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한 번 본 적 있는 인영이었다.
바로 은둔의 현자가 인간의 현상을 한 모습이다.
전에는 날 심상 세계로 끌어들였다면 지금은 나와 용용이가 보고 있는 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은둔의 현자는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용케도 날 찾아왔다. 여기까지 온 거라면 신, 그 친구를 제법 애 먹이고 있다는 이야기겠지?]녀석은 심상 세계에서 봤던 것과 달리 가벼운 모습을 보이며 낄낄 웃었다.
심상 세계에서의 만남이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었다면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기분이었다.
소멸했다고 하더니 무사한 건가? 아니다, 녀석에게는 신수 특유의 존재감이 없었다. 그렇다면 잔존하는 사념일 확률이 높다.
[이 정도는 되어야 내 정수를 불태워 과거로 되돌린 성과가 있지.] [뭐? 헉!]뒤에서 용용이가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한바탕 시끄러워지겠군.
“네놈의 짓이었나.”
[인간에게는 한 번쯤 삶 전체를 바로잡을 기회가 필요하다고 들었지. 난 그 기회를 준 거고. 그래,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건 네가 한 번 실패했고 다시 한 번 부여받은 기회로 성공했다는 의미지. 내 가설이 맞았어.]평온함 속에 감춰진 녀석의 눈동자 너머에는 짙은 광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 짓을 저지른 이유는 뭐지?”
[첫째는 내 순수한 호기심.]고작 그거 하나로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녀석의 농간에 의해 휘둘린 내 인생을 떠올리자 표정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둘째는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친구를 막고 싶었지. 알다시피 녀석의 야망은 보통이 아니거든. 이걸 막기 위해서는 나 혼자는 무리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야망을 막아줄 존재가 필요했어.]난 그것이 헛소리라 생각했으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동족이 나설 리는 없다고 생각했거든. 혼자 나서면 당할 테고, 단체로 나설 일은 없고.]…스스로가 신수이기에 그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삐딱하게 대답했다.
“내가 신에게 협력할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나?”
[그게 가능할 리가. 그 친구는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면 모조리 제거한다고. 너도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나서 모든 걸 잃고 굴종을 선택할 리 없어.]녀석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밸런스가 맞지 않았어. 그래서 나도 내 모든 걸 불살라서 친구의 육체를 앗아갔지. 애초에 녀석도 날 소멸 시킬 생각으로 가득했으니 서로 노림수는 먹혀든 셈이지.]자신의 소멸 이야기가 뭐가 즐거운지 소리 죽여 웃음을 흘렸다.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시간을 벌어주는 게 전부였어.]“그래서 네가 얻는 건?”
[신이 되고자 하는 신수와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인간의 마음을 갖고 독보적으로 강해진 신수와 신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은 인간 중 누가 승리할지 너무나도 궁금해!]감춰뒀던 광기를 꺼내들어 핏줄이 곤두 선 눈으로 날 뚫어지게 바라봤다.
[네게 그 힘을 안겨다준 사람이 누군지 잊지 않겠지? 자, 그 힘이 어떻게 먹혀들지 내게 보여줘. 내가 선택한 인간이라면 그만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니까. 두 욕망이 충돌해서 승자가 누굴지…….]파지직!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을 쓰자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녀석의 형체가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곳에 남은 것은 사념에 지나지 않는 것. 얼마 버티지 못하고 흩어질 주제에 결과를 보고 싶다고 지껄이고 있던 것이다.
[세계의 일부분으로 돌아가 너와 녀석의 대결 결과를 기대할게. 내가 원하는 결과를 보여달라고. 하하하하하!]그걸 끝으로 은둔의 현자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
처음부터 끝까지 찝찝한 녀석이었다.
결국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자칭 신의 욕망을 눈치 챘기에 날 끌어들인 것이었다.
나와 자칭 신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걸 알고서.
“고약하게 걸려들었어.”
이미 소멸한 녀석에게 손을 쓸 수 없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지만 내가 혈중섭식을 얻게 된 것, 과거로 돌아오게 된 모든 걸 알게 되니 홀가분했다.
그래, 힘을 얻은 값으로 쳐주지. 하지만 그 후에도 장난질을 친다면 녀석의 손이 닿은 모든 걸 지워버릴 것이다.
이제 남아있는 귀찮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
[너, 미래에서 넘어온 인간이었어?]바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용용이의 개입이었다.
놀라움을 지우지 못한 녀석은 내게 많은 걸 묻고 있었다.
“섭섭하냐?”
[그런 비밀을 감추고 있을 줄 몰랐어.]용용이가 실망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내 옆에서 내 생각을 읽어오면서도 끝끝내 몰랐던 일이니까. 하지만 진실을 감춘 것에 대해 난 떳떳했다.
하지만 용용이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이었다.
[휴, 다행이다.]“뭐? 다행?”
[당연히 다행이지. 네가 우리만큼 강하다는 건 단순히 재능덕분이 아니라는 거잖아. 미래를 겪고 와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동족의 선택을 받은 점이 있으니까. 그래, 우리가 인간에게 쉽게 따라잡힐 리가 없지. 안 그래도 이거 때문에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었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부분의 실망이었다.
난 녀석이 저 부분을 저렇게 신경 쓰고 있을 줄 몰랐다.
신수의 자존심이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듯 싶었다.
