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95
395화
[별로 신경 쓰지 않던데?]막심 게데스와 얘기를 마무리하고, 용용이는 내게 궁금한 듯 말을 걸어왔다.
[저 녀석들이라면 그래도 네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 수 있잖아?]“그렇긴 하지.”
솔직히 말하면 거슬리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성가시게 만들 수 있다. 혹시 모르지, 더 필사적으로 움직이면 후회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파티의 진짜 저력은 그들이 보유한 무력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쌓아온 영향력이다.
지금은 빛이 바랬다고 하나 인연이란 이름의 힘은 세월이 누적될수록 강한 힘을 발휘한다.
단칼에 잘라버리지 않으면 더더욱.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면서 그러냐.”
[가진 게 많은 인간은 모험을 할 수 없다는 거지?]“자기들이 입을 피해가 감수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면 충돌보다 타협을 선택하기 마련이지.”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가 보여준 무위가 자기 통제 선 안에 있었다면 팬텀이 스스로 팔을 자르는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날 상대하다가는 파티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공포함이 짓누른 셈이지.
“애초에 고자 녀석은 내게 맞추겠다고 나섰으니 그 다음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적어도 팬텀 때보다 충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그건 그렇고.”
[응?]“신수에 대해 들어본 소감은 어땠냐?”
[그 인간 죽이고 와도 돼?]“그러지는 말고.”
용용이 반응을 보면 팬텀이 제공한 정보가 제대로 되었다는 생각이 팍팍 든다.
앞으로 파티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좀 더 신뢰해도 좋겠다.
[대체로 맞아. 그중에서 성격 고약한 녀석들도 맞는데 용케 정보를 수집했나 싶어. 인간에 아예 무관심한 녀석도 있고 인간이랑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녀석들도 많이 있거든.]“내가 가면?”
[분명 서로 죽자사자 붙겠지?]“넌 중간에서 날 죽일지 말지 고민할 테고.”
[그건 상황에 따라…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에이, 내가 널 왜 노려.]딱 걸렸다.
용용이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진짜 아냐. 네 말에 대답하다가 꼬인 거잖아! 애초에 내가 널 왜 죽이냐!]“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게 몇 번 느껴지긴 했는데.”
[그냥 관찰하는 거지. 그리고 그럴 거면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는데 가만히 있었잖아.]그것도 그렇기는 하다.
필사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수상하기는 했지만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바로 찾아갈 거야?]“남은 일을 처리해야지.”
[무슨 일?]“나한테 수작을 부린 게 파티만 있는 게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대가를 치른 것은 파티일 뿐이지, 파티의 청탁을 받아들여서 참여한 녀석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들에게도 청구서를 내밀어야 한다.
[어떻게 처리하려고?]“기왕 평화 컨셉을 잡은 거 어느 정도 유지는 해줘야겠지.”
평소의 나라면 바로 찾아가서 처리했을 테지만 그건 기껏 조성한 평화 무드가 사라지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법이니까.
난 좋게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상대가 받아들일 경우에만.
*
* *
웰링턴은 텍사스 상원의원으로 오랫동안 의원직을 유지하여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특유의 거친 언변과 남자다운 호쾌함으로 어필해온 그는 미국의 패권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다.
그런 그에게 최준호의 실종 소식은 절호의 기회 중 기회였다.
백악관에서 예전 기조를 저버리고 다니엘 부통령을 대선후보로 밀어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웰링턴의 폭주는 가속화 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국의 잃어버린 옛 권리를 되찾아오는 것.
허버트가 최준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어놓은 것들은 훌륭한 공격거리가 되었고, 그 점에서 파티와 오랜만에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아놀드를 이용하여 권리를 되찾아오면 모든 것이 자신의 공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최준호가 돌아온 것이다.
“하필이면…….”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뒤틀렸다.
파티는 발칵 뒤집혀 긴급회의에 들어갔고, 의회 세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최준호는 반드시 복수한다.
강함에 비해 기품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은 상상을 뛰어넘는 악랄한 손속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준호가 미국에 온다면 반드시 자신들 앞에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바로 지금처럼.
겉모습은 영락없는 잘생긴 동양 청년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 어떤 빌런보다 피에 굶주린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
이대로 굽혀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동안 해온 것이 그를 굽히지 않게 만들었다.
최준호와 마주한 자리에서 오히려 목소리에 힘을 줬다.
“난 우리 국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내가 사과할 일은 없다.”
“그래?”
“그렇다.”
“그게 끝이고?”
“당연히.”
