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6
6화
회식 이후 별다른 일 없이 순조로이 팀에 적응했다.
내 사수를 자처한 정다현은 공무원 헌터가 해야 할 부분을 꼼꼼하게 알려 줬다.
모든 업무가 그러하듯 빌런을 전담하는 헌터라고 해서 빌런만 상대하는 건 아니었다.
최대한 빌런의 발생을 억제할 수 있는 갖가지 방안과 치안 강화 방책, 도시 내부와 외부의 마물 접근 억제 등등의 갖가지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각종 서류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여러 부서의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걸 확인해야 했다.
여기에 갖가지 정찰 자산까지 갖춰지니 서울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인근 부서에 도달하는 것까지 5분, 출동까지 30분 이내로 이루어지는 시스템 구축이 되었다.
몇몇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지만 도시 치안을 지키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었다. 만약 빌런의 ‘체포’가 아닌 ‘제거’였다면 효율은 월등히 높아졌을 것이다.
“······따라서 타 부서와 협력 체제 구축이 가장 중요해요.”
정다현은 여러 차례 협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협력이란 건 속도가 늦어지는 걸 말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래서 현장의 판단이 중요해요.”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공무원 헌터였다. 그러라고 ‘공권력’이 주어진 거니까.
이 공권력이 있고 없고가 헌터와 빌런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나는 정다현의 당부처럼 다른 부서에 협력을 구할 생각이 없다. 빌런이라면 없어져야 할 존재였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공무원 헌터 입장에서 속도전은 중요했다.
이것이 시민을 수호하는 공무원 헌터의 평범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시험 하나로 자격의 유무가 결정된다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그럼 점심 먹으러 갈까요?”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이었다. 정다현과 밖으로 나와 국가수호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백반집에 갔다. 이 가게 버섯된장찌개가 일품이어서 이번 주 내내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체계를 잡는 것도 좋지만 일선에서 빌런을 잡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쉽지 않다면?”
“도시에 숨어든 빌런이라는 건, 상상 이상으로 교활하다는 의미거든요.”
“······.”
솔직히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표정을 본 정다현이 희미하게 웃었다.
“곧 아시게 될 거예요.”
* * *
출근해서 공무원 헌터 생활에 적응한다면 퇴근 후에는 윤희의 수련을 봐 줬다.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재능을 타고 났다.
날렵한 몸놀림과 포스의 친화력, 적응력, 운용 능력이 상위에 해당했다.
제법 혹독한 지도라서 힘들다며 툴툴 댔지만 늘어나는 실력을 보고 꾹 참고 견뎌 냈다.
굴리는 만큼 실력이 느니 나도 굴릴 맛이 났고. 여동생이라 그런지 굴리는데 의욕이 샘솟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과거 윤희의 앞길을 막았던 사람이 나라는 걸 떠올렸다.
화끈하고 뒤끝이 없는 성격이라 부모님도 물론 친구들에게도 사랑받던 것이 여동생.
나로 인해 꿈이 산산이 부서졌고 평생 감시를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여동생을 나는 가끔씩 멀리서 지켜보는 게 전부였고.
용기가 없어 마주하지 못했지만 직접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그냥 잔소리 좀 하겠지? 칠칠 맞은 오빠 제대로 못 이끌어서 빌런 되게 만들었다고. 내 인생에 가장 베스트 선택이 오빠가 공무원 헌터 시험 보게 만든 거야.”
언제고 한 번 내가 빌런이 되면 뭐라 했을 거냐는 물음에 나온 대답이다.
“행여나 빌런 짓 할 생각 말고. 꼭 다현 언니 옆에 붙어 있어! 그럼 중간이라도 할 걸?”
어째 나보다 정다현을 더 신뢰하는 것 같았다. 근데 언제부터 정다현을 언니라고 부르게 된 거지? 살짝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신경 써줘서 고오맙다, 동생아.”
“자, 잠깐! 왜 그렇게 살벌하게 웃는 건데! 오지 마!”
