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4
44화
44화
아방가르드 길드 마스터 이찬택.
올해 나이 52세.
올백으로 넘긴 머리에 지방기가 느껴지지 않는 각진 얼굴,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눈에 띄었다.
차가운 심장을 가진 남자로 철저하게 길드의 이익을 좇고 손해가 되는 건 가차없이 버리는 인물이다.
저번 생에서도 대타협을 이루고도 철저하게 길드 전력을 감싸고 돌았지. 그래서 마주한 적 없었다.
천명국과 먼저 인사를 나눈 이찬택이 날 보며 말했다.
“누리에 대한 정보를 듣고 싶어서 찾아왔다.”
“초면부터 반말?”
“······.”
툭 던진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근데 뒷담 까고 다닌 양반을 대우해주는 것도 많이 참은 거다. 이 양반이 뭐라 했더라? 애송이의 초심자 운은 오래 안 갈 거라고? 길 가다 객사하기 딱 좋다고 했었지.
아방가르드 길드가 사냥 순번이 1번 아니었으면 먼저 손 봐줬을 것이다.
열 받아서 지금 덤비면 나야 좋고. 이 양반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내가 실례했군. 누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알려줄 수 있습니까?”
태세 한 번 빠르게 바뀌었다. 난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미소 지었다. 존대도 해주지.
“그걸 애송이한테 묻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블랙와이번에 누리가 남긴 흔적이 남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눈치 빠른 인간이다. 블랙와이번이 누리에 쫓겨난 걸 생각해내고 흔적이 남았을 걸 짐작한 것이다.
그것은 정답이다.
“맞습니다. 블랙와이번에 흔적이 있습니다.”
“어떤 겁니까?”
“꼬리 끝에 그을린 흔적이 있습니다.”
가죽이 검은색이라 해체하다 본 흔적이다.
“화염 속성인가.”
“그리고 칼로 베인 자국도 있습니다.”
“블랙와이번에 저항한 사냥팀이 남긴 흔적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지요.”
“뭡니까?”
“누리의 기프트.”
내 말에 이찬택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렇게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나?
“···헛소리!”
“좋을 대로 생각하길. 난 알려드렸습니다.”
“유익한 정보는 없군. 그래도 필요한 정보를 얻었으니 난 이만 돌아가겠다.”
바로 반말로 회귀로군. 진짜 회귀할 수 있게 해줘야 하나. 하지만 옆에서 피똥 쌀 거 같은 표정으로 보는 천명국 때문에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사냥하면서 적잖이 고생할 테니.
난 밖으로 나가는 이찬택을 붙잡지 않은 대신 천명국에게 말했다.
“아방가르드는 쉽지 않을 겁니다.”
“정말 누리가 기프트를 갖고 있을 거라 보시는 겁니까?”
“다온의 경우를 생각해보시길.”
다온은 제7호 마물로, 거북이 형태로 바다와 육지를 오가면서 황해를 초토화 시켰던 8단계 마물이다.
마지막 숨통을 끊는 순간, 다온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해일을 일으켰는데 이를 놓고 마물이 기프트를 사용하는가 토론이 벌어졌다.
우연이 겹친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여러모로 찜찜함을 남긴 사건이다.
“마물은 기프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지 능숙함의 차이일 뿐. 이걸 받아들이고 아니고의 차이는 엄청나다.
마물의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첫 등장한 유해 8단계와 10년 후 등장하는 8단계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마물도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아 8단계에 오르기에 그렇다.
어쩌면 유해 9단계일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제정신이 아니던 내가 거기까지 알진 못했고.
“아니길 바랍니다. 이번만큼은 초인님의 말이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지켜보면 알 겁니다.”
예상이 빗나가서 아방가르드 길드가 사냥 성공을 해도 나한테 손해될 건 없었다.
근데 성공 못할 거다.
*
“마스터, 청와대는 잘 다녀오셨······.”
누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외출하고 온 이찬택을 맞이하던 부길드 마스터 하성훈은 잔뜩 굳은 마스터의 표정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그 애송이, 마음에 안 들어.”
“최준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게 바로 반말을 내뱉더군.”
하성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그 블랙리스트가 사실인가 보군요.”
“천 실장, 유능한 재능을 그렇게 사용해서 최준호의 개가 되다니. 실망이 커. 사신 길드에서는 빈틈없이 일처리를 잘하더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최준호가 미친개인데요. 잘 달래려면 우쭈쭈 해줘야죠. 그나저나 청와대 다녀온 성과는 어떻습니까?”
“······.”
이찬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물이 기프트를 사용한다고? 마물의 기프트 사용설은 다온 때 잠시 언급된 궤변에 불과했다.
대비하는 건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존재할 가능성이 희박한 기프트를 신경 쓰다 사냥 과정에 차질이 생기면 다 잡은 사냥감을 놓칠 수 있다.
