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7
47화
최준호가 밖으로 나가고, 천명국이 조심스럽게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잔뜩 들뜬 것 같았던 대통령의 얼굴은 차분하게 바뀌어 있었다. 대통령은 정치인의 정점이다. 표정을 바꾸는 것쯤 그리 어렵지 않다.
“최준호 초인을 위해 구병도 사장을 자른 겁니까?”
“그래.”
“어째서······.”
“구병도가 보는 눈이 없으니까.”
대통령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최준호에게 그 전에 어떤 말을 해도 상관없어. 우리나라는 발언의 자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최준호가 자기 실력을 보여 준 이상 상황은 달라졌지. 자기가 했던 말을 책임져야 돼. 그 말을 해 놓고 최준호가 주는 콩고물을 받아먹는 건 염치가 없지. 안 그런가?”
“······.”
“그리고 구병도는 마력 공사에서 해 먹는 게 너무 많아. 슬슬 교체를 고려해야 하는 시기인데 잘 됐지. 이번 기회에 최준호를 대할 때 조심하는 버릇을 들이라는 경고로 쓰기 좋을 거야. 정권은 바뀔 수 있지만 최준호의 가치는 변함없이 이어질 테니까.”
최준호를 건드리면 대통령의 측근이라 해도 잘릴 수 있다.
구병도는 좋은 본보기였다.
“천 실장도 명심해. 최준호는 길들일 수 없는 개야. 기분이 좋으면 우리에게 맞춰 주지만 수가 틀리면 언제든 우리도 물 수 있어.”
“명심하겠습니다.”
“구병도는 바로 짤라.”
* * *
한국 마력 공사의 사장 자리는 요직 중 요직이다.
대한민국 정부 산하의 사냥팀이 사냥한 모든 부산물이 모여드는 곳이며, 그곳에서 막대한 이익이 발생한다.
돈은 곧 힘을 의미했다. 대대로 마력 공사 사장은 대통령의 측근만 갈 수 있는 자리였다.
대통령 측근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자발적인 사임이라 공표했지만 숨겨진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기 바빴다.
“···구병도는 최준호에게 밉보여서 잘렸다. 그러니 최준호에 대한 말을 삼갈 것. 이러던데?”
정주호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능글맞게 행동하면서 은근슬쩍 정보를 캐내려는 게 다 보였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내가 볼 땐 이게 백퍼 맞아. 대통령님이 지지율로 재미를 봤으니 그걸 따라가는 거지. 안 그러냐?”
“글쎄요.”
“아무튼 이걸 보면 앞으로 잘 보여야겠어. 나도 심기 거스르면 잘리는 거 아냐?”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고요. 그리고 잘리면 모셔갈 곳이 줄을 설 텐데 그런 걱정을 해요?”
“야, 나라고 뭐 걱정이 없겠냐. 생각 많아.”
저것도 다 엄살이다.
누리가 나타나기 전,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빌런 소탕 작전에서 정주호는 큰 공을 세웠다.
천 명이 넘는 빌런을 잡는 작전을 국가수호국이 주도했던 것이다. 이로써 삼국에서 정주호가 가장 먼저 승진할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삼국 전체를 아우르는 작전을 성공시키면서 정주호의 용인술이 높게 평가받았다.
유일한 흠이라면 정다현의 손속이 너무 독해졌다는 것 정도? 그거 칭찬 아닌가.
“나찰녀가 뭐냐, 나찰녀가! 다현이가 얼마나 화려한 꽃길을 걷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다 망쳤어!”
“칭찬이 좀 이상한데요.”
“칭찬 아니라고, 이 자식아! 왜? 초인한테 소리 지르니까 불만이냐? 엉?”
“불만 없고요. 이건 다현이가 선택한 겁니다.”
“그 영향을 끼친 게 너고. 내가 널 부사수로 붙인 게 인생 최대 실수였어. 다현이가 제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물들어서 그 순수하고 정의롭던 아이가 이제는 빌런은 다리부터 잘라 놔야 한다고 말하고··· 빌런이 던진 수류탄 후려쳐서 입에다 넣었을 땐 진짜, 후우!”
