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54
54화
54화
미국 사절단이 오고 첫날은 환영 행사가 열렸다. 대통령은 부통령, 상원의원들과 각종 사안에 대한 깊은 얘기를 나눴고 사절단에 포함된 헌터들은 서울을 둘러보며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대한민국 측에서는 대통령과 각성자안보실 인원과 나, 미국 사절단에서는 고위직 인원이 모여 누리 사냥 과정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초기 누리에 대응하기 위한 과정부터 시작해서 입찰 과정, 내가 누리를 사냥하기 위해 출진한 것까지 설명되었다.
부통령은 미국에서는 전력을 끌어 모으기 바쁘다며 대한민국의 각성자 전력을 띄워줬다.
아방가르드 길드가 사냥하는 과정을 설명한 뒤, 내가 개입한 부분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아방가르드 길드를 구해낸 것은 운이 좋았습니다.”
내가 빨리 도착했다기보다 아방가르드 길드가 잘 버텨낸 셈이다.
아방가르드의 질서있는 후퇴와 퇴로를 열기 위한 이찬택의 선택에 모두 탄성을 터뜨렸다.
그 후, 나는 누리의 사냥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마물의 약점을 머리라 생각해서 머리 부분을 집요하게 노렸던 점을 얘기하고 누리가 까다로웠던 이유로 브레스를 자유자재로 뿜어대고 기프트인 칼날 폭풍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걸 꼽았다.
내 얘기에 미국 측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그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부통령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마물이 기프트를 사용하는 게 확실한 겁니까?”
난 듣는 척도 안하다가 옆에서 한국어로 통역해주자 대답했다.
“확실합니다.”
“본국에서도 몇 번 의심 사례가 들어왔습니다만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최준호 초인이 확신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지간히 귀찮게 구는군.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줬다.
내가 머리를 노렸을 때 누리는 여러 차례 완벽하게 막아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가죽의 순수한 단단함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살펴보니 누리의 머리 앞에 얇은 포스막이 형성되어 그걸로 충격을 분산시키는 걸 봤다고 말했다.
직접 보고 느꼈다는데 뭐라 더 말하겠는가.
“······!”
마물이 포스를 운용한다는 말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나 크리스틴이 물어왔다.
“준호, 그게 사실인가요?”
“사실이야. 누리는 내게 서른 번이 넘게 머리를 맞고도 버텨냈어.”
“서른 번, 전부 머리만요?”
“전부 머리만.”
“···역시 헤드 브레이커.”
왜들 질린 표정이지? 감탄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누리를 쓰러뜨린 뒤에도 계속 머리만 공격을 했고, 포스 운용이 약해져서 가죽을 뚫고 뇌에 타격을 줘서 마무리 했다고 설명했다.
브레인워싱으로 테이밍하려고 한 건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실패의 경험은 공유해봤자 유쾌하지 않으니까.
“졸라 놀라워!”
듣고 있던 제임스 리드가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저 졸라라는 단어는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인보다 더 찰지게 한다.
정리된 자료를 본 부통령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누리 사냥에서 마물이 포스를 운용하는 것과 기프트를 개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본국에서도 이를 통해 보다 깊은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동맹국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이게 협의되기 전에 서로 하나라도 더 뜯어내기 전에 신경전이 장난 아니었으면서.
나는 정치인들이 화기애애하게 말을 주고받는 걸 구경만 했다. 저 분위기 속에서도 치열한 계산이 오고가는 걸 보면 정치인도 참 어려운 직업이다 싶었다.
이후 순서는 순조로웠다.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각자 한 마디씩 보태니까 내가 할 건 거의 없었다. 역시 말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편하군.
사절단을 맞이하기 전에 국회의원들도 자기들도 회의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했던데, 만약 참여했으면 얘기가 더 길어졌겠다 싶었다.
영양가 없는 얘기를 뭐 이리 길게들 하는지. 이 시간에 숨어있는 빌런 찾아서 머리 하나 더 깨버리는 게 효율적일 거 같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은 누리의 사냥 과정을 공유하면서 미국의 스마트 헌팅 시스템을 제공받고 싶어했다. 이에 부통령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면서 본국에 건의해보겠다고 하는 걸 보니 사실상 거절이었다.
스마트 헌팅 시스템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나중에 천명국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화기애애하면서 물밑에서 치열한 신경전이 오가는 가운데 회의가 슬슬 마무리 될 무렵이었다.
돌연 제임스 리드가 손을 들었다.
“나 준호랑 한 번 졸라 붙고 싶은데, 안될까?”
“······.”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한국, 미국 안 가리고 사람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천명국 당신은 왜 혼자 눈을 질끈 감는 건데?
순서가 내게 넘어왔다.
