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1
41화
최준호가 처음에 헬기를 블랙와이번이 있는 곳으로 가도록 지시했다는 말에 천명국은 가슴이 철렁했다.
하늘 경로를 이용한 접근은 비행 마물을 상대함에 있어 절대 금기시 되는 지시였기 때문이다.
마물의 등장 이후, 하늘은 더 이상 인류의 터전이 아니게 되었다. 비행 마물의 속도, 공격력과 방어력은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출몰하지 않는 검증된 비행항로가 아니고서는 다니지도 못했다.
유해 7단계 마물이면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투기다.
공격력은 부족할 수 있어도 내구도, 생명력, 지구력이 압도적이다.
만약 헬기가 공격당해 추락하는 일이라도 벌어지면 설사 레벨 8 초인이라 해도 무사하기 힘들 것이다.
“왜 멀리 떨어진 곳에 착륙하지 않고 무리를······.”
머리를 부여잡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만약 최준호가 죽기라도 하면? 후폭풍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최준호가 블랙와이번을 사냥했다는 내용이다.
“······.”
사냥과정이 담긴 영상을 본 천명국은 할 말을 잃었다.
최준호는 블랙와이번을 그냥 사냥한 게 아니었다. 일격에 머리를 함몰시켰다. 그 후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산책을 나온 듯했다.
지금 자신이 보는 게 현실 맞나? 영화가 아니고?
그제야 최준호가 보인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내 행동이 비웃음 살 수밖에 없었어. 그런 거였구나.”
행여나 사냥에 큰 차질을 빚을까봐,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던 모든 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문득 정주호가 술을 마시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걱정이 최준호의 걱정이라는 것.
그 자체가 사치라며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정주호가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는 자신은 스트레스 받아 탈모가 가속화 됐으면서.
“하긴, 피똥 싼 내가 할 말은 아니지.”
괜히 머리를 만지면서 다음에 생각이 미치자 한숨이 나왔다.
최준호는 사냥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란 게 밝혀졌다.
문제는 반쪽짜리라고 욕한 사람들의 명단 요구였다.
직업상 누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 두긴 했지만··· 문제는 이게 최준호 손에 넘어갔을 때 여파였다.
그냥 보기만 할 거라고? 지나가던 개가 비웃을 일이다.
“실력을 증명했으니 대통령님도 지지하실 테고, 결국 피할 수 없는 태풍인가.”
속이 쓰려 오는 기분이다. 약을 먹으면 좀 나아질까? 약의 힘을 좀 더 빌리기로 결심하면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이건 좀 더 심한 건이다.
“유해 7단계 마물이 터전을 벗어났다. 이건 절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야.”
마물이 자기 터전을 벗어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자기 영역에 큰 변화가 일어났을 때. 둘째는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였다.
첫 번째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았다. 기존 블랙와이번의 터전은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인데. 유해 7단계보다 상위 포식자면 하나뿐이다.
“유해 8단계.”
이건 나라가 멸망할 수 있는 재앙이다.
만약의 가능성이지만 대비해야 한다.
* * *
헬기가 빠른 속도로 블랙와이번 시체가 있는 곳 근처로 착륙했다.
“연락주시면 바로 날아오겠습니다!”
조종사는 좀 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군기가 든 목소리로 말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블랙와이번의 시체가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냥 건은 오는데 품이 더 많이 들었지만 나쁠 건 없었다.
일단 내가 마물을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누리가 등장하기 전에 드러낼 수 있었다. 위급 상황에 불려 나가는 것과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움직이는 건 차이가 있으니까.
영상도 촬영되었으니 왈가왈부하는 녀석을 내가 원하는 시기에 입 닫게 할 수 있겠지.
이건 누리 사냥 순번을 정할 때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좀 더 묵혀서 다 끌어내고 싶기도 했는데.”
딱 눈 감고 모른 척 할까?
그랬다간 초인의 자리도 위태로워질 것 같았다.
현재 상황이 꽤 마음에 드는 만큼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했다.
무엇보다 누리의 기프트가 뭔지 살펴보고 싶기도 했고.
“응?”
블랙와이번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저 앞에서 전투 소리와 함께 마물들이 모여드는 게 보였던 것이다. 포식자의 피 냄새를 맡고 모인 것이다.
나는 혀를 찼다.
“하여간에 맛은 알아 가지고.”
블랙와이번이라. 고기는 맛이 없지만 톡 쏘는 독맛이 일품이긴 했지. 다이어트하고 싶으면 강력 추천한다. 버서커가 먹으면 도움 될 것 같기는 한데 알아서 잘해 먹고 다니니 미뤄 뒀다.
