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50
50화
함께 백반집에 도착한 고예진은 마치 10년 단골처럼 사장님 이모와 순식간에 친해지는 수완을 보이며 날 찾아온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최준호 초인님은 워낙 신출귀몰하셔서 뵙기 힘들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사수이신 정다현 팀장님을 따라다녔어요. 두 분이 종종 식사를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렇게 정다현을 한 달 가까이 따라다녀서 나를 보는데 성공했단다.
제목 짓기 장인인 줄 알았더니 집념도 프로였다.
각성 여부를 묻자 고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각성자 출신이에요. 재능이 없어서 포기했지만요. 헤헤, 이모! 여기 물 한 통 추가해 주세요! 된장찌개 너무 맛있어요.”
옆에 정다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은데, 맛이 없나? 평소랑 맛이 같은데.
나는 고예진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 취재 이야기는 뭔데?”
“아! 최근 초인님이 누리를 사냥하면서 이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아지셨어요. 그건 체감하세요?”
“딱히.”
유명해져봤자 빌런들도 못 알아보는 신세였다.
오히려 정다현이 더 유명했다.
“어라? 일단 인터넷에서 초인님의 인기가 대단하셔요. 전에는 의심하는 댓글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 찬양일색! 초인님은 체감 못 하셨다 하지만 아마 체감할 수 있는 자리에 가시면 몇 배로 인기가 더 많아졌다는 걸 느끼셨을 거예요. 당연히 초인님을 취재하면 높은 조회수를 받을 수 있고요.”
“취재 안 해도 조회수가 높은 거 같던데?”
얼핏 본 고예진의 기사는 남들보다 월등히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고예진이 쑥스럽게 웃었다.
“제가 그쪽에 좀 자신이 있어서······.”
“나 갖고 재밌는 제목들을 많이 지었었지.”
“죄송해요!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바로 사색이 되어서 애걸복걸했다.
“죽이진 않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취재는 좀 더 생각해 보고 답을 주지. 주변의 조언을 듣고 판단하거든.”
“넵! 편하실 때 연락 주시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고예진은 내게 명함을 건넸다. 그걸 받아 들면서 대화 흐름이 끊겨 우리는 잠시 식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근 귀찮게 연락 오는 단체 없으세요?”
“무슨 단체?”
“그, 초인님이 큰돈을 버셨잖아요. 그래서 기부 단체 같은 곳에서 연락하려 할 텐데······.”
“온 적 없는데.”
“그래요? 이상하다. 기부단체들이 초인님에게 연락하려고 난리도 아니거든요.”
“아.”
나는 오종수에게 전화선을 뽑아 놓으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나한테 연락이 안 왔던 거다. 그럼 다른 곳으로 연락이 갔겠군.
그나저나 기부라. 부끄럽지만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던 단어였다.
“기부는 좋은 건데.”
“네? 정말요?”
대답하는 고예진은 물론이고 정다현마저 놀란 표정이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
“기부 좋은 거잖아?”
“어, 음! 그렇죠?”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눈을 반짝이는 고예진을 보며 의아해할 때, 정다현이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기자님. 이건 기사로 쓰지 마세요.”
“네? 아, 네.”
고예진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간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귀찮아질 수 있어서요.”
“괜찮아. 전화선 뽑아 놨거든.”
“아, 그래서 연락이 안 됐던 거구나.”
“다행이네요. 잘하셨어요.”
아마 다른 곳에서 연락이 가겠거니 싶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음료까지 한잔씩 했다. 고예진은 기자의 관점에서 나를 둘러싼 상황을 재밌게 설명해 줬다.
나로 인해 경제효과가 100조라느니, 대한민국 안보 서열이 5단계 상승했다느니 말을 하는데 시큰둥하게 듣고 있던 정다현도 어느새 흥미진진하게 들을 정도였다.
특히 외국 파견 부분은 나도 재밌게 들었다.
초인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많으며, 정치적인 관계가 얽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자유로운 편이었군.
“꼭 연락 주세요! 다음에 뵐 때까지 열심히 초인님에 대한 기사 쓸게요.”
“제목 기대하지.”
“넵! 분발해서 더 자극적으로 써 보겠습니다!”
여기에서 더 자극적이 될 수 있다고? 오늘 만남에서 가장 기대되는 포인트였다.
“정신없는 사람이네요.”
“그렇긴 하지.”
근데 고예진의 기프트는 뭐였던 거지?
* * *
기부 단체 언급으로 깨닫게 되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동안 기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번 돈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저번 생에서는 찌질하게 살다가 뒤늦게 각성해서 힘을 탐하다가 미쳐 버려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고, 새로운 삶에서도 미치지 않기 위해, 공무원 헌터로 업무를 보다가, 초인으로 적응하느라 생각을 못 했다.
기부나 한번 알아볼까?
“덕분에 각성자안보 일을 봐야 하는 곳이 기부단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천명국에게 호출되어 청와대로 간 나는 가시 돋힌 말을 들어야 했다.
