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01
401화
녀석의 말은 역겨워서 더 들어주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자기 좋을 대로 일을 저지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휩쓸린 것뿐.
만약 녀석이 살아있었다면 내 손으로 직접 목을 비틀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이미 죽었다.
그나마 사체라도 남은 게 다행이다.
억지로 환상에서 벗어나려고 하려던 순간, 지나치기 힘든 말이 흘러나왔다.
[이 힘은 간절함을 가진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힘을 얻기 가장 좋은 형태는 피를 섭취하는 형태겠지. 피는 모든 것이 담긴 정보의 바다이자 핵심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자는 얼마나 강대한 정신력을 가졌느냐에 따라 더 많은 힘을 얻게 될 것이다.]이로써 분명해진 것은 혈중섭식을 얻은 것이 녀석의 안배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힘을 얻은 나의 정신 상태는 건강하지 못했다.
남들보다 뒤처졌기에 자존감이 낮았고, 그걸 채우기 위해서 힘을 추구했다. 더 큰 힘만이 나를 올바르게 세워줄 수단이라 생각했고, 정제하기보다 멈추지 않고 힘을 탐했다.
그 결과가 혈종이라는 미치광이의 탄생이었다.
녀석은 그 사실이 안중에도 없었다.
[설령 그 괴물이 세상을 파괴하더라도 날 소멸시킬 동족에게 피해를 줄 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단지 그 장면을 직접 지켜보지 못해 아쉬울 뿐.]흐릿한 미소를 지은 은둔의 현자 모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지 말만 하고 사라지려하는군.
“잠깐.”
몇 가지 정보를 되뇌던 나는 꼭 들어야 할 정보를 듣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
녀석은 단지 더 큰 힘을 얻는 것에 대해서만 설명했다.
그럼 혈종은 대체 어떻게 생겨난 거지?
난 그걸 물어보려고 했지만 내 정신은 녀석의 세계에서 미끄러지듯 밀려나 외부로 튕겨나갔다.
[괜찮아? 정신이 들어?]다시 본래 세계로 돌아오니 정신없이 주위를 맴돌고 있는 용용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구석 오타쿠 녀석은 끝까지 제멋대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10초도 안 됐어.]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던 내 신체 내부로 한기가 깊숙이 침범해 있었다.
서둘러 한기를 몰아내고 초재생을 극도로 발휘하여 신체 상태를 본래대로 되돌렸지만 녀석이 했던 말 중 듣고 싶은 내용을 듣지 못해 찜찜함은 여전했다.
[무슨 일 있어?]“저 녀석은 자기가 죽을 걸 알고 있던데.”
[진짜?]“방구석에 틀어 박혀 있는 걸 좋아하는 거지, 눈치가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럼 왜…….]“생에 별로 미련이 없었나?”
나도 이유를 짐작할 뿐이었다. 녀석은 인간을 부러워한 나머지 이용당하다가 소멸당할 것을 알고도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는 걸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행동을 보면 확실했다.
“그 멍청한 짓에 잘도 휘말렸군.”
물론 녀석의 소행이 100% 작용했다고 볼 수 없다.
저번 생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이후에 혈중섭식을 얻게 되었으니까.
몇 년 후 혈중섭식에 자아가 생겼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천둥새나 자칭 신이 이곳을 발견하고 장난질을 쳤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미래가 동일하게 흘러가지 않는 이상 내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신수들의 장난질에 과거의 나는 휘말려 누가 원인인 지도 알지 못한 채 놈들의 장단에 놀아났을 뿐이라는 점이다.
“관련된 녀석들을 다 처리하면 되겠지.”
그 속에는 자칭 신도 있다.
[너 엄청 살벌해.]“별 거 아냐.”
용용이 말에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동 안에는 혈중섭식 코어 외에도 녀석의 유산으로 보이는 것 두 가지가 존재했다.
“저건 살펴봤냐?”
[전부 발전된 방향의 포스 운용이었어. 저걸로 운용하면 권능의 발현을 다각화 시킬 수 있더라. 한 수 배웠어. 왜 다른 신수들이 왜 가까이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어.]나도 살펴보니 아주 복잡한 흐름이 얽혀있는 것이 보였다. 아주 변태적인 수준의 포스 운용이어서 신수로서는 극한에 다다른 수준이었나 보다.
내게는 필요 없는 거라 흔쾌히 넘겼다.
“저것들은 네가 회수해.”
나는 은둔의 현자의 성과물을 살펴본 뒤 용용이한테 회수를 맡겨두었다. 딱 봐도 내가 건드리면 연쇄 폭발이 일어나서 공동이 무너지기 딱 좋아보였다.
“그리고 남은 건 저건데…….”
나와 용용이 시선이 동시에 은둔의 현자 사체로 향했다.
100m가 족히 넘는 거대한 동체는 살아있을 때 위압적이고 단단해보였을 것 같았다.
[저것도 내가 회수하면 안 될까?]용용이는 동족인 신수를 자연으로 되돌릴 요량으로 그런 얘기를 했다.
나도 그걸 딱히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기다려.”
[어, 왜? 야야, 너 지금 무슨…….]난 그대로 손끝을 모아 녀석의 사체에 칼날폭풍을 시전했다.
쩌저적!
전력을 다한 칼날폭풍은 포스의 보호를 받지 못한 녀석의 사체를 가르고 헤집었다.
순식간에 넝마가 되어버린 사체를 보며 용용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너 무슨 짓이야!]“녀석한테 신세 진 거 갚은 거다.”
살아있을 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더 칼질을 하고 싶었는데 이미 상처가 한 가득이다.
아쉽군, 내가 저 녀석 처리할 때 함께 했어야 했는데.
