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천명국에게 제안한 국뽕 감성은 실패했다.
괜찮아 보였는데.
편집하면 의혹을 살 수 있으니 풀영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그래도 좀 아쉬웠다.
* * *
내 숟가락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는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그러다 끝부분으로 턱 건드리자 터져 나간다. 그걸 숟가락에 담았다.
전후좌우 심지어 360도까지 움직일 수 있는 아울보어의 머리가 우러난 깊은 맛이 혀끝을 감싸다 입안 전체로 퍼져 나간다. 나만 알고 나만 먹고 싶은 환상적인 맛이다.
“어떤가?”
날 보는 대통령의 눈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얼마 전부터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는데, 상당한 친근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난 한입 더 먹으며 솔직히 말했다.
“최곱니다.”
“어느 정도로?”
“···이 집 막내아들 제가 해도 됩니까?”
“뭐? 으하하하하!”
대통령이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그 옆에 있던 영부인도 환하게 웃기는 마찬가지였다.
맛있는 걸 맛있다고 하고 맛있게 먹었을 뿐인데,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웃고 있을 때 더 많이 먹어 둬야지. 나는 먹는데 집중했다.
“이거 말년에 부인 요리가 제대로 빛을 보는군.”
“어쩜 저렇게 맛있게 먹을까요? 또 해 주고 싶어요.”
“마음은 이해하지만 벌써 비장의 요리들을 내놓으면 그만큼 볼 기회가 적어지지 않겠어? 천천히, 우리가 청와대 떠나서도 대접할 수 있게 가짓수를 남겨 놔야지.”
“그것도 맞는 말씀이네요.”
미소 지으며 날 보던 영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를 대비해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야겠네요. 편히 대화 나누세요.”
그 모습을 보면 정치인 부인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을 알았다. 영부인은 대통령이 할 말이 있는 걸 알고 물러나는 거였다. 푸근한 인상이지만 여우였다.
“그래, 그동안 그 실력을 왜 감추고 있었나?”
“어떤 걸 말입니까.”
“사냥 실력 말이야. 블랙와이번을 일격에 때려잡던데.”
“보셨군요.”
“다 봤지. 다섯 번이나 넘게 돌려 봤어. 난 각성자가 아니지만 보는 눈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장면은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더군. 내게 설명해 주던 친구도 말도 안 되는 거라고, 고개를 젓던데. 그래서 웃었지. 난 자네가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거든. 진짜야.”
그런 것치고 나한테 꽤 살벌하게 압박했던 거 같은데.
정치인의 얼굴 바꿔 끼우기 기술은 대단하다 싶었다. 나도 배워야겠다.
“믿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이걸로 부담을 덜게 되었어. 근데 저 실력 갖고 왜 사냥을 안 한 건가? 나라면 미친 듯이 마물만 잡고 다녔을 거 같은데. 하나 잡으면 선거 비용이 나와! 열 마리 잡으면 경제가 살고! 이거 기적 아닌가.”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 잡으면 다 합쳐서 천억이 넘는 걸?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배포로군. 난 살면서 돈에 욕심 없다고 말한 사람은 뒤에서 축재하는 것만 봐왔는데, 그걸 초월한 사람은 처음이야.”
블랙와이번의 심장과 부산물을 합치면 천억이 넘나 보다. 돈 벌었다.
“사냥 결과는 요청한 대로 비밀로 하지. 우리 최준호 초인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쓴맛을 보겠어. 언제 공개할 생각인가?”
“전국 길드 연합 회의할 때입니다.”
“난리가 나겠어.”
입맛을 다시던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도 진짜 등장할 거라 보나?”
“천 실장님이 보고했을 겁니다. 등장할 확률은 100%입니다.”
“······.”
대통령의 표정이 굳었다.
이 정도로 놀라긴. 유해 8단계 두 마리 정도가 한꺼번에 나타나야 놀랄까 말까인데.
“유해 7단계가 쫓겨날 정도입니다. 그게 가능한 건 더 높은 등급의 마물뿐입니다.”
“허어. 큰일이군, 큰일이야. 피해가 클 텐데. 선제공격은 할 수 없나?”
“어디 있는 줄 알고 공격하겠습니까.”
“청주, 음성, 괴산군을 샅샅이 뒤지다 보면 나오겠지.”
세 지역은 제8호 마물 누리가 있을 후보지였다.
“헌터들이 양보할 거라 봅니까?”
“안 하겠지. 자기들의 가장 큰 돈벌이가 되는 순간인데. 근데 그 이해관계만 조율하면 잡아다 줄 수 있는 말처럼 들리는데, 맞나?”
