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399
399화
레비아탄은 대놓고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누가 보면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생각할 것 같다.
[하는 행동만 보면 역린을 건드린 게 맞는 거 같은데?]레비아탄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겠지.
하지만 현재 흐름으로 볼 땐 용용이의 말이 맞아 떨어질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그래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간신히 잊고 있던 일인데, 왜 안 좋은 기억을 들춰내는 거야? 그냥 잊고 지내면 안 돼?”
“잊는다고 사실이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널 위협하는 원인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나?”
“아니.”
“잘 아는군.”
“그래도 수백 년은 안전할 거라 생각했어. 상대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거든.”
“그때쯤이면 난 없겠군.”
[아냐, 넌 그때까지도 왠지 살아있을 거 같아.]“풋!”
진지한 용용이의 말에 레비아탄의 심각함이 누그러졌다.
누굴 수백 년 살 요괴로 보는군.
“그럴 거 같기는 해. 신수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상대잖아? 그런 약한 소리를 해봤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걸.”
“사람의 정해진 수명에 대해 얘기한 것뿐이다.”
“너라면 살 수 있지 않을까.”
“글쎄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수백 년 동안 구질구질하게 살아갈 생각은 없다.
“수백 년이 지난 뒤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걸 바탕으로 튀려고 했지. 내가 이래 보여도 한 도망하거든.”
“그것도 안 되면?”
“현아 언니가 받아주지 않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도망칠 생각밖에 없었다.
몸집이 가장 크다고 알려진 레비아탄의 이름을 부여받고서는 참 잘하는 소리였다.
“농담이고,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어. 여기 용이랑 현아 언니랑 친해지면 방법이 나올 거라 봤거든.”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네.]용용이는 바로 납득했지만 난 아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위협이 닥쳤을 때 네게 힘이 되어준다는 보장은 없지.”
“맞아, 신수란 그런 존재니까.”
[칭찬하다가 갑자기 욕하는 분위기? 우리 안 그런다니까.]용용이 항변과 별개로 신수를 겪어본 나나 레비아탄은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신수는 강하지만 세상에 무관심하다.
무관심은 달리 말하면 의욕이 적다는 말이 되고,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결국 네가 위협에 청했을 때 도와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아.”
“나도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긴 하지만…….”
“하지만 나는 힘이 되어줄 수 있지.”
“널 어떻게 믿고?”
“너와 난 적대하는 녀석이 같으니까.”
자칭 신이라는 녀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정황들을 볼 때 녀석과 나는 충돌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레비아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무리야. 네가 신하고 싸워서 이길 거라고? 절대 무리.”
“왜?”
내가 천둥새와 맞서 싸워 이긴 걸 알면서도 저런 말을 한다는 건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신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처음부터 신이 되기 위해 모든 능력을 집중시켰던 존재야. 아마 신수 중에서 가장 강할 걸?”
“네가 본 다른 신수와 비교해도 말인가?”
“현아 언니나 용이한테도 미안하지만 그래.”
적어도 내가 상대한 신수에 비하면 더 강하다는 이야기였다.
레비아탄은 맞서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지만 내게는 다른 부분으로 의욕을 가져다주었다.
“오히려 좋은데.”
“뭐?”
“시시한 상대면 상대할 맛이 나지 않을 테니까.”
음모의 주체가 되는 녀석이라면 그래도 상대해본 녀석들 중에서 가장 강해야지.
“신수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근데 붙을 생각부터 하는 거야?”
“됐고, 그 정도 이야기하면 말할 생각이 있다는 걸로 봐도 되겠지?”
“…넌 신을 적대하는 거 같으니까. 나도 쫓기는 입장에서 생각을 같이 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으면 좋아.”
그러면서 레비아탄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신수들 사이에서 내가 창조주를 죽였다고 알려졌지? 사실 날 창조한 건 한 명이 아니야. 여러 신수가 힘을 합쳐 탄생했어. 신은 내 창조주 중 한 사람이야.”
“어딜 가나 그 녀석의 이름이 나오더군.”
“말 그대로 신이 되기 위해서야. 신은 자신이 신이 될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 그만한 경험과 세력을 갖췄고 힘도 강해.”
[들어보면 여기저기 엄청 활개치고 다녔던데 난 왜 그 이름을 몰랐지?]용용이의 의문은 식상하지만 예리한 부분을 짚어냈다.
레비아탄은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신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길 원하지 않았거든.”
충분한 힘을 갖출 때까지 침묵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감췄다고 한다.