아무튼 이번 임무는 블랙와이번 사냥도 있지만 사냥팀 구출도 있었다.
다 죽었으면 어쩔 수 없지만 살아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빨리 처리해야겠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마물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 * *
헬하운드 사냥팀은 마물을 사냥하다 블랙와이번 추격에 후퇴하느라 지친 상태였다. 여기에 마물들이 무차별적으로 달려들자 블랙와이번 사체를 뒤로 하고 대형을 구축했다.
쾅!
“크읍!”
아울베어의 공격에 한중석이 뒤로 물러났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맛이 느껴졌다. 지쳐 있어서 평소 어렵지 않게 상대할 아울베어마저 버겁게 느껴졌다.
투웅!
재차 달려드는 아울베어를 밀어낸 것은 이창수였다.
“중석아! 괜찮냐!”
“예! 팀장님!”
“체력을 아껴라!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예! 버티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망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희망이 있었다.
후퇴 도중 봤다. 하늘 위에서 벌어지던 전투를.
아니, 그건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절대 범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유해 7단계 마물이 일격에 숨통이 끊겼다.
인간의 무위가 아니다. 오늘 헬하운드 사냥팀은 초월적인 힘이 무엇인지 보았다. 그리고 향간에 도는 소문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헛소리인지 알게 됐다.
“조금만 버텨라! 버티면 초인이 온다!”
“예!”
이창수의 외침에 한중석은 단단히 웅크린 채 버텨 냈다.
억겁처럼 길게 느껴지던 기다림은 보답을 받았다.
촤악!
사방에 모여든 마물의 벽을 일방적으로 갈라 버리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다소 짧은 댄디컷에 차콜그레이색 정장, 그 위로 조끼 갑옷 하나 입은 채 다가오는 젊은 청년이 지나갈 때마다 마물이 우수수 쓰러졌다.
초인, 최준호였다.
그의 손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구두 신은 발로 걷어찰 때마다 마물의 가죽이 터지고 찢겨 나갔다. 마치 풍선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무려 오십이 넘던 마물은 채 5분도 되지 않아 전멸했다. 살아남은 몇몇 마물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마물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최준호와 헬하운드 팀만 남았다.
잔뜩 지쳐 있던 이창수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최준호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부 산하 사냥팀 헬하운드의 이창수라고 합니다.”
“최준호입니다. 구원 요청을 받아 왔는데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입니까?”
“예, 다른 팀은 모두 흩어져서 지금쯤 멀리 갔을 겁니다.”
“미끼 역할을 자처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희생할 대상이 내가 되었을 때 담담한 모습을 보이는 건 쉽지 않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최준호의 시선이 블랙와이번에 향했다.
“덕분에 블랙와이번 사체를 무사히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따로 보답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뭘 주는 게 좋으려나.”
말을 멈춘 최준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며 한중석은 가슴이 조여 오는 걸 느꼈다. 단지 입을 닫고 있었음에도 위압감으로 심장이 멎어 버릴 것 같았다.
‘이런 초인이 마물 사냥을 못할 거라고······?’
무사히 돌아가면 자신에게 열변을 토하던 친구 녀석의 머리통을 후려갈겨 주기로 결심했다.
아니, 그 말을 믿었던 자신도 문제였다. 스스로 머리를 세게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그때 최준호가 주변에 쓰러진 마물 시체를 가리켰다.
“여기 마물들은 어떻습니까?”
“예?”
“빨리 처리하느라 상태가 불량하지만 블랙와이번 시체를 지켜 준 여러분에게 소소한 보답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보답이 과합니다.”
이창수가 거절했지만 최준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 보답이 무엇인가를 정하는 건 제가 합니다. 받으시죠.”
“···감사합니다. 초인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정부를 위해 일하는 헌터를 보호하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최준호는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내더니 이창수에게 던졌다.
“회복제입니다.”
“이 귀한 걸 왜······.”
“지친 상태니까요. 먹고 회복되어야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크다. 사람이 커도 너무나 컸다.
알약 형태 회복제는 회복 속도는 느리지만 부상이 중증으로 흘러가는 걸 막아 주는 약이다. 연이은 격전에 지친 헬하운드 팀에게 꼭 필요했다.
그걸 거리낌 없이 주는 모습에 한중석은 감동받았다. 앞으로 평생 최준호를 찬양하리라.
