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08
408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시체들.
서로 아득히 떨어진 거리에서 벌어진 별개의 사건은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한 사람을 비난하다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이 비난한 대상은 세계최강의 초인이며, 상대가 빌런이건 초인이건 권력자이건 손을 쓰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명인 헤드 브레이커대로 시체로 발견된 이들 모두 머리가 부서진 채였다.
그것이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세계는 경악에 휩싸였다. 가뜩이나 신과 대적하는 것으로 악명이 흉흉하게 퍼져 나가는 상황에서 이렇게 보란 듯이 손을 쓸 거라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특히나 유럽 내에서는 차세대 거목으로 자라날 것으로 전망되던 키어런 우들리가 시체로 발견은 도화선이 되었다.
헤드 브레이커의 행동은 그들이 보기에도 선을 아득히 넘은 것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최근 신과 대적했던 것이 부각되면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헤드 브레이커에게 제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여론에 대해 서울 모처에 등장한 최준호는 태연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다.
“내가 했단 증거는 갖고 떠들길.”
오히려 자신이 모함당하고 있다며 범행을 부인하는 모습에 지켜보던 사람들은 전율했다.
*
* *
“골치 아픈 녀석 같으니라고…….”
유럽 연합을 이끄는 프란츠는 대형 사고를 친 최준호를 떠올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법 이성적으로 대응하나 싶었더니 어김없이 사고를 쳐버렸다.
그것도 자신이 수습할 엄두가 나지 않는 대형사고를.
유럽 여론은 들끓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 최준호의 소행인가 아닌가를 놓고 다시 한 번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프란츠는 일련의 사고가 최준호의 소행임을 알았다.
단지 녀석이라고 확정 지을 증거가 없었을 뿐, 이런 대담한 짓을 저지를 사람은 세계에 단 한 명밖에 없다.
“문제는 녀석이 떠드는 말이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범행을 부인하는 뻔뻔함.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냐면 신은 그것도 잡아내지 못하냐며 능력을 깎아내렸다.
당연하게도 신을 광적으로 모시는 이들은 발작했다. 최준호의 발언은 정면으로 신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선을 넘자니 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결국 최준호가 범행을 벌인 것이냐를 놓고 소란이, 신을 모독한 게 맞는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지면서 유럽 전역이 시끌시끌해졌다.
유럽 연합을 이끄는 의장인 프란츠는 자유로운 토론을 허락하면서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한국으로 인원을 파견할 거라 선언했다.
그리고 오늘, 바티칸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의장님.”
“오랜만이구나.”
“잘 지내셨죠?”
“나야 잘 지냈지만 넌 아닌 것으로 보이는구나.”
수심이 짙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성녀였다.
신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신의 선택을 받은 성녀의 입지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치솟았다. 신의 의지를 잇는 그녀는 신에 비견되는 강력한 권위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성녀가 신에게 종속되는 속도가 빨라질 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프란츠는 안타깝게 바라볼 뿐, 달리 손을 쓰지 못했다.
“신의 의사를 전달하러 온 것이냐.”
“네, 그 분께서 계시를 보내오셨어요.”
“들어보마.”
“그럼…….”
성녀는 신의 전언을 전달했다. 대놓고 시비를 걸어온 헤드 브레이커의 행동과 달리 신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녀석을 요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시간은 철저하게 신의 편이었으며, 무수히 많은 신도들은 최준호의 평판을 실시간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더 흘러가면 곤란에 빠지는 건 최준호가 될 것이다.
“그 계획이 사실이라면 조용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땔감을 넣어줘야겠어.”
“네, 맞아요.”
한참 동안 얘기를 주고받던 중, 성녀가 찻잔을 잡는 척 하다가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똑! 또옥! 똑똑!
그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프란츠와 성녀만 정해놓은 신호. 신의 영향력 하에 놓인 성녀가 잠시나마 신의 종속에서 벗어났을 때 보이기로 한 신호다.
방금 전 신호는 10초 정도 시간이 있다는 의미였다.
“결론이 나오면 제가 직접 한국에 가려고 해요.”
“직접?”
“네.”
“흠, 신은 그걸 바라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만.”
“제가 설득할 수 있어요. 직접 찾아가서 여론을 주도할 수 있다고 하면 그분께서도 허락해주실 거예요. …그러니 말씀대로 진행해주세요.”
중간부터 간신히 알아들을 정도로 빠르게 말을 하던 성녀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바뀐 톤으로 말했다.
다시 신의 영향력 하에 놓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도록 하지.”
성녀가 평범한 의도로 가는 것이 아님을 알았지만 프란츠는 말릴 수 없었다.
잠시나마 그녀의 눈에 떠올랐던 결연한 기세는 어떤 설득을 해도 먹히지 않을 것임을 알게 해줬던 것이다.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신의 영향력이 사라졌을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결국 프란츠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결론이 나왔을 때 성녀가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뿐이다.
“감사해요, 의장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위험한 짓은 하지 마라.”
의미심장한 말에 멈칫한 성녀가 프란츠를 보다 미소 지었다.
“네, 노력해볼게요.”
끝까지 성녀는 조심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
* *
입으로 떠드는 녀석들을 쓸어버리고 복귀했을 때, 세상은 뒤집혀 있었다.