“착각입니다.”
“착각 아닌 거 같은데.”
유해 8단계 마물은 심장부터 시작해서 사체가 버릴 것 하나가 없다. 또한 개체수가 워낙 희귀해서 다 합치면 그 가격이 조 단위다.
대형 길드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다.
대통령도 욕심을 내는 것이고.
“첫 번째는 길드 측에 양보해도 좋습니다. 저는 그 다음 순번을 원합니다.”
“첫 번째가 실패할 거라 보나?”
“성공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다음 순번인 자네가 잡을 거고.”
“제 순번까지 온다면 잡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대통령이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우선 이 모든 가정은 유해 8단계 마물이 등장해야 성립하겠지.”
“맞습니다.”
“난 여전히 등장하지 않길 바라고 있지만, 대비를 해 둬야겠지.”
대통령의 입가에 쓴 미소가 걸렸다.
* * *
블랙와이번 사냥 사실을 감췄지만 영역에서 이탈하여 사냥팀을 습격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유해 8단계 마물 등장 가능성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유해 8단계는 레벨 8 각성자가 초인이라 평가받는 것처럼 이제껏 상대해 온 마물과 수준이 다른 걸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하나 네이밍을 하는 것이다.
자칫 잘못 대응하면 국가마저 멸망할 수 있는 마물이 바로 유해 8단계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일곱 차례 유해 8단계 마물을 겪어 봤으며, 큰 피해를 입었을 때도 있지만 몇 차례 사냥을 해낸 경험도 갖고 있다.
8단계 마물의 등장 소식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이 증권가였다.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서킷브레이커가 걸리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그것도 잠시, 8단계 마물 사냥에 대한 기대심리가 관련주 상한가로 이어지면서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유해 8단계 마물은 레벨 8이 소속된 대형 길드에 가장 먼저 입찰권이 주어진다. 그리고 엉망이 된 생태계로 인해 날뛰는 마물을 제어하기 위해 사냥 제한이 풀리는데,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부산물이 시장에 쏟아진다.
제8호 누리의 소식을 일찌감치 접한 곳 중 신성 길드도 있었다.
“8단계라, 모처럼 피가 끓어오르는 사냥감이 등장했어.”
“삼촌은 우리가 나서길 원하시는 거죠?”
“당연한 거 아니냐. 우리 그룹이 더 도약할 기회인데. 저번에 제7호 다온을 잡고 비상한 사신 길드를 생각해 봐라.”
“······.”
하지만 이세희는 대답 대신 생각에 잠겼다.
백군서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다른 생각이라도 있느냐?”
“걸리는 부분이 몇 개 있어서요. 우선 준호 씨가 조용하다는 거예요. 삼촌도 소문 들어 알고 계시죠?”
백군서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요즘 핫한 소문이었다.
“반쪽짜리라는 거? 듣다 보면 일리도 있더구나. 마물 사냥이라는 게 극복해야 할 난관이 있으니까.”
“헛소문이에요.”
“그래?”
“네.”
이세희는 최준호가 보여 줬던 마물의 기세를 떠올렸다. 그것은 마물에 대한 탁월한 이해가 없이 불가능한 실력 행사였다. 옆에서 얼마나 마물을 많이 봤으면 가능한 걸까. 궁금해서 흉내를 내 보려다 포기한 그녀는 한 가지는 확신했다.
최준호는 자신이 감히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마물에 대해 잘 안다. 마물에 대한 이해가 사냥 실력으로 치환되지 않지만 최준호가 마물 사냥을 못 할 거란 상상 자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저는 조심스러워요. 그리고 블랙와이번, 저는 준호 씨가 잡은 게 아닐까 싶거든요.”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없어요. 하지만 차단이 너무 철저해요. 그렇게 정보를 차단해 놓으니 오히려 퍼즐이 맞거든요. 준호 씨가 요청해서 정보를 감춰 놓았을 거예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겠죠.”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유력한 건 역시 반쪽짜리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을 향한 미끼였다.
존재 자체가 워낙 파격적이다 보니 질투하는 사람도 상당했다.
최준호는 이런 상황을 절대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그들을 일거에 낚기 위함이라면······.
거기까지 생각한 이세희가 몸을 떨었다. 상상만 해도 후폭풍이 두려웠다. 몇 명의 머리가 부서질지.
다행인 건 자기 머리는 아니다.