“아, 몰랐네요.”
“괜찮습니다. 시달리긴 했어도 오히려 이쪽에서 상황을 제어할 수 있어서 편하긴 했습니다.”
“그럼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
괜찮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있었다.
“···전화선 다시 연결하겠습니다.”
무언의 압박에 나는 말을 바꿨다.
“곧 미국을 시작으로 동맹국에서 보낸 외교 사절단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거 꼭 참여해야 하는 겁니까?”
“그야 당연합니다.”
이상하다, 이세희가 했던 말하고 다른 거 같다.
“주변에서 말하는 걸 들어 보니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던데. 교류전 같은 것도 있고요.”
“설마, 귀찮아서 그러시는 겁니까?”
귀신이군. 왜 내 주변에 독심술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거지?
“그런 건 아니고, 다른 초인하고 대결할 수도 있다던데 안 죽일 자신이 없어서요.”
“안 죽인다는 건······.”
“기어이 죽인다는 거죠.”
어떻게 대결을 하는데 죽이지 않을 수가 있지?
내게 있어 가장 어려운 건 힘 조절이었다. 죽이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죽여도 된다면 흔쾌히 수락하겠는데 그건 안 될 것 같고.
차라리 붙게 만들면 죽이겠다고 지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손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일부러 안 멈추는 건 아니신지?”
“아닙니다.”
“······.”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좀 부끄럽긴 하다. 명색이 공무원 헌터를 거쳐 국가공인 초인이 되어 국가에 봉사하는 헌터인데 살리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으니.
정상인이 되니 빌런일 때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겪고 있었다.
근데 어떻게들 대결하면서 상대방을 살릴 수 있는 거지?
“···최대한 충돌이 없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다만 대통령님의 다른 주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명국이 노력한다는데 이 정도면 되겠지.
“그리고 곧 누리 정산금이 입금될 예정입니다.”
“빠르네요.”
“···돈을 받는 분이 그리 무관심해도 됩니까? 아무튼 돈을 받으면 기부단체도 그렇고 여러 곳에서 귀찮게 굴 것입니다.”
정보를 감추려고 해도 돈에 관한 정보는 반드시 새어 나갈 수 없다는 게 천명국의 말이었다.
“기존 초인들도 돈을 보고 꼬이는 벌레들 때문에 적잖이 고생했습니다. 최준호 초인님은 그 부분에서 욕심이 크지 않은 건 잘 알고 있지만 미리 관리해서 나쁠 건 없을 것입니다.”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천명국은 ‘그 벌레들도 다 죽일까 걱정돼서 그렇지.’라고 중얼거렸다.
난 뭐라 말했는지 잘 안 들렸지만 혼잣말이라 그냥 넘어갔다. 스트레스가 많나 보다.
“아! 그리고 저 곧 특강 갑니다.”
“특강이요?”
“고명학 학장님이 요청하셨거든요. 곧 교류전이라 학생들에게 한 수 지도해 달라고 하셔서.”
“고명학 초인님.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고매하다는 말은 그분을 위해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좋은 분입니다.”
그런 것치고 속에 답답함이 꽤 쌓인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제발 살살 부탁드립니다.”
“죽지는 않을 겁니다. 죽지는.”
물론 거짓말이다. 아카데미 문제아 중 빌런 되는 녀석들이 있어서 싹이 노랗다 싶으면 밟아 놓을 생각이다.
근데 내가 학생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까? 정작 중요한 걸 생각 안하고 있었다.
내가 잘하는 건 결국 뭔가를 죽이는 건데.
그건 너무 하니 포스 운용 방법이나 기프트 개방 같은 노하우를 알려 줘야겠다.
* * *
천명국의 말이 있고 이틀 뒤, 2조원이 넘는 돈이 입금됐다.
솔직히 말하면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워낙 큰돈이라 그랬다. 이거면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을 수 있고 사고 싶은 것도 다 살 수 있었다.
근데 딱 거기까지였다.
돈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살 돈만 있으면 됐지. 공무원 헌터가 되고서도 돈이 부족했던 적이 없던 거 같다.
내게 돈이 필요했던 순간은 오종수의 치료비 마련할 때랑 부모님을 서울로 모실 집을 살 돈 정도?
그마저도 당일 사냥을 뛰면 모두 해결되는 일이었다.
“딱히 할 게 없네.”
진짜 기부나 한번 알아볼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기부도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번 돈으로 어려운 사람이 삶에 대한 희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값진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과거로 돌아와서 무언가를 죽였던 일의 연속이었다. 나도 기부를 많이 한 사람에 이름도 올리고 내 이름으로 된 장학금도 만들고 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어느 정도 해야 되지? 솔직히 윤희 용돈 좀 주고, 신성 길드 연구소에 연구비용 보태 주고 남은 돈으로 해도 꽤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윤희에게 밝히자 돌아온 건 칭찬이 아니라 괴성이었다.
