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5
5화
이번 공무원 헌터 시험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기시험에서 6급 주무관인 임해철이 응시생에게 박살이 난 것이다.
레벨 4에 도달한 그는 내년에 5급 승진이 예약된 인재였다.
그런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한 채 무너졌다.
혜성처럼 나타난 최준호는 이미 은행을 습격하던 언락 무리를 제압했고, 빌런전담반 정다현과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다.
추정 레벨 4, 상황에 따라 레벨 5까지 나올 수 있는 인재의 등장이었다.
나이는 불과 25세.
매년 인재 유출로 곤란을 겪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 반드시 데려와야 하는 입장이었다.
공무원 헌터 시험의 윤리 과목은 최소한의 정의감과 추구하는 방향을 알기 위한 시험이었다. 이 시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지금 결정적인 역할을 하려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했다.
시민의 안전과 빌런의 처치를 놓고 적은 최준호의 서술형 답안 때문이다.
“진짜 합격시켜야 하는 겁니까?”
한 심사위원이 기어이 참지 못한 채 최준호가 작성한 답안지를 들어 보였다.
[공무원 헌터의 직무는 최대다수의 시민의 안전이다. 한 명의 빌런을 처치하면 최소 백 명의 시민이 안전해질 수 있으므로 최대한 많은 빌런을 처치하는 것이 시민의 안전 보호로 이어진다. 실제 한 번의 범행에 성공한 빌런이 ‘악의 각성’ 이후 끼칠 해악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걸 볼 때 다소간의 희생이 발생하더라도 빌런 처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방향이 바람직······.]“이건 공무원 헌터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니에요! 아니, 대기업 소속 헌터도 이런 마음가짐은 가지면 안 됩니다! 이건 극단적인 사상, 말 그대로 빌런입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씀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보아 하니 최대한 많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답안지를 작성한 것 같은데.”
“뭐라고요? 지금 소수의 희생은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는 자를 합격시켜야 한다는 겁니까?”
“합격시키지 않으면요? 우리가 불합격시키면 대기업이 좋다구나 하고 데려갈 게 뻔히 보이는데.”
“데려가라지요!”
“지금 국가의 품에 들어온 인재를 놓아 주자는 거요?”
심사위원들 사이에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 정도로 최준호의 답안지에 담긴 사상은 과격했다.
고성이 오가는 설전을 멈추게 만든 건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장년인이었다.
“우리 국가수호국에서 책임지고 데려가겠습니다.”
“······!”
기골이 장대한 남자는 국가수호국을 책임지고 있는 정주호 국장이었다.
공무원 헌터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이며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인물이다.
“원래 잘 벼려진 칼은 사용하기에 따라 다른 법. 최준호 응시생의 사상이 위험한 건 알지만 정다현 사무관이 말하길,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불타는 정의감을 가진 인물이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데려가서 잘 드는 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
정주호가 그리 말하니 더 이상 이견이 없었다.
* * *
1시간 후.
사무실로 복귀한 정주호는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는 정다현을 발견했다.
“국장님 어떻게 되셨어요?”
“답안지가 문제될 건 어떻게 알았냐?”
“알기보단 준호 씨 사상이 좀 특이해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상했나 보네요.”
“일단 우리가 데려오겠다고 얘기는 했다.”
“잘됐네요.”
정주호는 몸을 파묻듯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지친 눈동자로 정다현을 바라봤다.
“정다현아, 정다현아.”
“네.”
웃음기를 지운 정다현이 대답했다.
“답안지를 봤지만 정상적인 녀석은 아니다.”
“알아요. 언락을 어떻게 제압했는지 봤거든요.”
“감당할 수 있겠냐?”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날이 빌런 숫자가 느는 건 국장님도 아시잖아요. 현재 매뉴얼론 더 이상 빌런 수를 줄이기 힘들어요. 그렇다면······.”
잠시 말을 멈춘 정다현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잘 드는 칼을 가져와야죠. 제 손이 베이더라도요.”
이면에 담긴 광기에 정주호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러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말리겠냐. 대신 휘둘리진 마라.”
“당연하죠.”
“과하게 휘두르지도 말고.”
“국장님은 제가 그럴 거라 생각하세요?”
“어. 넌 그러고도 남을 거야.”
“예전이랑 다르다니까요.”
“달라져서 그 잘 드는 칼을 가져오는 거냐?”
빤히 들여다보는 정주호의 눈길에 정다현이 고개를 돌렸다.
“다른 곳에 두기에는 아까우니까요.”
“아무튼 난 할 만큼 했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네.”
* * *
“진짜로 합격했다고?”
“어.”
“······.”
기괴한 윤희의 표정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지금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노발대발하겠지? 그래도 한 번 해 볼까.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녀석은 여전히 충격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 안의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야. 그런 답을 쓰고도 합격이라니······.”
“취향에 맞았나 보지.”