“네 판단이 그렇다면 나도 고집부리지 않으마. 우리가 물러나면 이찬택 그 녀석이 신나서 달려들겠어.”
“많이 기대하셨던 거 아니셨어요?”
“기대야 되지. 하지만 오너의 감이라는 건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존중해 줘야지. 형님도 그러셨다. 그 감으로 격변기 때 신성그룹 이 자리에 오도록 이끌었고. 네게도 그 재능이 있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자세한 내막이 궁금하단 말이지. 빌런을 무자비하게 잡던 녀석이 사실 사냥 실력도 상당하다? 그 나이에 그만한 무위를 발휘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백군서가 은근한 눈으로 이세희를 바라보았다.
“네가 물어보면 말해 주지 않을까?”
“전 머리가 부서지고 싶지 않아요. 삼촌도 안나 크리스틴 무시당한 거 보셨잖아요.”
“봤지. 그렇게 예쁜 처자를 매몰차게 바람맞히는 남자는 처음 봤다. 쯧쯧, 나였으면······.”
“삼촌 눈에 안나 크리스틴이 참 예쁘게 보이셨나 봐요. 이러다 헤드헌팅 당해서 미국 가시는 거 아니에요? 안나 크리스틴한테 연락해서 소개시켜 드릴까요?”
“험험!”
무안한 표정으로 헛기침하는 백군서를 보며 이세희가 미소 지었다.
“정보는 계속 수집해 볼게요. 삼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근데 오늘 약속 있는 거냐?”
“그렇게 보이세요?”
“평소랑 다른 느낌이라서.”
이세희 하면 화려함의 극치였다. 온몸에 수십억을 걸치는 걸어 다니는 명품 전시관이 그녀다.
대한민국 최고 신성 길드의 실세이자 셀럽으로 그녀가 걸친 명품은 그날 수량이 동이 날 정도로 홍보효과가 막대하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다른 수수하면서 차분한 옷차림으로 색다른 청순미를 발산하고 있었다.
저런 이세희 모습을 자신이 본 적 있던가?
기억을 되짚어 보던 백군서는 처음이라는데 결론이 이르렀다.
“···저도 가끔 이렇게 입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이세희가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 * *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셨다. 처음에는 청주에 계속 머물겠다고 완강히 버티시다가 한 번 결심을 굳히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시기가 나쁘지 않았다. 사형집행인의 북상 때도 그렇고 누리가 등장할 곳 후보 중 하나가 청주다 보니 빨리 올라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역시 서울이 좋다니까?”
“좋긴 하네.”
“그러니까, 진즉에 올라오자고 했잖아요. 왜 그리 고집을 부려요!”
범인은 아버지였군. 어머니의 잔소리에 아버지가 어색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자식들한테 방해되지 않자는 거에 동의했었잖아.”
“잘난 자식들이 방법 마련해 줄 거라 말했잖아요. 애들 믿고 올라오니 얼마나 좋아요. 앞으로는 좀 믿자고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부모님이 사실 아파트로 용산에 위치한 한강뷰 아파트다. 34평이지만 아파트 가격은 무려 65억으로 마물로 번 돈을 여기에 다 썼다.
곧 블랙와이번 사냥 대금으로 천억이 넘게 들어와서 상관없지만.
부모님은 아파트를 둘러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진짜 너무 좋다. 준호 네가 준비한 거니?”
“윤희가 힘 좀 썼어. 신성 길드에서 도움 주는 부서가 있다던데?”
“집에서 굴러다니기만 하더니, 윤희도 다 컸네.”
“다 컸지, 이제 결혼만 잘하면 소원이 없겠어.”
“무슨 벌써 결혼이에요. 윤희 나이가 얼마나 어린데! 여러 남자 만나 보고 해도 충분해요. 그래야 좋은 남자 고르지.”
“그래도 이상한 놈팽이는 안 돼.”
“······.”
부모님이 윤희 연애사를 가지고 얘기하는 건 상관없는데 왜 자꾸 날 힐끔거리지.
나더러 연애를 하라는 건가. 아니면 아예 기대가 없는 건가.
후자 같은데 내가 연애를 아예 못 할 것처럼 생겼나?
뉴스 댓글 보니 오빠 사랑한다는 내용 많던데. 이 정도면 나도 꽤 인기 있는 거 아닌가. 근데 뒤에 달린 덜렁덜렁은 왜 추가하는 건지 모르겠더라.
“준호 넌 저녁 먹었니?”
“아직이요.”
“그럼 좀 더 둘러보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그럴까요.”
