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07
407화
[그건 무리다.]한참의 침묵 끝에 신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윤희는 부아가 치미는 걸 느꼈다.
다른 사람은 바꿀 수 있었으면서 왜 자신의 오빠는 안 된단 말인가.
“아니, 무슨 신이 그것도 못해요! 당신 신 맞아? 사칭하는 거지?”
[…가족이라는 건가. 무례하군.]“아니, 신이라며? 전지전능하다며? 왜 남한테 보여준 기적은 나한테 안 된다는 건데?”
[인간, 네 가족이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나?]“그걸 무시하고서라도 고칠 수 있는 게 신이란 거 아니었어요?”
[더 이상 대화가 무의미하군. 넌 믿음이 부족하다.]“믿음은 무슨, 능력이 부족한 거겠지.”
그와 동시에 윤희를 감싸던 순백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 어? 어디 가! 우리 오빠 성격 고쳐달라니까!”
[믿음이 부족한 자에게 베풀 기적은 없다.]그 말을 끝으로 신은 멀어졌다.
결국 자신에게 내려질 은총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윤희가 소리쳤다.
“야! 야! 우리 오빠가 그렇게 무섭냐! 무섭냐고! 아씨!”
결국 순백의 세계에서 튕겨나온 윤희는 정신을 되찾고는 현실로 돌아왔다.
전신이 흠뻑 젖은 채 몸을 일으킨 그녀는 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곤 씩씩거렸다.
“뭐 이딴 게 다 있어!”
하지만 신은 그녀의 바람을 외면했다.
자신의 소원을 거절당했다는 사실에 한참 동안 화를 다스려야 했다.
*
* *
자칭 신이 윤희에게도 접근했다는 사실은 서로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음을 의미했다.
그 행동은 내게 경고한 것과 같다.
자신에게 반하면 내 주위를 건드릴 수 있다고.
당장 녀석을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던 내게 용용이가 말했다.
[근데 상대도 엄청 무리한 거야.]그러면서 설명하길, 제아무리 신을 자처하는 신수라고 해도 본체를 두고 먼 거리에 자신의 영향력을 투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을 소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적을 행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나?”
[그건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호의적인 인물에게 행하는 거잖아. 신앙이라는 매개가 있고.]윤희에게는 그러한 매개가 없기에 엄청난 힘이 소모되었을 거란다.
확실히 녀석이 신을 믿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것저것 물어봐서 자칭 신이 질색했을지도.
“결국 손해 볼 각오를 하면 가족을 건드릴 수 있다는 이야기로군.”
[그렇기는 해.]“막을 방법은?”
문제점을 지적했으니 용용이라면 해결 방법도 알고 있겠지.
난 방법을 들어볼 생각이었는데 녀석은 착각했나보다.
[…알았어.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만 해놓으면 되지?]“어.”
[일단 내가 감지할 수 있도록 할게. 그럼 바로 대처할 수 있으니까.]내가 할 수 있다면 내가 하려고 했는데.
용용이가 하겠다고 하니 맡기는 수밖에.
“그래, 너만 믿는다.”
[오올, 듣기 좋은데? 그래, 나만 믿으라고.]그렇게 용용이가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상황은 예상했던 것보다 팽팽하게 흘러갔다.
자칭 신의 사주를 받아 거듭 나를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반박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던 것이다.
시작은 미얀마였다.
미얀마의 영웅이자, 동남아시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우 아예 쪼가 공식적으로 날 두둔하고 나섰던 것이다.
신이 기적을 행하며 인류를 돕는 것에 응당 존경을 보내지만 그 신의 실체가 진짜 신인지 확인이 필요하며, 나에 대해선 과오도 있지만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날 향한 비판이 주류로 굳어지려던 순간에 나온 발언이라 자칭 신과 맞서는데 큰 힘이 되었다.
우 아예 쪼의 선언이 도화선이 되었는지 내가 마물을 퇴치해준 곳, 기프트를 개방해준 곳에서 잇따라 지지 선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잘 살았군.”