“비밀로 한 건 별 생각이 없었나보군.”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니까. 나도 너한테 전부를 말하지 않았는데 네가 전부를 말하지 않았다고 섭섭할 이유는 없어. 그냥 놀라울 뿐이야.]“그러냐.”
[근데 궁금하긴 하네. 네 반응을 보면 미래에도 신이 승리한 것 같지 않은데 말이야.]허술한 척 하더니 이럴 때는 예리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혈종에게 잡아먹혔던 곳에서는 신보다 리그가 득세하던 곳이다. 아마 천둥새가 소멸하지 않았을 테니 보이지 않는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었을 테지.
그럼 결국 내가 균형을 무너뜨린 셈인가?
용용이한테 굳이 말해서 좋을 건 없어보였다.
[그래서 거긴 어떻게 됐는데?]“몰라도 돼. 돌아가자.”
[아, 쉽게 말해주는 게 없네. 좀 말해주지.]툴툴거리면서도 용용이는 순순히 내 뒤를 따랐다.
*
* *
즉흥적으로 찾아가서 감춰져 있던 비밀을 모두 알게 되니 남는 것은 홀가분함이었다.
은둔의 현자는 결국 이용의 대상으로 날 선택했다. 그 장단에 맞춰 휘둘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녀석의 선택이 없었다면 혈중섭식을 손에 넣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내가 이런 힘을 갖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패’를 언급한 건 내가 혈종이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녀석은 강대한 힘에 따른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것이다.
“얕잡아보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하지만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비록 녀석의 농간으로 자칭 신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지만 피할 수 없던 위협이었으니 오히려 좋았다.
선택을 하고 실력을 행사하는 건 온전히 내게 주어진 몫이었다.
뭐, 이 정도는 나한테 혈중섭식을 안겨다준 대가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신이라고 자처하는 녀석이 어느 정도 힘을 가졌는지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고.
“넌 안 가냐?”
[내가? 어딜 가?]내 비밀을 알게 된 용용이는 당장 현아에게 달려갈 거란 예상을 깨고 내 옆에 붙어 있었다.
모처럼 생긴 건수일 텐데 세상 태평했다.
[아, 그거?]대수롭지 않게 말을 멈춘 용용이가 내게 씩 웃어보였다.
[그동안 감춰왔다는 건 비밀로 하고 싶다는 거잖아? 네가 어떻게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지 흥미로운 사실이긴 하지만 굳이 알려서 네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용용이답지 않은 속 깊은 말이었다.
솔직히 놀랐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중요한 건 네가 신에 맞서겠다는 거잖아? 그거면 충분해. 녀석을 제거하고 모든 게 끝나는 것도 아니고.]그래, 용용이는 그 이후까지 보고 있었다.
“난 딱히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
[너라면 뭐 그랬겠지.]묘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말인데. 뭐, 신경을 많이 써줬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행동에 나서려고 할 때, 유럽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이 전해졌다.
프란츠의 망명 요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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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츠 경의 망명은 신이 유럽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에 모인 자리에서 천명국은 그렇게 말했다.
자칭 신의 본진으로 자리매김을 한 유럽에서 정보를 얻는 것은 여의치가 않았는데, 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던 것이 사우디아라비아 측이었다.
아메드 국왕은 자칭 신의 영역 확장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우리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유럽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전달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들어봐야겠지만 기존 행보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입니다.”
“바티칸의 조사도 막혔어요. 모종의 조치를 취한 것 같아요.”
천명국에 이어 이세희까지 말하니 자칭 신이 낌새를 눈치 채고 앞서 움직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망명 요청이 왔으니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프란츠 경은 유럽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위명이 높은 분. 그런 분을 모신다는 건 추후 유럽에 드리운 광신적인 분위기를 걷어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초인으로서 기량이 뚜렷한 하락세였지만 상징적인 면에서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초인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내게 있어 프란츠 영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게 맞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을 걸 알고 있음에도 목숨을 바쳐서 내게 씨앗을 심었다.
그것은 큰 영향을 끼쳤고, 정다현의 경우를 겪으면서 발아했다.
하지만 과거의 인연이 대세를 그르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난 천명국의 말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낼 수 있었다.
“제가 직접 마중 나가겠습니다.”
“직접, 말입니까?”
“예, 직접. 그러니 사우디아라비아로 오라고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난 천명국의 대답을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해야 할 게 많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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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희는 최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태도나 어조에서 느껴지는 것이 평소와 달랐다.
“제가 모르는 게 있는 걸까요?”
“저도 시뮬레이션으로 눈치 챘는데 초인님은 먼저 예상하고 계셨나봅니다.”
“어떤 걸 말인가요?”
“이 시기 망명이란 게 공교롭다는 의미입니다.”
불쑥 끼어든 정주호의 말에 이세희가 멈칫했다.
고개를 돌리니 천명국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회장님은 프란츠 경이 자의로 망명을 선택했을 확률이 얼마나 높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곧잘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왜 굳이 지금 시기에?”
정주호까지 말을 보태자 위화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프란츠 경이 유럽 연합에서 고군분투 하는 건 알아요. 그 형세가 위태롭다는 것까지. 만약 신이 마음만 먹었다면 이미… 아 설마?”
이 자리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가능성이 이세희 머릿속에 떠올랐다.
평소와 다른 행동, 그리고 모종의 결심. 이곳으로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직접 가는 것까지.
천명국의 표정이 흐려졌다.
“어쩌면 초인님에게 있어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