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24
424화
생명이 빠져나간 성녀의 시체는 푸른빛에 휩싸이더니 그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난 이 현상을 일으킨 것이 자칭 신이 아님을 바로 눈치 챘다.
고개를 돌리니 용용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지막에는 자기 의지대로 행동에 옮겼어. 그런 인간의 시체가 훼손되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어.]그래서 죽은 성녀에게 신수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 것이다. 용용이가 자신의 권한으로 사체를 자연으로 되돌려 보낸 것은.
[왜?]“올바른 판단이다. 널 다시 봤어.”
[대체 네 안에 내 이미지는 어떻게 되어 있는 건데?]그걸 말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지.
한가하게 잡담을 나누던 우리 둘의 시선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자칭 신에게 향했다.
녀석의 모습은 심상 세계에서 드러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걸 신이라 할 수 있나?”
[아니, 절대로.]“그럼 여전히 동족이라 볼 수 있고?”
[…아니.]잠깐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용용이는 내가 원하는 답을 내놓았다.
그래, 저 모습을 보고도 동족이라고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면 적잖은 실망을 했을 거다.
“저건 괴물이다. 자기 욕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녀석의 말로지.”
[끔찍해.]용용이는 상종도 하기 싫은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방해는 하지 않겠군.
이제는 용용이를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난 세상을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자칭 신에게 시선을 옮겼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마시니 어때?”
자칭 신의 주변에 사이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폭주하는 기운은 정신과 육체를 모두 잠식하기 위해 연신 침입해왔다.
그 속도는 초재생을 보유한 나조차 밀리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그 정도 희생 없이 신을 사칭하는 녀석을 잡을 수 없다.
난 대수롭지 않게 받아내며 자칭 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영향 받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기세가 사나워졌다.
[인간, 기어이 선을 넘었구나.]“신이면 신답게 밖에서 당당하게 활동해야지. 그게 바로 신 아니겠어?”
뒤에서 암약하며 분위기를 보는 녀석 따위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뒤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나?”
[놈……!]자칭 신이 분노를 터뜨리려던 순간, 내가 먼저 손을 뻗었다. 기뢰를 담은 손이 허공을 가르자 검은 기류가 휘몰아치면서 내 앞에 장벽을 형성하였다.
퍽!
그 장벽은 마치 진흙으로 만들어진 벽과 같았다. 물렁하면서도 진득하게 묻어나오는 사이함은 날 물들이려는 것처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내가 방어를 부숴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녀석의 손에 서린 기운은 날 잠식하려고 들었다.
난 거기에 저항하면서도 장벽을 부숴보려 했지만 이래서는 무의미한 소모전만 이어질 뿐이었다.
뒤로 물러나자 남아있던 기뢰가 몇 차례 스파크만 일으키더니 자취를 감췄다.
[저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겠어.]“너도 무리하지 말고 멀리서 지켜봐라.”
현재 이 장소는 자칭 신의 영역.
분신인 용용이가 내게 조언을 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힘의 소모가 있을 것이다.
[네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어?]내가 적잖이 못미덥나보다.
“지켜보기나 해.”
[방심하지 마. 네 자아들이 보호하고 있지만 상대는 신을 사칭할 정도의 힘을 가졌다고. 지쳐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순간 네게 치명상이 될 수 있어.]나도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용용이의 말은 거기까지만 들어주었다.
[쳇, 걱정해줘도 그래.]멀어지는 녀석의 음성에 걱정이 묻어나왔지만 거기에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난 자칭 신에게 몰두한 상태였다.
분명 힘은 자칭 신이 압도적이었다.
근데 왜 여태까지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을까.
내가 혈종이던 시절에도 자칭 신은 기지개를 켜지 못했다.
단지 육체가 완성되지 않아서?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면이 많았다.
“아.”
문득 천둥새와 대결이 떠올랐다.
신수와 첫 대결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천둥새만큼 날 위협했던 적은 없었다.
자칭 신은 천둥새보다 강하다. 존재 자체만으로 상대를 미쳐버리게 만드는 사이함과 그걸 감추고 신을 행세하는 교활함까지.
하지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녀석이 왜 천둥새를 처리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천둥새와 상성이 안 좋았구나. 맞지?”
[…….]그것만이 아니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완전하지 않던 그림을 완성시켰다.
천둥새가 미국 정부와 협력했던 것, 파티와 인연을 이어나갔던 것.
거기에 숨은 함의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 국가였으며, 파티는 세력이 반토막 났다고 해도 한때 미국과 유럽을 지배하며 세계를 막후에서 주물렀던 조직이다.
그래, 여기에서 파티의 유럽 내 영향력이 중요하다.
대서양에 레비아탄이 자리하게 된 것과 파티 영향력의 약화는 자칭 신이 의도한 것.
그리고 파티를 끌어들인 건 천둥새가 의도한 것.
이 사실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천둥새가 네 육체 구성을 막고 있었어.”
천둥새와 자칭 신은 협력 관계. 하지만 서로 좋은 관계였을 리 만무했다. 적대적 공존 속에 서로가 서로를 견제했다면 천둥새의 행동은 전부 해석된다.
자칭 신과 상성에서 우위였으나 힘에서 밀리면서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자칭 신의 육체를 갖추는 걸 방해하는 일.
아마 사사건건 훼방 놓았을 것이다.
저번 생에서는 이 대치가 계속 이어졌을 것이고, 이번 생에서는 내 손에 천둥새가 소멸하면서 그 균형은 완전히 무너졌다.
왜 현재의 흐름이 많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다.
[넌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알고 있는 게 더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자칭 신은 심상 세계에서 봤던 것과 동일한 형태.
그토록 공을 들인 육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
“몸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거지?”
[…….]“그리고 완성되고 적응할 시간도 필요했고.”