보란 듯이 처리를 해버렸으니 당연히 범인으로 내가 지목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세상이 내가 한 일임을 눈치 채라고 그렇게 처리한 것이다.
머리를 부숴버리는 것만큼 헤드 브레이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가장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는 방법이다.
당연하고 모든 미디어에서 이에 관련된 소식이 뒤덮였다.
그래봤자 내가 했다는 증거는 없다.
난 우연히 하게 된 인터뷰에서 마음껏 발뺌 할 수 있었다.
“제가 한 일 아닙니다.”
누구도 내가 거짓말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역시 넌 양심이 없어.]그런 것보다 당연한 일을 처리한 거라 감정의 변동이 없을 뿐이다.
증명하고 싶으면 증거를 가지고 오면 되는 일이고.
손을 쓰는 시점에서 모든 건 각오하고 있었다.
당연히 기자들은 신이 나서 질문을 퍼부었다.
“그 위대한 신이 존재하는 곳에 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불경하다고 생각합니다.”
“…….”
누구도 반론을 펼치지 못했다. 지금 시점에서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죽을 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누가 신의 능력을 의심할까.
그런데 그리 되면 내가 신의 영역에 아무런 제지 없이 드나들었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된다.
어느 것 하나 저들이 원하는 전개가 아니겠지.
그러다 기자 하나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세계최강의 초인이시니 경계를 파고들 방법을 찾으신 거 아닙니까?”
“신이 그렇게 허술해보입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닙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초인님이라면 방법을 찾아내실 수도.”
“그리 말해봤자 신이 무능하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
집요하게 질문하던 기자의 말이 막히고 말았다.
더 묻지 못했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지.
모호한 답을 내놓으니 기자들도 더 이상 파고들지 못했다.
더 센 질문은 결국 날 띄워주고 신을 깎아내리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으니.
내가 일으킨 소란은 거대한 폭풍이 되어 지구 전역을 휩쓸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월등히 많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위대한 신을 상대로 맞선 거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각오한 일이야.”
“전 오빠답다고 생각하는데요.”
모두가 부정적으로 반응했지만 정다현은 내 결정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왔다.
“신이라는 뒷배를 믿고 입만 놀린 자들이에요. 자신을 증명하지 못한 채 신에게 귀속되는 순간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불쌍한 자들이죠.”
“확실히.”
윤희의 경우도 그러하듯 근본적으로 신에게 믿음을 갖지 않으면 신도 강하게 영향력을 끼칠 수 없어보였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강한 존재가 아니기에 틈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신은 그 부분을 파고드는데 특화된 존재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신과 만난 윤희는 무척 화가 난 기색이었지만.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더라.
“신은 저도 만난 적 있는데요.”
“응?”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내가 정다현을 바라봤다.
“원하는 걸 이뤄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소원을 빌었죠.”
“결과는?”
“들어주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윤희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아무리 깎아내린다고 해도 상대는 신을 자처하는 존재였다. 웬만한 건 들어줄 수 있는 강대한 존재기도 했고.
“대체 무슨 소원을 빌었길래…….”
“음, 그건 비밀이에요.”
[아항, 그런 거였구나?]정다현은 비밀로 했지만 용용이까지 속일 수는 없었나보다.
뭐라고 한 거냐?
[넌 복 받은 거야.]그러니까 뭔데?
[상대가 비밀로 한다는데 내가 마음대로 말할 수 없지. 그냥 좋은 거라고 알아둬. 내가 볼 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가능해보이는데.]…말을 말아야지. 실실 웃으면서 날 약 올리는 용용이를 보니 열만 받았다.
상종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과 함께 단호하게 외면하니 용용이 녀석이 입맛을 다셨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상대 반응을 봐야겠지.”
“가만히 있으면요?”
“곧 반응할 거야.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능력에 흠집이 날 테니까.”
녀석이 내 약한 부분을 잡고 잘 노리고 있다면 나도 녀석이 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잘 안다.
제아무리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인간처럼 교활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본질은 신수이다. 인간을 한없이 얕잡아보며 자신을 드높은 존재로 생각하는 이상 내게 한 방 먹고 얌전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도 신을 자처하기에 자기 성질대로 하기가 힘들 것이다.
“신에게도 제약이 있네요.”
“고고한 척 하는 대가도 있는 법이니까.”
[마치 누굴 저격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그렇다면 본인이 뜨끔한 거 아닐까.
“네가 볼 땐 어때?”
“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반응을 보일 때까지 지금처럼 움직이면 되니까요.”
“지금처럼?”
“네, 예전에 오빠가 해주셨던 말이 있잖아요. 세상은 넓고 죽일 놈은 많다고. 가장 굵직한 녀석들을 처리했지만 여전히 오빠를 욕하는 사람들은 많아요.”
[와, 진짜 발상에 있어서는 널 뛰어넘은 거 같은데?]“…….”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정다현의 과격함에 한 수 배웠다고 할까.
상대가 내가 원하는 반응을 하지 않으면 반응이 나올 때까지 두드리면 그만이다.
“근데 그건 알아둬라,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네, 저도 알고 있어요. 근데 곧 그런 일이 한 번 더 일어날 거 같네요.”
“나도 그렇게 예상하고 있는 중이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 우리는 피식 웃었다.
*
* *
그리고 며칠 뒤.
성녀가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