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04
404화
“…….”
내 말을 들은 프란츠의 표정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내가 악역이 아니라 원래 악당이라고 하는 눈빛이다.
종종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읽히는 법이다.
용용이와 오랫동안 다녀서인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게 된 것 같다.
그것도 잠시, 이내 감정을 다스린 프란츠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쩌면 예언도 널 겨냥한 걸 수도 있겠어. 너와 대적할 것을 염두에 두고 네가 세계를 멸망시킬 존재라 낙인찍은 거겠지.”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봅니다.”
“난 네가 세계를 멸망시킬 거라 생각했다.”
종종 듣곤 하던 말이다.
하지만 세계를 멸망시켜서 뭐하나.
내가 혈종으로 미쳐 있을 때도 가장 그리워한 게 문명 생활이었다.
그리고 귀찮아서라도 세계를 멸망시킬 생각 따위는 없다.
“지금은 아닌가 봅니다.”
“그래.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
“선과 악의 구도로 보이니까요.”
“신은 선하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에게 기적을 베풀어주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할 테지.”
예언조차 그리 다룰 수 있다면 자칭 신의 안배는 오래 전부터 날 겨냥하고 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은둔의 현자를 제거하고도 그가 남긴 유산에 대한 대비를 한 것일 테지.
나머지는 갖다 붙이면 되는 거니까.
오랫동안 준비해온 녀석 다운 준비성이다.
“그럼 제가 빌런이군요.”
“다른 사람들은 널 비난할지 몰라도 난 널 믿는다.”
“감사 인사를 해야 합니까?”
“하지 마라. 나도 감사 인사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니까. 그저 뭐가 옳고 그른 건지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프란츠도 결국 감춰진 선과 악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내 생각은 그것과 달랐다.
나나 자칭 신이나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 방해가 되는 상대의 존재를 지우려고 할 뿐이다.
그 속에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존재로 인해 기적을 경험한 자들에게 나는 악이 될 테고, 내 존재로 이득을 얻는 자에게는 신의 존재가 악이 될 거니까.
그러는 나도 악이라 생각하면 망설이지 않고 손을 쓰고 있지만.
이래서 인간은 모순된 존재인가보다.
프란츠와 헤어진 뒤 나는 청와대로 향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천명국은 날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내가 프란츠와 나눈 대화가 적잖이 궁금한 눈치였다.
그 전에 청와대에서 만남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번 일로 프란츠 경이 감수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많다는 건?”
“그는 유럽을 이끄는 리더이지만 한 차례 은퇴한 초인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신과 대적하려 하는 초인님과 접촉한 것으로 상당한 견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강제로 끌려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프란츠를 지지하는 세력이 많지만 신의 세력이 월등히 더 강하다는 게 천명국의 설명이다.
실각을 감수하고서라도 왔다? 프란츠 영감의 각오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감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겠네요.”
자칭 신의 목을 직접 잘라서 프란츠 영감에게 선물로 줘야겠다.
그래야 영감의 희생이 헛되지 않겠지.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하는 거 같지만.
“저도 그리 되길 바랍니다. 지금 현상은 마물의 위협보다 더 위험합니다.”
“프란츠 영감은 제가 세계의 공적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초인님이 그동안 해온 것이 있는 만큼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이 적으로 돌아설 확률이 높습니다.”
천명국은 말을 아끼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힘으로 찍어 눌렀지만 내게 불만이 많은 녀석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 녀석들은 신에 반기를 드는 나를 적대할게 분명했다. 다른 곳은 직접적이진 않지만 간접적으로 견제하는 형태를 취할 테고.
“대통령님에게 잘 보여야겠네요.”
“임기 말로 접어드는지라 대부분의 조치는 주호가 해야 할 겁니다.”
천명국의 끈질긴 설명에 체념한 정주호는 얼마 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오랫동안 공직에서 일을 맡아 처리하면서 혁혁한 공들이 알려지자 단숨에 유력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하면서 차기 대선에서 사실상 당선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틀 전에 봤을 때는 세상 다 산 것처럼 죽상을 쓰고 있던데 말이다.