“미쳤어? 갑자기 왜 거기에 불이 붙었어?”
“뭐, 기부?”
“그래, 이 양반아. 생전 안 하던 걸 왜 갑자기 하려 해?”
“괜찮지 않냐.”
“아니거든!”
“왜?”
난 비명 지르는 윤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걔들이 기부 받은 돈을 얼마나 마음대로 해 먹는 줄 알아? 오빠가 기부하면 신난다고 차 바꾸고 회식하고 워크샵 다닐 거라고!”
“윤희야.”
“어.”
난 윤희가 안쓰러웠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 봐야 할 텐데, 너무 날이 서 있었다.
“그런 건 일부 사례에 불과해. 좋은 뜻을 가지고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 그러니 너무 색안경 끼고 바라보지 말······.”
“아, 진짜! 아! 답답해!”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 윤희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때까지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윤희가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날 보고 쌍심지를 켜고 쪼르르 달려왔다.
“그래서 진짜 할 거야?”
“아직 고민 중.”
“하지 말라니까.”
“진짜 안 했으면 좋겠냐?”
“어.”
“근데 난 하고 싶은데.”
“······.”
활활 타오르던 윤희의 기세가 약해졌다. 그러다 쌍심지를 거두고 한숨을 푹 내쉬며 한 걸음 물러났다.
“에휴! 내가 말린다고 안 할 양반도 아니고. 내 돈도 아니니까 더 선 넘을 수 없지. 대신 조금만 기부해. 괜히 돈 욕심 없다고 거액 덜컥 내놓지 말고. 알았지?”
내가 돈 문제에 그렇게 못미더웠나? 이렇게 신경 써주는 동생이 싫진 않아 순순히 수긍했다.
“알았어.”
“얼마나 할 건데?”
“반 정도 할까?”
“1조? 야, 너 미쳤냐!”
농담 한 번 했다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 * *
다음 날, 국가수호국에 도착하자 사방이 요란한 전화소리로 가득했다.
다들 날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는데, 날 국장실로 납치하듯 데려간 정주호의 말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 돈 받았다고 사방에서 난리도 아니다. 대체 너에 대한 문의가 왜 여기로 쏟아지냐?”
난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전화선 꼽는 걸 깜빡했어요.”
“구라치지 마! 너 일부러 그랬지? 애들이 얼마나 죽어나는지 알아?”
“이따 사과할게요.”
“우리 애들이 말 몇 마디에 사과할 거 같아? 엉?”
“해 보면 알겠죠.”
진정한 사과는 그만한 성의를 수반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세상에 기부를 원하는 단체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정주호도 내 기부 의향이 궁금했나 보다.
“진짜 기부할 거냐?”
“해야죠.”
“얼마나?”
“적당히?”
“네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상황 좀 빨리 끝내자.”
“그러죠.”
정주호는 나더러 수습하라며 국장실 밖으로 내보냈다.
나는 국가수호국을 돌아다니면서 사과했다. 나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이니 조만간 비싼 걸로 대접 한 번 하겠다고 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런 실수도 쉽게 만회할 수 있는 걸 보면 돈이란 건 굉장히 좋은 수단인 거 같다.
나는 국가수호국 식구들에게 내가 원하는 조건에 대해 알려 줬다.
윤희의 잔소리도 잔소리지만 나 또한 기부를 할 때 하더라도 최소한의 요구조건은 내세울 생각이다. 조건만 충족되면 거액이라도 충분히 내놓을 용의가 있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나니 순찰을 마치고 온 정다현과 마주쳤다.
“대박 축하해요.”
“고마워.”
“기부도 하실 거라면서요. 멋진 선택이에요.”
“근데 윤희는 잔소리 하더라.”
“걱정되는 단체들도 있으니까요. 오빠가 잘 고르셨겠죠.”
“솔직히 말하면 어디가 괜찮은지 잘 모르겠어.”
“그래도 알아보고 하는 게 좋을 텐데요.”
세상은 넓고 어려운 사람은 많았다.
기부 단체 활동 또한 워낙 다양해서 어디부터 도와야 할지 잘 모르겠고.
다행인 건 내게 많은 돈이 생겼고 다 도울 능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기부에 조건이 많으면 안 좋아.”
“그래도······.”
“조건 하나만 내세웠어.”
“무슨 조건인데요?”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감사 권한을 내게 줄 것.”
내가 기부한 돈인데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당연히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 말에 걱정 가득하던 정다현의 얼굴이 사색으로 바뀌었다.
“만약 기부한 돈을 유용하면······.”
“에이, 기부 단체가 그럴 리 없잖아. 기부하겠다고 받아가 놓고 자기들이 쓰면 속인 거 아닌가? 그런 건 빌런이나 할 짓이고.”
그리고 빌런이면 죽여야지.
“세상에 좋은 뜻 가진 곳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 내일 많이들 연락 올 거야.”
“······.”
그리고 다음 날.
내 의사를 전달받은 기부 단체에서 단 한 통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