더해서 근거 없는 소문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살을 붙여 퍼지는지 알게 되었다.
앞으로 눈으로 보고 겪은 것만 믿겠다고 다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창수를 시작으로 헬하운드 팀은 빠짐없이 약을 복용했다.
무표정하게 지켜보던 최준호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대신 해 줘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사냥 결과는 비밀로 해 주시길 바랍니다.”
“초인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저를 비롯한 팀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이창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지만 한중석은 달랐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최준호 사냥 능력을 회의적으로 봤던 그로서는 블랙와이번 사냥은 소문을 불식시킬 성과였다.
당장 자신만 해도 사냥 실력이 떨어질지 모른다고 폄하하지 않았던가.
이 대단한 성과를 널리 알려야 멍청이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다.
“초인님, 왜 비밀로 하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나더러 마물 사냥 못하는 반쪽짜리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잡아서 내가 원하는 시기에 족치려고요.”
“······!”
“아, 천 실장님이 비밀로 하라 했는데. 못 들은 걸로 하세요.”
정곡을 찔린 한중석은 물론 이야기 들은 게 있던 사냥팀 전체가 몸을 떨었다.
“계속 떠들게 두면서 명단을 확보할 겁니다. 아, 천 실장님한테는 알아 두기만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해서 알려질 수도 있겠네요. 다행인 점은 소문이 퍼지면 범인이 누군지 뻔하니.”
최준호가 사냥팀을 훑었다. 그 순간 헬하운드 사냥팀은 이 비밀을 평생 갖고 가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더 강조하지도 않았음에도 저마다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그럼 해체합시다.”
블랙와이번 시체에 다가간 최준호가 사냥팀 장비를 빌려 해체를 시작했다.
* * *
복귀하는 길은 순조로웠다. 블랙와이번 부산물을 맡긴 나는 헬리콥터를 타고 청와대로 복귀했다.
날 보는 천명국의 시선은 놀라움과 착잡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가벼운 산책 수준이었습니다.”
“초인님은 정말 볼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딱히 놀라게 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다른 부분으로 화제를 돌렸다.
“블랙와이번 사냥 건은 당분간 비밀로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그동안 안 좋았던 소문을 뒤집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미 소문 다 퍼졌는데 바로 잡을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순간에 공개하겠습니다.”
“원하는 순간이라면······.”
“전국 길드 연합 회의. 그 자리에서 공개할 겁니다.”
“······.”
날 욕하는 놈들이 가장 많은 곳이 길드였다.
한자리에 모아 놓고 터뜨리면 재밌을 것 같다.
천명국이 입을 닫았다. 그는 내 눈을 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의도십니까?”
난 내가 마물 사냥하는 걸 굳이 감추거나 한 적 없다. 하지만 날 고깝게 보는 놈들이 제멋대로 소문을 퍼뜨리고 부추겨서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녀석들이 만든 판이니 손절하지 못하게 키워야겠지. 그리고 판돈을 건 녀석들의 팔목 정도는 잘라 갈 생각이다.
진짜 팔목 말고.
“이 기회에 명단을 확보해 두려고 합니다.”
“······.”
“작성하고 계시죠?”
“파악해 두고 있긴 합니다.”
“좋습니다.”
역시 천명국, 일 하나는 확실했다.
“길드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하기 딱 좋죠. 유해 8단계 마물 누리에 대해 논의할 거 아닙니까?”
“그걸 어떻게?”
“블랙와이번 정도 되는 게 영역을 이탈하려면 생태계 변화가 일어났다는 의미인데 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마물은 유해 8단계밖에 없습니다.”
“허!”
역시 천명국도 알고 있었군.
보고받은 게 있을 테니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블랙와이번 사냥을 공개해도 인정하지 않을 놈은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이익에 눈 뒤집힌 대형 길드는 더더욱 그럴 테고.”
“그럴 수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저들이 실패했을 때 사냥할 권리입니다. 쉽게 말해 1번을 포기하고 2번을 받아오는 겁니다.”
“초인님은 대형길드가 실패한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어떨까요. 만약을 위한 보험이라고 하죠.”
대형길드는 누리의 사냥을 실패한다. 그리고 내가 나서서 누리를 잡을 거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은 무척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그림이다.
“영상은 국뽕 감성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거 진짜 클릭할 수밖에 없던데.”
“······.”
“중국이 경악하고 일본이 우러러 보는 최연소 초인의 사냥방법! 이런 건 어떤가요?”
역시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런가, 좀 많이 미흡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