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10
410화
“방금 내가 들은 말이 사실인지 의아한데.”
“제대로 들은 게 맞아요. 전 진심으로 한 말이에요. 헤드 브레이커, 당신이 절 죽여야 해요.”
성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신이 돌아올지 몰라서인지 무척 다급한 어조였다.
난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흠칫하는 성녀를 지나쳐 허공을 가격한 뒤, 포스를 뿌려 성녀를 둘러싼 기운을 밀어냈다.
거세게 저항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내가 무지막지하게 밀어내니 밀려나기 시작했다.
저건 자칭 신이 성녀를 종속시키는 기운들이다. 거리가 멀어 잠시 밀어냈지만 이미 하나로 결합된 만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잠시 시간을 벌어둔 거다. 그러니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 돼.”
“아!”
“널 죽이라고?”
“네, 맞아요.”
날 향한 올곧은 눈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굳건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나는 존중한다. 정다현이나 프란츠가 그 예였지.
그런데 왜일까.
성녀의 모습은 불쾌감을 동반했다.
“왜지.”
“신께서 이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데 가장 훌륭한 수단이 바로 저예요. 제가 신께 봉사할수록 신의 영향력은 빠른 속도로 커져가겠죠.”
“그게 네가 살아가는 목적 아니었나?”
자신의 모든 걸 신에게 바치겠다고 질릴 정도로 얘기하고 다니던 것이 성녀다.
“그 말을 철회할 때가 된 거죠.”
“…….”
쓰게 웃는 성녀가 말을 이을 때까지 난 조용히 기다렸다.
“저는 신께서 마물로부터 고통 받는 인류를 구원해줄 거라 믿어왔어요. 그분께서는 많은 걸 베풀어주셨고 우리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죠.”
성녀 본인도 신의 선택을 받았기에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그분의 실체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것은 그동안 성녀를 구성해오던 세계를 산산이 부숴버리는 충격을 선사했다.
“신께서는 인류를 구원할 생각이 없어요. 끊임없이 고통 받으면서 괴로워하고 절규하면서도 모든 걸 놓지 않도록 한 줄기 도움만 베푸는 것. 그리하여 자신을 찾도록,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바치도록 만드는 것이 그분이 원하는 바였어요. 그 끝에 구원이나 해방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죠.”
“신은 신수다.”
“알아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요?”
“안 중요하다고?”
“우릴 구원할 수 있다면, 도움을 베풀어줄 수 있다면 신이 아니라 마물이라 하더라도 신으로 모실 의향이 있어요. 헤드 브레이커, 당신처럼 강한 자는 모르겠지만 약자에게 도움을 내밀어주는 손을 약자는 어느 것이더라도 거절할 수 없어요.”
성녀는 내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거라 생각하고 말했지만 난 이해했다.
나 또한 능력을 개방하지 못한 채 힘을 갈망했던 시기가 있으니까. 혈중섭식을 개방하고 피를 섭취하여 기프트를 복사하는 방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식했음에도 외면하고 힘을 쫓았다.
그 결과물이 혈종이었다. 성녀에게는 자신의 믿음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상황이고.
“네 믿음이 부정당한 걸로 목숨을 버리겠다고?”
“제 목숨은 아무래도 좋아요. 단지 제가 죽는 게 그분의 계획에 가장 큰 차질을 빚을 거란 확신이 있어서 그런 거죠.”
“그럼 스스로 죽으면 되지.”
“제게 그럴 자유가 허락된 것처럼 보이나요?”
신의 이목을 잠시 피할 수 있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는 의미로 들렸다.
“만약 내가 신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으면 어떻게 했을 생각이었지?”
“최대한 빠르게 생각을 전달할 생각이었어요.”
“그래도 전달하는데 실패하면?”
“덤벼들 생각이었어요. 그럼 절 죽이지 않았겠어요?”
용용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성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거절하지.”
“왜죠?”
“네가 살아있는 게 나한테 더 도움이 되니까.”
“그게 무슨 말인 거죠! 헤드 브레이커! 당신은 제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있어요! 전 신의 의지를 가장 충실하게 대변할 수 있어요! 제 존재가 그분의 영향력 확대에 가속도를 붙일 거고 그것은 인류의 종속 속도를 더 빠르게… 윽!”
난 성녀의 목을 틀어쥐었다. 파랗게 질린 녀석은 버둥거리면서도 황당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넌 네 가치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어.”
성녀는 자칭 신이 움직일 수 있는 수많은 장기 말 중 하나일 뿐이다.
성녀를 죽인다고 해도 잠시 번거로워질 뿐이지 그 의도를 충실히 이행할 새로운 성녀를 내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어쩌면 죽으려는 것도 신이 조종당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내가 내린 결론이다.
“말도 안 돼요.”
“왜 생각마저 제어당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지?”
“…….”
“널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게 나에 대한 반감을 폭발시키고 신의 영향력을 더 확대시킬 수 있어. 정세를 읽는 게 서투른 나도 짐작할 수 있는 거야.”
내 손에서 벗어난 성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네 주인이 찾아오면 말해라. 구질구질한 수작을 부릴 날도 오래 이어지지 못할 거라고.”
성녀의 궤변을 더 들어줄 것도 없어서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
* *
밖으로 나온 뒤, 나는 용용이에게 자칭 신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세운 가설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야. 의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건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주입하면 무의식을 주입할 수 있거든.]“그럼 성녀가 자신에게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챘겠어.”
[눈치 못 챌 정도로 허술했다면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도 못했을 거야.]“적어도 인간에게 속을 정도는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성녀의 계획 외에도 다른 부분에 의문점은 존재했다.