“준호 씨가 그동안 해온 것들이 인정받는 거라 해도 무방해요.”
내 말에 맞은편에 앉은 이세희가 두둔해주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청와대다. 나와 천명국, 이세희, 진세정, 정주호가 모인 가운데 자칭 신을 상대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다.
“그럼요, 초인님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베푸셨는데요. 오히려 도움을 받고도 입을 싹 닦은 곳을 잘 봐두셔야 해요.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줄을 설 거거든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오히려 대세를 이쪽으로 굳힐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 그럼 대세가 기울었다고 생각해서 전향할 테니까.”
“하지만 상황이 쉽지 않아요, 회장님. 우 아예 쪼는 분명 존경받을 만 한 초인이지만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적거든요.”
“그래도 모처럼 나온 건수니 최대한 부풀려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야죠.”
진세정과 이세희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어느 방향으로 일을 진행할지 논의했다.
하지만 희망적인 이세희와 달리 다른 사람들도 부정적으로 보긴 마찬가지였다.
“잠깐 시간을 번 정도 같은데.”
정주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몰렸다.
“우 아예 쪼가 나선 건 그쪽 국가도 신이라는 양반에 의해 세력 구도가 뒤틀리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견제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보고 듣고 할 테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냥 순수한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은 없다.
특히 우 아예 쪼는 상징성 때문에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걸 순순히 포기할 멍청이는 이 세상에 없다.
“문제는 이게 권력 다툼으로 보이면 진다는 거지. 상대는 선의를 가장하고 기적을 행하고 있어. 그리고 원하는 건 순수한 믿음뿐이지. 그것이 자신이라는 존재가 종속되게 만들건 말건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기적이야.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제 생각도 같습니다. 잠깐 지연이 가능할 뿐,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주호의 말에 천명국까지 동조하니 이세희도 더 이상 자기 주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간이라도 필요한 게 현재 상황이에요. 준호 씨에게는 이 순간도 중요하거든요.”
“맞아. 내게 필요한 건 시간이지.”
지난 며칠 동안 난 상황을 지켜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미 머리 좋은 사람들이 결론을 내놨듯이 장기전은 내게 불리해진다.
그래, 가만히 있으면 불리해진다.
그렇다면 이대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이유는 없어진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결정이 나오더군요.”
이번에는 내게 시선이 모여들었다.
“단기전도 뚜렷한 방법이 없고 장기전도 여론전에 휘말려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방법을 궁리하자니 뚜렷한 게 없다. 이게 현재 상황 아닙니까?”
천명국을 보며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가만히 있어봤자 지속적인 여론전으로 여론이 나빠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 어차피 내가 저지른 일인 만큼 반박해봤자 신의 의도에 놀아나는 격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칭 신은 자신이 원하는 걸 하나씩 얻어나갈 것이다.
처음에 자칭 신의 대응을 보고 외통수라고 했던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가 고민을 해봤습니다. 결론이 나오는 건 오래 걸리지 않더군요.”
“초인님 설마…….”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네 글자 표현하면 이전투구. 상대를 내가 원하는 전장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을 보유하고 있는 천명국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챈 듯하다.
뒤이어 표정이 변한 것은 정주호였다. 시뮬레이션이 없어 천명국보다 늦었지만 나와 함께 오랫동안 합을 맞춰왔기에 눈치 챈 것이다.
“너 설마 그걸 생각한 거냐?”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요.”
“말 돌리지 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훤히 보이는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정주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을 뿐이다.
“준호 씨, 타개책이 있는 건가요?”
“저 녀석이 생각한 건 타개책이 아닙니다.”
“그럼?”
“이 상황은 신이 만들어낸 아주 더러운 상황입니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이득 보는 걸 포기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설마?”
놀라움이 담긴 이세희가 날 바라본다.
“누군가가 날 싫어한다면 그 이유를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그것이다.
현재 나에 대한 여론전을 거는 자칭 신의 추종자들은 내게 손해를 본 자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에는 진실 90%와 거짓 10%가 섞여 있었기에 반박하면 반박할수록 내 이미지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칭 신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신 날 적대하고 나섰으니 적대할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줘도 되겠지.
