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53
53화
53화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스쳐가는 이름이 있었다.
내가 기억했다는 건 당연히 죽어도 싼 놈이다. 실제로 내 손에 죽은 놈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나대기 시작했나?
“중국에서 오는 초인의 이름이 장쯔둥입니까?”
“맞네, 장쯔둥. 알고 있나?”
“이름만 들어봤습니다.”
역시, 내 예상대로다. 장쯔둥이라면 죽여도 되는 놈이다. 저번 생에서도 날 귀찮게 굴었던 녀석이다.
대통령은 내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설명을 이어나갔다.
“2년 전 인정받은 중국의 젊은 초인이지. 나이는 만으로 37세로 중국 초인 중에서 가장 젊고.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리더십도 뛰어나. 이번에 중국 사절 대표로 온다고 하더군.”
중국은 현재 일곱 명의 초인을 보유하여 세 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초인을 보유한 국가다. 장쯔둥은 중국 최연소 초인이자 동북방면 책임자다.
초인 보유 숫자만 따지면 대한민국보다 세 명이나 많은 숫자지만 중국 땅은 넓고 지켜야 할 곳은 많았다. 연일 사방에서 밀려드는 마물로 인해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장쯔둥은 그런 와중에 등장한 뛰어난 초인이며 중국 당국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에게는 큰 문제가 있다.
“장쯔둥은 지나친 중화사상을 갖고 있지. 공공연하게 북한의 영토를 집어삼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고.”
북한은 마물의 등장 이후,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소멸했다. 당시 마물에게 죽은 숫자만 천 만 명이 넘었다. 살아남은 사람 2/3가 대한민국으로, 나머지 1/3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영토에 대한 권한을 대한민국이 갖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중국이었다. 일본과 러시아는 눈치를 보고 있고, 미국은 대한민국의 권리를 인정해줬다.
하지만 마물의 창궐로 자국 영토조차 지키기 힘든 형편 속에서 대한민국은 개성과 강원도 북부 몇 개 도시를 거점 삼아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중국은 압록강을 넘기는커녕 그 근방에 도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고.
그런 와중 등장한 장쯔둥은 강경한 중화사상을 주장하면서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야. 비공식적이지만 장쯔둥은 우리가 북한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도록 더 많은 마물을 북한 지역에 몰아넣는 작업을 하고 있어. 당장 중국의 힘이 모자라니 우리도 회복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이야기겠지.”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우리에겐 최악이라 문제지.”
이에 대해 정부 측에서는 항의를 했지만 중국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걸 화전양면전술이라고 하던가? 저번 생에도 그랬지만 이번 생에도 죽일 이유가 존재했구나.
내가 혈종일 때 장쯔둥과 인연이 있다.
여기 있는 천명국과도 연관된 일인데, 내가 혈종일 때 ‘대타협’을 달성하고 정부 소속 헌터와 길드 소속 헌터가 힘을 합쳐 날 북쪽으로 밀어냈다.
당시 대한민국은 평양까지 진출한 상태였는데, 추적을 피해 북쪽으로 도망가던 내가 지나갈 곳은 중국이었다. 그런데 내가 국경을 넘기 전, 장쯔둥이 나타났다.
내게 선물이라며 몰아온 마물을 듬뿍 던져주고 도주했다.
가뜩이나 추격에 쫓겨 지쳐있던 나는 마물의 습격으로 꽤 고생을 해야 했다.
그 후에 녀석의 목을 꺾어놓으려고 했지만 도망치는 게 어찌나 귀신같던지 잡아 죽이는데 고생했다. 장쯔둥을 죽이고 얻은 기프트가 바로 ‘전이’였다.
이번 생에 그 악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저번 생에서 장쯔둥은 내 손에 죽기 전까지 동북 3성을 벗어난 적이 없다.
북쪽에서 마물 사냥이나 하고 있을 녀석이 온다는 건 역시 나 때문이겠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천명국이 말했다.
“장쯔둥은 최준호 초인님을 노리고 오는 겁니다.”
“저를? 왜?”
“최준호 초인님이 더 성장하면 대한민국 초인 전력이 강해져서 국토 회복에 힘을 보탤 것이고, 이것이 중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장쯔둥이 온다면 교류전에서 대련을 신청해올 확률이 높습니다.”
아, 그러니까.
녀석을 죽여달라는 게 나라에 위협이 되는 것도 있지만 처음부터 날 죽이기 위해서 온다는 거구나?
잘못 이해한 건가 싶어 물어보았다.
“장쯔둥이 오는 이유가 절 죽이기 위해서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보였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녀석이 날 얕본다는 건 내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동안 몇 개 사건을 터뜨렸지만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는 사건이란 의미로군.
기쁜 마음으로 장쯔둥을 죽일 수 있겠다.
“최준호 초인, 장쯔둥을 죽여줄 수 있나? 제거가 어렵다면 큰 부상이라도 좋네.”
초인 정도 되는 자가 덤벼오는데 큰 부상으로 그치라니. 그게 더 어려운 주문이다.