웰링턴은 당당하게 가슴을 쭉 내밀었다.
설령 목이 비틀어지더라도 이게 최선이다.
이제 와서 최준호에게 꼬리를 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사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차라리 면전에서 죽는다면 그것으로 의의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최준호와 당당히 대적하는 모습이라도 역사에 남기자.
그렇게 각오를 다질 때였다.
“그렇군.”
“응?”
“그 생각을 존중하지.”
그리고 가도 좋다고 말했다.
“…….”
자리를 벗어나면서도 웰링턴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걸로 된 건가?
그 악명 높은 헤드 브레이커가 이 정도 선에서 끝낸다고?
“내 이야기가 먹혔나? 의외로군.”
그 악명이라면 뒤에서 수작을 부리기보다 바로 손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그대로 믿어도 되나?
웰링턴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택의 보안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헤드 브레이커라면 충분히 수작을 부리고도 남음이었으니까.
그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던 웰링턴은 최준호와 마주해야만 했다.
“왜 이래, 올 줄 알았잖아?”
“서, 설마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그는 정면으로 맞서려던 자신의 노력마저 무참하게 저버린 것이다.
“얘기가 통하지 않으면 처리하는 게 가장 속 편한 방법이지. 너도 그랬잖아? 우리 서로 잘하는 걸로 하자고.”
웰링턴은 뭐라 더 말을 했지만 가슴 속으로 손이 파고드는 게 더 빨랐다.
그리고 정신의 단절.
대권을 노리던 상원의원이 허망하게 숨을 거뒀다.
*
* *
“상원의원 마흔세 명 사퇴, 일곱 명 사망, 하원의원 칠십이 명 사퇴, 열세 명 사망.”
지난 일주일 동안 미국을 휩쓴 폭풍이었다.
말 그대로 미국 전체를 뒤집어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야. 나라면 눈치라도 봤을 텐데 눈치도 보지 않는군.”
여기에서 사퇴는 최준호의 제안에 순응하고 대가를 치른 자들이고 사망한 자들은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끌려던 자들이다.
전원 심장마비로 인한 죽음이지만 누구의 짓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신문에서는 헤드 브레이커의 역습이라고 하더군. 초대를 받았을 때 사과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말이야.”
그렇다고 최준호가 처음부터 과격했냐면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실종 당시 활개 치며 대한민국과 신성그룹에 불이익을 끼치려고 하던 의원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그리고 초대에 응한 의원들과 모종의 ‘대화’를 나눴다.
대화 후 사퇴한 의원들은 살아남았으나 시간을 끌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
“웰링턴도 죽을 줄은.”
“자기 자존심을 선택한 대가겠지. 헤드 브레이커는 기특하게 봐주지 않고 전부 처리했다.”
당 내부에서 집요하게 발목을 잡던 걸림돌이 사라졌다.
“선거를 하면 우리 사람으로 채워지겠지. 이로써 의회의 주도권은 우리가 쥐었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도권이었다.
허버트가 바라던 것은 의회의 장악이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쾅!
“헤드 브레이커는 어째서 팬텀을 살려둔 거지?”
바로 파티의 건재함 때문이다.
당초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 생각했던 팬텀이 살아남았다. 그것도 팔 하나라는 경미한(?) 피해로.
여기에서부터 허버트의 예상이 틀어져버렸다.
“내부 정보로는 최소 파티의 전력이 30% 이상 날아갈 거라 되어 있었어.”
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 파티는 대외활동을 줄이고 새로운 파티의 주인을 중심으로 세력을 개편해야 하기에 자연히 정국 주도권이 백악관에 넘어와야 했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지면서 모든 게 어그러지고 말았다.
파티는 여전히 건재했고 의회 권력이 몰락했음에도 그곳에 힘을 투사할 여력을 갖게 되었다.
“사람이 바뀐 건가? 이건 여태까지 보여주던 모습이 아니야!”
허버트의 격렬한 감정 분출을 지켜보던 다니엘이 제동을 걸었다.
“바뀌었지. 헤드 브레이커는 더 이상 폭주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협상도 가능해진 괴물이란 점이지.”
“제길, 그게 왜 하필 지금…….”
모든 걸 손에 넣을 기회를 놓친 허버트는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허튼 생각하지 마라, 허버트.”
“…내가 무슨 생각하는 줄 알고.”
“상대는 헤드 브레이커다. 잔머리를 굴린다고 먹혀들 거라 생각하나.”
“젠장! 나도 안다고, 제기랄.”
