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3
43화
43화
세상 참 재밌다.
사냥 영상 나오기 전에는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다가 블랙와이번 잡는 게 나오니 태도가 바뀌는 게.
내가 레벨 8인 초인인 건 그대로인데.
난 유흥렬을 보며 말했다.
“연설하더니 갑자기 왜 조용해졌어? 더 말해봐. 들어줄게.”
진짜, 그냥,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서 그런 거다.
저렇게 떠들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판을 깔아줬다. 난 경청할 자세를 취하며 유흥렬을 떠밀었다.
“······.”
하지만 유흥렬은 아무 말도 못했다.
설마, 소재가 다 떨어진 건가. 그럼 실망스러운데.
녀석이 날 까고 나선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다. 그런 거 있지 않나. 인지도 높은 상대를 물고 늘어져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녀석의 맹호 길드는 광교에서 단기간 급성장한 곳인데, 이 경우 주변 명문 길드가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찰나의 운은 누구에게나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전력을 유지하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야 진정한 명문 길드로 인정받게 되는데, 유흥렬은 그 단계를 뛰어넘기 위해 날 걸고 넘어간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지.
내가 오창문을 조진 걸 봤을 텐데 용감하게 나서는 걸 보면.
혈종일 때 내가 제일 많이 조진 게 마물, 빌런, 헌터 순이다.
난 헌터도 굉장히 잘 조진다.
“갑자기 조용해지니 좀 난감하네.”
이러면 내가 과민반응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기밀문서를 펼쳤다.
“경험도 없는 반쪽짜리.”
“······!”
“마물 앞에서 벌벌 떨다 지릴 놈.”
“······!”
“무릎 꿇고 빌면 사냥팁 정도 공유해줄 수 있다.”
“······!”
“대통령이랑 각성자안보실장 비디오 갖고 있는게 아니냐? 이 외에 많은 말을 했더라고? 뭐, 내 뒷담 정도야 하고 다닐 수 있는데 남이 안 듣는 곳에서 하지 그랬어. 아, 이건 죄가 안 돼. 그러니 걱정 마.”
진짜다.
어차피 다른 걸로 엮으면 되는데 굳이 이걸?
난 뒤끝이 없다.
내 손에 들린 기밀문서를 보는 주변의 표정은 이미 가관이었다.
책자를 말아 쥐고 나는 지면을 박차 유흥렬 앞에 섰다.
“오, 오지 마!”
“왜?”
“으아아아!”
난 녀석이 뻗는 손을 가볍게 피하고 낚아채려 했다. 그런데 궤도가 틀어지면서 손끝을 뾰족하게 만들어서 목을 찔러왔다. 오, 신선했다. 난 보답으로 낚아채 기뢰를 퍼부어줬다.
콰드드득!
“끄아아악!”
오른팔 뼈 전체가 가루가 된 유흥렬이 비명을 질렀다. 난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 두 다리도 부러뜨리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반짝반짝이는 걸 보니 스타일이 아닌 탈모였다. 갑자기 숙연해졌다. 정주호도 나중에 저렇게 되는 걸까. 유흥렬처럼 한 번 싹 밀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유흥렬이 탈모로 머리를 민 걸 알게 되자 난 더 때리지 않고 단상 앞으로 돌아왔다.
“내 사냥 순번을 어그러뜨려 정부와 길드 사이를 이간질하고 대응을 늦추려 한 것. 나는 유흥렬에게 마물안보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이의 있으신 분?”
“······.”
아무도 없었다. 그럼 녀석의 죄가 성립이군.
마물안보법은 마물의 습격 상황에서 분열되는 걸 막기 위한 제도다. 마물의 위협 아래 인류가 하나로 뭉치기 위해 거의 모든 나라가 이 법을 제정했다.
죄가 결정된 순간에도 유흥렬은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시끄럽네.”
난 회복제 병을 꺼내 녀석에게 집어던졌다. 퍽! 소리와 함께 유리병이 깨지면서 머리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그 사이로 회복약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낫기 시작했다.
