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나와 팬텀은 자리를 옮겼다. 두 팔이 모두 잘려있던 녀석의 왼팔 하나는 어색하게 붙어 있는 상태였다.
불쌍한 건 불쌍하다 쳐도 대가는 치러야 하니깐.
“생각보다 자비로운 성격이로군.”
“그것보다 거래를 중요하게 여기는 거야.”
“우리가 제공할 정보가 목숨을 구한 건가. 그동안 열심히 해온 게 잘못되지 않았군.”
“너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걸 내가 꼭 필요로 하진 않지만.”
“명심하지.”
이런 거래는 이세희와 함께 하면서 배우게 된 것들이다. 재벌의 사고방식은 나 같은 평범한 소시만과 궤를 달리하는 면들이 있어서 거래하는 방식을 보면서 많은 걸 깨닫게 된 것 같다.
이걸 미리 알았다면 내가 혈종이던 시절 내게 사기를 치려던 녀석들의 머리를 남김없이 날려줬을 텐데.
이제 와서 벌인 적 없는 일이 됐으니 아쉬울 뿐이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내가 신수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려고 한다니 도리어 용용이가 더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럼 본론에 들어갈까.”
“일단 우리가 전달해줄 자료는 전부 존재를 확인한 신수들이다.”
“위치한 곳은?”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면 계속 머물고 있겠지.”
“그래?”
인간과 접촉해서 거처를 옮겼을 수도 있겠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면 몇몇은 쉽게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현재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신수의 숫자는 총 아홉이다.”
내게 자료를 건네면서 팬텀이 설명했다.
키메라, 아케리, 윈디고, 히드라, 켄타우로스, 페가수스, 골렘, 바질리스크, 아위소틀.
여기에 천둥새까지 포함되어 총 열에 달하는 신수와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신수가 아니라 귀신이나 괴물들도 있는데?”
“통틀어 신수라 칭할 뿐, 보통은 인류의 높은 인지도에 이름이 정해지는 법이지.”
여기에 세계 곳곳에 포스가 고이는 특정 포인트가 존재하는데, 신수는 그곳에서 탄생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군.
“여기에 타국에서 관리하고 있는 신수의 숫자를 합치면 스물다섯에 이르지.”
“생각보다 많네?”
“아예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신수도 있으니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을 테고.”
“확실히.”
“신수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인간을 한참 밑으로 취급한다는 점이었다.”
“그럴 능력은 있고.”
“당연히. 우리는 그 힘을 활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신수들의 무관심 탓에 실패했다. 그중 유일하게 협상이 되는 존재가 천둥새였지.”
신수치고 유난히 인간 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신수라고 한다. 게다가 거래 능력도 뛰어나서 파티가 공을 들였으나 번번이 중요한 순간마다 백악관이 개입하면서 생각보다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나.
오히려 천둥새는 그 중간에서 교묘하게 이득을 취했다고 하고.
“신수에게 한 수 배울 수 있었지.”
“대단한 녀석이었네.”
“그 대단한 신수도 헤드 브레이커 손에 죽었지.”
“운이 좋았다.”
“겸손하군.”
빈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천둥새와 대결에서 승리한 건 아직도 운이 따른 결과라 생각하고 있다.
약간의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죽는 건 내가 되었겠지.
뭐, 그 운이란 게 가장 중요하지만.
“하나 더 있잖아.”
“누굴 말하는 건가.”
“헬 마스터가 모시던 신수.”
“…죽음의 신을 말하는군. 그 녀석은 처음부터 협상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왜?”
헬 마스터의 기프트를 생각해볼 때 파티에서 가장 탐냈을 녀석인데.
“갈 때마다 우리 측 인원 절반의 목숨을 요구하더군.”
“미친놈이네.”
[누가 누구한테?]“희생양도 거부하고 자기 기준에 부합하는 자들의 목숨만 노리던 녀석이었지.”
그래서 그 신수에 대한 언급 자체를 금지했다고 한다.
잘 생각했군.
방금 용용이가 했던 말은 잘못된 생각이고.
