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아무리 그래도 내 비유를 진담으로 받아들이다니.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사실이 좀 슬펐다.
오해를 풀기 위해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그 자리에서 가공하는 장면을 보여 준 것이다.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말한 뒤 나는 누리의 심장에 포스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새파랗게 질려 있던 이명학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손에서 빛을 발하는 누리의 심장을 보고 감탄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오, 오오! 오오오!”
가까이 다가오려다 포스 파장이 튀는 걸 보고 정확히 영향이 미치지 않는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거리 간격은 기가 막히게 하고 있다.
가공을 시작했지만 그 과정이 6단계일 때보다 쉽지 않았다. 상당 부분 정제가 되었다고 하나 불순물은 있기 마련이고, 심장 내의 모든 포스가 내 통제 아래 있어야 했기에 그로 인해 소모되는 심력이 만만치 않았다.
내가 이 정도면 다른 각성자는 단단히 각오해야 하는 수준이다.
우웅! 웅! 웅! 웅!
누리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힘의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가공하는 장인들이 이걸 뭐라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마물의 잔존 사념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
인류를 적대하도록 프로세스 되어 있는 사념은 통제에 끝까지 저항한다.
그래봤자 죽은 녀석의 마지막 발악에 불과하지만.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저항이 약하긴 했다.
누리를 죽이기 전에 브레인워싱을 퍼부어서 그런가. 아니면 테이밍이 되어서? 이유를 모르겠지만 미약한 저항을 가볍게 무너뜨린 뒤 포스를 밀어 넣어 내 방식대로 정리한다. 하트워커에게 배웠지만 타고난 손재주와 눈썰미로 하는 녀석과 달리 난 포스로 밀어 버렸다.
하트워커와 나의 차이는 하트워커는 오밀조밀하게 최적의 경로를 이어 세공하듯 가공한다면 나는 압도적인 힘으로 통로를 개척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포스 소모가 심한 거고.
하트워커를 빨리 잡아 와야 하는 이유다. 녀석이 지금쯤 부산에 있었을 때니 시간을 내서 한번 다녀와야겠다.
30분여 동안 집중한 끝에 가공이 끝났다. 심장 내부의 포스가 좀 전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이건.”
“확인해 보시죠.”
조심스럽게 누리의 심장을 받아든 이명학의 눈이 황홀함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심장에 서린 포스의 양을 측정할 때 더욱 커졌다.
“마, 말도 안 돼! 이 정도의 효율이 발휘될 거라고는······.”
“156.9%네요. 생각보다 잘 됐습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이런 방식의 가공법은 들어 본 적 없습니다.”
그야 하트워커가 미래에 하던 거라 그렇지. 녀석이 빌런 조직과 결탁해서 그렇지 실력 하나는 확실했다.
졸지에 1조짜리가 1조 5690억이 되었다. 가공 한 번 하고 많이 벌었군.
“그럼 가공된 부분으로 계산 부탁합니다.”
“가, 가공 방법이라도!”
“아직 이론으로 정립하지 않은 거라, 차차 알려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재 나밖에 할 수 없기도 하고. 하트워커가 필요한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이명학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해를 풀기 좋은 타이밍이다.
“그리고.”
“예.”
“저 진짜 목 내놓으라고 한 거 아닙니다. 아시죠?”
“···예.”
짧은 침묵 뒤 들려오는 대답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이번에 얻은 8단계 심장이면 발전소 하나를 돌릴 수 있다고 하더군. 그것도 기존에 가공된 것보다 더 오래 돌릴 수 있어.”
대통령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최근 지지율도 그렇고 여러 경사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국가과학마물연구소에서는 최준호가 가공한 심장을 연구에 쓰길 원했지만 대통령은 즉시 발전소에 넣길 시작했다.
마물로 인해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잃고 원전을 돌릴 수 없게 된 인류는 에너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8단계 이상의 심장을 동력원으로 쓸 수 있으면 발전소 하나를 통째로 돌릴 수 있다.