지금 시간이 5시였으니 6시쯤 나가면 될 것 같았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
“글쎄요.”
따로 오기로 한 사람이 없어서 의아해 하다가 문 앞에 선 이세희를 봤다.
이세희가 왜 여기에?
문을 열고 보니 옷차림도 평소와 달랐다.
늘 화려했던 여자가 오늘은 유독 차분해 보였다.
뭐 잘못 먹었나.
“안녕하세요, 준호 씨?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안으로 들어온 이세희가 내게 눈인사를 보낸 뒤 부모님에게 인사했다.
“어머, 어머! 그러니까······.”
“누구십니까?”
갑작스러운 이세희의 등장에 부모님이 당혹스러워하셨다.
나도 꽤 놀랐다. 왜 왔지?
“신성 길드의 이세희라고 해요. 평소 준호 씨에게 많이 신세지고 있어요.”
“윤희 직장 상사기도 해.”
“진짜, 너무 예쁘시다.”
“준호 애빕니다.”
“전 준호 엄마에요. 근데 우리 준호한테 신세를 지고 있다고요?”
이세희가 수줍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준호 씨가 워낙 유능하시잖아요? 그래서 현안 조언부터 시작해서 각종 프로젝트에 도움을 받고 있어요.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우리 준호가요?”
“네, 준호 씨는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분이세요. 레벨 8 초인은 정부에서도 가장 각별하게 관리하는 사람이거든요. 실제로 의전서열도 굉장히 높고, 외국과 교류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인으로 활약을······.”
이세희는 차분한 목소리로 부모님의 질문을 받고 대답을 했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부모님이 말 몇 마디로 완전히 홀려 버렸다.
기프트를 썼나? 혹시나 싶어 체크해 봤지만 안 썼다. 말만으로 홀린 것이다. 내가 체크한 걸 알아차렸는지 이세희가 눈을 찡긋했다.
뭐지, 이 상황?
내가 했다가 잔소리로 돌아온 말이 이세희가 했을 때 반응이 극적이었다.
어째서 아들보다 남하고 대화할 때 더 화기애애한 거지.
어느 순간부터 이세희가 앞장서서 집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부분까지 상세하게 설명했고 아파트 편의시설에 대한 소개까지 했다.
아마 이세희가 마음먹었으면 부모님은 오늘 집 한 채 더 계약하셨을 분위기였다.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6시가 되었다.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인데 이세희는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녁 식사 할 곳을 예약해 뒀는데, 괜찮으실까요?”
“저녁까지?”
“네,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어요.”
“그럼 가야죠.”
“제가 안내할게요.”
그렇게 이세희를 포함한 우리 넷은 저녁까지 함께 먹었다.
내 옆구리를 슬쩍 건드린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셨다.
“크흠! 우리 준호 다 컸구나.”
* * *
유해 8단계 마물의 등장이 뉴스를 탔다. 대한민국이 들썩일 뉴스였다.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전국 길드 연합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마물의 대응 방안이 결정되고, 길드의 이해관계 조율이 이뤄진다.
때때로 길드에 일방적인 이익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정부의 중재 아래 무난한 합의 과정을 거쳐 왔다.
전국 길드 연합은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길드 연합처럼 다뤄지지만 최소한의 자격 조건이 갖춰져야 했는데, 구성 인원, 사냥 성과, 매출 등 여러 요소가 달성되어야 가입이 가능했다.
그로 인해 소규모 길드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지만 마물의 사냥은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시대다.
사소한 불만 정도는 가뿐히 무시되었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유력 길드가 모두 모인 가운데, 나도 초인의 자격으로 천명국과 함께 회의에 참석했다.
내가 앉은 자리로 시선이 쏟아졌다. 입막음이 지나칠 정도로 잘된 것인지 날 보는 눈들이 불손했다. 자꾸 사람이 눈알 수집 욕구가 들게 한다.
“생태계가 교란되고 심상치 않은 포스가 관측되는 걸로 보아 유해 8단계 마물의 등장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천명국에게 모여들었다.
유해 8단계 마물을 사냥 권리는 입찰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걸 교통 정리하는 건 각성자안보실의 몫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천명국이 단상 앞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세계는 마물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정부 측에서는 새로운 마물의 이름을 예정대로 ‘누리’라 칭할 예정이며 누리의 첫 번째 사냥 권리는 입찰에 의해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번의 의미는 마물을 상대하는 순서다. 첫 번째 권리를 획득하면 최전선에서 유해 8단계 마물을 상대하게 되는데, 사냥에 성공하면 온전히 그 권리를 인정받는다.
