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프란츠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
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천명국을 만났을 때도 프란츠가 이미 신의 하수인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것은 내가 프란츠에게 감명을 받은 것과 별개의 문제다. 유럽은 자칭 신의 영역이 된지 오래였고, 그곳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끄는 프란츠는 자칭 신의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여태까지 손을 대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한 번 숨을 끊어놓았는데 두 번은 못할까.
프란츠를 죽인다. 그 전에 머릿속에 든 자칭 신에 관한 모든 정보를 털어놓게 만든다.
그렇게 마음을 정했을 때였다.
진지하던 프란츠 영감의 입 꼬리가 씰룩였다.
“우하하하하! 표정하고는! 거짓말이다!”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프란츠가 소리쳤다.
저렇게 위장도 하는 건가.
하지만 나는 속지 않는다.
여기에서 프란츠를 잡는다. 그리고 머릿속에 든 모든 정보를 뽑아내야 한다.
독일에서 이곳에 온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뭐, 그 다음에는 적당히 처리를 하면 그만이니까.
“어, 어어? 자, 잠깐.”
이상 기류를 감지했는지 프란츠가 반응했다. 뒤로 물러나려던 그를 향해 내가 달려들었다.
고령에 드라쿨레아와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었던 프란츠의 기량은 예전에 비해 한참 모자랐다.
두어 차례 내 손길을 피해내는데 성공했지만 그 다음에 여지없이 내 손에 붙들리는 신세가 되었다.
아쉽군, 저번 생의 그라면 노쇠해도 여전히 기량을 뽐냈을 텐데.
내가 돌아오면서 바뀐 이변은 예상보다 훨씬 약해지게 만들었다.
“아프진 않을 겁니다.”
“놔, 놔라! 거짓말이라니까!”
“아마 그렇게 주입을 받았겠죠.”
역시 자칭 신답게 교활한 녀석이다.
“아니, 진짜 아니라고! 네놈이 너무 심각해서 거짓말을 한 거라니까! 진짜다! 진짜라고! 이놈아!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머리를 덮어오는 내 손을 본 프란츠가 기겁해서 거세게 저항했다.
당장이라도 브레인워싱을 할 생각이었던 나는 프란츠의 저항을 보고 손을 멈췄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리얼했다.
“진짭니까?”
“…그래, 진짜다. 농담 한 번 했다가 백치가 되어버릴 뻔했군!”
“농담이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증명할까? 이 자리에서 신의 욕이라도 할까.”
“그것도 허락받았을 가능성이 있겠죠.”
“그럼 어떻게 증명할까? 이 자리에서 발가벗기라도 할까?”
“굳이 보고 싶지 않은데요.”
“아무튼! 이 정도면 내가 장난이었다는 걸 알면서 그러냐!”
아무래도 프란츠 영감의 말이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나는 붙들던 손에 힘을 풀고는 순순히 물러섰다.
“하마터면 늙어서 똥오줌 못 가리고 백치로 살아갈 뻔했군.
“영감님이 농담을 했다고 해서 저도 농담 한 번 해본 겁니다.”
“넌 절대 농담하지 마라. 뭐든 진심으로 느껴지니까.”
언제고 용용이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게 떠오른다.
“그래서 어떻게 신의 마수를 피한 겁니까? 거긴 앞마당인데.”
“일단 숨 좀 돌리자. 분위기 좀 가볍게 만들려고 했던 건데 너 때문에 수명이 몇 년 줄어들었다.”
“오래오래 살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허허,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고?”
“지금도 기운이 팔팔하니까요.”
“됐다, 사람 운명이란 게 어떻게 될 줄 알고. 나도 편한 곳에 있는 게 아닌 걸 네놈도 알면서 그러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걸 보면 프란츠 영감의 상황도 마냥 편하지 않다는 게 짐작되었다.
“그리고 아니라 말했지만 반쯤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을 모십니까?”
“모셔야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돌려 말하지 말고 자세히 말해주시죠.”
“말 그대로다. 유럽에서는 더 이상 신에게 경배를 드리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유럽인들에게 종교란 생활의 일부다. 그것은 무수히 많이 넘어온 타종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칭 신은 이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자신의 존재를 공고히 하는데 성공했다.
기존에 존재하는 신은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칭 신은 직접 권능을 발현하여 기적을 선보였다. 몇 차례의 기적은 열광적인 신도들을 양성했고 급격하게 영향력을 확보해나갔다.
자연히 신앙의 척도에 따라 신실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었다.
기존에 신실하지 않은 이들도 심판대 위에 올랐고, 증명해야 하는 대상에는 프란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심이 짙어지기 전에 냉큼 경배드렸지.”
타격은커녕 발 빠른 행보로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는데 성공했다는 말에 난 실소를 흘렸다.
“그렇게 처세가 뛰어난 분이 믿지 못할 인간들에게 넘겼던 겁니까?”
“과거 얘기는 하지 말자. 안 그래도 그 얘기만 나오면 쥐 구멍에 숨고 싶으니까.”
“그래서 위장으로 경배를 했다는 겁니까?”
“그래, 그러지 않고서는 버텨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먼저 선수를 쳤지. 그러니 더 이상 압력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늦은 녀석들은 얘기가 다르지.”
프란츠가 말하길, 신의 존재에 의문을 표한 이들이 없던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김없이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실종되었다가 다시 나타나니 가장 열광적인 신도가 되었다.
“아마 세뇌 종류일 터.”
“영감님의 사이비 신앙에 터치는 없었는데 말입니까?”