더 많은 에너지가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고, 이것은 시민들의 난민화를 막아 빌런 증가를 막을 수 있다.
“그 가공법은 어떻게 익힌 걸까. 최준호는 양파 같아. 까도까도 계속 나오는군. 다음에는 뭐가 더 나올지 모르겠어.”
“······.”
“기대되지 않나? 마치 어린 시절 선물상자 같아.”
“가끔 꽝도 나오곤 했습니다.”
“그럼 실망해서 울곤 했지. 여기서 꽝은 뭘까? 이런 건 어떤가. 최준호가 실은 말소자였다던지.”
“큰일 나실 말씀입니다.”
“농담이야.”
대통령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천명국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가정 자체만으로 속이 쓰려 오게 만드는 존재였다.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레벨 8이라 해 본 말일세. 말소자는 첫 등장 이후 나타난 적 없으니 착오가 있거나 버서커가 오해받은 거겠지. 그 버서커마저도 최준호와 협력 관계로 우리 전력이 되었고. 아주 효자야, 효자.”
흐뭇하게 웃던 대통령은 천 실장에게 말했다.
“여유 전력을 동원하면 스마트팜 가동도 가능하겠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거주지도 중요하지만 최우선은 식량이야. 반드시 잡아야 할 인원에게 혜택을 베풀어야 그들이 더 많은 효율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럼 난민 발생 빈도도 줄어들겠지.”
“도시 외곽 슬럼화는 상당 부분 멈춘 상태입니다.”
“서울은 안정권에 들었으니 부산이 문제로군.”
“하지만 유 시장은······.”
“욕심 많은 양반이지. 이 자리에 오고 싶어 하니까.”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인 부산은 최근 규모를 키워 나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빌런 조직의 급격한 성장이 숨어 있었다.
부산시장의 욕심과 빌런의 욕망이 부합한 결과물이다.
“아직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니 유 시장이 영특한 걸로 하자고.”
“몇 년 뒤 큰 문제로 부상할 것입니다.”
“그 전에 싹을 자르면 돼. 내 임기가 끝나기 전에 최준호더러 한 번 가라고 하면 어떤가? 싹 쓸어버리지 않을까?”
“······.”
천명국은 부산 앞바다가 피로 물드는 상상을 했다.
“그나저나 마물의 심장 하나로 이토록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데, 길드들이 조금만 욕심을 줄여 주면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그리 보시면 안 됩니다.”
“아네, 알아. 닭이냐 달걀이냐 문제인 걸.”
길드에서 마물을 사냥하면 부산물 대부분 사냥에 필요한 도구로 재투자한다.
그것이 더 많은 마물을 사냥하기 위한 과정인 걸 대통령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에너지가 모자랄 때 길드에 도움을 청해도 협력은 미미했다.
그때마다 길드가 가진 권력이 국가 권력을 조금씩 압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게 더 가속화 되는 순간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우선 정부가 무력화 될 것이다. 그 후에 대형길드들의 결정이 곧 국가의 결정이 되겠지.
여러 국가의 정부가 그렇게 무너졌고, 지금도 리그의 지원을 받은 단체들이 날뛰면서 내전에 가까운 전쟁을 벌이는 국가도 있었다.
하지만 최준호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시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원히 뒤처지겠어. 삼국 위에 조직 하나 만드는 계획을 진행시키게. 여세를 몰아 흐름을 만들어 보도록 하지.”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정부와 대형길드의 세력 균형을 뒤집어 볼 생각이었다.
* * *
내가 하트워커를 찾기 위해 향한 곳은 부산이다.
마물의 등장 이후, 지방과 교류가 예전만 못해지면서 부산은 경남권 지역의 맹주 도시로서 그 위상이 몇 배 상승하게 되었다.
부산은 인근 도시로 영향력을 강화하고 일본과 교류를 통해 생존을 도모했는데,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다.
정확하게 말해 성공으로 둔갑했다고 하는 게 옳겠지.