정다현을 많이 아꼈나 보다. 그럼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마음가짐 하나만으로 날 만나기 전과 후의 정다현은 차원이 다른 강함을 손에 넣었는데.
지금의 선택이 오히려 옳다고 본다. 더 노력하면 저번 생보다 이르게 레벨 7이 될 것 같은데.
난 실의에 빠진 정주호를 위로해 줬다.
“스트레스는 탈모에 안 좋습니다.”
“너랑 말해서 그래. 그리고 내가 알아서 지킬 거니까 신경 꺼. 남한테 들어봤자 기분만 나쁘니까.”
“저번에 유흥렬을 보니 차라리 시원하게 미는 것도 좋아 보이던데요. 국장님은 두상도 꽤 예쁘니까 한번 고려를······.”
“당장 나가!”
노발대발하는 정주호로 인해 쫓겨나듯 국장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히스테리해지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승진도 가장 유력하다면서 조금 너그럽게 굴지. 근데 진짜 빡빡 밀고 콧수염을 기르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한번 권유해 봐야지.
국가수호국을 나가기 전 정다현을 보고 갈까 싶었는데 외부 순찰 중이다. 이번 빌런 소탕 작전을 성공하여 팀장으로 승진한 그녀는 빌런전담반을 팀으로 끌어올렸다.
나는 톡으로 안부를 남겼다. 제법 휑한 내 톡은 버서커의 국내일주 내용으로 가득했다.
아무튼 정다현의 성장은 고무적이다.
“길을 정하니 진도가 빠르게 나가네.”
그 확신이 자신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내 사냥 실력을 놓고 주변에서 모두 놀라고 있지만 누리 사냥은 내게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굳이 새로운 점이라면 제정신으로 처음 잡는 유해 8단계 마물이었다는 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까다롭긴 했지만 내겐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나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달라졌다. 오죽하면 오종수가 연락 오는 숫자가 너무 늘어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나는 전화선을 뽑아 놓으라고 했다.
진짜 필요한 일이면 천 실장에게 하겠지. 거긴 직원도 많으니 알아서 잘 걸러 줄 것이다.
국가수호국을 나와 내가 도착한 곳은 신성 길드 본사였다. 프런트를 거칠 것 없이 주차장에서 곧장 팀장실로 올라갔다.
“어서 와요. 왜 오랜만에 뵙는 기분이죠?”
“저번 전길연 회의에서 봤잖아.”
“그땐 멀리서 본 거니까요. 앉으세요.”
날 맞아주는 이세희는 여느 때와 같이 화려했다. 풍성한 웨이브펌에 검은 투피스 위로 하얀 자켓을 걸쳤다. 저번에 봤던 차분함과 확연히 대비되었다.
내가 이세희를 찾아온 건 주변에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조언도 구하고 싶어서다. 의뢰한 건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고.
우선 절단 부위 붙이는 포션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나는 돈이 들어오면 좀 더 투자하기로 했고 이세희는 넙죽 받아들였다.
“준호 씨 보고 외국은 아주 난리가 났어요.”
“왜?”
“혼자서 유해 8단계를 잡았으니까요. 아방가르드 길드에서 힘을 많이 빼놓았다는 설에 힘이 실리다가 이찬택 마스터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면서 호기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 중이에요.”
“커질 게 있나?”
“그럼요, 최준호 초인이 어떻게 누리를 잡은 건가는 초미의 관심사거든요.”
이찬택 인터뷰는 나도 봤다. 아방가르드는 이번 사냥에서 공이 없다면서 내 실력을 깔본 걸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저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싶었다. 이제 나도 빌런이 아니고 국가공인 초인이니까, 블랙리스트에 있는 녀석들이 사과할 시간을 조금 주기로 했다.
