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용용이가 현아한테 갔다 돌아오는 건 상당한 시간이 된 후일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날 찾아왔다.
그것도 현아와 함께.
“오랜만이지?”
“내 기준으로도 별로 오래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길게 느껴졌어.”
“그래서 내 제안에 대한 대답은?”
난 길게 돌아갈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현아에게 답을 요구했다.
“어려워.”
“끝내 신수들은 구경만 하고 있겠다는 거로군.”
“우리가 나서기에는 증거가 부족해. 심증만으로 간섭할 수 없어.”
“그럴 테지.”
용용이가 듣고 본 걸 들으면 조금이라도 태도가 바뀔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였나.
나도 모르는 사이 기대가 생겼나보다.
기대가 없다면 실망도 없었을 텐데.
그 사이 이러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글러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용용이가 끼어들었다.
[잠깐, 그렇게만 말하니 이 인간이 너한테 실망만 하고 있는 거잖아!]“난 사실만 말하고 있어.”
[됐어! 현아 넌 가만히 있어! 내가 얘기할 테니까.]그러더니 용용이는 날 보며 말했다.
[현아가 말하는 것만 들으면 아무것도 안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달라. 여러 신수를 만나 의견을 나누고 어떻게든 공론화를 시키기 위해 노력했어.]“하지만 그 노력도 빛을 바랬고.”
[전부 실패한 것만은 아냐. 적어도 신을 자처하는 녀석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겠다는 의견을 끌어냈으니까. 그리고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도움을 주겠다는 의견도 나왔어.]이건 예상치 못한 말이다.
난 현아를 보고 물었다.
“왜 말을 안했지?”
“너한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게 없잖아.”
“다른 신수들이 자칭 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데.”
“아, 그런가.”
무심하게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어, 웃었다. 지금 웃은 거 맞지?]“그래, 마냥 무심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당연하지. 신수들 사이에서 요즘 얼마나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놓고 말이 많아. 네가 인간인 걸 문제 삼으려는 동족들도 많고. 거기에서 이 정도 성과를 끌어낸 게 현아라고.]“용아.”
용용이는 애써 현아를 옹호하려고 했지만 하지 말아야 할 말도 했다.
“날 무시하는 녀석이 많다는 거로군.”
[어, 어어? 그, 그건 사소한 일이야. 그냥 지나쳐도 좋아!]그렇게 말한다고 지나칠 리가 없지. 그게 일반적인 신수의 인식이긴 하다. 앞으로도 여전히 바뀌지 않을 일이겠지.
“그럼 앞으로 중립을 지킬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적어도 지금은.”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건가.”
“그 신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거든.”
[맞아, 그렇게 뻔뻔한 녀석은 처음 봐. 네가 신수의 자리를 위협한다면서 의견을 어필하고 있다니까? 현아가 나서지 않았으면 골치 아파졌을 걸?]나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려던 것은 현아가 자칭 신에게 동족 살해 혐의를 제기하면서 팽팽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상황으로는 이 정도 도와주는 게 한계야.”
현아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오해가 풀렸기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 정도도 충분해.”
적어도 다른 신수들이 멋모르고 이용당하는 일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하지.”
*
* *
성녀가 자칭 신의 유용한 수단인 것과 별개로 나는 녀석이 숨겨놓은 수가 하나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동족을 제거하면서까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준비해놓은 녀석이다. 대외적으로 이미지 개선을 위해 성녀를 내세우면 그 이면에는 암중에 쓸 칼을 마련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수단은 유럽 연합이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프란츠로 인해 지지부진하던 것이 급격하게 자칭 신을 향해 기울기 시작했고, 성녀를 앞세워 장악 시도에 들어간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로 인해 모든 의도가 가로막히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칭 신은 마음껏 활개치기 힘든 상황이었고, 그로 인해 상당히 먼 길을 돌아가야 했으니까.
그러던 중 자칭 신이 이용하기 좋은 수단이 손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아니, 들어갔다. 이건 확신 단계다.
“아르고스는 이미 신의 휘하에 들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내 예상과 별개로 천명국은 시뮬레이션으로 이런 결과를 도출했다.
리그 토벌 작전 당시 끝내 제거하지 못한 아르고스가 바로 숨겨진 칼이었다.