“우리가 조사한 신수는 이게 전부다. 이것만이 아니라 파악해둔 신수들에 관한 정보도 주지.”
난 팬텀이 건네준 자료를 빠르게 읽어 들였다. 나머지 열다섯의 신수에 관한 내용도 내가 신성그룹과 정부를 통해 파악한 것과 90% 이상 일치했다.
오히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파티가 훨씬 더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용용이 네 생각은 어떠냐?
[…….]녀석은 내가 보는 서류를 굳이 외면한 채 모르는 척 시침 뗐다.
그 반응이면 충분했다. 방금 전 용용이의 검증으로 이 자료는 상당히 신뢰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괜찮은데?”
“그 정보 파악을 위해 쓴 물적 인적 자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
“좋아.”
이 정도라면 파티를 쓸어버리지 않은 가치가 있었다.
이래서 쓸어버릴 수 있어도 남겨두기도 하는 건가. 일일이 다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이렇게 얻어갈 것이 생겨나는 법이니까.
하나 배우는군.
[논리의 비약이 꽤 심한 거 같은데.]심하긴, 이렇게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지.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게 문제긴 하지만.]어쨌든 서로 만족하면 그만인 거다.
내가 용용이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팬텀의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괜찮은가?”
“상관없어.”
“우리 파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아무 생각 없는데.”
“뭐?”
“별 생각 없다고.”
서로 이해관계가 잘 맞아서 주고받을 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어설프게 뒤통수치지 않고 각자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훌륭한 파트너 관계가 아니겠는가.
나와 신성그룹의 관계가 그러했고 전한철 대통령과 천명국이 이끄는 정부가 그러했다.
미국 정부도 협력적이지만 아직 특유의 꼬롬함이 존재하고 있고.
“…허허. 내가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내 스스로 발등을 찍어버린 게 되어버렸군.”
“날 보는 것만으로 위협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긴 해. 정작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쟤들은 아마 건수 걸리면 언제든지 자기를 보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걸. 실제로 그렇고. 저 큰 조직에서 실수가 없을 수 없는데 너한테 한 번 걸리면 끝장나잖아. 난 너보다 저 인간들이 더 잘 이해가 되는데?]…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근데 그럴 짓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말이 되는 소리냐!]하긴, 내가 생각해도 좀 무리수긴 했다.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을 테니 수작만 부리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아. 사소한 것들은 대화로 풀 수 있는 일들이잖아?”
“앞으로 더 신경 쓰도록 하지.”
그렇게 팬텀과 대화가 끝났다.
팬텀은 비록 착오가 있어 팔 하나가 더 날아갔지만 금방 붙여서 손해를 줄였고 나 또한 가장 순도 높은 자료를 손에 넣게 되어 이득이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뭐지?”
“여기 신수에 대한 정보 중 청룡에 대한 정보가 없는 거 같은데, 청룡에 대해서 아는 건 없나?”
[뭐야, 갑자기 옆에 있는 신수에 대해서 왜 물어봐!]그야 궁금하니까.
그래도 인간 세상을 장악했던 조직이 너에 대해 어떻게 파악했는지 궁금하지 않냐?
내 꼬드김에 용용이는 바로 넘어왔다.
[그, 그렇긴 해. 안 그래도 내 영역에 인간들이 몇 번 오간 적이 있는데 겁을 많이 먹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네. 난 친근한 신수지만 인간들이 보기에는 꽤 무서울 수 있거든.]하찮은 신수 녀석이 무서워 보이려고 애쓰기는.
과연 세계를 아우르던 녀석들의 눈에 용용이는 어떻게 보였을까.
나도 궁금하기는 했다.
“백두산을 지배하는 청룡이라면 우리의 첩보에도 들어와 있었지. 먼저 접촉하려 했지만 너희가 북한이라 부르는 노스 코리아에서 먼저 접촉을 해서 난감했던 기억이 나는군.”
[손 잡은 게 아니라 그냥 귀찮지 않게 군다고 해서 받아준 거라고!]용용이가 변명하지만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걸 고려했어야 했다.
