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56
56화
56화
장쯔둥을 비롯한 중국 사절단은 미국 사절단과 같은 일정을 거쳤다.
어색하면서 살벌한 만찬을 거친 뒤, 대통령과 중국 총리의 회담이 열렸다.
그 사이 나는 천명국에게 불려가 의문의 칭찬을 듣는 중이다.
“거기서 끝을 안본 건 잘하신 겁니다.”
“······.”
내가 현장에서 죽이지 않다고 칭찬받는 날이 올 줄이야.
근데 내가 안 죽인 게 아니라 녀석이 회피한 거다.
한 번 더 덤볐으면 끝을 봤을 거다.
그래도 천명국이 눈에 띄게 좋아해주니 그랬던 척 하자.
“어차피 죽을 놈이라 잠깐 생명이 연장된 것뿐입니다.”
“그 말이 든든하게 들릴 줄 몰랐습니다.”
“죽을 놈이니까요.”
“첫 인상은 어떠셨습니까?”
“죽여도 싼놈? 임자 만나면 딱 죽기 좋아 보이던데.”
“맞습니다. 장쯔둥은 무척 오만한 성격에다가 중화주의자로 한국에 대한 비하 발언을 해왔습니다.”
“기분 나쁘네요.”
내 나라는 내가 욕해야지, 다른 나라 사람이 욕하면 기분이 나쁘다.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이유가 없어도 어차피 죽일 거였지만.
천명국은 본론에 들어갔다.
“그런데 장쯔둥이 공간 이동류 기프트를 쓴 게 확실합니까?”
“공간 이동류가 맞습니다.”
천명국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공간 이동류 기프트는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특히 죽이는 건 더더욱. 자칫하면 제거가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차라리 부상 입히는 쪽으로 하는 게 어떠신지.”
“실장님.”
“예.”
“이거 하나는 외우셔야 합니다. 저는 사람을 죽이는 게 살리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
“기프트가 공간 이동 종류여도 상관없습니다. 장쯔둥이 제 주제 모르고 대련을 신청하면 죽일 겁니다.”
천명국의 입이 닫혔다.
“알겠습니다. 절대 최준호 초인님을 얕보려 한 게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중국 총리의 회담이 끝난 뒤 열리는 건 누리의 사냥 과정 브리핑이다.
그리고 장쯔둥은 자기를 죽여야 할 이유를 더해주기 시작했다.
*
누리 사냥 과정에 대한 설명은 미국 때와 같았다. 하지만 중간에 손을 든 장쯔둥이 개입하면서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런 판에 박힌 사냥 과정이 아니다.”
“······.”
“이 과정에 숨어있는 내용, 그 내용을 말해라. 어떤 비기, 어떤 기프트가 작용했지?”
장쯔둥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눈에 살기나 좀 빼지. 지금 이 자리에서 목을 비틀고 싶어지잖아.
“믿기 싫으면 돌아가던가.”
“지금 내게 한 말이냐?”
“호의를 베풀면 고개를 숙이며 감사할 줄 알아야지,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너희 어머니가 그리 가르치디?”
“···죽고 싶나보군.”
“덤벼보던가. 또 기프트 써서 꽁무니나 빼지 말고.”
“개자식이······.”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장쯔둥은 굳은 표정으로 날 노려보며 살기를 피웠다.
어차피 옆에 총리 눈치나 보는 주제에.
난 당장이라도 대통령 눈치 안 보고 네놈 목을 분지를 수 있다.
이것이 너와 나의 차이다.
난 태연히 녀석이 어떤 행동을 하나 기다렸다.
몸을 들썩이던 장쯔둥을 막은 것은 중국 총리였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자 장쯔둥이 총리에게 몸을 기울였다. 귓속말을 들은 녀석은 분노를 접어두고 자리에 앉았다.
쫄보 녀석.
대통령은 그 광경을 왜 부럽게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브리핑을 계속해라.”
다시 누리에 대한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브리핑 내내 장쯔둥의 표정은 좋지 않았고, 결국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아깝군. 덤비면 죽이려 했는데.
끝까지 날 노려보던 장쯔둥이 찬바람 쌩쌩 부는 얼굴로 나갔고, 천명국이 아연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일부러 그러시는 겁니까?”
“어차피 죽일 놈인데 예의 차려서 뭐합니까? 열 받게 해서 대련 신청할 확률을 100%로 만들 생각입니다.”
“허허.”
“그래도 참는 걸 보니 교류전 때 자리를 만들 생각인가 봅니다.”
“저희도 그리 판단하고 있습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럼요. 그리고 부탁한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 말에 천명국은 참고 있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사히 서울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잘됐네요.”