한때 세계를 집어삼킬 기세로 세력을 확장했던 리그는 토벌 작전으로 인해 해체되었다. 리그 잔존 세력은 흩어져 지하로 숨어들었고, 12궁 일원의 절반 이상이 체포되거나 사살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리그 전력이 100% 소멸했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구심점이 나타나면 언제든 리그는 부활할 수 있다.
그걸 노리고 세계 곳곳에서 리그의 후계를 자처하는 빌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형국이었다.
결과는 모조리 토벌. 세계 각국은 리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독버섯처럼 여전히 잔존 세력이 똬리를 트고 있다.
아마 아르고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떻게든 제거에 나설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가 신의 휘하에 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것이야 말로 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상황이면서 내게 좋지 않은 전개가 될 것이라 말했다.
“희망적인 관측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낮지만 부정적인 전망은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르고스가 여태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누군가의 비호 아래 있었기 때문임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르고스를 품어줄 수 있는 건 자칭 신밖에 없다는 것이 천명국의 생각이다.
“제2의 리그가 만들어지겠군요.”
“블랙하운드도, 헬 마스터도 없지만 아르고스가 지닌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가 신에게 감화되어 친위대를 구성하려고 한다면 눈 뜨고 당할 수도 있습니다.”
참 웃기는 일이긴 하다.
아르고스가 그냥 등장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신의 휘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가능한 일이라니.
“쓸모 있는 녀석이라는 건가.”
“예, 리그의 주인으로 아르고스는 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될 것입니다.”
흩어졌던 리그 세력도 살기 위해 아르고스에게 다시 모여들 것이고.
신에게 아르고스가 쓸모 있을 거란 생각이 천명국에게서 구체화되자 난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역시 대통령님이십니다.”
“별말씀을.”
“그렇다면 리그 잔존 세력을 분쇄시키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한 번의 실패를 겪었기에 다음 기회가 없다는 걸 아르고스도 모를 리 없다. 오히려 마지막이기에 더 철저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단다.
“리그를 자칭하는 녀석들을 찾아다녀봐야겠네요.”
“가장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이긴 합니다.”
천명국의 조력 덕분에 다음 계획도 수월하게 세울 수 있었고.
“대통령님을 모시는 계획은 성공적이네요.”
“…대신 휴가를 주기로 한 약속은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휴가를 가더라도 업무는 볼 수 있는 법이니까. 격무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고 필요할 때 의견을 낼 수 있는 정도면 어떨까 싶다.
“…….”
어떻게 효율적으로 부려먹을까 고민하는 나를 천명국이 빤히 보고 있었다.
“약속은 지켜질 테니 걱정하지 마시길.”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럼 난 다음 목적을 위해 움직여야겠다.
“당연히 나도 가겠다.”
어디서 정보가 흘러갔냐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
내가 부재중일 때 버서커는 대한민국 핵심 초인으로, 국가 소속이 아님에도 국가 소속 초인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리그 잔당을 토벌에 나서면 그 다음 순번이 버서커였다.
“여기 있어야지 같이 가겠다고?”
“너 혼자 재미를 볼 생각이었나? 그리고 여길 지키는 건 네 펫이면 충분하다.”
아무래도 버서커는 물러설 기색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한 번에 여러 곳을 공략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대신 사람은 데려가라.”
“괜찮다는 이야기겠지?”
“어.”
“그럼 나 말고 손 하나 더 보태도 되겠군.”
“뭐?”
누구를 말하나 싶었을 때 등장하는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정다현이 결연한 얼굴을 한 채 날 보고 있었다.
“저도 한 손 보탤게요.”
난 이 사단을 만든 게 분명한 버서커를 노려봤다.
“나도 어쩔 수 없거든. 비밀로 하고 얘한테 시달리는 건 너한테 두들겨 맞는 것만큼 힘든 일이라.”
대체 어떻게 시달리기에?
정다현을 봤지만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은 얼굴이었다.
“절 못 믿으세요?”
“12궁이라도 하나 있으면 어려워질 거야.”
“없는 곳으로 갈게요. 사람도 데리고요.”
안전장치까지 마련한다니 더 말릴 명분이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오지 말라고 해도 억지로 따라붙을 기세였다.