“더 극단으로 가신다는 거네요.”
진세정은 그나마 차분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맞습니다.”
“여론이 더 악화되는 건 초인님에게 중요하지 않으시군요.”
“시간이 지나서 악화되나 그걸 앞당기나 크게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나를 향한 여론이 나빠진다고 해서 자칭 신을 믿는 비율이 드라마틱하게 높아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날 적대한 녀석들부터 확실하게 처리한다. 내게 시비를 걸었던 시점부터 이런 각오를 했을 거라 생각하니까.
“진짜 준호 씨의 발상은…….”
이세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수성만이 능사가 아닌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내게 잘 어울린다는 것도 말이다.
“저는 찬성이에요. 기왕 신에게 대적한다고 했으면 대적하는 이미지도 나쁘지 않겠죠.”
극으로 가기로 했으니 아예 극단을 달리자는 이야기였다.
이세희는 여기에 논리를 보충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 기적이 모두에게 발현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신을 믿지 않는 측을 확실하게 붙잡는 게 준호 씨에게 최선인 거 같아요.”
“아주 멋진 이유야.”
그게 아니더라도 움직였을 테지만 이세희의 서포트로 움직이기 쉬워진 게 사실이었다.
“그럼 바로 움직이지.”
*
* *
키어런 우들리는 한때 영국의 신성이자, 기대주로 꼽혔던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던 것은 플러스 플러스 단계 마물인 드라쿨레아 사냥에 나서면서였다.
당시 유럽 최고 기대주들이 모인 모임의 일원이었던 그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동료들과 함께 드라쿨레아를 사냥하여 이름을 높이겠다는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사냥에 실패하면서 다수의 동료들이 전사했고, 그는 패퇴하여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중 마주하게 되었다.
세계최강의 초인이자 최흉의 초인이라고 칭해지는 헤드 브레이커를.
당시 그는 형편없이 짓밟혔다. 헤드 브레이커는 기존 초인과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자였다. 초인을 향한 존중은 어디에도 없었고, 패배한 자신의 자존심을 나락으로 처박아버렸다.
나중에 부상을 회복하고 복귀했을 때, 헤드 브레이커는 키어런 우들리의 손에 닿지 않는 저 먼 곳에 도달해 있었다.
언제고 반드시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중, 유럽에 거대한 광풍이 몰아쳤다.
그것은 신의 등장이었다.
신이 행하는 기적을 본 키어런 우들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신에게 복종했다. 그리고 신의 의지를 따라 감히 신에게 대적하려는 헤드 브레이커를 비난했다.
아무리 세계 최강이라고 한들 신의 가호 아래 안전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될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야, 일어나.”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키어런 우들리는 눈을 떴다.
자신이 전날 술을 마시면서 친구를 데려왔던가? 아니다, 이건 친구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런데 왜 목소리가 익숙하지?
기분이 매우 나빠지는 걸 느끼던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곳에는 두 번 다시 보기 싫었던 얼굴이 앞에 있었다.
“너, 넌?”
“나에 대해 지껄여놓고 무사할 거라 생각했냐?”
“자, 잠깐……!”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키이런 우들리는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최준호의 손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목이 붙들린 그는 대롱대롱 매달린 채 숨이 턱턱 막혀오는 걸 느꼈다.
“네, 네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
퍽!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의식이 흐려지며 그대로 쓰러졌다.
한때 영국의 희망이라 불렸던 초인의 최후였다.
*
* *
“역시, 쓰레기가 보이면 보이는 족족 치우는 게 정답이지.”
난 머리가 부서진 채 쓰러진 키이런 우들리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발견되면 누가 봐도 내가 저지른 일이라는 걸 눈치 챌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세상을 멸망시킬 빌런이라면 그만한 실력을 보여줘야지.”
불만이면 자칭 신도 직접 오면 된다.
난 개의치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아직 죽일 놈은 많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