강력한 힘에 교활함까지 갖추고 있다.
“네가 신수의 정수를 흡수했다고 하던 것도 그 녀석 작품이었나.”
“맞아. 그 전까지 난 파괴 욕구에 휩싸인 마물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럼 네 주인은 누구지?”
[맞아, 은둔의 현자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수는 아닐 거 같은데.]레비아탄은 내내 신의 존재를 언급했지만 다른 창조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와 용용이 재촉에 레비아탄은 회한 어린 표정을 짓더니 어렵게 말했다.
“드래곤.”
이 또한 예상했던 이름 중 하나였다. 나와 용용이는 전혀 놀라지 않고 다음 질문을 했다.
“그 녀석이 은둔의 현자인 건가?”
“아니야.”
“그럼 은둔의 현자 진명은 뭐지?”
“그건 나도 몰라. 애초에 나와 크게 관련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신은 드래곤과 은둔의 현자가 만나는 걸 경계했어. 둘이 만나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거든.”
듣자하니 드래곤과 은둔의 현자는 비슷한 특징을 가진 신수들이었다. 둘이 교류하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철저하게 이용해먹었군.”
“맞아, 그리고 천둥새와 합의 하에 천둥새는 미국으로, 신은 유럽으로 향했어.”
“왜 미국이 아니지?”
현재 패권국이 아니라고 해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다.
“만만치 않은 인간 세력이 있었거든.”
파티를 말하는 것이다.
“신은 무조건적인 복종을 원했기에 떠났고, 천둥새는 그 인간들을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봤어.”
“천둥새와 평화롭게 공존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데.”
“당연히 둘이 서로 견제했어. 천둥새는 필사적으로 신을 쫓으려 했고, 신은 천둥새가 더 크지 못하게 막아섰고. 심지어 드래곤을 제거할 때마저도 둘은 서로 견제하느라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했어.”
적대적 공생 관계였나보다.
“신의 목적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 하지만 신에게는 두 가지 걸림돌이 있었어. 그 중 하나는 신수. 강대한 힘을 지닌 동족들을 통제하는 덴 아무리 강한 힘을 지녔다고 해도 한계가 존재했거든.”
“다른 하나는?”
“인간.”
“재미있군.”
“신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건 결국 인간 문명을 지배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인간 세계로 잠입하는 건 의외로 쉬웠어. 인간은 신의 존재를 갈망하고 있고 그 갈증을 채워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신이 진짜 경계한 건 인간의 강함이었어.”
“신수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녀석이 인간의 강함을 경계해?”
이해가 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신수는 오만으로 똘똘 뭉친 존재였는데 가장 강한 녀석이 한없이 약한 인간을 경계했다?
“눈앞에 결과물이 있잖아.”
“신이 내 존재를 예상했다고?”
“아마 넌 아닐 걸. 신이 경계한 건 은둔의 현자가 남긴 유산 때문에 그랬을 거야.”
은둔의 현자가 계속 걸렸다. 아마 녀석이 혈중섭식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서 그렇다.
“듣기로는 은둔의 현자가 배신당했을 때 신을 죽일 수 있는 권능을 만들었다고 해. 그리고 신은 자신을 배신할 걸 대비해서 그 권능에 장난을 쳤고.”
“…어떤 권능이지?”
“세상의 모든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나? 신이 내게 말해준 건 그게 전부였어.”
혈중섭식이 맞다.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어딘지 알고 있나?”
“대충은.”
“그럼 가자.”
“난 대서양을 벗어날 수 없어.”
“왜?”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 대가로 힘을 얻었으니까.”
신과 드래곤의 손에 의해 자아를 갖게 된 레비아탄은 드래곤이 죽으면서 우연찮게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필사의 도주로 대서양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날 만나기 전까지 모든 생명체의 접근을 차단한 채 힘을 기르고 대서양을 요새화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레비아탄은 사실상 대서양에 얽매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도움이 되나 싶었더니 쓸모가 없군.
“그럼 나 혼자서라도 가야겠어.”
“잠깐! 그래서 신은 어떻게 하고?”
“좀 더 조사를 해봐야지. 네게 들은 정보만으로 전부를 판단할 수 없으니까.”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확인이 더 필요하다는 거다.”
“하,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내가 말한 건 모두 사실이야.”
“믿어보도록 노력하지.”
“진짜야. 진짜라고.”
난 대답 대신 손을 흔들고는 밖으로 나와 레비아탄의 영역을 벗어났다.
