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09
409화
성녀가 한국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소식은 굉장히 뜻밖이었다.
솔직한 내 예상으로는 자칭 신이 더 음험한 수를 갖고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성녀가 방문한다는 건 과감하면서도 뼈아픈 한 수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미국에서 소식을 들고 온 졸라맨이 내게 호들갑을 떨어댔다.
“준호! 이건 엄청난 빅 이벤트야! 졸라 놀라운 일이라고!”
“진정하고.”
“아, 미안. 놀랄 일이라서 실수했어.”
내게 제지받은 졸라맨이 순순히 물러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흥분이 가득한 기색이었다.
“성녀의 방문 이야기냐?”
“맞아. 준호는 예상했어?”
“전혀.”
“이건 준호한테 졸라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는 일이야.”
“나도 그건 알고 있어.”
“그럼 어떻게 하려고?”
“지켜봐야지.”
“그게 끝이야?”
“어, 끝.”
상황이 내게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도 내가 영향을 받을 때 이야기다.
난 자칭 신이 어떤 수를 놓을지 조용히 지켜볼 의향이 있었다.
“미국은 어떠냐?”
“죽을 맛이야.”
“엄살은.”
“진짜야! 그 자칭 신이라는 녀석은 정말 미친 녀석이라고!”
잔뜩 흥분한 녀석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어진 미국 상황에 대한 설명은 가관이라는 말로 부족했다.
기존 종교를 타고 침입한 신의 존재는 빠른 속도로 미국에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그 기세가 얌전하다 싶었더니 어느 순간 정부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퍼졌다.
그 이유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내가 의원들을 죽인 걸로 꼽힌단다.
그들도 신실한 종교인이지만 자기 권력이 더 소중했기에 필사적으로 견제해왔는데 나로 인해 공백이 커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결론은.
“내 탓이라고?”
“아니, 그게 꼭 준호만의 탓은 아니긴 한데…….”
“그럼?”
“여러 관점이 있다는 거지. 너무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 하하.”
“오해 안 해.”
어차피 내가 아니었더라도 자칭 신의 존재감이 강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녀석은 작정하고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중이고, 그걸 제지할 수 있는 존재는 신수밖에 없으니까.
아니, 미국 정부나 파티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곳이니 나름대로 방법을 마련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레비아탄을 만나러 가기 전에 나는 미국 정부에 아케리를 소개시켜준 적 있다.
“아케리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나?”
“음, 그게, 졸라 지독해서 접근하는 게 힘들어.”
“아직 그 정도인가.”
“문제는 본인이 졸라 밝아. 그래서 안타깝고 무섭고 그래.”
아케리라면 충분히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자신의 독기를 제어하지 못하나보다.
“그럼 속수무책이겠어.”
“개판이지.”
“대책은 있고?”
“정부에서 파티와 전격적으로 함께 하기로 했어. 공동 전선인 셈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아닐 수 없다.
원수나 다름없던 정부와 파티의 연대라니. 그들이 변한 걸까 아니면 공동의 적을 두고 힘을 합친 걸까.
어느 것이든 간에 자칭 신을 상대하는데 큰 힘이 될 건 분명했다.
“그래서 네가 온 건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아냐, 멈췄던 연구를 계속 할 거야.”
“아, 그거.”
“준호!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건데 잊어버린 건 아니지?”
“전혀. 너희들 연구에 큰 도움을 받았는데.”
“진짜?”
“어.”
졸라맨과 박사들의 연구 결과가 아니었다면 다른 신수들을 상대할 때나 은둔의 현자가 있는 곳으로 향할 때 굉장히 고생했을 것이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걸 그들의 도움으로 이론화하고 다시 재정비해서 체득하니 말 그대로 성공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야. 그럼 계속 연구해도 되지?”
“나야 좋지. 그런데 미국 정부에서는 아무 말도 안했다고?”
“했지. 그런데 준호가 귀 담아 들을 정도의 내용은 아니야.”
“뭔데?”
“그게…….”
머뭇거리던 졸라맨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생각했던 것보다 미국의 상황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졸라맨이 한 말은 가볍게 흘리기에는 심각한 면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청와대를 찾아 천명국에게 상황을 공유하고 조언을 듣고자 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저거다.
“방위조약이라는 것은 보통 도움을 받고자 하는 측에서 해오는 제안입니다. 미국 정부가 심각한 상황에 처했거나 미래에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미국에서 내게 한 제안의 정체였다.
“상호방위라.”
“초인님과 신이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거란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통령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물어보시는 거라면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신이라는 비정상적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이 시대에 미국은 초인님과 합을 맞춰봤으면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 봐도 무방합니다.”
미국을 향한 대통령의 평가가 높군. 하지만 그 말이 틀리진 않다.
나 또한 신뢰할 수 있는 국가를 하나 꼽으라면 미국이 유일했으니까.
“이럴 경우도 있겠죠.”
“어떤…….”
“이미 신에게 굴복했고 날 잡아들이기 위한 함정일 경우.”
“……!”
“자기들이 생각할 때 상상도 못할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교활함을 닮은 만큼 신은 인간보다 더 스케일이 클 수 있다.
