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02
402화
용용이가 떠나고 홀로 남은 나는 모처럼 홀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닌 척 하지만 용용이 녀석도 내가 생각하는 걸 감출 수 있다는 걸 알면서 그걸 읽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인간과 신수, 아무리 친해져도 종의 차이에서 오는 차이점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신수를 상대하려는 내게 용용이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신수를 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가.”
달리 보면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신수는 스스로를 고고하게 여기고 동족이 아니라면 하등 생명체 취급을 한다.
그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는 지점은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내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용용이나 현아는 날 동등하게 대함으로써 아군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다른 신수는 나의 존재를 납득하지 않으면서 말살하려 든다.
그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고 본다.
여기에서 나는 더 강해져야겠지.
그것이 신수를 적대하는 걸로 보인다고 해도 멈출 생각이 없다.
이 부분은 용용이나 현아가 이해해줘야 한다고 본다.
결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어쩔 건데?”
그런 생각이 깔려 있기에 강하게 나갈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현재 가장 나의 큰 적은 신수였으니까.
“그나저나.”
난 은둔의 현자 연구실에서 봤던 걸 떠올리며 실소를 흘렸다.
설마하니 윤희의 말이 사실일 줄이야.
“재수 없게 걸린 게 전부였다니.”
저번 생의 나는 혈중섭식을 얻기 전까지 정말 보잘 것 없는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힘을 얻으면서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신수의 변덕에 의해 힘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진짜 아무 이유도 없던 것이다.
은둔의 현자가 설정해놓은 조건을 충족시켜서 운 좋게 기회를 부여 받은 것뿐.
“애초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게 웃긴 일이겠지.”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진실은 이미 드러난 후였다. 내가 얻은 혈중섭식은 신수가 만들어낸 산물이며, 내게 부여되고 내 인격을 바탕으로 혈종이 탄생했다. 그리고 힘에 취해버린 내 틈을 파고들어 녀석이 육체를 차지, 무분별한 살육을 벌였다.
여기에 더하거나 덜어낼 것은 없다.
다만 그토록 알고자 했던 진실이 고작 저게 전부라는 사실이 허탈할 뿐.
오히려 혈종의 자아가 내 자아를 바탕으로 탄생했다는 게 더 충격이다.
“은둔의 현자가 아닐까?”
즉사기의 경우를 상정하고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통쾌하게 복수라도 했다면 마음의 위안이 됐을 텐데.
더 고민해봤자 내가 비정상이라는 생각에 도달할 것 같아 방향을 바꿨다.
“문제는 신인데.”
내 앞에 당면한 것은 자칭 신이다.
동료들을 가차 없이 저버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녀석의 존재는 모르는 사이 내 앞에 성큼 다가왔다.
직접적으로 충돌한 요소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고 있다.
자칭 신의 욕심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내가 가진 것을 갖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 앞에 남은 것은 충돌뿐이다.
“없애버려야겠지.”
사실, 길게 고민할 것 없는 문제였다.
*
* *
서울로 돌아온 나는 천명국의 요청을 받아 청와대로 향했다.
이번에는 기자들을 따돌리는데 성공하고 정다현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미국에서 큰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요.”
“미국은 왜?”
내가 벌인 일 때문인가.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허버트에게 들은 후였다. 나도 개인적으로 큰 잡음이 생기지 않고 잘 처리했다고 생각하는 중이고.
그럼 다른 일이겠지.
“진짜 신이 나타났다고 해요.”
“진짜 신?”
“네, 신이요.”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의 등장에 내 발걸음이 멈췄다.
나란히 걷고 있던 정다현도 멈추고는 의아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그 신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해봐.”
“대통령님이 설명해주실 거예요. 간단한 이야기만 먼저 해드릴게요.”
그러면서 정다현이 한 이야기는 간단했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세력 다툼이나 상하의원의 집단 심장마비 사건으로 인해 혼란이 벌어진 틈을 타 유럽에서 종교가 침투했다고 한다.
기존의 종교에서 몇 가지 자연스러운 교리가 추가된 형태라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는데, 문제가 생긴 지점은 그 종교에서 벌어진 ‘기적’이었다.
직접 신의 복음을 듣게 되면서 불이 번지듯 종교의 영향력이 확대되어갔고, 그것은 미국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냥 유행하는 정도라 생각했지만 전달받은 내용은 달랐다.
“문제는 종교를 우선하여 국가의 통제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종교에서 조금 더 강화된 건데 말입니까?”
“신이라는 실체가 존재하니까요.”
“그러니 신의 말을 따른다.”
“그렇습니다.”
국가의 법치주의를 따르지 않고 종교의 신념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한다? 비상이 걸릴 수 있는 사안이 맞긴 했다.
“그 실체는, 신수가 교단을 장악하여 스스로를 신으로 칭한다는 내용입니다.”
천명국은 내게 그리 단언했다.
정확한 정보이기에 난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맞습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묘한 뉘앙스에 난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천명국도 더 캐묻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신수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완전한 신이 되는 겁니다.”
“완전한 신?”
“신수는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신은 아닙니다.”
“그건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신수마다 성향이 다르고 거기에 따라 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한계는 존재하지요. 그런데 신이 되려고 한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인 건지…….”