그 이면에는 밀무역의 증가가 숨어 있었고, 여러 곳의 암시장 형성과 빌런 조직의 급격한 성장이 존재했다.
내가 찾고자 하는 하트워커 김종현은 마물의 심장을 가공하던 장인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장인이 아니라 세공사라 불러 달라 했는데, 마물의 심장을 가공하는 능력이 워낙 뛰어나 어디서든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건 헤픈 씀씀이와 여성편력 때문이다. 잡아서 서울로 데려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게 내 목표다.
저번 생에 녀석이 내게 말하길 젊은 시절 부산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올라왔다고 말해 줘서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녀석을 만난 건 암시장에 물건을 납품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다.
젊은 청년의 얼굴을 한 하트워커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트워커 김종현.”
“···내가 김종현은 맞는데 하트워커는 뭐요? 당신은 누구고?”
“아직 그리 불리기 전인가?”
녀석이 날 보고 경계했다.
하긴 나랑, 만나는 것도 20년 후니까. 하트워커의 나이가 나랑 동갑이었다. 지금은 막 일을 시작한 애송이겠다.
“익숙한 얼굴인데. 우리가 어디서 본 적 있나?”
“TV에서 내 얼굴 봤을지도.”
“TV? 서, 설마!”
뒤늦게 내 얼굴을 알아봤는지 녀석이 경악한다. 그러면서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본다.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도망칠 생각부터 하는 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걱정 마, 죽이러 온 건 아니니까.”
“난 죽을 짓 한 적 없습니다.”
“알아, 대신 암시장에 물건을 납품한 전과는 있지.”
“······.”
“그걸 따지러 온 건 아니고, 날 따라와라.”
“싫다고 하면 죽일 겁니까?”
단칼에 거절한 하트워커가 슬그머니 몸의 중심을 뒤로 옮겼다. 녀석이 뭔가 착각하고 있다. 녀석에게 선택권은 처음부터 없었는데.
“이걸 말 안 했네. 안 따라오면 죽일 거야.”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죽여!”
“암시장에 물건 납품하잖아? 암시장은 빌런이 관리하는 곳이니 넌 빌런에게 물건 납품하고 있지. 그럼 너도 빌런이고.”
“방금 그거 따지러 온 거 아니라며!”
“마음이 바뀌었다.”
“······.”
“지금 이 자리에서 정해.”
끝까지 고집 부리면 진짜 죽일 생각이다. 녀석이 납품하는 마물의 심장은 결국 지역 빌런 조직인 자갈치를 강하게 만들어 준다.
미래에 빌런 조직 자갈치는 부산시의 경제 한 축을 차지할 만큼 큰 조직으로 성장한다.
“젠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한테 왜 그러는 건데!”
“네 능력이 필요해서 그런 거야. 서울로 데려가서 일만 해 주면 돼. 서울 가고 싶지 않아?”
“대체 무슨 일인데 내 손이 필요하단 거요?”
“여기서 계속 얘기할까?”
“···따라오쇼.”
내가 하트워커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세 평 남짓한 허름한 공간이었다. 아마 이곳을 작업실로 쓰고 있는 듯했다.
“그래, 고매한 우리 초인께서 날 데려가려는 이유가 뭐요?”
“아까 말했지만 네 능력이 필요해. 정확히 네 가공 기술.”
“흐흐, 내 솜씨가 그렇게 필요하단 말이지?”
“근데 재수 없게 튕기면 죽일 거야.”
“······.”
“이거부터 봐라.”
나는 부산으로 오기 전 잠깐 산책 나갔다가 잡은 6단계 심장을 하트워커에게 내밀었다.
굳어있던 녀석이 마물의 심장 속 포스 흐름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이거 어떻게 한 거요? 아니, 어떻게 한 겁니까?”
“네가 서울에 와서 익혀야 될 기술이다.”
“가르쳐 준다는 겁니까?”
“어. 그리고 어머님도 신성 병원에 입원시켜 드리지.”
“······!”
