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정주호가 돌아갔다.
처음과 달리 양 어깨가 축 처진 채로.
초인이 되고 탈모를 극복한 뒤로 볼 수 없던 약한 모습이었다.
그때까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용용이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저 인간 진짜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한 건지 모르고 있는 건가?]“그럴 리가.”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 정주호보다 더 검증된 자원이 없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심지어 현재 대통령인 천명국보다 더더욱.
오랫동안 국가수호국을 이끌면서 자신의 능력을 선보였고, 내가 부산시장 유성수를 처리했을 때나 북한의 류광철을 처리했을 때 행정적인 능력까지 선보이면서 완전체로 자리매김을 했다.
당장 대통령이 되어도 국정 전반을 살필 수 있는 능력자 중의 능력자가 바로 그였다.
전한철 전 대통령도 어떻게든 정주호를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였었지.
결국 그 마수를 벗어나는데 성공했지만 홀로 모든 걸 감당해야 했던 천명국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왜 현실 파악이 안 될까.]“이미 했을 걸.”
[근데 모른 척 한다고?]“인간이란 그런 종족이 원래 그러니까.”
사람이란 종족은 원래 그렇다. 자신이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면 그 확신에 기반하여 움직인다.
그것이 맞아떨어질 때 성취감과 함께 놀라운 효율을 보이지만 문제는 틀렸을 경우다.
“그걸 빨리 수습할수록 대단한 인간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니까.”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걸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매몰비용이 크면 클수록 더더욱.
자신이 틀렸다는 걸 인지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온갖 저항을 한다.
천명국도 같은 경우다.
몇 번이고 회피하다가 나중에 현실을 받아들인 케이스다.
“대통령 자리가 걸린 일이지. 천명국은 오래 전부터 마수를 뻗어왔고. 이미 벗어날 곳은 없어. 지금쯤 이상한 걸 알아도 자신의 생각이 완벽하다고 생각할 테니 필사적으로 부인하고 있을 테고.”
[하지만 현실은 차근차근 접근해오고 있지.]“이미 다 왔어.”
정주호계라 불리는 세력이 등장하고 친 대통령 계파가 여당을 장악한 이상 나머지는 천명국의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가 원하는 건 정주호의 차기 대통령 취임일 테고.
[벗어날 방법은 없겠지?]“없어.”
그 고생을 한 천명국이 정주호를 놔줄 리가.
난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었다.
*
* *
정주호가 대선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고 체감한 것은 가족과 식사 자리였다.
아버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준호 네 국장님은 대선에 나오신다고?”
“준호네 국장님? 그 머리가 벗겨졌다가 잘 심은 초인분 말하는 거예요? 인상 참 좋긴 하던데.”
“인상만 좋은 게 아니라 실력도 확실하지. 초인의 반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국가수호국에서 국가를 위해 일해 온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현 대통령과도 친하고.”
“그래요? 그럼 그 사람 찍어야겠어요.”
“문제는 그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있느냐인데.”
부모님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윤희도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 대통령이 출마를 권유할 겁니다.”
“소문이 파다하더니 사실이었군. 그렇게 되면 네가 더 확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겠어.”
“지금도 충분히 뿌리는 깊지 않나요.”
“뿌리를 내리는 건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네가 이 나라에 확실하게 자리 잡았지만 반대파가 집권하면 어깃장을 놓을 수 있지. 하지만 이번에 개헌을 하게 되면 20년 가까이 네게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니 돌이키기 힘들어질 거다.”
“저도 국장님이 대통령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부모님의 인식이 이 정도라면 정주호를 향한 밑바닥 민심은 상당할 것이다.
안 그래도 이세희가 지나가듯이 물어본 적도 있었다. 총선의 압승으로 여당에서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정주호가 나오는 게 확실하냐고.
조만간 쐐기를 박지 않을까 싶다.
“그럼 그 아저씨가 대통령 되는 거야? 놀랍네, 버서커 님한테 죽도록 구르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다니.”
“너도 봤었냐.”
“응, 매일 나한테 힘들다고 하소연했어. 탈모 극복하려고 초인이 되려는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이런 목표가 있어야 최선을 다하게 된다고 막 구시렁거리던데.”
어지간히 여기저기 붙잡고 하소연을 했군.
“능력은 확실해.”
“그렇다고 듣기는 했어. 현재 대통령은 뭔가 인간적인 매력은 약한데 그 아저씨는 사람 참 좋아 보이더라.”
