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14
414화
정다현의 추측은 나도 염두에 뒀던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에 힘을 보태듯 용용이도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너도?
[응, 비록 인간이지만 제법 철두철미한 인간이었어. 실력도 있었고 말이지. 지금 모든 걸 잃었다고 해서 저렇게 허술하게 흔적을 흘리고 다닐 것 같지 않아.]오히려 날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 아닐지 경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헬 마스터도 없고 블랙하운드도 없는데?
내가 당할 거라고 보는 건가.
[상대가 상대니까. 그리고 너도 인간 같지 않은 힘을 가졌다고 해도 결국 인간이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심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용용이의 걱정이라니, 참 낯설었다.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말을 듣는 건 별개의 문제였지만.
그 시점에서 내 마음은 굳어졌다.
“어울려줘야겠지.”
[뭐? 여태까지 뭘 들은 거야!]원래 당사자는 함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함정이 아니라 생각하면 된다.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팔다리가 다 잘린 녀석이야. 자칭 신이 날 노리고 붙여줬다고 해도 아르고스의 명령을 제대로 따를 리 없지.”
오히려 난 함정이길 바라는 쪽이었다.
머리가 따로 노는 손발을 잘라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자칭 신이 직접 나설 리도 없다. 현아에게 들었기에 녀석이 부릴 신수도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좀 더 강하게 나가도 좋겠다 싶었다.
[넌 너무 무모해. 아무리 그래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어야지!]용용이는 화가 났는지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봐, 저 인간도 심각하잖아! 네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했는지 알아야…….]“…확실히 좋은 방법이에요.”
좋다고 하는데?
[뭐, 뭐? 저 인간 제정신 아니잖아! 아니, 원래 제정신이 아니긴 했는데.]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해서인지 용용이는 패닉에 빠진 듯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이상한 건 용용이고 정상은 우리다.
[말도 안 돼! 너 같은 인간한테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다고?]그래봤자 현실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좌절하는 용용이를 뒤로 하고 정다현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적들은 늘 오빠의 전력을 과소평가하다가 당하곤 했죠. 함정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게 그런 이유죠?”
“맞아.”
“한 자리에 모아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감탄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정다현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도 눈치 챘다 싶었다.
압도적인 힘은 상대의 모든 계략을 무너뜨릴 수 있다.
남은 건 아르고스가 남긴 흔적을 찾아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난 조금 전부터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정다현과 마주했다.
“그래, 너도 가자.”
“네, 감사해요!”
“대신 버서커는 두고 갈 거야.”
녀석이 없어도 멍멍이가 있지만 자기 잘난 듯 돌아다니는 꼴을 보아하니 한 차례 자리에 묶어두는 게 나아보였다.
“전 상관없어요.”
음, 흔쾌히 대답하는 정다현의 모습만 보면 청량한 음료를 마신 표정이다.
티 없이 맑은 저 모습에서 버서커가 질리게 만들 집요함이 나온다고?
어쩌면 내가 두고 갈까 싶어 버서커가 지어낸 게 아닐까 싶은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저 인간도 이미 너한테 물들어서 맛이 많이 간 상태야.]겉모습만 보면 전혀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아서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미치지 않았다.
[그래, 그런 걸로 치자. 나도 더 설득하기 지쳤어.]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폐가 안 되게 열심히 훈련하고 있을게요.”
“그래.”
*
* *
“…….”
아르고스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다. 지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하늘은 변함없는 맑음을 자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벌어진 일들이 부질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압도적인 힘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남은 미련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세계의 공적이 된 그에게 손을 내밀어줄 곳은 없었고, 결국 신을 자처하는 존재에게 의탁하는 신세가 되었다.
천둥새가 건재할 때 가장 견제하던 신수가 바로 신이었다. 세계 사람들에게 한없이 자상하고 온화한 이미지였지만 아르고스가 마주한 신은 이제껏 본 적 없었던 음험함의 결정체였다.
그의 통제 아래 모든 걸 맡겨야 하는 걸까.
아니, 그럴 수 없다.
하인즈와 션이 죽은 시점에서 자신들의 꿈은 깨져버렸다.
더 이상 세계는 리그란 세력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깊은 상념에 빠져있던 그를 깨운 것은 익숙한 기운의 주인이었다.
“무사했군, 아르고스.”
“오랜만이야, 로베르토. 잘 지냈어? 와줘서 고마워.”
잘생긴 미중년은 흐린 표정으로 아르고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12궁의 일원이자, 세계적인 부호로 알려진 컬렉터 로베르토였다.
리그 토벌 작전 당시 거리를 두고 있던 그는 화를 피할 수 있었고, 이후에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나 누구도 그를 제압하지 못했다.
남아있는 12궁 중 최강이라 부를 수 있는 전력이다.
그런 그가 아르고스의 소집에 응했다.
“넌 헤드 브레이커에 맞설 생각인가.”
“맞설 거야.”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알,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성기 리그조차도 함부로 하지 못했던 것이 헤드 브레이커다.
그는 놀라운 성장세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고, 리그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에 도달했다.
“인간의 몸으로 신수를 사냥하는 존재야. 뒤늦게 조직을 정비한다고 해도 헤드 브레이커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물러서길 원한다.”
“안 돼.”
단칼에 나오는 거절. 아르고스는 이미 확고한 결심을 굳힌 뒤다.
로베르토는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아르고스를 바라보았다.