눈이 커졌다가 본래대로 돌아온 하트워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긴, 날 찾아왔다면 나에 대해 조사를 했겠지.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게 내 능력 때문이라는 거 맞습니까?”
“맞아. 대신 열심히 익혀야겠지.”
“그거야 당연하고.”
녀석의 능력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녀석이 만든 기술이었으니 금방 따라잡겠지.
“그럼 언제 갈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내가 암시장에 납품하는 건 알고 있을 테고, 거기 빌런들이 날 많이 아껴 주거든. 내가 말없이 떠나 버리면 서울까지 찾아와서 난리칠 거요.”
“그럼 다 죽이고 가면 되겠네.”
제일 쉬운 답이 있는데.
하트워커가 기겁했다.
“진짜 말 살벌하게 하시네. 방송에서 나왔던 게 진짜 성격이었나. 저기, 거기 빌런들이 빌런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내게 은인이기도 해서 좋게 헤어지고 싶은데.”
세상에 나쁘지 않은 빌런이 있다고?
“가서 말하면 가능하고?”
“해 봐야지 않겠수?”
쉽게 놓아 줄 것 같지 않은데. 나도 빌런을 해 봐서 알지만 녀석들은 굉장히 구질구질하다.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그리고 품에 들어온 걸 절대 놓지 않으려 하고. 차라리 품에 안고 죽을지언정 절대 남에게 주지 않는다.
아마 하트워커의 실력을 알아봤으면 절대 안 놔줄 것이다.
난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럼 같이 가지.”
“같이?”
“갔다가 빌런들이 안 놓아줄 수 있으니까.”
초인인 내가 말하면 녀석들도 순순히 포기하겠지.
아마 하트워커도 이걸 생각했을 것이다.
원하는 대답이었는지 녀석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부산 선착장에 도착한 나와 하트워커는 물건을 납품하고 있다던 빌런 아지트로 향했다.
그곳에서 책임자를 만난 하트워커는 서울로 가게 된 걸 알리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안 돼, 못 가.”
“아니, 사장님. 저번에는 가고 싶을 때 가도 된다고······.”
“그 말을 믿냐? 우리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여? 가고 싶다고 하면 순순히 보내 줄 줄 알았어?”
“하아!”
하트워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빌런은 그를 달래듯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도 잘하고 있잖아. 돈 때문에 그래? 내가 보스한테 얘기해서 좀 더 챙겨 주도록 할 테니 잘해 보자고. 응? 잘해 왔잖아, 우리.”
당근과 협박을 번갈아 하니 자력으로 나오는 건 불가능해졌다.
조용히 지켜보던 내가 나섰다.
“그러지 말고 보내 주지.”
레벨 8 초인인 내가 이야기한다면 녀석들도 충분히 알아듣지 않을······.
“뭐야, 이 샌님은?”
“넌 뭔데 나서고 그러냐? 엉? 죽고 싶어?”
“형님, 너무 그러지 마시죠. 그러다 지릴 걸요.”
돌아온 결과물은 처참했다.
날 알아보기는커녕 수준 낮은 협박을 하면서 낄낄 웃어 댔다.
“자, 잠깐······.”
이 모든 광경을 보던 하트워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뒤에 벌어질 일을 짐작했나.
“······.”
음, 나는 일단 반성부터 했다.
국가 공인 초인이 되고 누리를 잡았다고 해서 빌런들이 내 얼굴을 알아볼 거라 생각했다. 그럼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게 뻔해서 앞으로 빌런을 어떻게 잡을지 걱정했다. 차라리 가면을 쓸까 생각도 했었는데 이대로 다녀도 괜찮겠다.
난 여전히 비웃는 빌런들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최준호다.”
“뭐?”
빌런들이 멈칫했다.
“형님,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누리를 잡은 초인 이름이 최준호던데······.”
“헤, 헤드 브레이커?”
“정다현을 나찰녀로 개조한 그 악마?”
빌런들의 동공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난 문으로 나가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어 퇴로를 막아섰다.
“그게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