“아무리 그래도 좀 불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알맹이가 미친놈이긴 한데 겉은 멀쩡하거든요.”
“알맹이 때문에 불안한 겁니다만.”
“제가 잘 타이르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천명국에게 부탁한 것은 버서커를 서울로 불러오는 것이었다.
*
버서커 녀석을 부른 건 대통령이 언제고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을 해서다.
미친놈을 보고 싶다는 말에 나는 말리는 쪽이었지만 대통령의 고집도 꽤 셌다. 이번에 장쯔둥을 제거하는 김에 경호나 세울 겸해서 서울로 불렀다.
내가 본 녀석은 사파리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를 쓴 채 한껏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서울 공기가 좋군.”
“얼마만에 온 거냐?”
“글쎄, 내가 빌런이 되고 발도 못 붙였으니 15년은 됐군.”
“빌런으로 어지간히 오래 살긴 했네.”
“난 후회하지 않는다. 빌런이 되고 매 순간 짜릿했었지. 요즘 더 특히 짜릿하고.”
“말을 말자.”
빌런이 좋다고 하는 녀석은 저 녀석밖에 없을 것이다. 난 귀찮아서 죽을 것 같았는데. 내 반응에 버서커도 용건을 바꿔 말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날 보고 싶다고 한 게 사실인가?”
“어, 몇 번 협력해줬다니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네.”
“특이한 양반이군.”
“너만 하겠냐.”
“······.”
“왜?”
날 빤히 보는 녀석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자 선글라스를 고쳐 쓴다. 불손한 눈빛을 들키기 싫어서 그런 건가.
시비 걸게 줄어들었군. 하여간에 눈치 빠른 녀석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의 인사라니 받아야겠지. 헤드 브레이커 덕분에 별 경험을 다해보는군.”
“가면서 들어. 시킬 일도 있으니까.”
청와대로 가면서 나는 버서커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해줬다.
*
청와대에 간 버서커는 천명국과도 인사를 나누고 대통령과 식사도 함께 했다.
모든 과정은 극비리에 이루어졌다. 아직 세간에 버서커에 대한 인식은 극악무도한 빌런이었다. 그걸 개선하기 전까지 버서커의 존재는 대외적으로 공표되지 않을 예정이다.
“세상이 참 좋아졌어. 내가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도 듣고.”
“좋냐?”
“좋다마다. 예전처럼 쫓겨다니는 것보다 지금이 낫지.”
“그럼 도시로 완전 들어오지 그러냐?”
“그건 싫군.”
“왜?”
“난 자유로운 게 좋다. 내가 시민이 된다면 여러 가지 줄이 날 옭아매려 하겠지. 그것에 반발하면 다시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하긴.”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시대긴 하다. 나도 사실 버서커처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싶지만 엄청나게 참고 살고 있고.
이렇게 보니 버서커 이 녀석이 이상적으로 살고 있군.
안 참고 살 수 있다는 거, 굉장히 부러운 일이다.
“중국 초인은 죽일 수 있는 건가?”
“도망치는 기술이 짜증나긴 하지만 어렵진 않아.”
“다른 놈이면 미친놈이라 했을 텐데 네가 말하니 신뢰가 가는군. 재미있겠어.”
“그 자리에서 다른 놈들이 날뛸 수 있으니 대통령 근처에 있어.”
“관람값이로군.”
“그럼 공짜로 좋은 구경 시켜주겠냐?”
버서커는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대통령을 경호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것이다. 장쯔둥이 데려온 녀석들이 날뛸 수도 있으니까.
말 그대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것이다.
사실 날뛰면 좋다. 그 자리에서 싹 다 죽여 버리면 되니까.
“만독불침은 개방했냐?”
“···아직 안했다.”
“진짜로? 개방해놓고 구라치는 거 아니지?”
“아니다.”
집요하게 바라봤지만 버서커의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진짠가 보다. 아쉽다.
“만독불침이 레벨이 높은 거라 개방하기가 힘든 건가.”
“그럴지도.”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할 거 같은데.”
내가 만독불침의 복사를 시도하려고 해도 녀석이 기프트를 개방해야 가능했다. 역시 레전드 기프트. 개방이 쉽지 않은가 보다. 어떻게 하면 개방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봤지만 뚜렷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강제로 개방할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되면 좋겠는데.
실험을 좀 해봐?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이상한 상상하는 게 다 보인다.”
“뭐가? 이상한 거 아니야. 아니라니깐.”
내가 그리 말해도 버서커 녀석의 경계심은 풀리지 않았다.
그냥 어떻게 하면 복사할 수 있을지 생각한 건데. 가슴을 살짝 열어보는 거면 괜찮지 않나. 하지만 경계심이 높은 상태에서 더 말해봤자 도망만 갈 테니 다음에 말해봐야겠다.