그 말은 전력을 발휘할 수 없거나 오랫동안 제 힘을 낼 수 없다는 의미였다.
신수 중에서도 최강이라 칭해지는 자칭 신의 전력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수 있냐고?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어디 한 번 발악해보라고.”
절대 녀석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난 자칭 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녀석이 전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태라는 걸 알았지만 난 방심하지 않았다.
보기에도 혐오스러운 키메라 형태를 하고 있는 녀석의 전신은 말 그대로 적을 말살하기 위한 최적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특히 얼마나 많은 원혼들을 집어삼켰는지 접촉하는 것만으로 어둠에 물드는 것 같은 사이함은 기프트 자아들이 연신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용용이 말이 맞았군.
이대로 장기전이 이어진다면 어느 순간 만득이 등이 포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겉으로 볼 때 자칭 신의 공격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걸로 보였다.
[어째서지?]먼저 균열을 일으킨 건 녀석 측이었다.
[왜 미쳐버리지 않는 것이냐!]자꾸 정신에 간섭하려고 안으로 파고들려는 것이 저 의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왜인지 안다.
난 녀석을 향해 웃어보였다.
“난 이미 미친 상태거든.”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이다. 하지만 나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다. 혈종의 반응, 주변의 반응을 보면 난 미친 게 맞다.
과거로 돌아오며 정신을 되찾았을 뿐, 어쩌면 나는 여전히 광기에 잡아 삼켜져 미친 상태였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날 미치게 만들려는 녀석의 시도는 먹힐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미쳐있는데 거기에서 미치게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고.
이걸 인정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전혀 상처가 되지 않았다.
남들이 나더러 미쳤다고 하더라도 내 스스로 정상이라고 믿으면 그만인 것이다.
오히려 재수 없는 녀석이 회심의 한 수라고 하는 것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현재 상황이 더 마음에 들었다.
“미친놈을 미치게 만들려는 것만큼 어이없는 행동이 또 없지.”
[하찮은 인간이 감히……!]분노의 표출에 따라 날 덮쳐오는 기세가 더욱 강렬해졌다.
파지직!
이번만큼은 만득이들이 버텨내지 못하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인간, 마물을 가리지 않고 그들에게 서려있던 아우성이 내 정신을 뒤흔들었다.
무시무시한 원한 앞에 정신이 파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타격을 받아야 했으나…….
이 정도 원한을 접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란 말이지.
오히려 버틸 만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더 과감하게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마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자칭 신의 사념을 모조리 받아 내거나 튕겨내며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어, 어떻게 일개 인간이!]“꽤 따갑긴 하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파직! 파지직!
최대 출력으로 발휘된 기뢰가 자칭 신을 덮쳤다. 녀석이 갑옷처럼 두른 두터운 기운이 기뢰를 막아섰다. 처음에는 가볍게 겉을 두드린다는 느낌으로, 그 다음은 녀석의 힘이 되는 근원을 파고드는 형태로 기뢰를 전개했다.
어디로든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는 기뢰는 눈앞의 적을 파고들기도 하고 분쇄해버리기도 한다. 내 의지가 닿은 기뢰가 자칭 신의 갑옷에 균열을 일으키고 안으로 파고드는 순간,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빠른 속도로 내부를 강타했다.
파직! 파지지직!
[크아아아아!]“이걸로 모자라지.”
난 거칠게 뿌리치려는 녀석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끊임없이 파고드는 사이한 기운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법이다.
여기에서 무서워서 물러나면 언제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자칭 신의 거친 몸부림으로 인해 뒤로 밀려난 내 전신은 검은 기류에 휩싸여 있었다.
파스스스!
[너 미쳤어? 이건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용용이의 비명처럼 초재생과 자칭 신의 기운이 치열한 충돌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러다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상처가 남을지도.
지금도 전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다 버텨내지 못하고 뼈가 뒤틀리고 피부가 녹아내리거나 벗겨지는 중이다.
하지만 내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 정도는 훈장이야.”
[넌 진짜…….]나와 용용이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자칭 신에게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육체가 완성되지 않았으니 출력에 한계가 있는 거겠지.”
계속되는 충돌은 과부하를 일으킬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지금의 것이다.
너무나도 강대한 힘이기에 그것을 감당할 육체가 필요했다.
[그아아아아!]하지만 나로 인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말았다.
분노에 휩싸인 자칭 신의 힘이 사방으로 폭주를 일으켰다. 수십 개의 촉수가, 길이가 제각각인 다리가, 곤두 선 깃털에서 검은 기류가 발산되어 해일처럼 주위 공간을 휩쓸었다.
난 무리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무엇이 녀석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지 모른다.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게 두려웠나?
몇 가지 경우가 떠올랐지만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 남의 상황에 신경 썼다고.
난 어느 순간 멈춰선 자칭 신에게 다가갔다.
[위험해.]용용이 말처럼 통제되지 않는 힘이 전신을 할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내부에 존재하는 코어마저 영향을 받았다.
은둔의 현자 의지인가? 자칭 신을 앞에 두고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물러나라고!]이 모든 현상을 알고 있는 용용이는 나더러 물러서라 연신 외쳤다.
그보다.
난 자칭 신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고오오오!
어마어마한 힘의 폭주였다.
분명한 건 녀석이 가진 힘은 어떤 신수와도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한계가 존재했다.
마치 과거의 나처럼.
“나와라.”
쩌적!
힘을 견뎌내지 못한 녀석의 형상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실금으로 시작한 것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전신이 균열로 뒤덮였다.
“그게 네 모습인가.”
마침내 잘난 신의 모습을 구경하게 되었다.
끝없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심연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속에서 눈동자가 나타났다. 난 그 시선을 마주했다.
“드디어 같은 눈높이가 됐군.”
녀석을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