“누가 괴롭히냐? 수련하자는 거야, 재밌는 수련.”
“수련이 뭐가 재밌어? 엄마! 이 오빠가 동생 잡어!”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찾으며 발버둥을 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졌다.
너무 힘들면 그럴 여유도 없어지는 법이다.
* * *
레벨 측정.
헌터가 되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레벨은 곧 힘의 척도이며, 고레벨의 각성자는 국가의 주요 전력으로 평가되고 대우받는다.
일선에서 활약하는 각성자의 레벨은 4~5이며, 레벨 6~7은 고위 각성자, 레벨 8은 초월 각성자로 불린다.
특히 레벨 8 각성자는 미국을 제외하고 어디도 10명 이상 보유하지 못한 최강 전력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공식적으로 네 명의 레벨 8 각성자를 보유한 국가다.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과 뛰어난 유망주들의 등장으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각성자 강국으로 꼽힌다.
그래서 유망주를 길러 내는 이들은 ‘혜성처럼 등장하는 천재’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진정한 천재는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재능을 드러내고 그 재능을 갈고닦음으로써 만들어지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오늘 그 상식이 깨졌다. 잔뜩 굳은 표정을 한 정주호가 정다현을 바라봤다.
“···너는 알고 있었냐?”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레벨 7이라니, 믿어져?”
“믿어야죠.”
“그래, 믿어야지. 측정기가 거짓말은 안할 테니까.”
레벨 측정이 모든 전투력을 대표하진 않는다. 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방식이며 높은 적중 확률을 자랑한다.
오늘 이뤄졌던 레벨 측정에서 최준호는 레벨 7을 증명했다.
오류일까 싶어 다른 측정기구로 몇 번 더 검사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각성 후 첫 레벨 측정에서 7. 개연성이 없는 성장과정. 그리고 공무원 헌터 지원.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되는 부분이 없었다.
20대 중반에 레벨 7이라면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데려갈 길드들이 널리고 널렸을 테니까.
“네가 본 최준호는 어떤 사람이냐?”
“도화지 같아요.”
“도화지?”
“네, 새하얀 도화지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순수해요.”
어딘가 마모된 느낌도 들었으나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최준호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인물이다. 다소 과격한 그를 지적하고 자제하게 만들수록 반작용으로 더 튀어나갈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인류는 여태껏 마주하지 못한 거대한 재앙과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정다현은 최준호를 감싸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도화는 새하얗죠.”
“물들 수 있다는 거로군.”
“네, 위험해요.”
충실한 공무원 헌터가 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누구보다 위험한 빌런이 될 수 있는 자.
정다현이 본 최준호는 그러했다.
“제가 옆에 있어야 해요.”
“나야 널 믿는다만, 과거가 없다는 게 걸린다.”
“차차 알아 가면 돼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면 이렇게 접근하지 않았겠죠.”
“그렇겠지. 알았다, 당분간 네가 옆에서 지켜봐라.”
정주호는 그걸로 대화를 끝내려고 했지만 정다현은 자칫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짚었다.
“그리고 알아 두셔야 할 게 하나 더 있어요.”
“뭐냐?”
“레벨 측정기구는··· 레벨 7까지밖에 측정이 안 돼요.”
“···설마, 아니겠지.”
정주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있었다.
레벨 8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에 위치한 측정기가 필요하다. 일반 측정기로는 레벨 8 각성자도 레벨 7로 나온다.
정다현의 추측은 터무니없다. 하지만 염두에 둬야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니겠지?”
“저도 일단 말해 본 거예요.”
“일단 이건 시간이 필요해. 상부에 보고만 올리고 녀석의 레벨 공표는 당분간 묵혀 두자.”
“네.”
* * *
공무원 헌터가 되고 2주.
내부 업무를 인수인계를 받고 레벨 측정까지 마쳤다.
내 레벨은 7. 내부 논의 끝에 공개 레벨은 5로 하기로 했다.