난 다시 길드 관계자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조만간 뵈어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
“우선 누리를 사냥해야 하니 그 후에 차근차근 뵙도록 하죠. 다시 볼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나만 기대 되나? 다들 표정이 안 좋다. 뒷담을 했으면 당사자 귀에 들어갈 것도 생각해야하지 않나?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용건을 마친 나는 회의장을 벗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장은 소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
최준호가 나간 곳을 지켜보던 이세희가 백군서에게 물었다.
“삼촌이 보시기에 어떠세요?”
“나라도 저렇게 못한다. 가장 무모한 방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했어.”
“그 정도인가요?”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인 걸 봤지?”
“네.”
“저건 비행 기프트가 아니다. 순수하게 포스로 몸을 지탱하면서 자유자재로 이동한 거지. 무지막지한 양을 쓰지 않으면 유지조차 할 수 없다.”
백군서가 고개를 저었지만 이세희는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같은 수법을 사용하면 나라고 해도 오래 못버틸 거다. 근데 최준호는 블랙와이번을 상대하고 돌아갈 때까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녀석에게 그 정도는 무리하지 않는 선이었단 거지. 얼마나 포스가 많으면 저게 가능한 건지.”
“그렇게 어려운 걸 줄 몰랐네요.”
백군서는 결코 실력이 떨어지는 초인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형길드 소속 초인 3명 중 최강으로 꼽히는 경우는 적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제 몫을 해주는 웰메이드 초인이다.
특히 세 초인 중 포스량은 으뜸으로 꼽힌다. 그런 그조차 엄두도 못낼 행동을 최준호가 해냈다고? 놀라웠다. 대체 그의 저력은 어디가 끝일까.
“블랙와이번을 쉽게 잡아내고 2번을 고집했다는 건 이유가 있겠지. 누리에 뭔가가 있다. 네 생각대로 4번을 고르는 게 낫겠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니, 불안감이 들 때 사리는 게 옳은 행동이지. 오너의 감이란 게 그런 거다. 네가 아니었으면 플랜이 꼬인 우리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었어. 네 감이 맞았다. 잘했다, 세희야.”
“네.”
백군서도 동의했으니 이세희가 감수해야 할 위험은 사라졌다.
“그나저나 최준호를 관리해야하는 천 실장은 꽤 힘들겠어.”
“유능하신 분이시니 잘 헤쳐나가겠죠.”
둘은 천명국을 보며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정과 믿음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다.
*
다소간 소란이 있었지만 이후 회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제8호 마물 누리를 가장 먼저 상대할 권리를 획득한 것은 아방가르드 길드였다.
순서는 차례대로 1순위 아방가르드, 2순위 최준호 사냥팀(이름미정), 3순위 사신 길드, 4순위 신성 길드였다.
아방가르드, 사신, 신성 길드 모두 레벨 8 초인을 보유한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 끈 것은 사냥 순번이 아니었다.
바로 최준호의 블랙와이번 사냥 동영상이었다.
회의장에서 나온 영상을 촬영한 거라 영상의 질은 조악하기 그지없었지만 여파는 실로 강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가득 뒤덮던 것이 ‘최준호 반쪽설’이었기 때문이다.
반쪽짜리라는 말은 빌런을 상대로 강력한 무위를 발휘하지만 마물 앞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각성자를 말한다.
마물과 각성자의 등장 이후, 헌터의 가치가 상승한 것은 비싼값에 거래되는 마물의 부산물을 구할 수 있어서다. 최우선 가치가 돈이다 보니 사냥을 못하는 헌터의 가치는 매우 낮아진다.
빌런을 잡아봤자 치안이 미세하게 좋아질 뿐이지만 마물은 심장과 가죽, 부산물을 남기기 때문.
사냥 이력이 전혀 없는 최준호도 반쪽짜리 유형이 아닐까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사냥 영상이 공개되자 의혹은 씻은 듯 사라졌다.
인터넷 반응도 극적이었다.