[와, 진짜 무서운 인간이네.]용용이는 궁시렁거리면서 은둔의 현자 사체를 수습했다. 어두운 공동을 밝히는 은은한 빛을 사체가 발하더니 허공에 녹아들 듯 흩어졌다.
[끝났어.]“그럼 가자.”
이번 여행은 수확이 많았다.
*
* *
은둔의 현자 거처에서 벗어난 나는 유럽이 아닌 서울로 고속비행을 시전했다.
본래 계획은 성녀를 만나 신과 얘기를 나누려던 거였지만 은둔의 현자 이야기를 듣고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내 손 위에 놓인 코어를 바라보았다.
저번 생의 나는 어떤 경위에서인지 이것을 손에 넣었다. 아마 거기에는 내 의지가 아닌 이 코어의 의지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모른 채 저번 생의 나는 스스로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힘에 취해서 미쳐버렸다.
오롯이 내 책임이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된 지금은 그걸 탓할 대상이 생겼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이 존재했다.
“왜 혈종은 없지?”
코어에 존재해야 할 녀석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아가 자라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코어 안에 작은 씨앗이라도 존재해야 하는데 그 어떤 존재도 감지되지 않았다.
왜? 무려 신수가 만든 기프트다. 녀석이 욕심이 많다면 자신의 의지를 심어놓았을 수도 있다.
즉사기 때처럼.
하지만 혈중섭식 코어에는 어디에도 흔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존재하지 않았다고?”
처음부터 혈종은 존재하지 않았다?
납득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혈종은 어디에 존재하던 녀석이란 말인가.
[씨앗이 없으면 다른 씨앗이 심어지게 돼.]끝없이 고민하는 내게 용용이가 말했다. 그 말을 들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코어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씨앗을 심다니?
[숙주가 있잖아. 숙주의 자아가 씨앗이 된다고.]“…….”
잠깐 머리가 멍했다. 용용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이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숙주의 존재로 자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다른 것도 아닌 신수가 힘을 나눠 만든 코어니까. 밭이 좋으면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법이지.]그렇다면 혈종이 내 자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건가? 그 미친놈이? 그럼 그 녀석이 또 다른 나라는 게 사실이라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지?”
[또 뭐 때문에 그러는데? 난 그냥 내가 아는 사실을 말한 거야.]하긴, 용용이는 아직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손에 넣은 이 코어가 혈중섭식인 것도 모른 채 사실만 말하는 걸 테고…….
“미치겠네.”
그 미친놈이 나였다고?
믿기지 않는 사실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 미친놈이 내 자아로부터 탄생했던 거라니.
애써 부인하려 했지만 한 번 납득되어버린 사실은 걷잡을 수 없는 무게로 와 닿았다.
내가 혈종 그 자체였다니.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미칠 수가 있는 거지?
혈종이 이해가 안 되면서 한편으로는 끝까지 선을 지켜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 갑자기?]용용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래,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건 용용이밖에 없다. 그럼 저 녀석을 처리하면 내가 혈종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녀석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처리해버릴까? 어떻게 처리할까? 이 자리에서 순식간에 날려버린 뒤 백두산으로 날아갈까? 그리고 대응하기 전에 슥삭해버리면 된다.
[야야, 너 눈 위험해? 지금 뭐하려는 거야? 나 아무 짓도 안했어!]…그래, 아직은 모르니까 놔두자. 아직은.
“아무것도 아냐.”
[이상한 일 있으면 말해줘. 너랑 싸우기 싫어.]“그래그래.”
약간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다. 가끔 눈치 없이 이것저것 끼어들기는 하지만 나한테 도움이 되니 내가 참아야겠지.
“이 내용 현아한테 얘기하러 안 가냐?”
[전해야 하긴 하는데 괜찮겠어?]“괜찮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현아도 대처하기 쉬울 테니까.”
[그렇긴 해.]“그럼 전하고 와라.”
[알았어. 너무 걱정은 마. 나도 신과 천둥새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현아도 마찬가지일 거야.]보통의 경우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하지만 과연 현아나 용용이가 뒤틀린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자칭 신과 충돌을 벌일 수 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너무 걱정 마.]“내가 뭘 걱정하는 줄 알고?”
[가급적 불개입을 외치고 있지만 적어도 뭐가 옳고 그른 건지 알아. 그리고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 것도 알고 있고.]“…….”
[현아도 나와 같은 생각일 거야. 우리가 고고한 존재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니까.]“다른 신수는?”
[…걔들은 별 생각 없을 걸?]그럼 자칭 신에게 붙기 전에 먼저 제거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군.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 먼저 설득을 해볼 수 있는 거니까. 알았지? 응?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상한 짓 하지 마!]“노력해보지.”
[와, 제일 믿음 안가는 말이네.]“그럼 믿지 말던가.”
[아냐, 믿을게. 그러니 딴 짓 하지 마! 지켜볼 거야!]그리 말한 용용이는 내 말이 바뀔까 싶었는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음흉한 신수들이 많은 걸 봐서인지 녀석의 행동이 귀엽게 느껴졌다.
세상 참 말세로군.
“…그럼 얘기가 맞춰질 때까지 쉬면서 생각을 정리해볼까.”
가만히 놀고만 있을 수도 없으니 할 일도 하고.
당분간 서울에 머물며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쯤 유럽에서 잔뜩 혹사당하고 있을 프란츠에게 연락을 취했다.
“영감님?”
[갑자기 무슨 일이냐?]“급한 일이 생겼는데 한국에 좀 와야겠습니다.”
[뭐? 내가 왜…….]“늦으면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뭐? 대체 무슨 일이냐! 자세히 말해!]“그럼 오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걸로 통화는 끝.
프란츠 영감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생각을 가다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