“그럼 하나 맡겨볼까.”
“네!”
*
* *
아르고스가 신의 휘하에 들 거라는 예상과 별개로 아르고스를 가만 둘 생각은 없었다.
직접적인 무력은 그리 강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지만 멀티 기프트의 보유자이자, 신수에게 부여받은 권능에 가까운 능력으로 세계에 맞섰던 녀석이다.
자칭 신의 무제한에 가까운 지원을 받는다면 언제든지 리그를 복원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
놔뒀다간 후환이 될 게 확실하니 기회가 닿으면 빨리 제거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건 홍콩과 마카오에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빌런 세력이다.
스스로 리그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때 그냥 범죄 집단이었다.
“리그가 아닐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래도 리그와 관련된 어떠한 게 있으니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니겠는가.
설령 리그와 관련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빌런을 죽이는 것에 이유가 필요한 법은 없으니까.
버서커와 정다현에게는 각기 호주와 필리핀을 맡기기로 했다.
모든 배정을 끝낸 뒤, 난 곧장 마카오를 향해 출발했다.
*
* *
마카오에 자리 한 거대 조직인 홍련회는 단기간에 세력을 키워 단숨에 마카오를 장악하고 홍콩에 커다란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 조직이다.
홍콩 출신 빌런과 뒤이어 합류한 일본계 빌런, 여기에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모여든 빌런으로 단숨에 홍콩, 광둥 연합마저도 손을 대지 못하는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홍련회의 주인 리카르도는 리그의 마카오 지부를 이끌던 인물로, 오랫동안 마카오와 홍콩에서 세력을 갈고 닦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실력도 명성도 확실했지만 연일 확장을 거듭하는 그를 보며 조직 내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를 오랫동안 보좌해온 리우도 마찬가지다.
“보스, 이거 아무래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뭘 말이냐?”
“아무리 세력을 키우는 게 좋아도 그 이름을 내건 건…….”
“리그 말이냐?”
“…예.”
리카르도는 언제부터인가 홍련회를 리그의 후예라 자처하면서 리그 소속이던 빌런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물론, 그 본인이 리그의 지부장 출신이라 잘못된 표현은 아니지만 리그라는 이름은 외부에 내걸기엔 너무나 위험한 이름이 되고 말았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리그를 토벌하지 못해 눈이 시뻘겋게 변해 있는 상황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이 짓을 벌이는 겁니까?”
“그야 재밌으니까.”
“뭐……?”
어이가 없는 말에 리우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믿고 있는 것이 있는 것처럼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같은 곳들이 저마다 리그의 후예를 자처하지만 정작 그 이름을 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아. 너처럼 걱정되는 부분이 많아서겠지.”
“그걸 아시면서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겁니까?”
“진짜 리그의 후예가 될 수 있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
“아르고스와 연락이 닿았다.”
상상도 못할 말에 리우의 눈이 부릅 뜨였다.
“사, 사실입니까?”
“우리가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라. 어디에서 지원이 들어온 거라 생각하느냐?”
“그, 그럼 정말로…….”
“이곳이 리그의 새로운 본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너와 난 리그를 재건한 공신으로 의기양양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
“…….”
듣기만 해도 달콤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리그의 말단 지부 2인자 취급을 받던 자신이 리그의 공신이라니.
“하, 하지만 이렇게 세력을 키우면 최준호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 신하고 맞서면서 말이냐? 네가 보기에 녀석에게 그럴 여유가 있어 보이냐?”
“없긴 하겠지만 빌런만 보면 발작을 일으키니 언제 움직일지 모릅니다.”
리우의 간곡한 목소리에 리카르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존 계획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조용히 지켜보도록.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잠깐, 아주 잠깐만 위험을 감수하면 돼.”
“그게 끝입니까?”
“그럼 이 정도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리그 공신이 될 생각이었나?”
그건 리카르도의 말이 옳았다.
아르고스가 복귀하고 새롭게 리그를 구성하게 되면 이 위험도 끝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보스를 보며 리우는 바로 태도를 바꿨다.
“예.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시킬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쇼.”
“그래.”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 둘은 씩 웃었다.
부귀와 영화가 곧 손에 들어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낯선 손님이 그들의 본거지를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