상대가 장쯔둥이었다면 흔쾌히 받아들였겠지만 미국을 상대로는 자중해달라 했으니까.
“붙는 건 어렵지 않은데. 대신 목을 걸어야 할 겁니다.”
“오우!”
제임스 리드가 환하게 웃었다. 옷으로 가려져 있음에도 근육이 불끈거리는 게 보였다.
역시 목숨보다 실전을 추구하는 타입인가.
이렇게 미국도 한 명의 초인을 잃게 되겠군. 초인이 전력을 다해 달려들면 살릴 자신도 생각도 없다.
그런데 다음에 나온 말은 미처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거다.
“졸라 무섭잖아! 그럼 안할래.”
“하는 게 아니라?”
“안한다고! 난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거든!”
“······.”
저 녀석에게 누가 한국어를 가르쳐줬는지 한 번 머리를 열어보고 싶었다.
아무튼 제임스 리드의 회피로 후끈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빠르게 안정되었다.
대놓고 안도하는 천명국을 보며 살짝 심기가 뒤틀렸다.
김 빠지는군.
*
누리 사냥 브리핑이 이루어진 뒤, 본격적인 교류전이 시작되었다. 바다를 건너온 미국의 유망주들과 서울 아카데미 A반 학생들의 대련이 시작되었던 것.
미국은 과연 마물의 등장 이후에도 세계 최강국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인재풀이었다.
전체적으로 기량이 한 수 더 높으면서도 실전 감각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국토가 워낙 넓어 마물이 넘쳐나는 곳이니 만큼 미성년자인 각성자들도 학습이라는 이름 아래 주기적으로 사냥에 나서야 했다.
그에 비해 서울 아카데미 학생들은 실전 감각이 터무니없이 뒤처졌다. 그럼에도 크게 밀리지 않았던 것은 철저하게 약점을 노리는 방식과, 때로는 손해마저 감수하는 과감한 손속 덕분이었다.
교류전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건 양주혁이었다. 이놈은 뭘 잘못 먹었는지 미친놈처럼 달려들어 상대의 전의를 완전히 꺾어놓았다. 그리고 약점을 노리는 방법도 집요하기 그지없었다. 학생이란 신분을 벗겨내면 영락없는 빌런이다.
쯧쯧, 빌런 같은 놈. 비겁하기 짝이 없군.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걸 가르친 게 나다.
녀석의 몸에 골고루 새겨놓았는데 맞으면서 익혔는지 아주 악랄하게, 압도적으로 상대를 뭉개버렸다.
“캬하하하하!”
그래놓고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날 바라봤다. 다음은 나라는 건가. 개기면 제대로 밟아놔야겠군.
교류전 결과는 전체적으로 한국의 열세였지만 세계최강국의 인재와 겨뤘다고 봤을 때 실망할 결과는 아니었다.
당장 미국 측 사절단에서 놀란 표정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기 바빴다. 좀 더 압도적인 승리를 생각하고 왔었나보다.
비록 패배했지만 지켜보던 나도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이것이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기분인가.
제자의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할 땐 난입해서 상대의 목을 꺾어버리고 싶고.
이게 스승의 마음이란 거구나.
교류전이 다 끝날 무렵, 안나 크리스틴이 다가왔다.
“준호.”
“무슨 일이지?”
“우리 사이에 용건이 있어야만 얘기를 나누나요.”
참고로 난 안나 크리스틴과 만난 게 이번이 세 번째고, 둘이 대화를 나눈 시간은 다 합쳐서 3분도 되지 않았다.
그래놓고 친한 척이라니, 이상한 여자였다.
“오늘 회의를 보면서 확신을 얻었어요.”
“무슨 확신?”
“준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요. 사실 확신은 레벨 8 측정 때부터 갖고 있었지만, 확신에 확신을 얻었어요.”
이 여자의 한국어 실력,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내가 제일 짜증나는 것 중 하나가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대체 무슨 확신을 얻었다는 건데? 알면서 저러는 건지 한국어가 미숙해서 저러는 건지 쉽게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갈게요. 얘기 나눠요.”
그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
교류전이 끝난 뒤, 미국 사절단은 한 자리에 모였다. 모두의 표정은 가볍게 굳어 있었다.
오늘 일정은 그들에게 있어 꽤 큰 충격이었다. 누리의 사냥 과정도, 교류전 결과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실전 경험이 더 많고도 독한 수는 한국 학생들이 더 잘 썼다.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말하면서 동맹을 공고히 하자는 말이 나왔다.
무엇보다 그들이 가장 신경 쓰던 최준호에 대한 놀라움이 가장 컸다.
부통령이 제임스 리드를 보며 물었다.
“어땠습니까?”
“매우 무섭고 신속하며, 거침이 없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한국말을 쓰던 제임스 리드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력은 틀림없는 초인이 맞습니다. 제가 직접 상대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어!”