-미쳤다, 미쳤어. 유해 7단계 마물 한방 컷 실화냐?
-블랙와이번이 저렇게 허접한 마물이었음? 3단계 마물 일격에 잡고 언플하는 거 아님?
-착각 ㄴㄴ 블랙와이번은 7단계 중 가장 까다로운 마물 중 하나임.
-TMI)속도도 속도고 10km 넘는 곳에서 상대 식별이 가능함. 가죽은 레벨 7이 전력을 다해야 뚫을 수 있고 하늘 위에서 엄청 성가시게 브레스 쏘아댐. 그리고 분노조절도 잘해서 아니다 싶으면 도망도 잘친다.
-7단계도 이렇게 쉽게 잡으면 8단계도 안심 아님? 왜 순번 1번 아닌 거?
-이유는 모르겠지만 뭐가 있지 않을까?
-사냥팀도 없이 혼자서 잡는 거 진짜 멋있다;; 최연소 레벨 8에 사냥 실력도 뛰어나고 잘생겼고, 진짜 세상 불공평하네.
-공중 밟는 저거 포스 미친 듯이 소모되는데 최준호는 포스량도 넘사벽인가보네.
사냥 실력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면.
그 뒤에 벌어진 일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영상 뒤가 더 무서움 ㄷㄷㄷ 나오진 않았지만 회의장에서 최준호가 자기비판한 헌터 조져버림.
-그게 가능한 이야기임?
-TMI) 최준호는 자기비판한 기레기도 생방송 중 조져버렸다. 헌터라고 안 조절 거라 생각했으면….
-최준호가 마물 누리 사냥 순번 맡는 걸 이의제기했나 봄. 최준호는 그걸 즉석에서 마물안보 위반죄 씌워버림.
-킹물킹보위반죄 ㄷㄷㄷ
-그보다 더더더더 무서운 건 뭔지 앎? 최준호가 그동안 자기 반쪽짜리라고 떠들고 다닌 사람 리스트 작성했다고 함.
-ㅁㅊ 그거 블랙리스트 아님? 근데 그러고도 남을 놈이란 게 더 무서워.
-헐 ㄷㄷ 여기서 악플 단 사람도 다 적어놓은 거 아님?
-우리도 최준호 방문 받는 거냐? 미쳤네.
몇몇은 장난으로 받아들였지만 진심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거 블랙리스트 아님?
-아니라던데?
-정보)최준호는 불체포특권을 갖고 있으며, 그게 없더라도 최연소 타이틀에 사냥 실력 검증된 초인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ㅁㅊ 그거 떠든 사람들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나도 모르지. 근데 몰라서 더 무서운 거 아니냐?
-최준호 웃으면서 기레기 조질 때 장난 아니었는데.
-떠들고 다닌 사람들 잠 못잘 듯;;
-이미 지렸을지도. 빨리 삭제하고 머리 박아라.
-크크크, 곧 피와 살이 난무하는 살육파티가 벌어지겠군…!
최준호가 말했던 대로 사적인 보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리를 상대하기 위해 각기 준비에 들어간 사이, 국가수호국, 대외협력관리국, 대마물방위전선국의 주도 아래 대대적인 빌런 소탕 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빌런을 모조리 체포한다!”
마물이 날뛰면 빌런은 그 사이를 교묘하게 파고든다. 헌터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틈을 타 몇 번이고 소란을 일으켰던 만큼 아방가르드 길드가 1차 저지선을 구축할 때 삼국은 힘을 모아 빌런들을 소탕했다.
기습적인 작전 전개에 무려 천 명이 넘는 빌런이 죽거나 체포되었다.
그중 가장 빼어난 활약을 한 건 ‘나찰녀’ 정다현이었다.
이전까지 그녀의 이미지는 솔선수범하는 반듯한 공무원 헌터였다.
정의로움, 빛나는 재능, 아름다운 미모 등등이 이름 앞에 붙었으나 이번 체포 작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전과 확연이 달랐다.
빠른 판단, 가차 없는 손속, 빌런을 향한 무자비함.