이게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희생은 희생대로 커지고 마물의 힘만 빼서 후순위 길드가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냥 노하우가 축적되고 헌터 전력이 급속도로 상승했다. 입찰권이 있는 길드는 1번으로 마물을 사냥하길 원했다. 정부 측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천명국은 정부가 첫 번째 순서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내 요구대로 움직인 것이다.
웅성거림이 커졌다.
“대신 두 번째 사냥 권리는 정부 측에서 행사할 생각이며, 입찰 결과에 의해 첫 번째와 세 번째, 네 번째 순서가 정해질 것입니다.”
유해 8단계 마물을 사냥할 수 있는 최소 자격은 레벨 8 초인을 보유한 길드였다. 현재 자격 있는 길드는 정부와 길드 세 곳이 전부다.
그 말에 소란은 더욱 커졌다.
다시 한번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중간에 ‘반쪽짜리’라는 단어가 들렸다. 그리 내키지 않는 표정들도 보였고.
천명국의 발언이 끝났을 때,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두 번째 사냥 순서를 정하는 것도 좋지만 정부에서 사냥할 능력이 있는지부터 증명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반발하고 나선 것은 머리를 시원하게 민 험상궂은 남자였다. 40대 중반에 근육질 몸을 한 그의 정체는 블랙리스트 아니, 기밀문서에 적혀 있었다.
수원 광교에서 활동하는 맹호 길드 마스터 유흥렬이었다. 저돌적인 사냥으로 단기간에 큰 성과를 거둬 길드 규모를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사냥터를 놓고 잦은 다툼, 불화 등을 일으키고 있으며 영역을 넓히려고 하면서 수원은 물론 용인시 쪽 길드와도 마찰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이 유흥렬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첫 번째 사냥 맡을 곳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지만 정보가 부족해서 사냥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전선을 뒤로 물려 두 번째 팀이 요격에 나서야 하는데 정부가 맡겠다? 자칫 뚫리기라도 하면 그 다음은 도시 바로 앞에서 유해 8단계를 맞이해야 합니다! 나는 전국 길드 연합의 회원으로서 검증되지 않은 정부 측 사냥팀을 못 믿겠습니다!”
유흥렬의 말에 상당수가 호응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녀석들의 얼굴을 머릿속에 담아 뒀다. 그냥 얼굴이 궁금해서.
난 천명국에게 눈짓했다.
더 소란이 커질까 걱정했는지 천명국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준비한 영상이 있습니다. 잠시 주목해 주시겠습니까?”
개봉박두였다.
회의장 대형 화면에 내가 블랙와이번을 사냥하던 과정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국뽕 썸네일이 없는 밋밋한 영상이었다.
“······.”
유해 7단계 마물. 대형길드조차 섣불리 사냥하기 힘들다고 알려진 마물을 일격에 쳐 죽인 과정이 공개되자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가 소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동영상 촬영하는 애들은 뭐냐? 쑥스럽게.
카메라를 의식해서 좀 더 멋지게 사냥할 걸 그랬나? 앞으로 신경 좀 써야겠다.
그 사이 나는 천명국이 준비해 둔 기밀문서에 유흥렬이 했던 말을 훑어보았다.
‘경험도 없는 반쪽짜리’는 약과였고, ‘마물 앞에서 벌벌 떨다 지릴 놈’, ‘무릎 꿇고 빌면 사냥팁 정도는 공유해 줄 수 있다’, ‘초인이 된 게 대통령이랑 각성자안보실장 비디오 갖고 있는 게 아니냐.’ 등등 발언이 기록되었다.
표현이 꽤 찰졌다.
“블랙와이번을 일격에······.”
1분여 공개된 풀영상이 끝났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내게 모여 있었다.
유흥렬의 눈은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슬슬 쫄리는 건가.
“이거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레벨 8에 도달했고 초인이라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이리 자기 주제를 모르고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른다.
내가 자기는 손대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무슨 확신으로?
그건 참 잘못된 착각이다.
“···난 헌터도 잘 패는데.”
주변의 몇몇이 흠칫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바닥을 박찼다. 단숨에 회의장을 가로질러 단상 옆에 서자 천명국이 자리를 비켜 줬다.
난 단상 앞에 섰다.
“여기가 터가 좋네. 말하는 것도 잘 들리고.”
날 향한 길드 관계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줬다. 앞으로 마주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들을 일별한 뒤 파랗게 질린 유흥렬에게 말했다.
“입 잘 털던데 계속 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