“아무리 공무원 헌터라고 해도 저런 과격한 대답을 묵인해 주다니.”
“아무튼.”
계속 따져 봤자 의미 없는 일이다. 이미 합격했으면 된 일 아닌가.
이제 나도 어엿한 공무원이다.
“시험에 합격했으니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뭐 먹을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고우니 먹어야지. 난 소갈비!”
“그래, 그거 먹자.”
나와 동생은 근처 소갈비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처음에는 내 합격을 믿기지 않아 하다가 어느새 자기 덕에 합격했다는 태세 변화에 혀가 내둘러졌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갈 때 녀석이 말했다.
“아참, 그리고 나 시험 준비 좀 도와주라.”
“시험?”
“응. 난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결과는 안 좋더라. 오빠가 도와주면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응?”
“도와줄게.”
“진짜?”
“어. 네 실력이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어. 요령 몇 개만 터득하면 될 거다.”
“진짜? 내가 합격하면 맛있는 거 쏜다.”
“그래.”
전생에 나 때문에 재능의 꽃을 피우지 못했던 동생.
그 보답을 위해서라도 합격하도록 도와줄 생각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죄였다.
“표정 왜 그래? 징그럽게.”
“······.”
이게 여동생의 애정표현인 거겠지?
* * *
“신입 최준호입니다.”
출근 첫날, 나는 정장을 갖춰 입고 국가수호국으로 출근했다.
꽤 딱딱한 인사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반응은 뜨거웠다.
“오오! 신입이다!”
“드디어 우리한테도 새로운 피 수혈이!”
반겨 주는 인원이 있는가 하면.
“쟤가 걔야? 임해철을 병신으로 만든?”
“얼굴만 봐서는 전혀 그런 실력자로 안 보이는데.”
“운은 아니겠지?”
내 실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보는 눈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하나하나 붙잡고 박살을 내 줘야 하나?
그랬다가는 국가수호국 자체를 괴멸시키게 될 것 같아서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지 고민할 때 고까운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거, 뭐 잘난 사람 나타났다고 소란들이야? 근무시간인 거 몰라?”
“······.”
분위기가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싸늘하게 식었다.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땅딸막한 키에 벗겨진 머리, 매부리코에 가느다랗게 눈을 뜬 통통한 체형의 중년 남자였다.
“내가 특수팀의 팀장 왕주열이다.”
“최준호입니다.”
“신입 본연의 모습은 나대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는 거다. 나대지 말고 선배 말을 하늘처럼 떠받든다. 그것만 하면 된다.”
가느다란 눈에 가득 실린 탐욕이 전해졌다. 압박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지그시 노려보며 말했다.
“대답은?”
“그게 공무원 헌터가 하는 일입니까?”
“하는 일? 그렇긴 하지. 헌터니 뭐니 해도 결국 공무원이거든. 공무원 헌터라는 건. 조직에 소속감을 갖고 상급자에 복종하고. 안 그래?”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왕주열을 바라보았다.
분명 인연이 없는 이름인 것 같은데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하시죠.”
“오! 정다현 사무관! 낙하산이라고 팀장마저 무시하려는 거냐?”
“무시한 적 없습니다.”
“그래? 근데 왜 난 무시당한 것 같지?”
왕주열이 대놓고 빈정거렸다.
“팀장님의 착각입니다. 저는 준호 씨를 안내하겠습니다. 가요.”
“뭐, 알아서들 하라고. 아무튼 신입, 너는 내 말을 명심하는 게 좋을 거다.”
“······.”
난 왕주열을 빤히 바라보다가 팔을 잡아끄는 정다현의 뒤를 따랐다.
왕주열, 왕주열이라.
가족을 제외하고 이름을 기억하는 부류는 딱 두 가지다.
내 손에 죽었거나, 죽여도 마땅한 놈이었거나.
정다현의 뒤를 따라 국가수호국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 건물 내 카페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때까지 기억을 더듬던 나는 정다현을 바라봤다. 거의 꾸미지 않은 모습임에도 미모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굳이 일선에서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녀가 가진 정의감의 원천이 뭔지 궁금했다. 지금 상황도 그렇고.
“왕 팀장님과 사이 안 좋으십니까?”
“말씀 조심하세요.”
드물게 놀란 정다현이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국가수호국 내 왕 팀장님의 입지는 상당해요. 그러니 주변을 살피고 얘기를 꺼내야 돼요.”
“사람 없는 거 알고 말하는 겁니다.”
“보시다시피 그래요. 제가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니 안 좋아하거든요.”
딱 봐도 왕주열은 구린내가 진동했다. 대충 어떤 자인지 짐작이 갔다.
“부패한 자면 체포하시지요.”
“···증거가 없어요.”
“증거가 없으면 잡으면 안 됩니까?”
“그게 규칙이니까요. 증거가 없으면 피의자가 아닌 상관입니다.”