길드의 총력을 기울인 사냥이다. 성공하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고, 길드의 명예도 대한민국 최정상에 우뚝 설 것이다.
행여나 실패하면 그 다음 순번이 최준호다. 이번 사냥에 길드의 운명을 건 이찬택은 녀석이 자신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기만책이라 여겼다.
대비는 자신이 혼자서 하면 된다.
“성과는 없었다. 계획대로 간다.”
“예!
그로부터 사흘 후, 충북 괴산군에서 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
제8호 마물 이름이 누리가 된 것은 태풍위원회 회원국이 고유 언어로 이름을 붙이던 것이 시초가 되었다.
우리 고유 언어로 마물의 이름을 붙였고, 이는 마물의 속성과 특징을 고려하지 않았다.
붙여지는 이름도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를 띠었는데, 이는 뉴스에 나올 때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지 않기 위해서고 헌터들의 사기와 무사 사냥을 빈 요소가 섞여 있었다.
실제로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마물을 상대하기 위한 총력전 형태를 띠면서 유야무야 사라졌다.
누리의 등장이 예고했을 때부터 각성자안보실과 전국 길드 연합은 누리가 등장할 곳으로 세 곳을 꼽았다.
충청북도에 위치한 청주시와, 음성군, 괴산군이다.
청와대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 천명국이 상황을 설명했다.
“누리의 모습은 참매와 거의 일치합니다. 크기는 12m가량, 특징이라면 전신이 붉은빛을 띠고 있고 고온의 열기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이는 블랙와이번의 꼬리에 남은 흔적이 누리에 의한 것임이 맞았음을 의미합니다.”
누리는 블랙와이번의 가죽을 태울 만큼 높은 고온의 불을 내뿜을 것이다. 가설이던 정보가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누리는 음성군의 민가를 덮쳤습니다.”
“피해는?”
대통령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대피가 이루어졌음에도 민간인과 마물 대응팀에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마물은 본능적으로 인류를 적대시한다.
이는 단계가 높아질수록 그 성향이 두드러지는데, 괴산군에서 모습을 드러낸 누리는 바로 위에 위치한 음성군을 습격했다.
정부에서는 최대한 피난을 유도했지만 어딜 가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이번에 발생한 민가의 피해도 같은 유형이다.
대통령이 침음을 흘렸다.
“아방가르드 길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이천시에서 음성군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방해가 없는 개활지에서 상대할 예정입니다.”
“전력은 충분한가?”
“아방가르드 핵심 전력 전부가 동원됐습니다.”
“잡으면 큰 명예를 얻겠지만 실패하면 대형길드 한 축이 흔들리겠어.”
아무리 대형길드가 국가 권력을 탐한다 해도 그들로 인해 얻는 이익은 무시할 수 없다. 대형길드에 밀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성자 전력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최준호 초인은 사냥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실패할 겁니다.”
“······.”
내 생각을 물어봐놓고 왜들 그러나?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
“마물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물의 역량 파악입니다. 대통령님은 마물의 강함을 볼 때 어느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크기 아닐까?”
절대 아니다. 그런 걸로 치면 누리가 블랙와이번을 형님으로 모셨어야지.
“마물의 강함은 순수성에 있습니다.”
“순수성?”
“태어난 원형을 말합니다. 누리는 참매와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건 태어날 때부터 강력한 힘을 타고난 마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마물이 마물을 잡아먹고 복잡한 변형이 이루어질수록 출력이 불안정하고 포스 수발도 부자연스러워진다.
“그 순수성으로 8단계에 올랐다는 게 위험하다는 말의 의미겠어. 근데 왜 실패할 거라 보나?”
“전력 부족입니다. 그리고 사냥팀에 필요 없는 인원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볼 때 누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레벨 8과 다섯 명 이상의 레벨 7, 스무 명의 레벨 6이 받쳐주면 잡을만하다.
만약 레벨 8의 기프트가 원거리 공격이라면 더 수월할 테고. 하지만 아방가르드의 전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고 이찬택부터가 전형적인 자기 능력만 믿는 독불장군형이다.
성공하면 카리스마 있는 보스지만 실패하면 고집불통 머저리지.
이번 경우는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내가 사냥할 땐 이야기가 다르다.
“······.”
분위기가 싸늘하다.
“걱정하지 마시죠. 자기 길드 인원 끔찍하게 생각하는 양반이니 무모하게 목숨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괴수를 처리하는 게 문제지.”
“그걸 왜 걱정하십니까? 제가 갈 겁니다.”
난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건데 보는 눈들이 왜 저래? 불손한 눈을 한 사람들, 일단 기억해두자.
주변의 시선을 일별한 나는 대통령에게 물었다.
“근데 저거 혼자 잡으면 전부 제 겁니까?”
유해 8단계 마물 가격이 최소 1조 5천억 이상인 걸로 알고 있다.
여기에 심장 가공은 내가 맡으면 더 값어치가 높아지겠지.