정주호가 당선되면 천명국의 말마따나 차기에 넘기는 게 맞겠지.
근데 말만 들으면 천명국은 빠지려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럼 대통령님은요?”
“…그야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니 새로운 대통령이 일을 맡아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요?”
“권력의 승계가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본을 세울 수 있습니다. 저는 권력에 미련을 갖는 사람이기보다 임기 중 제 역할을 해낸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멋진 말씀이네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대통령님의 힘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지 않을까요?”
천명국이 고개를 저었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전임 대통령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게 최선이지요. 그렇고 말고요.”
원론적으로 옳은 말이긴 한데.
마치 내 생각이 바뀌기라도 할 것처럼 확정을 지어놓으려고 하는 게 눈에 밟혔다.
그런데 어쩌나, 난 놓아줄 생각이 없는데.
“퇴임 이후 생각해두신 건 있습니까?”
“편히 휴식을 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세계를 둘러볼 생각입니다.”
늦게 결혼하여 아이가 어린 천명국은 가족에게 늘 미안함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저번에 봤을 때가 떠오른다.
기프트 탐색 당시 휴가에 혹해서 내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지, 대통령이라는 공직을 맡으면 가족에 신경을 쓰는 것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하긴 하지만 저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빠져나가려는 수작처럼 보인다.
아마 사실이겠지.
“미안한 김에 좀 더 미안해지면 되겠네요.”
“그게 무슨 말씀…….”
“퇴임 후 절 도와주시죠.”
“싫습니다!”
바로 튀어나오는 대답. 내가 제안할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보통 완강한 거절이면 포기하기 마련이지만.
거절은 거절하면 그만이다.
“제가 자칭 신하고 대결하게 되면 맘 편히 해외도 돌아다닐 수 없을 겁니다. 차라리 제가 자칭 신을 정리하고 평화가 찾아온 뒤 움직이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
“대통령님의 시뮬레이션은 제가 움직이는데 큰 도움이 될 거고요.”
천명국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제가 거절하는 선택지는 없는 겁니까?”
“어차피 거절하셔도 맘 편히 계시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데요.”
“맘 편히 지낼 자신 있습니다.”
“제 제안을 거절하고도요?”
“…….”
입을 닫은 천명국 특유의 표정이 나왔다. 속이 쓰린 표정 말이다.
대개 대통령직을 퇴임하면 사실상 은퇴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천명국같은 능력자를 순순히 놓아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퇴임 후 재취직 자리 알아보는 거라 생각하시죠.”
“내키지 않는 게 함정이지만 말입니다.”
“도와주실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천명국이 청와대에 있을 때, 청와대에 나온 뒤에도 도움을 주기로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어차피 시뮬레이션이 있어서 이럴 것도 예상했으면서.
남의 일은 곧잘 예측하지만 본인 일에 대해서는 현실감각이 떨어지나 보다.
아니, 현실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던 건가.
그렇다면 이렇게 확언해줄 수 있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
* *
며칠 동안 스케줄을 더 소화한 프란츠는 청와대의 환대 속에 독일로 돌아갔다.
하지만 자칭 신이 날 겨냥하고 있는 만큼 독일에서 남은 일들이 쉽지 않을 거라 여겨졌다.
그래도 자칭 신에 대적할 구심점이 있다는 게 중요할 것이다. 점점 종교가 강요되고 있는 불만은 존재할 것이고 그 불만을 모아줄 수 있는 프란츠가 있으면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영감이 자기 목숨 귀한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지.”
대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 그렇다.
저번 생에서도 이미 기량이 쇠하고 있는 상황에서 날 쓰러뜨리기 위해 나섰지.
당시에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존재를 불살랐다.
내 기준에서 절대 납득할 수 없지만 프란츠 영감이나 정다현처럼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조차 기꺼이 내던지는 사람을 나는 싫어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납득하는 경우에만.
[나 왔어.]상념이 끝없이 이어질 무렵, 용용이가 돌아왔다.