“그 녀석에 대해 아는 건?”
“…상당히 괴짜라고 하더군. 무섭게 보이고 싶어 하는 거 같지만 속으로는 인간 세계에 대한 상당한 호기심과 동경이 있는 걸로 파악됐고.”
[저, 저 인간!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죽고 싶어? 일개 인간이 감히 신수를 평가해!]과연, 역시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다.
대충 이게 현실인 걸 받아들여라, 용용아.
[놔! 저 인간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놓으라고!]참고로 난 용용이를 잡고 말린 적 없다.
*
* *
대화를 마치고 나오니 근처를 서성거리던 막심 게데스가 빠른 속도로 내 옆에 따라붙었다.
녀석의 얼굴에는 모호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 미친 인간 살려줘서 고맙나봐.]용용이가 말하는 미친 인간은 팬텀이었다.
자기도 기대해놓고 안 좋은 평가를 했다고 바로 미친 인간으로 급전직하 했다.
자기가 진짜 미쳤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나밖에 없다고 하더니 참 부질없는 평가 기준이었다.
“팬텀을 살려둘 줄 몰랐다.”
“그래서 불만 있다고?”
“그럴 리가. 생각이 다르다고 제거만 생각하면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극단으로 향할 수밖에 없지. 자비를 베풀어줘서 오히려 네게 감사하고 있다.”
“자비는 아니고 목숨을 대신할 정보가 있다고 생각하면 돼.”
“신수에 관한 정보는 파티 내에서도 가장 특급으로 취급되는 물건이지.”
실제로 신수에게 얻어낸 것은 많지 않지만 그들과 조우하는 것만으로 무수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 나도 인간 이상의 존재에게 품는 경외감을 팬텀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단, 용용이만 빼고.
[내가 그 인간은 죽여 버릴 거야. 진짜 말리지 마? 나 죽인다.]한 번 더 말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용용이를 말린 적이 없다.
고로 저건 다 허세라는 이야기다.
[진짜 내가 친해지려고 그런 거지, 언제 한 번 신수의 위용을 보여줘야겠네.]네가 천둥새보다 강하다면 그래도 된다.
[아니, 그건 좀…….]다시 쭈그러든 용용이가 침묵하고, 나는 막심 게데스가 날 찾아온 용건에 대해 물어보았다.
“네가 팬텀을 살려줬지만 이번 일로 팬텀은 은퇴하게 될 거다.”
“능력 있는 양반인데 말이지.”
“능력이 좋아도 판단이 엇나가는 순간 모든 걸 잃을 수 있으니까. 실제로 모든 걸 잃을 뻔 하기도 했고.”
막심 게데스는 팬텀이 빠진 자리를 대신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건 알고 있는데 굳이 찾아와서 말하는 이유는?”
“내가 파티를 맡게 되면 그때부터 체질 개선을 추진할 생각이다.”
마물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파티는 세계 전역을 아우르던 단체였다. 하지만 대서양의 단절과 리그의 반란, 허버트를 중심으로 한 반 파티 세력이 힘을 키우면서 파티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축소되었다.
리그가 사라지면서 팬텀이 다시 한 번 세력을 키워보려고 했지만 실패, 오히려 파티가 소멸할 뻔한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정확하게 말해서 나와 대립이다.
“다시 그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지. 우리는 새롭게 개편된 질서에 순응하고 그 한축으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구성원들은 동의하고?”
“당연히 반발 중이다. 하지만 반발해서 뭐? 대안이 없는 반발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이다.”
막심 게데스의 말마따나 파티가 다시 세계 권력을 손에 넣기에는 걸림돌이 많기는 했다. 그 걸림돌 중 하나가 나이기도 하고. 그 점에서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포부를 왜 나한테 말하는 거냐?”
“그야 당연히 네가 궁금할 수 있으니까…….”
“난 너희가 어떻게 하던 관심 없어. 뭐, 해본다고 하니 응원은 해주지. 잘해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