“그럼 누리를 잡은 것도 맞다고 보십니까.”
“예, 중간에 누락된 얘기들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입니다.”
“역시나.”
초인이 홀로 유해 8단계 마물을 잡는다는 것. 바로 앞에서 듣고도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특히 누리는 이제껏 등장한 마물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한 마물이었다. 그걸 인간이 홀로 잡는다는 건 상식이 뒤집힐 일이었다.
오히려 모든 내용을 자세히 밝히는 게 이상한 일이다. 부통령을 비롯한 수뇌부는 여기에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숨겨놓은 기프트라던가,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조력자라던가 말이다.
혼자 사냥했다면 최준호의 실력은 아득히 위에 존재한다는 의미고 조력자가 존재한다면 대한민국은 추가로 초인을 더 보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어느 것이든 대한민국의 가치와 최준호의 가치는 올라간다. 특히 최준호는 ‘혼자 사냥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자체가 다른 초인들도 해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제임스에게 목을 걸라는 건 말만이 아니라는 거로군요.”
“그럴 실력이 있는 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맞는 말일 것입니다. 최준호의 기프트는 대련용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서로 최선을 다해야 하니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걸 제외하더라도 최준호는 기프트만큼이나 위험한 사고회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행에 망설임이 없고, 뒷수습을 생각하지 않더군요.
“컨셉이 아니란 겁니까? 어떻게 봅니까 크리스틴?”
“오늘 본 모습이 그의 진실된 모습일 거예요.”
최준호가 초인이 된 뒤, 미국은 휴민트를 발휘하여 그에 대한 조사를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오늘 자리에서 보여준 모습이 어쩌면 인생에서 최대로 예의를 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것이다.
범죄자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손을 쓰고 범죄에 협력하는 자도 빌런으로 볼 만큼 과격한 사상을 갖고 있었다.
이를 놓고 미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최준호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가 반대 의견이 대두된 것이다.
대표적인 찬성 측의 안나 크리스틴과 유보 혹은 반대 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제임스 리드였다.
“그 나이에 그만한 실력이라니. 반드시 데려왔으면 싶지만 제임스와 크리스틴의 생각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부통령의 말에 제임스 리드와 안나 크리스틴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안나 크리스틴이 강하게 주장했다.
“최준호는 30년 넘게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는 초인이에요. 초인의 육체적 전성기가 점점 오래 유지되는 추세를 봐서 40년을 기량을 발휘할 수 있고요. 이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지금 움직이는 것도 늦었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제임스 리드의 이명이 마초라고 해서 부풀어있는 근육 마냥 뇌도 근육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스탠퍼드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자기 몸을 개조해 초인에 오른 인물이다.
허술해 보이는 말투, 행동과 달리 빠른 판단력, 뛰어난 분석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간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스마트 헌팅 시스템의 구축 또한 제임스 리드가 상당한 관여를 했다.
미국에서 최준호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직접 옆에서 지켜본 제임스 리드는 확신을 갖고 말했다.
“최준호가 국가소속 초인이 된 건 여러 우연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눈앞에 버젓이 결과가 있는데 그런 말씀인가요?”
“예.”
안나 크리스틴의 반격에 제임스 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의 행적, 발언 등을 볼 때 최준호 그가 어떻게 국가 소속 초인이 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그 운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제가 볼 때 최준호는 99.9%의 확률로 빌런이 되었을 것입니다.”
“최준호가 빌런이라고요? 말도 안 돼요. 그건 억측이에요.”
“공무원 헌터 이후 보여준 행적이 이를 의미합니다. 최준호는 헌터의 탈을 쓴 빌런입니다.”
제임스 리드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제가 반대하는 이유는 빌런은 사회화가 될 수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감시자를 붙이거나 외곽에 두는 게 최선입니다. 그 점에서 최준호가 공무원 헌터를 거쳐 초인이 된 건 우연에 우연이 겹친 산물입니다. 언제고 다시 빌런 기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동안 보여준 과격함이 끝이 아니란 겁니까?”
“예. 그래서 저는 최근 대한민국에 등장한 레벨 8 빌런 중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빌런이 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반년을 통틀어 대한민국에는 두 명의 레벨 8 빌런이 등장했다.
하나는 레벨 7로 평가받다가 붉은 뱀 김영환을 잡은 버서커.
하지만 버서커는 과거 행적부터 현재 행적까지 다 밝혀져 있다.
나이대도 일치하지 않고.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하나다.
그 빌런은 나이도, 정체도, 얼굴도, 성별도 알려지지 않았다.
“Eraser(말소자).”
안나 크리스틴이 표정을 굳히며 중얼거렸고.
고개를 끄덕인 제임스 리드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저는 그가 최준호일 거라 확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