“그럼 성녀가 신의 실체를 봤다는 것도 기만인가?”
[아니, 그건 진실을 확률이 높아.]“좀 더 자세히.”
[신은 수족으로 부릴 인간으로 성녀를 선택했을 거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성녀는 신의 의지를 수행하는 꼭두각시인 셈이지.]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용용이는 단언했다.
[하지만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려면 내어주는 게 필요해.]“성녀가 파악한 건 신이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란 건가.”
[맞아.]그렇다면 모든 게 이해가 된다. 자칭 신의 실체를 파악한 성녀는 대책을 세우려고 했을 것이고, 자신의 존재를 불살라 계획을 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칭 신의 흉계였다.
“진정한 꼭두각시로군.”
[꽤 충격이 커 보이더라.]“거기까지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성녀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마저도 농간이었을 뿐이다.
[그런 것치고 꽤 구미가 당기는 거 같던데?]“나쁘지 않은 방법이니까.”
성녀가 죽으면 자칭 신의 활동에 타격이 가는 것도 사실. 이걸로 비춰볼 때 자칭 신은 한 명의 성녀를 둘 수밖에 없는 건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의구심을 갖는 꼭두각시를 계속 놔두는 게 녀석에게 타격을 줄 방법이겠지.
[그럼 어떻게 하려고?]“괜찮은 방법이 생각나려고 하는데.”
[어떤 건데?]“아직 생각 중이다. 지켜보면서 고민하면 좋은 게 떠오르겠지.”
[성녀로 인해 신의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좋아지고 있는데?]“억지로 막아봤자 막을 수 없는 거니까.”
머릿속을 간질이는 방법을 찾아내면 될 듯했다.
*
* *
“신은 마음에 안 드는데 성녀는 참 괜찮은 거 같더라.”
윤희의 말이 요즘 흘러가는 상황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신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심어주었다. 특히 신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신의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쉽게 동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들마저 성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다. 스스로 초인이자 무수히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는 성녀는 미디어에서 이미지 또한 잘 만들어놨기에 대중의 높은 호감도를 자랑했다.
이런 성녀가 본격적으로 선교 활동에 나서자 자칭 신을 향한 귀의가 늘어나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한 방 먹을 수밖에 없는 한 수였다.
“그 신이라는 작자도 성녀처럼 행동했으면 나도 믿어줬을 텐데 말이야.”
“성녀는 믿음이 가고?”
“왜, 별로야?”
“그건 아니다.”
“그럼 왜 그런 말을 하는데. 딱 봐도 진실되어 보이잖아. 실제로 어떤 스캔들도 터진 적 없고. 신은 못마땅해도 성녀에 대한 호감도는 높아.”
미디어로 신에 대한 비호감은 조장해도 성녀에게는 그럴 수 없으니까. 어찌 보면 신보다 성역에 있는 것이 바로 성녀의 존재였다.
“좋지 않은 소식이지.”
“그에 대한 대책은 없는 거야?”
“방법이야 하나 있긴 했는데.”
“뭔데? 설마 성녀에게 손을 쓰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니다.”
“미쳤어? 다른 사람은 그렇다 쳐도 성녀는 안 돼! 그럼 그나마 오빠한테 동조하는 사람들도 전부 등을 돌릴 거란 말이야!”
기겁한 윤희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래서 손을 안 썼다.”
“생각도 하지 마! 절대 그런 짓은 안 돼!”
“이미 너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말을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똑똑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다행이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휴우!”
실제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성녀에게 손을 쓰는 걸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그녀가 순교자가 되면 나에 대한 이미지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거란 게 주된 이유였다.
그렇다면 이대로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걸까.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었다.
성녀의 좋은 이미지는 자칭 신에게 큰 무기가 되니까.
“잠깐, 좋은 이미지라고?”
만약 성녀가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없게 된다면?
생각을 더 이어나가던 나는 살벌한 윤희의 눈초리와 마주하게 되었다.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거짓말 하지 마! 분명 무슨 생각을 했어! 세상을 뒤집어놓을 끔찍한 생각인 게 분명하고!”
윤희가 집요하게 캐물어왔지만 나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좋은 생각이 난 건 맞는 말이었다.
*
* *
다시 찾지 않을 것처럼 말했지만 난 개의치 않고 성녀의 거처를 방문했다.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신 건가요?”
거처에 홀로 있던 성녀는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날 맞이했다.
“기다리고 있었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서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단 말이지.”
“그래서 당신이 가져온 방법은 뭐죠? 절 죽이는 것도 상관없어요.”
신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말해봤자 내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넌 이미지가 좋지.”
“그게 문젠가요?”
“문제가 돼. 너로 인해 신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성녀의 이미지가 더 이상 좋아지게 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걸 너 스스로 하지 못하겠지.”
“대체 무슨 방법을… 힉!”
가까이 다가온 내가 멱살을 틀어쥐자 성녀가 기겁한다. 결연하던 불과 며칠 전과 달리 지금은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신은 성녀를 하나밖에 둘 수 없는 거 같더군.”
“…….”
“성녀의 이미지가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아름다운 외모지.”
아름다운 미모는 남녀를 불문하고 호의를 사는 요소 중 하나다.
만약 성녀가 못 생겼다면?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얼굴이라면?
그래도 과연 사람들이 호의를 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그거다.
“네 미모를 없애주겠다.”
“아, 안 돼요! 그, 그것만은! 차라리 죽여줘요!”
목숨을 버릴 정도로 각오가 단단하던 성녀의 표정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