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96
396화
난 기괴한 형태를 한 소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케리로 추정되는 소녀의 전신에 두른 독과 질병은 실로 기괴했다.
아니, 이걸 기괴하다는 말로 끝맺을 수 있을까. 아케리의 전신을 감돌고 있는 독은 내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것처럼 내게도 연신 달려들고 있었다.
그 지독함을 비교하자면 천마갑귀보다 몇수 위.
그러니까, 만독불침조차 해독하는데 시간이 걸려 내 완전회복을 앗아갔던 천마갑귀를 능가하는 지독한 독을 아케리는 품고 있었다.
대신 상대를 말살하겠다는 지독한 전의보다 그 자체가 자연스럽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상대를 독과 질병으로 말살하는 것이 존재 이유라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지.
우웅! 우웅!
그리고 아까부터 내부에서는 만득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풀가동을 하여 아케리의 독을 몰아내는 한편 곧바로 분석에 착수했다.
이만한 독을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일이지.
당장 나도 만득이가 있으니까 이 정도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우웅!
의기양양하는 만득이.
그러니 이 지독한 독을 무기화 시키는 게 좋겠지? 만득이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우우우웅!
불길함을 느낀 만득이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난 어려운 모든 일을 만득이한테 떠넘긴 채 아케리를 살폈다.
온갖 독과 질병이 범벅된 기운 너머로 날 향한 걱정스러운 눈동자가 자리했다.
“왜 대답을 하지 않아? 너도 못 버티는 거야? 이번에도 인사 못하고 죽어버리면 싫은데.”
“쉽게 안 죽으니 걱정할 거 없다.”
“어? 진짜! 믿어도 돼?”
“네 이름이 아케리 맞지?”
“그게 내 이름은 아냐. 하지만 날 지칭하는 건 맞아. 근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인간들은 날 마주하면 엄청 멀리 떨어져서 대화를 걸어왔거든.”
“그건 재미없었고?”
“응.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곤 하면 전부 죽어버렸어. 재미없게.”
사소한 행동 변화가 있을 때마다 독과 질병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그때마다 전해지는 출력이 바뀌다 보니 만득이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버텨내잖아?
난 태어나서 기프트 자아가 과로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
그러니 만득이도 잘해낼 거다.
“그럼 난 재미가 있겠어.”
“응, 이렇게 멀쩡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 그리고, 응? 넌 뭐니?”
내게 정신이 집중되어 있던 아케리는 그제야 옆에 있던 용용이를 알아봤다.
그때까지 까맣게 잊혀지고 있던 용용이가 잔뜩 골이 난 목소리를 냈다.
[날 이제야 알아보는 거야?]“어, 이건 기운이 대단한데. 너 설마 나와 비슷한 존재야?”
[맞아.]“와! 반가워!”
[으으, 오지 마! 내 기운이 오염되잖아!]용용이가 소리를 지르자 환한 표정을 짓고 다가가던 아케리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애들도 그러더라. 자꾸 나한테 다가오지 말라고 하고.”
[어, 음 본의 아니게 괴롭히게 된 거 같네?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데.]“내가 더러워?”
[더럽기보다는 끔찍하지.]“흐잉.”
[아, 아냐! 나쁜 의미로 한 게 아니야. 그냥 네 존재가 원래 지독하고 끔찍한 거잖아?]용용이 녀석은 불난 집에 기름을 호스로 뿌리고 있었다.
“됐다, 넌 지켜만 봐라. 내가 얘기하다 끼어들고.”
[알았어.]용용이를 뒤로 밀어버린 나는 아케리와 대화에 집중했다.
“난 너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다.”
“내가 더럽진 않고?”
“오히려 흥미롭지.”
“흥미로워?”
“누구도 이런 기운을 갖지 못했으니까. 넌 특별해.”
“와, 와!”
내 말에 아케리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이젠 신수도 꼬시네.]용용이가 푸념하건 말건 나는 부드러워진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다.
“그럼 계속 대화해도 될까?”
“응. 나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
“대화를 나눈 적 없나?”
“있긴 한데 전부 나와 길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거든. 동족은 자기 기운이 오염된다면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이 정도 독기면 당연한 조치이긴 했다.
신수 중에서도 친화력이 좋은 용용이조차도 저런 반응이었으니.
“난 괜찮다.”