나는 굳이 레벨에 연연하지 않지만 저번 생에 평가받았던 레벨과 달라서 다소 의아했다.
저번 생에 빌런 녀석들이 레벨을 갖고 전국레벨자랑을 펼치다가 하위 레벨 빌런한테 머리가 터져 나간 고레벨 빌런을 숱하게 봤다.
그래서 나는 레벨을 맹신하지 않는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의 출력 정도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오늘은 정다현과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현장 업무였다.
경계가 풀어지면 안 된다면서 점심도 된장찌개가 아닌 제육볶음을 먹었는데, 그게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 비장한 분위기가 잘 전해졌다.
“저번에 일선에서 빌런을 더 많이 잡는 게 낫지 않냐고 했죠?”
“예.”
“사실 우리가 그걸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거예요. 정확히는 빌런을 잡아낼 수 없어요.”
빌런을 잡을 수 없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도시 규모에 비해 빌런을 전담하는 각성자 숫자는 적어요. 대부분이 마물 사냥에 정신이 팔려 있고 부산물 값어치를 계산하기 바쁘죠. 이 평온해 보이는 도시도 사실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에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빌런일 때 집요하게 뒤쫓던 각성자들의 잔상이 짙었지만 피라미 빌런들까지 모두 커버하기에는 인력이 모자랐을 것이다.
나야 미쳐 버려서 대놓고 죽이고 다녔지만 두 눈 부릅뜨고 다니는 각성자들을 보고 살기 풀풀 풍기며 다니는 빌런은 없었다.
“숫자도 부족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이거에요.”
정다현이 자기 볼을 잡아 늘렸다.
“페이크 페이스?”
“맞아요.”
가짜 얼굴로 불리는 페이크 페이스는 인피면구와 비슷한 것으로, 인간형 마물의 가죽을 가공해서 만든 변장도구다. 빌런들의 단골 아이템이기도 하다. 독성 때문에 오래 쓰지 못하지만 도시 내부에서는 유용했다.
“각성자 숫자는 부족하고 빌런들은 정체를 숨기고 다녀요. 여러 팀과 공조를 해도 사전예방보다 수습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페이크 페이스를 알아볼 방법은 없습니까?”
“근거리에서 안면인식을 해야 돼요. 하지만 그건.”
“반발이 거세겠군요.”
“각성자에 대한 반발이 있으니까요.”
각성자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계급과도 같다. 그들이 가진 강력한 힘, 부와 명예, 권력을 시민들은 부러워했다.
하지만 은연중 깔린 열등감이 문제다.
일반 시민들은 각성자들이 통제 안에 있길 원했고, 그들만으로 이루어진 특권층이 생겨나는 걸 경계했다.
“그래서 우리는 체계적인 구축망을 통해 빌런들이 사고 쳤을 때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진압하는 걸 목표로 해요. 그게 최선이고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사무관님은 빌런의 제거와 시민의 안전 중 어떤 게 더 중요합니까.”
“시민의 안전이요.”
“살아남은 빌런이 미래에 재앙이 된다 해도 말입니까?”
“···현실과 마주하면서 느낀 건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거였어요.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시민의 안전이 먼저에요.”
올곧은 눈이 날 향했다. 저번 생에 봤던 것과 같은 눈이었다. 내 손에 죽기 전까지 했던 그 눈.
신념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현실에 적응하려는 사람이 싫지 않다.
“저는 한 명의 빌런을 체포하는 게 백 명의 시민이 안전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준호 씨의 생각은 자칫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어요.”
“그땐 사과하면 됩니다. 부작용 무서워서 예방접종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가령 지금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시죠.”
“네?”
나는 감각에 걸려든 목표를 향해 다가갔다.
“뭐, 뭐야?”
우두커니 서 있던 평범한 인상의 남자가 날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난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얼굴을 잡아당겼다.
찌이익!
평범한 얼굴에서 흉터 가득한 험악한 인상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빌런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