심각한 표정이 된 천명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쪽으로 가능성을 열어두시는 초인님을 보고 개인적으로 감탄했습니다.”
“시뮬레이션에도 있던 전개였나보죠?”
“예. 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럼 받아들이죠.”
어차피 계약서가 오가는 것이 아닌 서로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미국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이고,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조커를 하나 쥐게 되니 좋은 거겠지.
천명국은 내가 좀 더 고민하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내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못을 박았다.
“다음은 성녀인데.”
“올 거라고 하더군요.”
“결정된 겁니까?”
“예.”
천명국이 말하길, 한국 방문을 타진하던 성녀는 어제부터 급물살을 타면서 방문을 확정 지었다고 한다.
조만간 날짜가 정해지고 방문을 할 텐데 이 방문은 자칭 신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
“성녀는 신에게 있어 자신의 의사를 투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 수단을 적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으로 파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뮬레이션으로도?”
“그렇습니다.”
대답하는 천명국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시뮬레이션으로도 성녀의 방문은 명쾌하게 해명되는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자충수가 될 수 있는 수입니다.”
“성녀가 무사히 돌아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예.”
과감한 한 수로 적진에 깃발을 꽂을 수 있겠지만 그걸 위해 감수해야 할 게 너무 많단다.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제가 아직 모자라다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좀 더 발전시켰다면 신이 어떤 의도였는지 간파가 가능했을 텐데.”
“딱히 그렇지 않은데요.”
“초인님은 다르게 보십니까?”
“자칭 신의 사고가 우리보다 고차원적일지 몰라도 결국 인간 사회에 두는 수에 불과합니다. 인간을 상대하기에 제약이 따르죠.”
또한 신수가 두는 수가 고차원적이더라도 이쪽에서 그 의도를 다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다.
때로는 복잡한 한 수에 단순함이 최고일 때가 있다.
“그리고 이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연 성녀가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온전히 신의 의지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성녀가 신에게 귀속된 존재이며 그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가장 충실한 종이라 알려져 있는 성녀는 사실 오래 전부터 신이란 존재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한 번 심어진 의심의 씨앗은 사라지기보다 그 안에서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곳에 오는 건 성녀의 의지가 가장 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의 의사를 반하고도 말입니까?”
“예.”
자세한 내용은 성녀가 왔을 때 밝혀질 것이다.
*
* *
성녀의 전격적인 방문은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자칭 신의 존재가 등장하면서 세계는 크게 세 개로 나뉘게 되었다.
신을 추종하는 곳, 신의 존재에 반하는 곳, 방관하는 곳.
그 중 성녀는 신을 추종하는 자들의 정점에 있는 존재와 같았고, 대한민국은 그런 신에 반하는 곳에서 맹주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긴장감과 별개로 성녀는 추종자들의 환대 속에 방문했고, 청와대를 비롯하여 한국의 정재계 인물들과 만남을 가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분위기에 언론마저도 혼란을 겪을 정도로.
특히 대통령인 천명국도 ‘생각의 차이를 좁혀나가면 서로 만족할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말로 활로를 만들어놓은 후였다.
공식적인 일정을 소화하던 성녀가 은밀히 내 앞에 나타난 건 그 후였다.
“반가워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잘 지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넌 속 편한 소리를 하는군.”
“왜요, 잔뜩 경직된 분위기를 한껏 부드럽게 만들어놨는데. 잠깐이지만 이 평화를 누리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네 주인도 그걸 바라고?”
“그럼요. 신께서는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신답니다.”
그러면서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취하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을 행동이었다.
“오늘 온 것도 신의 의지인가.”
“당신이 보기에는 어떠시죠.”
“아니겠지.”
“그렇게 보셨어요?”
놀란 표정을 지어 봤자다. 난 성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기세를 살폈다.
전에는 알 수 없었지만 몇 단계 더 나아가면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성녀를 둘러싼 기운이다. 얼핏 보면 신성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것은 자세히 살펴보면 누군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사자가 성녀가 아니라면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지금 네 행동을 용케 봐주고 있군.”
“가장 오랫동안 모신 게 저인 걸요. 신께서는 자비로우셔요. 그 정도는 용납해주신답니다.”
싱긋 웃는 모습에 난 대답해주었다.
“신이 안 볼 때 하는 행동도 말인가?”
“…그럼요.”
“잘도 말하는군.”
“무슨 말씀이시죠?”
“지금 네 주인이 보고 있는 게 느껴지니까.”
“…….”
성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게 아님을 느꼈나보다.
“네 주인이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나.”
“아니요. 신께서는 때가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래? 난 아닌데.”
하지만 자칭 신은 내 도발에 응하지 않고 조용히 자취를 감추는 걸 선택했다.
멀어지는 존재감에 속으로 혀를 찼다.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해도 응하지 않으면 어려운 법이다. 까다로운 녀석이란 생각을 하면서 성녀를 바라봤다.
“그래, 이런 식으로 네 주인을 몰아냈으니 내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겠지.”
“…그걸 어떻게?”
아마 처음부터 성녀는 신이 멀어진 순간을 노렸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밝히겠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절 죽여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