나만 보면 속 쓰린 표정 짓는 천명국도 인간적인 매력은 넘치는데 말이다.
인간적 매력을 살려주기 위해 피똥 쌌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불쌍하니 참기로 하자.
대선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간 뒤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
“요즘 조용히 지내는 거 같아 너무 좋다.”
“아, 조만간 해외에 나갈 예정입니다.”
“…….”
태연히 된장찌개를 떠먹으면서 말했는데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었는데 어머니는 파랗게 질려 계셨고 윤희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미국에 가는 거냐.”
“아마 그렇게 될 거 같아요.”
“설마 의회를 치러?”
“제가 의회를 친다고요?”
“요즘 그걸로 미국이 시끄럽더군.”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미국에서 내가 죽은 걸로 믿고 대한민국을 견제하려던 것이 의회 세력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벌어진 일로 한바탕 난리가 났는데, 현재 책임을 놓고 공방이 치열하단다.
“대가를 치러야 하긴 하죠.”
“…….”
내가 무슨 말 실수라도 했나.
[다 죽인다는 말로 들리지 않았을까.]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그 부분을 짚어냈다.
“다 죽이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음, 간신히 잠잠해지고 있는데 굳이 나갈 이유가 있나 싶어서 말이다.”
가족들은 내가 해외에 간다고 하니 또 누구를 죽이러 가는 줄 아나보다.
[다들 너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없는 거 같은데?]음, 막상 들으니 씁쓸하기는 하다.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신수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죽일 수도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래도 인간이 있는 곳에 없을 테니 시끄러울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아니, 왜 제거할 생각부터 해! 대화할 생각을 해야지!]그건 일단 얘기를 나눠보고 결정하고.
[내가 중재할 테니까 괜히 싸울 생각 하지 마! 좋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잖아!]그래그래.
[진짜 바로 나서지 않기야! 네 이름 걸고 약속해!]약속할 테니 그만해라.
[지켜볼 거야.]어차피 약속이란 것은 깨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 나중에 살짝 말을 바꾸면 그만이겠지.
용용이도 거기까지 눈치 챈 듯하지만 눈만 흘길 뿐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다.
귀신같은 녀석이다.
그렇게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내가 청와대에 방문했을 때 천명국의 특별한 요청이 있었다.
“주호가 슬슬 낌새를 눈치 채고 있습니다.”
“이제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늦네요.”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솔직히 이때까지 속일 생각은 없었는데 계속 속더군요. 아마 끝까지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봅니다.”
“그럴수록 반발이 크겠네요.”
“예, 그래서 초인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일 수습도 도와주셨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협력하겠습니다.”
그래야 내가 다른 일을 벌여도 천명국이 나서주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감사합니다.”
“따로 생각해본 건 있으신지?”
“음, 우선 있기는 합니다만 이건 초인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겁니다.”
“저도 비슷한 걸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같은 것일 확률이 높아 보이네요. 이 기회에 은근슬쩍 함께 처리하실 생각이었습니까.”
“…하하.”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겠지. 확실히 능구렁이긴 했다.
내가 계속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는데 천명국에게 연락이 왔다. 연락 온 대상을 본 천명국은 올게 왔다는 표정이 되었다.
“주호 전화입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연락을 받았다. 건너편에서 고성이 튀어나오고 천명국이 살살 달래는 그림이 펼쳐졌다.
“그럼 와서 얘기하지. 그래, 여기 있을 거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끊어진 전화.
올게 왔다는 표정이 된 천명국은 내게 정주호의 설득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죠.”
*
* *
국가 소속 초인이 되고 얼마 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는 등, 정주호에게 요 근래 나날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공무원 헌터 시절 동기 혹은 후배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하면서 인맥의 끈이 단단해진 것도 큰 기쁨이었다.
권력이라는 것은 갖고 있는 것 자체로 힘이 되는 법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주호는 권력을 휘두르지 않지만 권력을 추구했다.
“이대로만 시간이 흘러갔으면 좋겠단 말이지.”
사건사고는 최준호가 전부 치고 있으니 자신을 향한 주목도는 떨어지고 권한은 누릴 수가 있다.
참 즐거운 나날이었다.
오랜 악우가 찾아와 한 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래서 대선 출마 선언은 언제 할 거냐.”
“뭔 소리야?”