애초에 장쯔둥 이름을 듣는 순간 녀석의 처우는 결정되어 있었다.
“그날, 힘 조절을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좋군, 믿겠네. 바라는 게 있나?”
“영부인님의 손맛이 담긴 식사?”
“호화롭게 차려주지!”
“대통령님, 그러다 쫓겨나실 수도······.”
“험! 쫓겨나지 않을 정도의 호화로운 수준으로 하지.”
“좋습니다.”
나는 장쯔둥의 ‘불행한 사고’를 약속했다.
*
외국의 사절 중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기로 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 다음으로 중국과 일본, 그 다음 유럽연합이 방문하고 동남아시아 연합과 멕시코, 호주에 이어 남미 국가들, 남아공까지 방문 예정이었다.
사실상 여력이 되는 국가는 다 방문하는 셈이었다.
그만큼 누리 사냥 과정에 대한 관심이 내 생각보다 훨씬 컸다.
이중 초인이 포함되고 교류전까지 가질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었다.
미국과는 온건한 분위기로 이루어질 테지만 중국은 꽤 거칠 것 같다.
사절단이 방문하기 전, 나는 초인으로서 일상을 보냈다. 그 사이 고명학의 초대를 받아 특강을 한 번 더 나갔다.
근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뭐 잘못 먹었나.”
마황기나 유미선은 여전히 삐딱했지만 양주혁이 신기할 정도로 고분고분했다. 거칠게 다뤄도 반항하지 않았고, 성격을 긁어도 순순히 납득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던 녀석인데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더 팔딱거리면서 반항해줘야 굴리는 맛도 있는 법인데. 저번 생에서는 분명 온갖 미친 짓을 저지르다 호월 길드에서 더 이상 보호해주지 못해 빌런이 되었던 녀석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갱생이 된다고?
나는 첫 강의 때 너무 세게 때렸던 건가 싶어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 점에서 윤희의 리액션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굴리면 굴릴수록 커지는 비명 소리가 일품이다. 집에 가면 윤희나 붙잡고 굴려야겠다.
특강도 나가는 한편, 신성 길드도 방문해서 하트워커에게 가공법도 알려줬는데, 고분고분한 녀석의 태도에 적잖이 놀랐다. 저번 생까지 통틀어 저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게 전부에요.”
이세희에게 물어보니 그 이상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이세희의 조련 능력이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 와중 기부 단체와도 만남을 가졌다. 평생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다는 단체장과의 만남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나와 종 자체가 다른 느낌이었다. 겸허해진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내가 기부하겠다는 금액에 오히려 분에 넘친다면서 줄여달라고 말했을 때 충격도 컸다.
돈에 욕심 없는 나조차도 큰돈은 거부하지 않는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사절단 방문 하루 전날, 갑자기 버서커에게서 톡이 쇄도했다.
버서커-외국 사절단과 만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버서커-너만 재미를 보는군.
버서커-[사진첨부][사진첨부][사진첨부][사진첨부][사진첨부]
버서커-난 너처럼 못해서 마물을 사냥하고 있지.
버서커-이걸 갖고 가면 제 값을 칠 수 있지 않나?
버서커-우린 깐부잖아.
버서커-자금을 마련해야 좋은 무구를 살 수 있다.
버서커-그래야 널 잡을 수 있을 테고.
버서커-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가다를 하는데.
버서커-너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강자들과 만나다니.
버서커-부럽군.
이 자식이 톡을 엄청나게 보내 놨다.
캠핑카 끌고 한껏 만끽하면서 아주 못하는 말이 없었다.
내가 볼 때 저 녀석은 헌터 시켜준다고 해도 절대 못한다. 애초에 지 마음대로 하고 다니는 걸 삶의 낙으로 여기는 놈이 헌터를 한다고?
사냥 하다 수틀려서 동료들 쥐잡듯이 잡지 않으면 그게 용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뭐? 날 잡아?
난 바로 톡을 보냈다.
나-원하면 공무원 헌터로 만들어줄 수 있다.
나-대신 내 밑으로 들어와야겠지.
나-마음껏 싸우게 해줄게. 서울로 와라.
나-깐부라며?
나-근데 만독불침 개방했냐?
나-개방하면 말해라.
나-나한테 기프트 복사 좋은 방법이 있거든?
나-심장 부수는 거 아냐.
나-그냥 가슴 살짝 열어보는 정도?
나-야, 왜 대답 안하냐.
나-읽음 표시 뜬 거 봤다. 대답해라.
나-ㅡㅡ 끝까지 대답 안하네.
하지만 버서커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눈치 하나는 귀신같은 놈이다.
이 자식, 진짜 만독불침 개방한 거 아냐?
*
마물의 등장 이후, 세계 각지의 해로와 비행항로가 막혔다. 바다와 하늘 어디에나 마물의 위협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로 인해 세계 물류 시장은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다.
뒤늦게 해양 마물, 비행 마물이 없는 길을 개척했지만 마치 미로와 같았다. 특히 거리가 배로 늘어나면서 제한적인 교류만 이루어졌다.