“이 전력으로 헤드 브레이커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넌 이미 결정했어. 헤드 브레이커 하나를 잡는 걸로 만족하려는 거로군. 아니, 그쪽이 아닌가. 네 손으로 이뤄놓은 걸 네 손으로 거두려는 것이군.”
“…….”
아르고스의 침묵에 로베르토는 몸을 돌렸다.
“난 그 운명에 함께 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거야.”
“신의 노여움을 살 거라고 경고하는 거로군. 난 그 신이 싫어서 이탈리아를 떠나 리그에 합류했단 걸 잊었나?”
“기억해.”
“잊고 있는 줄 알았어.”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이거밖에 없어.”
“아니, 방법은 있다. 하지만 네가 그 방법을 시도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그리 말한 로베르토는 발걸음을 옮겼다. 리그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의사였다.
“…….”
멀어지는 로베르토를 아르고스는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
* *
“우리는 빠르게 이곳을 벗어난다.”
아지트를 나선 로베르토는 휘하 부하들에게 빠른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다급한 모습은 보인 적이 없었기에 부하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빨리 움직여!”
“예, 성주님.”
자신들의 주인이 이런 모습을 거의 보인 적 없었기에 황급히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리그의 새로운 아지트로 자리매김을 한 이곳 마데이라 섬에서 벗어나려면 황급히 배에 탑승해야 했다.
“늦으면 곤란한데.”
컬렉터, 달리 리퍼비시라는 이명을 가진 로베르토는 불길한 느낌이 드는 순간, 즉시 점성술로 길흉화복을 점쳤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소흉에 불과했지만 불안감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 감각은 결코 틀린 적이 없다.
그래서 다시 나온 결과는… 최악, 대흉이었다.
“…곤란하군.”
점괘가 대흉이 떴을 때는 어김없이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그때마다 자리를 피하여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이곳은 섬이다.
배나 비행기가 아니고서는 벗어날 수 없는 고립된 장소. 그 속에서 자신이 변수를 제어할 여지는 굉장히 적었다.
불길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찾아온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위기감.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걸 느끼면서 로베르토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저 멀리 다가오는 인영을 보는 순간 붙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멈췄다.
대흉이 확실한 증거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헤드 브레이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등장이었다.
그리고 여태껏 겪었던 위기 중 가장 심각한 위기였다.
“본 적 없지만 익숙한 기운이야. 리그 출신이었나.”
헤드 브레이커가 씩 웃었다.
*
* *
아르고스가 리그의 부활을 천명하며 거점으로 잡은 곳은 마데이라 섬이었다.
이곳에서 유럽과 아프리카, 북미, 남미의 리그 잔당들을 흡수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녀석은 스스로가 신에게 귀의했음을 여전히 알리지 않았는데, 어떤 노림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굳이 깊게 캐묻지 않았다.
노림수가 있다면 그것마저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마데이라 섬에 기습적으로 향했을 때, 난 월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정도 기운, 기세는 12궁 정도 되는 녀석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네 이름은?”
“…….”
상대는 표정을 굳힌 채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눈에 보이는 족족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난 더 이상 리그 소속이 아니다.”
“그 말은 리그 소속이었던 거로 들리는데.”
“현재는 아니란 이야기다.”
“그래?”
“아르고스의 미친 짓에 동감하지 않는다. 그리고 리그의 이상도 공감이 가지 않았어. 난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지나가지.”
아닌 척 지나치려 했지만 난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난 리그였다는 게 더 중요한데.”
“…….”
“기억났어. 이거 장우위안을 보러 갔을 때 느꼈던 기억이야. 그때 리그 특사로 왔던 게 너였어.”
중국 정부에 적대하던 태평천문이 리그와 손을 잡느냐 이야기가 오갔던 적이 있다.
당시 부산에서 배를 타고 태평천문의 본거지로 향하던 나는 내 감각을 벗어나던 기운 하나를 감지했던 적이 있다.
그게 바로 이 녀석이다.
“아닌 척 하면서 리그를 위해 열심히 일했군.”
“…최악이군.”
“난 최상인데.”
녀석의 기분과 달리 나한테는 이득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눈치 빠르고 자기 일에 눈치가 분명한 녀석은 놓치면 두고두고 귀찮아진다.
게다가 실력도 충분해 보이고.
난 아직 살아남은 12궁 중,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부호이자 여러 유물을 수집하여 자기 능력처럼 발휘할 수 있는 초인의 이름을 떠올렸다.
“컬렉터라 불린다지?”
녀석이 빌런이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신성모독.
그로 인해 바티칸과 큰 충돌을 일으켰고, 당시 유럽에서 손에 꼽히는 유망주답게 무사히 빠져나와 자신만의 독자 세력을 일궈내고 리그에 투신했다.
이를 테면 녀석은 아르헨티나의 훌리우 아라우호처럼 독자적인 세력을 가진 용병 집단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니 자기 마음대로 리그였다가 아니었다가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런다고 내가 그걸 인정해줄 생각은 없지만.
신에 반감이 있다면 쓸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난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빌런의 갱생 같은 것은 버서커처럼 오랫동안 보아온 녀석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
“유물로 점을 칠 수 있다지?”
“…….”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이 자리에서 어떻게 되는지 이미 알고 있겠어.”
궁금해서 말하는 게 아니었다.
오늘 녀석이 어떤 운명이 될지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내 의도를 이해한 로베르토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여기가 내가 죽는 자리였군.”
“정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