정주호에게 이 말을 꺼낸 것은 과거 대외협력관리국장을 지낸 염기철이다.
정주호계 수장으로 자리매김을 한 그는 여전히 정주호와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자주 안 봐도 서로가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그런 사이였다.
예전에는 격의 없다고 느껴졌다면 지금은 염기철이 상당히 참고 있는 게 보였지만.
요걸 즐기는 재미가 꽤 있다.
“총선이 끝났고 개헌도 통과될 테니 그 다음은 대선 준비잖냐. 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
“대선? 누가?”
“너.”
“난 대선에 나갈 생각이 없는데?”
“…뭔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지금 모든 일련의 과정이 네 대선 출마를 위해 진행되고 있는 건데.”
“어?”
“설마, 진짜 모르고 있었던 거냐?”
“잠깐, 잠깐만!”
황급히 염기철의 말을 세운 정주호는 그동안 진행된 흐름을 짚어보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상한 부분은 존재했다. 그래도 그는 그 부분을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과민반응으로 치부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내가 대선에 나간다고?”
“모르는 척 하는 거냐. 나한테까지 이렇게 대하면 좀 실망인데.”
하지만 염기철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딱 맞는 퍼즐처럼 그동안 진행되던 모든 그림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 설마 여태까지 전부 날 속이고 있던 거야?”
“속은 게 아니라 네가 현실을 부인한 거겠지. 대통령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이제야 눈치 챘다고? 이건 속은 놈이 잘못된 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다.”
“…….”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논의하러 왔는데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게 먼저겠어. 얘기가 끝나면 다시 찾아오마.”
염기철이 자리를 벗어나고 홀로 남은 정주호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았다.
천명국의 미묘했던 태도, 그리고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 최준호의 행동들.
처음부터 목표는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만 모르고 있던 것이다.
“…이 인간들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정주호는 분기탱천해서 천명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최준호와 함께 있다는 걸 파악하고는 곧장 청와대로 쳐들어갔다.
태연한 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곳까지 오면서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난 이미 다 알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줄 알았는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평소에 그리도 눈치가 빠르더니 이번 일은 왜 그리 느린지 잘 모르겠어.”
열을 내는 정주호는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최준호가 더 얄밉게 보였다.
“너도 알고 있었냐?”
“당연하죠.”
“근데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그걸 여태까지 눈치 채지 못한 사람이 이상한 겁니다.”
심기를 긁는 말에 정주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지만 금방 이성을 되찾았다.
“일단 앉으시죠. 앉아서 얘기를 나누죠.”
“…….”
자신 빼고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는 뉘앙스에 정주호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암담함을 느끼며 맞은편에 앉았다.
*
* *
사람의 얼굴이 참 대비가 된 게 보인다.
천명국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싱글벙글이고 정주호는 나라를 잃기라도 한 것처럼 억장이 무너지는 표정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자리가 부담스러운 자리기는 한가보다.
하긴, 이 정도 고민과 부담이 없으면 애초에 맡으면 안 되기는 한 자리지.
[그건 아니야.]이런 내 추측을 용용이가 부인하고 나섰다.
그럼 뭔데?
[난 알 거 같은데 말 안할래.]그럼 말을 꺼내지 말던가.
변죽만 울리는 용용이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차피 정주호가 말해줄 거라 생각했기에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언제입니까?”
“내가 선택받은 순간부터.”
“그럼 거의 5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겁니까?”
“그렇게 됐지.”
“왜 납니까?”
“나보다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형님 혼자만의 생각이지 않습니까!”
“전 대통령님께서도 그렇게 보셨다. 그래서 널 그토록 데려오려고 했지.”
“…….”
사실이다 보니 정주호의 입이 닫혔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리란 건 다릅니다.”
“다르지, 많이 달라.”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래서 더더욱 네가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너라면 지금 나보다 더 잘해낼 거라 생각하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주호야.”
낮게 깔린 천명국의 목소리에 정주호가 움찔했다.
뭔가 결정적인 게 나오려나보다.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해봐라.”
그러더니 천명국이 날 힐끗 본다.
“과연 최준호 초인님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
“아마 1년마다 대통령 보궐 선거를 치러야 할 수도 있을 거다.”
뭐야, 갑자기 왜 화살이 나한테 날아오는데?
[제대로 본 거 같은데?]내가 황당해하건 말건 천명국은 정주호에게 쐐기를 박았다.
“주호 너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