이찬택의 사과로 인해 다시 한번 블랙리스트가 부각되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내가 일일이 다 나서지 못하더라도 저 말만으로 상대를 신경 쓰이고, 두렵게 만들 수 있으니까. 줄줄이 다 사과할 수도 있겠다.
이세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잡으신 거예요?”
“그냥 때려잡았는데.”
“뭐가 그리 간단해요. 막 누리 습성 파악하고 습관을 이용해서 빈틈을 콱! 그 안에 숨어 있는 수많은 노림수와 작전안들, 그런 건 없어요?”
“없어. 그냥 가까이 접근해서 머리통을 후려친 게 끝.”
“···그렇게 간단하면 모든 헌터들이 마물 사냥에 그리 고생하지 않겠죠.”
진짠데 믿어 주질 않는군.
“그리고 이찬택 초인을 매료시킨 것도 대단해요.”
“너만 할까.”
“전 아무것도 아닌데요?”
아닌 척 하는 이세희가 진짜 여우였다.
무방비로 부모님이 이세희에게 홀린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준호 씨가 누리를 온전하게 잡은 것도 주목받고 있어요. 보통 사체가 저렇게 멀쩡하게 도착하지 않거든요. 비법이 있나요?”
죽을 때까지 브레인워싱을 해 버렸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누리가 반응 없이 내 행동을 지켜봤던 거 같다.
어쩌면 그게 테이밍 된 거 아닐까?
사실 테이밍을 해 본 적 없어서 된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에 또 해 보면 되겠지.
이세희가 외국의 반응을 앞세웠지만 이런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어 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앙큼한 태도였지만 서로 주고받는 게 있으니 이 정도는 넘어가 주기로 했다. 나도 나중에 더 뜯어내면 된다.
“누리의 실물을 보기 위해 많이들 한국으로 올 거예요. 그러면서 준호 씨도 보고 싶어 하겠죠. 아마 많이들 귀찮게 굴 거예요.”
“귀찮을 거 같으면 참여 안 하면 되지.”
“그게 쉽진 않은데, 준호 씨가 그러면 천 실장님이 또 고통 받겠네요.”
“유능한 사람이야.”
“하긴. 원래 유명한 분이니.”
사방에서 오는 연락도 그렇고 외국인들이 오는 것도 천명국에게 떠넘기기로 했다. 적어도 올 거면 한국말은 할 줄 알아야 상대해 줄 거다.
“마음 같아서는 마물의 심장을 저희가 구매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데 어렵겠죠?”
“정부기관에서 구매한다던데.”
“네. 준호 씨가 정부 소속이라 정부에 권리가 있거든요. 아예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정부가 구매를 포기하면 다음 순번을 노려볼 수 있긴 한데 8단계 심장이 나오는 경우는 없어요.”
“법이 그러면 어쩔 수 없고.”
법을 좋아하진 않지만 따르는 시늉 정도는 하는 게 좋겠지.
이세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준호 씨가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뭔데?”
“준호 씨는 마물의 심장을 가공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
“정부에서 마물의 심장 가치를 측정할 때 가공하지 않은 걸 기준으로 해요. 준호 씨가 가공해서 평가받을 수 있으면 훨씬 더 많이 받아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이건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다. 6단계 심장에서 3배를 받았는데 8단계는 어느 정도일까. 6단계는 불순물이 많아 잘 정제해서 10을 30으로 만들었지만 8단계 심장은 이미 상당 부분 정제된 거라 내가 가공을 해도 혁신적인 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1000을 1500정도?
그래도 효율이 1.5배면 1조가 1조 5천억이 되니 좋긴 하겠지.
“네, 근데 쉽진 않을 거예요. 정부기관 측도 자존심이 상당하거든요.”
“상관없어. 자기들이 계속 고집부리면 안 팔고 신성 길드에 팔아 버리지, 뭐.”
“기대되네요.”
* * *
마물의 심장은 훌륭한 에너지원이다.