그래서 각국의 외교는 더욱 각별해졌다. 인류의 위기 앞에 힘을 합쳐야 하는 명분이 대세를 이뤘다.
이 시기 대한민국과 미국의 동맹 관계는 공고했다.
그 이유는 원교근공(遠交近攻)에 있었는데, 마물의 등장 이후 국경을 맞댄 국가들 중 사이가 좋아진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마물의 등장으로 인해 국토 상당 부분을 상실하게 되면서 국경 부근 마물을 이웃나라로 밀어내기 위한 신경전이 악감정으로 번진 것이다.
그로 인해 몇 차례 전쟁이 벌어질 정도였고, 국제적 합의를 통해 국경의 마물을 자극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아직도 수면 아래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현재 대한민국도 중국과 겪고 있는 일이다.
중국 측에서는 어떻게든 만주 둥베이평야를 회복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데, 그 일환 중 하나가 마물의 완전 소탕 기치를 내세운 둥베이 평야 정화 작전이다.
이를 위해 대규모 각성자가 투입되고, 장쯔둥이 책임자가 되어 마물을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쫓아냈다.
언제고 북한을 수복해야 할 영토로 보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 북한 지역으로 마물을 내려 보내니 결코 달갑지 않은 작전이다.
그럴수록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가까워졌다. 서로 사냥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이익을 도모했다.
위상이 떨어졌어도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다.
가장 많은 초인을 보유하고 스마트 헌팅 시스템(Smart Hunting system)을 구축하여 헌터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사냥 경험을 축적하여 각성자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대한민국도 이 부분에 대한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국이 대한민국의 도움을 받고자 사절단을 보냈다.
*
미국이 보낸 사절단의 규모는 컸다.
레벨 8 초인 마초맨(Macho man) 제임스 리드를 필두로 서큐버스(Succubus) 안나 크리스틴을 비롯하여 부통령과 상원의원들, 미국의 유망한 인재들이 대거 입국했다.
누리 사냥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증명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직접 미국 사절단의 마중을 나갔다. 가만히 있다가 만찬 자리에나 얼굴을 들이밀 생각이던 나는 얼떨결에 참석하게 되었다.
대통령이 가장 앞서 나오는 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환담을 나눴다. 나는 대통령의 뒤에 서 있다가 뒤이어 나오던 금발 여자와 마주쳤다.
러블리한 미모에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 안나 크리스틴이었다.
내가 있는 방향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데, 주변에 뭐가 있나 싶어 둘러보다가 바로 앞에 도달한 걸 봤다.
“오랜만이에요! 준호! 보고 싶었어요.”
마치 이별한 연인을 만난 것 같은 반응이다. 왜 저런데? 난 뿌리칠까 하다가 익숙한 한국어를 듣고 순순히 반겨주었다.
역시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써야지.
힐을 신어 나와 눈높이가 비슷해진 안나 크리스틴은 필요 이상으로 꽉 안았다. 몸을 왜 비비는데? 그런 와중에 달콤한 향이 훅 파고들었다.
근데 억양이 한국인 같았다.
“한국말 연습했나보네.”
“다시 볼 날을 기다리며 연습했어요. 완벽하죠?”
“꽤 잘해.”
“한국말이 안 되면 대화조차 못할 테니까요. 저 된장찌개도 먹을 줄 알아요. 한인타운 가서 매일 먹었어요. 순두부도 맛있어요!”
“좋은 노력이야.”
“맞아요. 노력했어요.”
한국어로 대화하니 참 편하군.
주위를 힐끗거린 안나 크리스틴이 내게 몸을 기대며 속삭였다.
“오늘은 자리가 그렇고, 다음에 더 대화를 나눠요. 깊은 대화.”
깊은 대화를 더 할 게 있나?
나와 안나 크리스틴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거대한 인영이 접근했다.
키는 210cm를 넘고 온몸이 근육질인 중년 백인이었다.
“와썹, 브로! 아! 한국말 안 쓰면 상종도 안 해준다며? 안녕하세요! 제임스 리드입니다! 졸라 반가워요! 너랑 만나기 위해 한국어 졸라 연습했어요.”
마초맨 제임스 리드는 캘리포니아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초인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마물 소탕 작전을 치러낸 베테랑 헌터였다.
‘잘 빚어낸 육체야 말로 최고의 기프트!’라고 외치는 녀석으로 육체 단련에 어마어마한 공을 쏟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 녀석이 양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지금 나랑 포옹하자는 건가. 저거 미쳤나. 왜 팔근육이 울끈불끈거리는 건데?
난 다가오는 녀석을 제지했다.
“그만. 더 가까이 오면 싸우자는 걸로 듣겠다.”
“왓? 왜?”
“그냥.”
“왜 내 포옹은 거절하는 건데? 안나랑 포옹했잖아.”
참고로 난 남자랑 포옹하는 취미는 없다.
근육질이랑은 더더욱.
“너랑 얘랑 같냐? 불만이면 예쁜 여자가 돼서 오던가.”
“왓? 이건 차별이야! 졸라 차별!”
“어쩌라고.”
“시팔.”
내 완강한 거절에 제임스 리드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