“현아랑 대화는 나눴냐.”
[응, 충분히 대화 나눴어.]“그래서 답은?”
[그게…….]말끝을 흐리는 것만 봐도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잘 안 됐나보군.”
[현아는 상황을 좀 더 길게 보고 싶어 해.]“고민 끝에 나온 대답이다?”
[응.]그리 말한 용용이가 황급히 덧붙였다.
[네가 실망하는 것도 이해해. 현아의 결정이 납득하기 어렵겠지. 하지만 동족을 향한 일이야. 철저하게 독립된 개체로 보는 만큼 다른 동족을 해쳤다고 해도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움직이가 어려워.]용용이가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놔봤자 본질은 현아의 불개입이다.
이해한다.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
“사실 너희들 입장에서 자칭 신 녀석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지.”
[그건 맞아.]자칭 신은 성공했고 천둥새는 실패했을 뿐이지, 둘 모두 본질은 같았다.
당시에도 현아와 용용이는 개입할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신수 편을 들까 싶어 아예 오는 걸 원하지 않았지.
그 관점에서 보면 섭섭할 것도 없다.
그래서 용용이 말은 틀렸다.
애초에 기대가 없었기에 실망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지 못한 말이 용용이에게서 나왔다.
나와 시선이 마주한 녀석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너와 함께 다니면서 신을 자처하는 녀석의 행태를 다 봤어. 오랫동안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움직여왔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동족을 제거하는 것도 서슴지 않아. 이대로 목적을 이루면 그 다음은 우리 동족이 될 거야.]용용이 말이 옳다. 이미 전적도 있고.
“신수의 강함은 위협이 될 테니까.”
[응. 녀석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존재를 제거하려들 거야. 나와 현아도 예외는 아닐 테고. 그러니 움직이려면 완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지금이어야 해.]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당연히 현아와 뜻을 함께 할 줄 알았다.
지금 용용이 말의 흐름을 쫓아보면…….
[난 네게 협력하겠어.]“넌 현아와 함께 움직일 줄 알았는데.”
[가급적 그러고 싶었어. 그래서 설득을 했고. 하지만 현아는 좀 더 두고 보고 싶어 했고,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피해가 줄어들 거라 생각해.]“의외네.”
[나도 내가 이렇게 나서게 될 줄 몰랐어. 하지만 이게 옳다고 믿으니까.]용용이 눈에서 어떠한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에 없던 신수의 협력이라, 분명 대단한 것인데 나는 용용이를 완전히 믿을 수 있을까?
100%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 다녔고, 그걸 토대로 줄곧 현아와 의견을 같이 하던 용용이가 처음으로 다른 노선에 나섰다는 점이다.
기특한 녀석이로군.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좋아, 잘 부탁한다.”
[응, 나도.]“의외야.”
[이렇게 보니 나도 대단해 보이지?]“그래.”
[아니, 이 정도면 좀 대단하다고 봐줄 수 있는 거 아냐? 기껏 큰 마음 먹고 협력하겠다고 한 건…… 응? 지금 뭐라고 했어?]내 대답이 그렇게 의외였나?
“대단하다고.”
[어, 어? 너 맞아? 다른 사람 아니지? 뭐지? 내가 환청을 들은 건가.]“제대로 들은 게 맞다.”
[와,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내가 천하의 헤드 브레이커한테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이게 꿈이야, 생시야?]얼마나 놀랐는지 꼬리로 자신의 뺨을 툭툭 건드리는 용용이었다.
그래도 신수님인데 내가 너무 막대했나?
“널 편하게 대해도 네 힘이 대단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알고 있었구나? 그동안 행동하는 거 보고 전혀 모르고 있는 줄 알았지. 우헤헤헤, 알고 있었구나. 그래, 내가 얼마나 대단한데!]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좋아하고 있다.
이 정도 립서비스쯤이야 어렵지 않지.
오히려 이걸 듣고 감동하는 용용이를 보면서 내가 막대하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고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