그 사이 녀석이 머물 호텔에 도착했다. 5성급 호텔이다.
“오랜만에 호텔이군.”
“캠핑도 좋다고 하지 않았냐?”
“그래봤자 호텔의 푹신함과 비교할 수 없다.”
“그래?”
“다음부터 캠핑과 호텔은 절대 비교하지 말도록.”
그리 말한 녀석이 호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리고 교류전 날이 되었다.
*
천명국은 내가 장쯔둥과 대결에서 만약의 상황에 중국 사절단이 경거망동하는 걸 막기 위해 최대한 많은 헌터들을 초대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신경전이 벌어졌고, 적당한 숫자로 타협을 봤다.
그래서 선정된 것이 빌런전담팀의 정다현과 팀원들이었다.
여기에는 내 입김도 있다.
나와 장쯔둥의 대결은 결국 레벨 8의 대결이고, 보는 것만으로 적잖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아는 사람을 챙기는 게 당연한 일이다.
나는 버서커와 함께 먼저 도착했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정다현을 발견했다. 간편한 흰색 루즈핏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정다현은 내게 눈인사를 보낸 뒤 버서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버서커님.”
“어떻게 알아봤지?”
“기세가 느껴졌어요. 이곳에서 뵐 줄 몰랐어요.”
“내 기세를 느꼈다? 호오.”
눈을 반짝이는 버서커처럼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풍부한 실전 경험 속에서 점점 감각이 확장되어 가고 있었다. 이는 레벨 7의 경지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였다.
“조만간 날을 잡도록 하지. 조금 더 단련하면 레벨 7에 오를 수 있을 거다.”
“부탁드릴게요.”
“나야 취미 생활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의 시선이 모이니 난 가보도록 하지.”
버서커가 대통령과 적당한 거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다현은 주위를 둘러보다 중국 사절단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오늘 교류전, 뭔가 살벌함이 감도는 거 같아요.”
“쟤들 입장에서 꼭 이겨야 하나보지.”
교류전을 위해 온 중국 측 예비 각성자들의 각오는 미국 쪽과 차원이 달랐다. 결연하기까지 한 모습이 보였다.
지면 탄광 끌려가고 그러나.
“오빠는 어떻게 보세요?”
“저쪽이 꽤 수준 높긴 한데, 미국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보이는데······.”
“난 반반.”
“높게 보시네요.”
“내가 가르쳤으니까.”
그리고 미국과 교류전을 통해 더 성장했을 것이다.
자기보다 강한 상대로 승리를 경험했다는 것은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또한 성공했다는 성취감이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중요한 자양분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오늘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길 거야.”
“구경거리요?”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버서커 근처로 가. 미친놈이긴 해도 실력은 확실하니까.”
“···네.”
내가 더 대답하지 않을 거라 여겼는지 정다현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교류전 준비가 이루어질 때, 뒤늦게 입장한 장쯔둥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장쯔둥의 시선이 정다현에게 고정되었다.
“호오, 예쁜데?”
“······.”
“중국으로 올 생각 없나? 꽤 수준 있는 각성자 같은데 내가 키워주지.”
“······.”
“옆에 미숙아가 있어서 그런가? 조금 이따 죽을 놈이니 그때 다시 얘기하지.”
자기 혼자 지껄이다가 멀어지는 장쯔둥.
100% 이상한 말을 지껄였을 게 분명했다.
근데 정다현을 보니 표정이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기분 안 나빠?”
“눈빛이 음흉한 거 보면 제 칭찬한 거 같은데요.”
“중국말 몰라?”
“네, 몰라요.”
혼자 떠들고 갔던 거로군. 저게 유언일 수도 있겠다.
간단한 몇 가지 과정을 거친 뒤 본격적인 교류전이 시작되었다.
전체적인 전력은 중국이 우세했으나 대결 과정은 팽팽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학생들 모두 최선을 다해 대결에 임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대결에서 아쉽게 패했고, 세 번째에서 중국 측 첫 패배가 나왔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은 건 중국 학생이 장쯔둥 앞에 섰을 때였다.
쫘악!
찰진 소리와 함께 뺨을 맞은 중국 학생이 쓰러졌다. 어마어마한 통증이 동반될 것임에도 곧장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쓰레기 같은 놈! 실력이 더 나은데 그걸 못 이겨?”
“······.”
학생은 장쯔동에게서 쏟아지는 폭언을 묵묵히 들었다. 그 사이 네 번째 대결이 시작되었고, 중국 학생은 이를 악 물고 임했다. 그럼에도 패자는 나타났고, 그때마다 장쯔동에게 뺨을 맞고 잔소리를 들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고통을 주는 건지 훈계를 하려는 건지.