“정말 괜찮아? 네 안의 작은 아이는 죽겠다면서 비명 지르고 있어.”
아케리의 투명한 눈동자는 정확하게 만득이의 존재를 캐치했다.
과연, 정신 연령이 어려 보여도 실력만큼은 가짜가 아니라는 건가.
“괜찮을 거다.”
“진짜? 당장 죽어버릴 거 같은데.”
“이런 환경에서 여러 번 살아남은 녀석이니까. 오히려 너와 어울리면서 더 강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
우웅! 우웅! 우우우우웅!
만득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외쳤지만 난 만득이를 믿고 있다.
그리고, 녀석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눠줄 수 있는 끈끈한 동료들이 있잖아? 그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해낼 것이다.
우웅! 우웅!
그에 다른 기프트 녀석들이 거칠게 저항했지만 상사가 혼자 고생하고 있는데 그걸 구경하고 있는 녀석들이 더 나쁜 것이다.
만득이는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듯 필사적으로 동료들을 끌어들였고, 곧이어 함께 고통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일련의 변화를 감지한 아케리가 투명한 눈동자로 날 바라보았다.
“신기하네, 서로 똘똘 뭉쳐서 죽어가고 있어.”
“죽지 않을 거다. 그보다 자리를 이동하고 싶은데.”
언제까지 사막 모래를 먹어가면서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
“응! 그럼 내 집으로 초대할게! 우리 동족도 와주면 기쁠 거 같아.”
[알았어. 안내해봐.]“응응!”
나와 용용이는 아케리의 인도에 이끌려 조금 전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 공간으로 이동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시커먼 동굴이었다. 아마 사막의 까마득한 지하로 생각되었다.
“어때? 멋지지?”
“나쁘지 않은 공간이야.”
사막 모래가 방파제였는지 전해지는 독기가 더 강렬해졌지만 공기는 쾌적해졌다.
만득이가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역시 부하직원은 굴릴수록 업무 능력이 향상된다.
“그럼 우리 무슨 대화 나눌까?”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내가 질문하면 네가 대답하면 된다.”
“아하! 질문하고 대답하기구나. 응응, 뭐든지 물어봐.”
“넌 권능을 변형시켜서 기프트를 만들어낸 적이 있나?”
“아니, 없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나도 아케리를 보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기프트를 만들다가 기프트조차도 오염되어버릴 것 같은 독기라서 말이지.
“그런 거 같군.”
“난 거짓말 안 해.”
솔직히 말하면 저렇게 천진난만한 녀석이 음흉한 계략을 꾸밀 것 같지 않았다. 만약 저것이 날 속이기 위한 계략이라면 그것대로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럼 이제 내가 질문해도 돼? 넌 인간이잖아. 근데 어떻게 이렇게 견뎌낼 수 있는 거야? 완전 신기하다.”
…저 꼴을 보면 절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실험을 하는 녀석은 발견하지 않았나?”
“글쎄? 그쪽은 별로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어.”
허탕인가, 입맛이 쓴 걸 느끼려던 찰나, 지나칠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대신 비슷한 얘기는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아.”
“무슨 얘기?”
“인간에게도 권능 비슷한 걸 적용해보고 싶다던데?”
“너희 동족이?”
“응, 우리 동족.”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엇나간 이야기도 아니었다.
“자세히 얘기해봐.”
“음, 몇몇이 모여서 그런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아케리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대다수의 신수는 세상사에 무관심하지만 몇몇 신수는 자신의 권능을 발전시키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권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기프트 탐색을 지목했으며, 몇몇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나한테도 내 능력을 제어할 수 있을 거라고 제안을 해왔거든. 근데 거절했어!”
“왜지?”
“겁 먹은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거든.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해도 그거 구경하는 재미가 좋아.”
고약한 악취미로군.
분명한 건 이 녀석도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게. 어쩌면 너와 거의 필적하는 녀석일지도.]거기서 내 얘기는 왜 나오는 건지.
아무튼 아케리에게서 더 이상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슬슬 벗어나기로 했다.
“잠깐! 나도 같이 갈래.”
“어딜?”
“네가 가는 곳. 나 이렇게 대화 오랫동안 해본 건 처음이거든.”
그것만으로 신이 난 기색이었다. 난 아케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그러려면 네게서 발산되는 기운을 제어할 필요가 있는데.”