무려 백 명이 넘는 빌런이 그녀의 손에 쓰러졌다.
체포 작전 막판에 수십 명의 빌런들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달려들었음에도 두 다리를 모두 잘라버려 빌런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하나둘씩 폭탄이 터져 폭사하는 가운데 그녀는 침착한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폭탄을 들고 있는 빌런은 다리를 자르세요.”
사실상 홀로 폭사하게 두라는 지시에 빌런들은 겁에 질려 항복하고 말았다.
*
빌런 체포 과정과 아방가르드 길드의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정부에서는 물가 폭등을 막기 위해 강력한 통제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유해 8단계 마물의 존재를 갖고 호들갑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정부의 대처는 단호했다.
지지율을 믿고 밀어붙인 것이다. 야당이 뭐라 떠들었지만 역시 지지율이 깡패였다.
“나라 꼴 잘 돌아가는군.”
나는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만족스러웠다.
초인이 되고 얼굴 팔린 게 이런 장점도 있었다. 특히 빌런 소탕에 일일이 나서지 않고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되어서 굉장히 편했다.
옆에서 눈을 부릅 뜨고 감시하는 사람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천명국의 요청으로 각성자안보실에 방문한 나는 기밀문서(라고 쓰고 블랙리스트)를 읽었다.
여러 번 읽어둬야 누가 어떤 말을 어떻게 했는지 부지불식간에 보더라도 떠오를 수 있다.
빚을 갚아줘야 할 대상이 앞에 나타나는데 몰라보면 상대가 얼마나 섭섭할까.
난 그들에게 실망을 끼칠 생각이 없었다.
“······.”
“오셨으면 말을 거시지요. 이건 언제든 볼 수 있는 거라 괜찮거든요.”
나는 보고 있던 기밀문서를 접어두고 천명국을 맞이했다. 기밀 문서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쉰 그가 맞은편에 앉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뭘 걱정하는지 알면 안하시면 안 됩니까?”
“당연히 안 되죠.”
“······.”
“대신 누리를 사냥할 때까지 여기 있는 사람을 보더라도 참겠습니다.”
나도 공과 사는 분명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신경이 누리 사냥에 맞춰져 있으니 그게 끝난 뒤 처리할 생각이었다.
“천 실장님의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해주실 줄 몰랐는데.”
“대충하면 직접 나서셨겠죠.”
“어떻게 아셨어요? 아무튼 읽어보니 사소한 건도 많더군요.”
“예, 초인님이 마음을 넓게 쓰시면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뒷담 정도는 하지 않습니까? 그거 한 마디 했다고 복수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은?”
천명국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린다.
누가 보면 내가 복수에 미친 빌런처럼 보이겠다.
나는 천명국에게 기밀문서 편집본을 보여줬다. 초기 버전보다 얇아진 버전이다. 나는 밤을 새워 기밀문서를 세 번이나 읽어본 끝에 3/4에 해당하는 사람을 목록에서 삭제했다.
“의도적으로 음해하려 한 사람들만 보고 있는 중입니다. 얇아졌죠?”
“···부디 좋게 끝나길 바랄 뿐입니다.”
“물론이죠. 다 좋게 끝날 겁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좋게.
블랙리스트를 받고 든 생각이 뭐냐면 음, 이거 다 족치다가 우리나라 길드 2/3가 사라지겠구나, 였다.
내 말에도 불구하고 천명국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때, 비서관이 들어오더니 소식을 전해왔다.
“아방가르드 길드의 이찬택 마스터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이찬택은 아방가르드 길드의 마스터이자 레벨 8 초인이다.
“이 사람도 블랙리스트에 있던데.”
“제발······.”
“오히려 이 사람이 더 괘씸한 거 아닙니까? 자기도 초인이면서 비난이나 하고.”
생각해보니 그러네?
“근데 저는 국가의 선택을 받은 초인인데 절 모욕하면 국가의 선택을 의심한 거니 국가를 모욕한 거 아닙니까?”
“······.”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