내가 아는 것과 상당히 많이 달랐다. 내가 빌런일 땐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도 범죄목록에 추가됐었는데.
날 따라다니던 오종엽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며 피를 마시는 홍길동이라고 피마홍이라 부르며 낄낄거리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났다.
전과 100범이 101범 된다고 별 차이 없다나 뭐라나.
“알겠습니다.”
“준호 씨는 당분간 저와 함께 움직일 거예요. 궁금하거나 모르시는 내용이 있으면 제게 물어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환영회가 있을 예정이에요.”
“환영회?”
“준호 씨는 오랜만에 온 신입이거든요.”
“다들 이곳에 안 오려고 하는군요.”
“솔직히 말하면, 네. 그래요. 빌런전담반은 무척 위험하거든요.”
그러더니 내 눈치를 살핀다. 말을 안해도 윤희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국가수호국의 위상은 높지만 내부 인원을 받아들이는 기준은 무척 까다로웠다.
결원이 생겼으면 생겼지 기준 미달의 인원은 발조차 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여기에 고된 업무 강도와 위험도까지 한 몫 했다.
“미리 말해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위험한 건 알고 있습니다.”
“정말요?”
“빌런을 체포하는 부서니 당연히 위험하겠지요.”
당연히 이곳에 배치되는 공무원 헌터는 실력도 있어야 하고, 빌런을 체포하려는 사명감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 헌터 중 그런 인재는 많지 않다.
내 생각은 이랬지만 정다현은 꽤 마음을 졸였나 보다.
“이해해 줘서 다행이다. 휴!”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다현 씨.”
“그래요, 준호 씨.”
커피를 마신 뒤 사무실로 올라가서 내가 해야 할 업무를 숙지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서류 보기부터 시작해서 국가수호국 내부도, 조직도 등을 보고 나니 시간이 훌쩍 흘러 퇴근시간이 되었다.
칼퇴 후 이끌리듯 도착한 곳은 고급한우집이었다.
“자, 그럼 새로운 신입을 환영하며.”
“위하여!”
왁자지껄. 시내에서 가장 안전한 중심지에서 날 반겨 주는 환영회가 열렸다.
“······.”
느슨하게 방비를 풀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하루차 동료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음껏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는 것. 늘 쫓기며 도시의 화려함에 동 떨어져 있던 내게 낯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감상이 내가 이쪽 영역 안으로 발을 들여놨음을 실감케 했다.
그런 내 옆으로 정다현이 다가왔다.
“좋은 분들이에요.”
“그렇습니까.”
“네. 기본 대우도, 인센티브도 많이 부족하거든요. 업무는 고되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그럼에도 사명감에 몸을 불사르고 있어요.”
결국 불나방에 불과한 모습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조직에 순응하고 정의감을 가지고 활동한다.
비웃을 생각은 없지만 공감할 생각도 없다. 결국 정다현도 같은 부류였고 날 죽이기 위해 나섰다가 내 손에 죽었다.
신념이 없었다면 역부족임을 알고도 나서지 않았겠지.
내가 공무원 헌터가 된 건 공권력의 틀 안에 있기 위함이다. 더 이상 쫓기며 정신이 마모되는 경험은 사양하고 싶다.
그러다 언제 내 안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난 지금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심각해지려던 분위기를 깬 것은 국가수호국의 총책임자 정주호가 나타나면서다.
“뭔 이야기를 그리 심각하게 하고 있어? 자, 신입! 한 잔 받아.”
“감사합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앞으로 수고 많이 해 줄 텐데.”
불콰해진 얼굴로 내 잔에 술을 잔뜩 따랐다.
“자, 오늘 신입 환영회니까 신입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볼까?”
“저에 대해 말입니까?”
“그래! 등을 맞댈 동료들인데 서로에 대해 잘 알아 둬야지. 신입이 잘하는 건 뭐야?”
“잘하는 것.”
난 잠시 말을 멈췄다.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은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난 욕심에 취해 미쳐 버렸고 가족을 간수하지 못했다. 내 단점은 확실하다. 난 참을성이 없다.
그렇다면 장점은 뭘까. 잘하는 것. 혈종으로 겪은 경험이 결국 내 장점인데,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추격과 생존, 도주에 자신 있습니다. 눈도 좋습니다. 빌런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자신 있는 건······.”
마침 왕주열과 시선이 마주쳤다.
왤까, 미소가 지어졌다.
“척살입니다.”
“······.”
누구를 죽이는 거야 말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특기다.
가장 자신 없는 건 상대를 부상 없이 생포하는 것이다.
“빌런을 찾아내고 죽이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앞으로 믿고 맡겨 주십시오, 국장님.”
“···그래.”
어느새 불콰한 기색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린 정주호가 굳은 눈을 한 채 잔을 내밀었다.
난 웃으며 잔을 부딪친 뒤 원샷했다.
근데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모여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