
“대단하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없다.”
단호하게 말을 끊은 팬텀은 고양이 가면에게 다가갔다. 미국 법조계 최고 엘리트 가문의 가주인 그녀는 미국 사법계를 손에 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최준호의 위협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난 실패했고, 허버트는 성공했다.”
리그 토벌 작전이 성공하고 최준호가 자취를 감췄을 당시, 팬텀은 그의 죽음을 점쳤다. 그와 반대로 허버트는 부상을 입고 자리를 비운 것이라 곧 복귀할 것으로 보았다.
두 사람의 시야 차이는 전혀 다른 대응으로 나타났고, 백악관보다 한 발 앞서 정계 영향력을 높이려던 팬텀이 치고 나갔다.
백악관은 관망하고 파티가 질주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최준호가 복귀하면서 모든 건 어그러지고 말았다. 허버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 다니엘을 대선후보로 올려놓을 것이고, 이변이 없는 한 다음 대통령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팬텀은 언제고 들이닥칠 최준호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신세가 됐다.
“파티는 막심이 잘 이끌 거다.”
“그는 급해요. 파티가 분열될 거예요.”
“그것도 괜찮겠지.”
“팬텀!”
“어차피 헤드 브레이커가 온다면 갈가리 찢겨나가는 건 사실이다. 난 책임을 져야 하고 날 따르던 자들도 헤드 브레이커 처분에 따라야 해!”
팬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양이 가면은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남중국에서의 학살극을 생생히 본 입장에서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틴다면 최준호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만 해도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 어떻게든 팬텀을 살리기 위해 강한 척 했지만 고양이 가면 또한 헤드 브레이커의 비인간적인 강함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양이 가면, 최선을 다해 세력을 보전해라. 지금은 인내하고 버틸 때다. 기다리다 보면 때는 온다.”
“알았어요. 하지만 살 수 있다면 사는 게 나아요. 파티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팬텀, 당신 덕분이니까.”
그 말을 남긴 고양이 가면이 자리를 벗어났다. 홀로 남은 팬텀은 피식 웃었다.
“가장 화려하게 사라져야 헤드 브레이커 마음에 찰 수 있겠지.”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 사이 신성그룹은 여러 국가의 인물들과 접촉하여 신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중국에서 벌인 일의 여파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다가 천명국을 찾아가 부탁을 했는데 아직 전혀 잠잠해지지 않았다며 비난 아닌 비난을 받아야 했다.
슬슬 뉴스에서 자취를 감췄길래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물밑에서 엄청 문의가 들어오고 있거든요. 열기는 식었는데 겁에 잔뜩 질린 상태라고 보는 게 옳아요.”
진세정은 친절하게 내게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녀에게도 정보가 들어오고 있는데, 남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환장 파티를 보면서 두려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확산되고 있는 형태라고 한다.
적어도 확실한 경고는 되었겠지, 라고 생각하는 내게 진세정은 그걸 뛰어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은 더 난리에요. 초인님하고 이미 직접 얽혀서 반드시 답을 줘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안 그래도 뉴스에서 보긴 했습니다.”
진세정의 말대로 대환장 파티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히가 총리와 다케다 전 총리의 책임 회피가 절정에 달했는데, 누가 더 큰 실수를 했는가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대놓고 비난을 하는가 하면 뒤에서 무력이 동원될 정도로 격화되었다고 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격렬한 대립이었다.
과실 비율 1% 가지고 사람의 목숨이 오고 간다고 하는데 어이가 없는 일이다.
고작 그 정도로 죽을 놈이 살아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잘 논의해서 과실 비율을 정해보라고 했지, 서로 죽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말이지.
나야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상관없는 일이다.
서로 잠잠해지는 거 같으면 빠른 시일 내에 결정을 내려달라고 장작을 넣으면 되고.
“초인님이 상대를 괴롭히실 줄 아네요. 그러면 완전히 말라서 죽을 걸요?”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럼 저도 그쪽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진행할게요.”
진세정의 손에 걸렸으니 아마 영혼까지 탈탈 털릴 확률이 높겠다.
그리고 세 달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젠 진짜 잠잠해졌다고 느낄 무렵, 몇 개의 신수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나는 용용이와 현아를 통해 정보를 검증하는 한편, 이번 일에 도움을 준 정주호를 찾아갔다.
“신성그룹 정보와 몇 개 중복되지만 중복 되는 건 크로스 체크의 의미는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내가 신세 진 거에 비하면 소소하지.”
내가 천명국에게 부탁하자 정주호가 국가수호국장이던 시절 인맥을 살려 각국의 중간 관리자급과 접촉하여 정보를 얻어내기 시작했다.
이 수단이 의외로 유용해서 신성그룹이 알아내는 것보다 신뢰도는 낮았지만 더 빠르고 정보량은 비등비등했다.
역시, 정주호는 일을 잘한다.
천명국이 점 찍은 대선후보답다.
이제 슬슬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거 같은데 정말 모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걸까.
속내가 궁금해서 슬쩍 떠봤다.
“그리고 총선 승리 축하드립니다.”
“내가 축하 받을 일인가, 정부가 이득을 보는 일인데.”
그리고 보름 전에 있었던 총선에서 여당이 역대급 대승을 거둔 걸 언급해보았다.
여당은 무려 214석을 석권하여 개헌선을 확보, 천명국이 추진하는 개혁을 완수할 동력을 얻은 것이다.
여기에 천명국이 직접 발탁한 백여 명의 사람이 뱃지를 달았는데, 그중 오십여 명이 정주호가 추천한 인사였다.
여기에 기존 의원 들이 친 대통령 계파를 자처하니 여당은 사실상 천명국이 거머쥔 것과 같고, 정주호는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 수장이 되었다.
이래 놓고 아무 관련이 없는 척을 한다고?
이 정도면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어차피 정치하지 않을 거라서 전부 대통령의 힘이지.”
“그래도 국장님의 힘도 되죠.”
“난 정치 안한다니까.”
“과연 그럴까요?”
“무슨 의미지?”
“정치인은 자기가 정치한다고 입에 담지 않던데요.”
가장 대표적인 게 천명국의 케이스겠지.
정주호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중이지만 이미 언론에서는 천명국이 후계자로 정주호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아마 정주호는 천명국의 선의를 믿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볼 때는 이미 허리까지 잠겨있는 상태였다.
청와대와 여당이 개헌에 착수하고 있고 얼마 안 있으면 천명국이 원하는 판이 만들어질 것이다.
허리를 넘어 가슴까지 잠기면 옴짝달싹 못한 채 천명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을 테지.
“대통령은 정치인 아니죠?”
“무슨 소리야, 가장 정치적인 사람이 대통령인데.”
“그래요?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닌 줄.”
“정치는 명국 형님 같은 정치 천재가 하는 거지.”
내가 볼 때 정주호도 충분히 자격이 있어보였다.
“그럼 국장님도 곧 정치를 할 수도 있겠네요.”
“뭐?”
“정치 천재로 보이거든요.”
“내가 무슨…….”
“진짜 대선 직전에나 눈치 채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눈치 없는 정도가 좀 심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