모든 마물의 심장에는 일정량의 포스가 담겨 있는데, 이 에너지는 친환경에 안전하기까지 해서 모든 발전소를 마물의 심장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핵심 동력원은 8단계 심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원전 같은 곳이 마물의 습격 받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닥치기에 정부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실제로 몇몇 곳이 습격당했고 최악의 상황이 닥치기도 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마물의 심장을 얻으면 친환경 발전소를 통해 전력 수급을 시도했다.
하지만 마물의 심장이 필요한 분야는 발전소 말고도 무수히 많았다.
길드에서는 마물의 심장을 활용하여 위력을 증폭시키는 무기나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방어구를 제작했고, 사냥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키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그래서 정부 산하 사냥팀에서 사냥한 건 정부 몫으로, 길드에서 사냥한 건 길드 몫으로 배정되는 암묵적인 룰이 성립했다.
초기에 정부 산하 사냥팀이 힘이 강할 때가 있었으나 형세가 역전되면서 대형길드가 벌어들이는 양이 훨씬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국가과학마물연구소보다 신성 길드 연구소가 더 좋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그러던 중 내가 누리를 잡았다. 대통령이 말하길, 누리를 잡았다는 속보가 들려오기 무섭게 국가과학마물연구소에서 열다섯 번이나 연락을 해 왔단다.
“오오, 이것이 8단계 마물의 심장!”
자신을 국가과학마물연구소 소장 이명학이라고 밝힌 중년 학자풍 남자는 내가 내민 누리의 심장을 보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주먹 크기의 심장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보석이라 오해할 형태였다. 그 안에 일렁이는 포스 흐름은 영혼을 잡아끄는 힘이 있어서 보는 사람을 홀렸다.
“틀림없는 8단계 심장입니다.”
“가격은 어느 정도입니까?”
“이 정도면 1조는 거뜬합니다!”
이명학은 평소보다 두 톤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가공을 거치면 더 큰돈이 굴러오게 된다.
“가공을 거치면 가격이 더 높아지는 걸로 압니다.”
“예, 저희 연구소에서 최고의 장인들이 달라붙어 가공할 예정입니다.”
“이걸 가공하면 효율이 어느 정도로 높아집니까?”
“8단계 심장은 이미 정제되어 있어 드라마틱한 수준까지 늘진 않습니다. 보통 1.1배에서 잘 가공하면 1.2배까지 효율이 늘어납니다.”
역시, 내가 하는 게 낫겠다.
“그럼 제가 가공을 맡는 게 낫겠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가공을 할 줄 압니다.”
“그래도 8단계 심장입니다! 연구소에는 8단계 심장 가공을 해 본 실력자들이 있습니다!”
이거, 혈종일 때 심장 가공해 본 걸로 하면 댁들보다 많다고 할 수 없고.
가끔 저번 생에 경험을 해 본 걸 하지 않은 척 하려니 답답했다.
“제가 하는 게 더 효율이 좋을 겁니다.”
“절대 안 됩니다!”
“잘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완전히 눈이 뒤집혀서 설득이 안됐다.
나는 방법을 바꿨다. 이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걸 생각해 보았다.
공무원은 역시 자리보전이지.
응? 근데 왜 난 공무원 헌터일 때 안 무서워했지?
“그럼 이렇게 하죠. 만약 제대로 가공을 못 하면 다음 8단계 마물을 잡을 때 심장을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1조가 넘는 걸 말입니까?”
“예. 대신 소장님은 목을 거시지요.”
이명학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갑자기 왜 저래?
“저, 저는 초인님을 뒤에서 욕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성공적으로 사냥해서 무사귀환하시길 고대했습니다.”
반응이 이상했다. 양손으로 목을 감싸면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대통령이나 천명국도 날 미친놈 보듯 보고 있었다.
뭐가 잘못됐나 싶다가 내가 목을 언급한 게 떠올랐다.
“진짜 목 말고요. 자리를 걸라는 겁니다.”
“······.”
“진짠데.”
전혀 믿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