[확인하러 갈 거야?]“그래야지.”
[진짜 신을 상대할 거라고?]용용이가 경악해서 외쳤다.
“네가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드냐?”
[응, 당장이라도 쳐들어갈 거 같아.]“그것도 나쁘지 않아.”
신이라는 녀석이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 한 번쯤 보고 싶었으니까.
[근데 쉽지 않을 걸.]“맞아.”
[엥?]“그 녀석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력을 만들었으니까. 나를 비롯해서 어떤 신수가 접근하더라도 세력에 둘러싸인 녀석을 처리한다는 건 쉽지 않지.”
무조건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를 맞이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몸을 빼면 그만이다.
녀석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그럼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아?]“세워야지. 그 전에 볼 일을 보고.”
[무슨 볼 일?]“이 일을 저질렀다는 녀석부터 봐야지.”
당장 신을 찾는 것과 모든 일의 원인이 된 것.
드래곤도 있지만 녀석은 드라쿨레아 사건 당시 껍데기만 남았었고 내가 소멸시켰다.
당시 세상에 미련이 덕지덕지 남아있던 게 왜인지 알 거 같지만 그것까지 내가 알 바는 아니고.
둘 중 내가 선택한 것은 실컷 이용만 당하고 소멸했다고 알려진 은둔의 현자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위치는 윈디고에게 들은 후였고, 먼저 처리한 것이 레비아탄과 만남이었다.
[가봤자 아무것도 없는 거 아냐?]은둔의 현자를 처리한 게 신과 천둥새가 맞다면 흔적을 철저하게 지웠을 것이다.
“윈디고가 했던 말이 있지.”
[그 불확실한 정보?]“그 흔적이 결정적인 정보가 될 수 있으니까.”
[으음.]용용이는 아닌 듯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만약 혈중섭식을 만든 것이 은둔의 현자라는 녀석이 맞다면 분명 다른 조치를 취해놓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기가 맞지 않는다.
저번 생의 내가 혈중섭식을 얻은 것은 한참 후였다.
그 말은 모종의 조치가 취해졌다는 의미다.
신과 천둥새조차 발견하지 못한 흔적, 그걸 발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럼 가자.”
[추운 건 질색인데.]용용이의 푸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은둔의 현자가 있던 곳은 그린란드다.
*
* *
[으으, 장난 아니네.]고속비행으로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그린란드에서도 극지로 꼽히는 곳이었다.
도저히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혹독한 환경인 곳. 주변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곳이다.
포스를 전신에 둘러 한기를 막아내고 있음에도 빠르게 소모되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추위였다.
[딱 봐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이런 끔찍한 환경은 별로라면서 용용이는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그보다 나는 끝없이 파고드는 집요한 한기를 보며 기이한 감각에 휩싸였다.
“이 환경, 인위적이지 않아?”
내 질문에 용용이는 잠시 집중하더니 순순히 수긍했다.
[자연적인데 인위적이야. 아마 녀석이 비틀어놓은 거 같아.]모순되는 두 말이 은둔의 현자 스타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왔다면 이 지역이 유난히 더 춥다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돌렸겠지.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비틀림 속에서 나는 주위의 접근을 거부하는 몸짓이 느껴졌다.
한 번 그 흐름을 감지하자 뒤를 쫓는 건 쉬웠다.
나와 용용이는 그 흔적을 따라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극지방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이제 그만 가자.]“…….”
난 대답 대신 조용히 흐름을 분석해나갔다.
[그냥 주변의 접근이 싫었던 거야. 이 비틀림은 녀석이 남긴 흔적인 거고. 시간이 지나면 바로잡힐 걸? 그러니…….]“잠깐.”
용용이는 그리 말했지만 난 달랐다.
그리고 집중력을 끌어 올려 흐름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는 것을 찾아낸 나는 미소지었다.
“찾았다.”
[진짜?]“어, 한 번 둘러봐.”
[아무것도 없는데?]“없다고?”
[응, 없어.]고개를 휘휘 돌리는 모습이 무성의하지만 용용이가 자신의 감각을 활짝 개방한 게 느껴졌다.
신수가 전력을 다해 집중해도 감지하지 못할 아주 미세한 차이였던 것이다.
그래, 오직 인간만 찾을 수 있는 흔적이다.
[설마, 넌 뭔가 느껴지는 거야?]계속 미소 짓는 내 모습을 본 용용이를 향해 난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내가 제대로 찾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