다니엘의 만류에 허버트는 머리를 거친 손길로 헝클어뜨렸다.
“유혹에 지지 마라. 헤드 브레이커에게 몰락당한 모든 적들이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움직이다가 사라졌다.”
“휴! 진정됐다. 네 말이 맞아, 이런 때일수록 의연함을 잃지 말아야겠지.”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던 허버트는 빠르게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고 다니엘은 안도했다. 허버트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되찾는 저 침착함이다.
“결국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된 건 헤드 브레이커가 원하는 걸 우리가 빠르게 캐치하지 못해서지.”
“파티의 정보력은 우리보다 더 뛰어나니까. 축적된 정보도, 영향력도.”
“결국 자산의 부족함이군.”
파티는 역시 파티였다.
이대로 몰락하는가 싶더니 기가 막히게 살아날 길을 찾아낸다.
“그럼 이대로 뒤처지자고?”
“이제 와서 파티를 쫓아 역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하지만 같은 방법을 써야겠지.”
“어서 말해봐.”
“우리가 모은 자료를 건네주는 것도 방법일 거 같다.”
허버트의 눈이 반짝였다.
“호의를 사자?”
“파티와의 충돌이 이번으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 않으니까.”
“좋은 방법이야. 역시 넌 다음 대통령 자격이 있어!”
“너 대신 헤드 브레이커를 8년 동안 더 상대해야 되는 자리이기도 하지.”
“…그래, 미안하다. 다 내 잘못이다.”
“알면 앞으로 더 잘해라.”
허버트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
* *
생각보다 적은 피해로 끝났다.
역시 한때 세계 패권국이었던 국가다운 곳이랄까.
대화를 권하고 내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기 무섭게 자리에서 물러나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그래봤자 다시 복귀하지 않아?]“하지만 당장의 권력은 놓기 힘든 법이지.”
세상 일이란 것이 다 그렇다. 당장 놓으면 미래에 다시 거머쥘 수 있음에도 지금 입을 손해를 생각해서 그걸 선뜻 놓지 못한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인 셈이지.
물론 놓지 못한 녀석들도 생각보다 많기는 했다.
특히 높은 자리에 있던 녀석들은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이런 걸 보면 세계 어딜 가나 권력을 많이 쥔 녀석들의 사고회로는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녀석들은 남김없이 처리에 들어갔다.
[이해가 안 돼. 그냥 잠깐 멈추는 게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다고.]그건 용용이가 인간이 되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생각보다 피해가 적었다고 생각하는 건 나만이 아닌 듯했다.
백악관에서도 선물을 보내온 걸 보면.
선물의 정체는 신수에 관한 것이었다.
파티에서 전해온 것과 거의 일치하는 정보였지만 크로스체크는 여러 번 해도 나쁠 것 없는 일이니까.
“미국은 제정신인 사람이 의외로 많네.”
[너한테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그래도 상관없어. 말이 먹힌다는 게 중요하니까.”
[이러다 네가 죽으라면 죽겠다.]“상당히 편한 방법이긴 한데 그럴까?”
[그럴 리가 있겠냐.]그렇게 용용이와 티격태격하는 사이 도착한 곳은 네바다주의 사막 한복판이다.
어떤 생명체의 접근도 거부하는 죽음의 장소인 이곳에 내가 찾는 신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부터 찾아가는 이유가 있어?]“제일 가까우니까.”
[그게 전부?]“어. 가까이 있던 만큼 천둥새나 헬 마스터에게 기프트를 준 녀석도 잘 알고 있겠지.”
그토록 강대한 존재인 신수가 지근거리에 위치한 다른 신수를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접촉이 있었을 확률이 높고 내가 원하는 정보도 많이 알고 있을 테지.
[갈수록 잔머리만 늘어난단 말이지.]“싸우자는 거냐?”
[아니, 그런 거 아닌데.]“그럼 불안한 게 있거나.”
[…….]“없으면 조용히 따라와.”
용용이를 침묵 시킨 나는 네바다주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수 아케리(Acheri)를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신수라기보다 귀신에 가까운 이것은 북미에서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어 신수가 된 듯했다.
설화만 보면 마물보다 더 해로워 보이는데 어떨지 궁금했다.
감각을 확장하여 강렬한 기운이 존재하는 곳으로 깊숙이 들어갈 때였다.
돌연 파장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내 뒤에서 한줄기 기운이 삐죽 치솟았다.
“안녕?”
얼굴에 온갖 독과 질병을 덕지덕지 바른 소녀가 날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