“난 관리 가능한 영역에 있다고 본 거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다고 여겼거나.”
말을 하는 프란츠 영감의 입가에 쓴 웃음이 걸렸다.
그것은 세월이라는 흐름이 가져다주는 노쇠화였다.
십대초인이자 유럽을 구원한 거인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 또한 언젠가 저렇게 되겠지.
지금은 아니라는 게 중요하지만.
“하지만 영감님이라면 한방 먹일 방법이 있겠죠.”
“없으면 어쩌려고?”
“그것도 상관없긴 합니다.”
내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내면 그만이니까.
“…됐다, 너한테 농담을 말아야지. 이러다가 온 유럽을 다 헤집고 다니겠어.”
“그 정도는 아닙니다. 나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녀석이 미국 의원을 떼로 죽여?”
“저 아닙니다.”
“세상이 전부 너라는 걸 알아.”
“증거 있습니까?”
“네 짓인 건 알지만 증거야 없지.”
“그게 중요한 겁니다.”
나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내가 저질렀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 말이 외부로 나올 수 없다.
세상은 결국 증거 위주로 돌아가는 법이니까. 강력한 심증이 있어도 그걸 뒷받침 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부인하면 그만이다.
조금만 교활해지면 이렇게 편해질 수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런 빌런보다 더 악독한 녀석이 세상을 활개치다니. 그런 녀석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는 내 처지도 참. 허허허.”
난 어깨를 으쓱했다.
저번 생에서는 길을 잘못 들어 빌런이 되었지만 초인이라는 합법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상 나는 정의의 편에 속한다.
“그래서 방법이 뭡니까.”
“성녀다.”
“성녀?”
“그래, 성녀.”
언뜻 들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녀는 신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 아닙니까?”
“그렇지. 그리고 신과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고. 하지만 신을 신뢰하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성녀가 내게 직접 의사를 전달해왔으니까.”
그 과정이 굉장히 극적이었다고 프란츠는 설명했다. 성녀는 신에 의해 통제되는 존재. 하지만 24시간 내내 신의 시야 앞에 놓인 건 아니었다.
성녀는 그 틈을 타 은밀하게 프란츠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신은 인간을 위하지 않는다더군.”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성녀는 그렇게 믿었어.”
“멍청하군요.”
“순진한 게지.”
프란츠는 옹호하려고 하지만 태생부터 신을 믿지 않기에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마저도 큰 결심이지.”
“틀린 말은 아니네요.”
자신의 세계를 부수고 밖을 향해 내딛는 거니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래서 신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뭡니까?”
성녀라면 신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자. 어쩌면 다른 신수들보다 자칭 신이 생각하는 것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대를 갖고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이제부터 논의해봐야지.”
아무래도 성녀는 신에 대해 알려줄 수 있을 뿐, 그 외의 것에 기대하면 안 되나보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실망 또한 없기도 하고.
“영감님은 생각해본 적 없습니까?”
“나 말이냐? 흠.”
심각해진 프란츠 영감은 고민해보는 듯했다. 성녀만큼은 아니더라도 유럽의 중심에서 신이 어떻게 세력을 확장하는지 지켜본 사람이다. 그런 만큼 내가 생각하지 못할 부분을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혀 모르겠다.”
“…….”
“기대했던 거냐? 사실 나 같은 일개 인간이 어떻게 신에 대적할 생각을 했겠나. 그저 신의 자비를 바라고 있었을 뿐이다. 하하하하!”
내 표정을 본 프란츠는 진심으로 즐거운 듯했다.
역시 직접 찾아가서 뒤집어 엎는 수밖에 없나.
“그만큼 대단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굴복하는 것부터 생각할 만큼. 여기에 대적하려는 너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걸 테지.”
“방법이 없다는 건 실망스러운데요.”
“내 힘으로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네가 상대할 생각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부터 조사해야겠지. 더 이상 유럽에서만 부는 태풍이 아니니.”
결국 마물과 빌런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은 의지할 대상을 찾고, 그것이 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프란츠의 설명이었다.
자칭 신이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교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나만 계속 얘기한 느낌이야. 넌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었냐?”
프란츠는 내게 방법이 있는지 궁금한 기색이었다.
“바티칸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설마 성녀를 만나 곧바로 신과 만날 생각이었나?”
“맞습니다.”
“무식하면서 가장 빠른 방법이야. 아주 세상을 뒤집어놓으려고 작정을 했어.”
“효율이 좋으니까요.”
“그 효율 때문에 세상을 뒤집어놓으려는 거냐? 무슨 일이 생길지 생각해본 적 없어? 세상 전체가 널 적대하게 될 거다. 초인이라는 타이틀도 널 지켜주지 못해!”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오랫동안 빌런 생활을 해온 나였기에 신을 건드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인간이 신에 도전하는 것.
어찌 보면 자신들에게 손해가 미치지 않는 일이지만 날 벼르고 있는 자들에게는 온갖 방식으로 시비를 걸 수 있는 소스를 제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옳은 일입니다.”
“세계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상관없습니다.”
난 누군가의 인정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갈 뿐. 그것이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거라고 생각해도 말이다.
그래도 천명국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대한민국은 적으로 돌아서지 않을 테지.
다음 대통령이 정주호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다 떠나서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 건 간단하다.
“어차피 익숙합니다.”
“무슨 말이냐?”
“악역을 소화하는 건.”
설사 원하지 않더라도 악역을 맡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이다.
“…….”
그런데 뭐랄까, 날 보는 프란츠 영감의 눈길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