“말 그대로 의미입니다. 녀석은 세계를 지배하여 지금보다 완벽한 존재로 거듭나려고 하는 겁니다.”
“그게 대체 어떤 이익이 있는 건지.”
“글쎄요.”
거기까지 내가 알 도리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 자칭 신이 보여준 행보를 볼 때 목적은 뚜렷하다.
녀석은 분명한 목적을 지닌 교활한 빌런과도 같다. 그런 만큼 신수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고 철저하게 빌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른 점이라면 월등히 튼튼한 육체와 긴 수명, 압도적인 힘이지만.
빌런으로 치면 완전체에 가깝군.
“분명한 건 녀석이 제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점입니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지만.
“…….”
천명국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는 몇 번이고 신을 중얼거렸다.
“상대의 목적이 국가 체제의 붕괴와 인간의 지배라면 평화로운 공존은 어렵겠군요.”
“좋은 방법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신수가 신을 자칭했다는 건 결국 인류를 지배할 대상으로 본다는 신호입니다. 여기에 어떠한 이견이 제시될 수 없을 겁니다.”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나와 같은 생각이로군.
다만 공존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천명국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의미였다.
금방 접어버렸지만.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프란츠 경의 조언도 한 몫 했습니다.”
“그 영감이 연락했습니까?”
“초인님이 갑자기 불러냈다면서 한 시간 넘게 욕을 하더군요.”
할 거면 나한테 할 것이지 다른 사람한테 뒷담이라니.
역시 몹쓸 영감이다.
“오면 제대로 손을 봐줘야겠네요.”
“…그건 참아주시길. 프란츠 경의 나이도 나이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그분만큼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가 없습니다.”
“와서 얘기 나눠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천명국은 그것 외에도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설명했다.
본래 성녀와 긴밀한 협조 체계를 갖추고 있던 만큼 자칭 신에 대해 그 또한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거기에서 전달된 내용을 들어보면 신의 계시가 상당 부분 날 겨냥하고 있다고 한다.
“신은 한참 전부터 초인님을 제거하기 위해 밑 작업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는 짓 한 번 구질구질하네요.”
“하하하. 신의 계시라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건 초인님밖에 없을 겁니다.”
천명국은 진심으로 유쾌한 표정이었다.
“이번에 프란츠 경이 오시면 많은 정보를 얻으셔야 합니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자칭 신을 봐온 그분이라면 누구보다 자세히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하수인이 되었을 수도 있고요.”
“부디 그건 아니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떨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프란츠가 유럽 연합을 이끌면서 자칭 신의 계획에 따라 놀아났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훼방을 놓으면서 견제하는 역할을 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칭 신이 그런 반대파를 관대하게 넘어가줬을까?
나나 천명국은 그 부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직접 보고 얘기하는 게 최선이겠지.
*
* *
프란츠가 한국으로 온 것은 내가 연락을 하고 일주일 뒤였다.
그동안 일을 먼저 처리하고 업무를 맡을 사람들에게 인수인계를 한 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본래 빌런들의 소굴이었던 인천은 거듭되는 소탕 끝에 자취를 감추었고, 기존 공항 시설을 복구하여 수많은 외국인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예전 모습이 떠오를 만큼.”
공항에서 서울까지 편히 이동한 프란츠는 감회가 새로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독일은 아닙니까?”
“우리는 너 같은 초인이 없으니까 쉽지 않지. 여전히 플러스 단계 마물들을 상대할 때 긴장해야 하고, 플러스 플러스 단계가 등장할 때를 대비해서 계획을 세우기 바쁘다.”
얼마 전 리투아니아에서 등장한 투뿔 마물을 유럽 연합에서 처치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드라쿨레아에 손도 대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 정도면 많이 나아졌네요.”
“모자라. 마물의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우리는 아니니까.”
날 지칭하는 거 같았는데 굳이 반응할 이유는 없겠지.
서울의 나아진 전경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프란츠는 나와 함께 청와대로 향했다.
그곳에서 대통령과 만찬을 나눈 뒤 무난한 형태로 대화를 하다가 나와 함께 청와대를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외용 미소를 짓고 있던 프란츠가 미소를 지우며 본론에 들어갔다.
“네가 날 부른 건 신 때문일 테지.”
“맞습니다.”
“언제부터였지? 신의 존재가 사실은 신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드라쿨레아 사냥 시점부터입니다.”
“…나보다 훨씬 먼저로군. 당시에 나는 의심만 하던 중이었지. 허허, 파악해도 너무 늦었어. 그러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지만.”
프란츠의 쓴 미소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게 느껴졌다.
“뭐가 늦었다는 겁니까.”
“모든 게. 이미 유럽은 전부 그 신의 의지가 닿고 있는 중이다.”
종교의 힘을 빌린 자칭 신은 성녀를 앞세워서 기적을 행하며 자신의 지지 세력을 만들어나갔다. 그것은 유럽에서 영웅으로 굳건한 위치를 고수하던 프란츠를 위협할 정도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뛰어넘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적을 행한다. 그것만큼 사람을 홀리기에 좋은 수단은 없다.
프란츠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럽의 문제.
난 프란츠를 보며 물었다.
“영감님은 어떻습니까?”
“나? 나 말인가.”
“그렇습니다.”
광신의 물결에서 프란츠가 버텨냈을까?
“나 또한 신의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