된장찌개 하나가 6천원이면 2억 5천 그릇이다.
“사냥만 가능하면 다 자네 거야.”
“좋습니다.”
*
천명국과 둘만 남은 자리에서 대통령은 조금 전 내용을 떠올리며 물었다.
“최준호의 분석, 어떻게 보나?”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게 들렸어.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설득력이 있었지.”
최준호의 말은 묘한 매력이 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임에도 강하게 실린 자기 확신. 그것은 기존에 쌓인 데이터에 대한 신뢰를 흔들리게 만들 정도로 강하게 와 닿았다.
“최준호 초인의 말은 여태까지 분석된 적 없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믿어서도 안 되고 행동으로 옮겨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눈을 마주한 천명국이 말했다.
“그 말이 틀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게 문제로군.”
“예.”
“그럼 이번에도 그의 말대로 될 거라 보나?”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오직 최준호의 말밖에 없지만 데이터와 최준호의 말 중 선택하라고 하면 전자였다.
문제는 그 말이 현실이 되었을 경우다.
“아방가르드가 뚫리면 광주 혹은 용인에서 저지하게 되겠지. 여기서도 막지 못하면 그 다음은 서울이 코앞이야. 사신 길드에 연락해. 만약에 대비해서 전력을 준비해두라고.”
천명국은 사신 길드 부마스터 출신. 다소 이른 준비를 주문하더라도 충분히 양해를 구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걱정하던 일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
처음 누리와 마주할 때만 해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해 8단계치고 덩치도 크지 않았고, 발산하는 기세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돌변했다. 누리는 여태까지 봐온 8단계 마물과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전투 시작 5분도 되지 않아 지옥이 펼쳐졌다. 겨울의 마른 나무와 풀들이 만들어내는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내 불찰이다.”
이찬택은 허공 위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 이 지옥을 만들어낸 녀석은 자신조차 안중에 없는 것처럼 고고하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리는 날렵하고 매서웠으며, 헌터들이 걸친 무구조차 녹여버릴 정도로 강렬한 브레스를 연사했다.
무엇보다 최준호가 경고했던 ‘기프트’가 결정적이었다. 날갯짓으로 일으킨 칼날 폭풍은 피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기프트 칼날 폭풍이 발동하면 반경 50미터가 포스 칼날이 휘몰아쳤다. 하나하나가 레벨 7의 포스 블레이드에 버금갈 만큼 강력했다.
첫 칼날 폭풍에 휘말려 열 명이 넘는 소속 헌터가 갈가리 찢겨나갔다. 잘게 다져진 육편이 되어 본래 모습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확 트인 곳에서 녀석을 상대하려던 게 오히려 실수였다. 브레스도, 칼날 폭풍도 피할 곳이 없었다.
녀석은 자신의 기프트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평생 피땀 흘려 일군 길드원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이다.
이찬택은 자신의 선택이 최악이었음을 인정했다.
“모두 후퇴해라! 내가 뒤를 맡겠다.”
“마스터!”
“녀석의 눈을 끌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내 말을 들어! 하성훈! 애들을 데리고 빨리 벗어나!”
“···무사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남긴 하성훈이 잔존 전력을 수습하여 후퇴했다.
홀로 남은 이찬택은 누리의 어그로를 끌며 상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비행 마물을 상대하려면 밑으로 끌어내려야 하는데 길드의 모든 전력을 보낸 탓에 공격이 닿질 않았다.
“끝인가.”
하늘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누리가 보였다. 그리 크지 않아 쉬운 상대라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멸망시킬 괴물로 보였다.
키에에!
그 울음소리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그토록 잘난 척 해놓고 허망한 최후라니. 세상이 자신을 비웃을 것이다.
아방가르드 위상은 추락하고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하겠지.
“······.”
평생 일궈온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부서지는 느낌에 이찬택이 이를 꽉 물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맹렬한 속도로 접근하는 한 인영이 있었다. 허공을 밟듯 빠르게 하늘 위로 향한 인영은 일직선으로 쇄도하더니 누리의 머리를 후려쳤다.
키에에엑!
괴성을 지른 누리가 브레스를 뿜었지만 어렵지 않게 피해내며 다시 한 번 머리를 후려쳤다.
“물러나.”
“최준호······!”
갑자기 등장한 구원군을 본 이찬택이 눈을 크게 떴다가 황급히 물러났다. 그 사이 누리의 날갯짓으로 펼쳐진 칼날 폭풍을 헤치고 접근한 최준호가 누리의 머리를 후려쳤다.
쾅!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누리가 비틀거리더니 섬뜩한 살기와 함께 전신에 열기를 발산하면서 더 위로 날아올랐다. 최준호의 공격 범위에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안 부서지네.”
최준호가 누리 머리통의 단단함에 감탄했다면.
이찬택은 기이할 정도로 머리에 집착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헤드 브레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