“왜?”
“난 괜찮지만 주변이 피해를 보니까. 밖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닌 어울려 지내는 곳이다.”
[와, 네가 이 말 하니까 진짜 안 어울려.]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니까.
[굳이 데리고 다닐 생각이 있는 거야?]아니 그건 아니고.
조금 전에 기운을 다스릴 생각이 없다고 말한 걸 잊었나.
[그럼 왜?]저렇게 천진난만한 녀석은 불만이 쌓이게 되면 사고를 치는 법이니까.
만약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목표를 줘서 그것에 집중하게 만들 생각이다.
겸사겸사 몇 번 더 만나면서 만득이가 성장할 기회가 되면 좋고.
[그게 진심이야?]괴로울수록 성장하는 법이니까.
단지 스스로 고행의 길에 들어서지 않을 뿐. 그렇다면 내가 계기를 마련해주면 된다.
[지금 쟤네들 안에서 너 죽이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죽이고 싶다고 해봤자 얘들이 할 수 있는 게 뭐 있다고 그러나.
원래 세상 일이란 건 자기가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불만이 있으면 덤비면 된다.
대신 상대를 죽일 생각을 했으니 자기도 죽을 각오 정도는 해줘야겠지.
[어떻게 보면 쟤들이 제일 불쌍한 애들이라니까.]*
* *
아케리는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렴풋 눈치 채고 있었지만 녀석은 접근하는 것 자체만으로 주변을 지옥으로 만들다 보니 대화 한 마디에 일희일비할 만큼 외로웠던 상태였다.
“나 노력해볼게. 성과가 생기면 꼭 찾아갈 테니 기다려줘!”
“직접 찾아오지는 말고 연락을 해라.”
“어떻게?”
“이 녀석이라면 네 연락을 받을 능력이 있을 거다.”
[왜 갑자기 나야!]내게 지목된 용용이가 놀라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말했다.
“신수끼리는 연락할 수단 있다며? 그럼 네가 나서줘야지.”
[으, 싫은데.]“그럼 저 녀석이 세상에 나와서 활개치는 걸 보자고?”
용용이의 시선이 아케리에게 향했다.
전혀 제어되지 않은 독기와 질병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 만약 아케리가 인간 세상에 나타난다면? 전대미문의 대학살이 벌어질 것이다.
저 정제되지 않은 천진난만함이 어디까지 피해를 불러일으킬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으니.
[…알았어.]결국 받아들일 거면서 칭얼거리기는.
용용이의 뾰족한 눈길이 내게 향했다.
[너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지?]“전부 즉흥. 네가 있어서 도움이 될 때도 있네.”
[진짜, 쟤는 껄끄럽단 말이야.]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 거 같았다. 내가 봐도 껄끄럽기는 했다.
하지만 신수 하나를 전력으로 끌어들일 기회기도 했다.
무리 짓기 좋아하는 용용이한테 결코 손해되는 제안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나아지게 네가 선배로서 이끌어줘야지.”
[내가 선배인지 어떻게 알고?]“사회경험은 네가 선배잖아. 그러니 잘 이끌어줄 필요가 있지. 안 그러냐?”
선배라는 마음의 단어에 용용이의 토라진 기색이 확 풀렸다.
[이번만이야. 내가 널 따라다니는 건 이런 시시콜콜한 일을 하려는 게 아니니까.]“그래그래.”
그렇게 우리는 다음 신수를 찾아서 떠났다.
*
* *
사실 아케리의 경우가 특수했다.
신수 대부분은 스스로를 신에 비견할 만큼 고고한 존재였으며, 인간 친화적인 존재도 있었으나 그중에는 인간을 하찮은 벌레로 여기는 신수도 존재했다.
아케리에 이어 찾아간 식인하는 거인, 윈디고가 그러했다.
7m에 달하는 거대한 키와 우람한 근육, 살이 에일 것 같은 날카로운 살기는 주변 공기마저 베어버릴 정도였다.
녀석은 처음부터 적의를 내뿜었다.
[아주 맛있어 보이는 인간이로군.]“할 말이 있는데.”
[먹잇감과 할 대화는 없다.]글레이브 비슷한 거대한 무기를 치켜든 윈디고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일까, 자꾸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신수라면 이정도 꼬장은 부려야지.
“안 그래도 신수를 상대로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