내가 볼 때 둘 다 아니었다.
체벌을 할 거면 양 다리라도 분지르던가, 훈계를 할 거면 왜 졌는지 몸에 새겨줄 것이지. 하여간에 생각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다 보는 앞에서 저러는 건 좀······.”
정다현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체벌 받는 학생을 안쓰러워했었는데.
좋은 변화다. 동정심이 실력을 늘려주는 건 아니니까.
교류전이 슬슬 막바지로 돌입할 무렵이었다. 대결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양주혁이 내게 다가왔다.
“역시 교수님 정도 되시면 엄청난 미녀가 옆에 있군요.”
나와 정다현을 번갈아보며 녀석이 감탄한다. 이 녀석, 매를 버는 기술은 탁월하다.
“왜 왔냐.”
“제가 상대할 놈이 에이스라던데요.”
“그래서?”
“이기면 저 소원하나 들어주시면 안 됩니까?”
“헛소리 하지 말고 가라.”
그냥 몇 대 쥐어패고 기권 시켜버릴까?
“그러지 마시고요. 저랑 상대할 놈이 상무위원 아들이라던데요? 실력도 차원이 다르다고. 저런 녀석을 이기려면 저도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난 네가 져도 상관없어.”
심지어 죽어도 상관없다. 설마 내가 제자를 아낄 거라 생각한 건가. 제자가 아닌데.
이놈도 어지간히 미친 거 같다.
옆에서 지켜보던 정다현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최준호 초인님, 그러지 마시고, 뭘 원하는지 들어보시는 건 어때요?”
하여간에 착해빠져서는. 양주혁 저 녀석이 아카데미에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면 아마 정다현이 앞장 서서 쥐어팰 거 같은데.
“헛소리하면 상무위원 아들이 아니라 나랑 대결이다.”
“어? 제가 원한 게 그거였는데요?”
“뭐?”
“제가 이기면 다시 한 번 지도 대련 해주시면 안 됩니까?”
“너랑?”
“대신 한 손만 쓰시고요.”
이놈 진짜 뭘 잘못 먹었나? 나한테 그렇게 두들겨 맞아놓고 대련을 하고 싶다고? 몇 대 맞더니 머리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두들겨 맞고 싶다는데 거절 할 수 없지.
난 수락의 의미로 녀석의 상대에 대해 말해줬다.
“네 상대, 실력에 비해 살기가 짙어. 자기보다 약한 놈들 상대로 거들먹거렸겠지. 초반에 짓이겨버려.”
“예썰!”
희희낙락한 얼굴로 가는 녀석이었다. 진짜 취향이 바뀌기라도 한 건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 친구도 있고, 보기 좋네요.”
정다현은 그걸 또 좋아라 보고 있었다.
*
장쯔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무위원의 아들이 졌다. 여기 있는 모든 학생이 지더라도 녀석만큼은 이겼어야 했다. 대결에서 졌으니 체벌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장쯔둥은 상무위원 아들은 건드릴 수 없다.
학생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짐작이 가니 짜증이 치밀었다. 그리 잘난 척을 해놓고 왜 진 건지.
체면이 구겨지는 걸 느낀 장쯔둥은 총리와 눈이 마주쳤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 분노를 표출할 곳이 필요했다.
“이대로 여흥을 끝내기 아쉬우니 중한의 초인이 대련을 해보는 것이 어떤가?”
갑작스러운 등장에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린다.
느슨하게 풀려가던 분위기가 다시 팽팽하게 당겨졌다.
장쯔둥은 최준호를 바라봤다.
“겁이 나면 도망쳐도 좋다.”
하지만 장쯔둥도 안다. 녀석은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다.
제 주제도 모르는 놈.
첫 만남에서 기프트를 쓴 건 순전히 실수였다. 이번에 반드시 죽여버릴 것이다.
얄미운 녀석의 얼굴을 보다 옆에 선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녀석을 죽이고 전리품으로 데려가기 딱 좋았다. 자신의 강함에 반하지 않고 못 배길 테지.
장쯔둥은 여유롭게 상대의 결정을 기다렸다.
잠깐의 소란이 벌어진 뒤,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대결이 성립된 것이다.
잠시 후, 대련장으로 최준호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요즘 이런 방식으로 자살하냐?”
“넌 오늘 죽는다.”
“중국말 몰라도 뭐라 했는지 알 거 같네. 왜 죽을 놈들 대사는 항상 똑같은지 모르겠어. 됐고.”
최준호의 웃음에 살기가 실렸다.
“그냥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