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61
61화
“···네, 알겠어요.”
통화를 마친 이세희는 가볍게 몸을 떨며 배배 꼬았다. 전율이 일었다.
비록 전화상이었지만 그 너머에서 느껴지던 살기는 강렬했다.
“무서워.”
솔직한 감상이었다.
동시에 짜릿했다.
이토록 무서운 사람이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마음 같아서는 손에 넣어 평생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김종현이 자료를 들고 도망간 것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이 정도 일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으니까.
자료가 담긴 USB를 가져가더라도 삼중 보안을 뚫어야 하고, 완벽하게 풀지 못하면 자료가 뒤죽박죽 뒤섞여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대우받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고 어리석은 선택한 것이 우스웠다.
“멍청하긴.”
괜히 이번 건으로 최준호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다. 철혈의 초인이라고 해도 사람관계에서 상처받는 것은 다른 사람과 똑같다.
“오히려 기회일까?”
인간관계에 상처받은 틈을 파고든다면? 의외로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겠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이영탄이 안으로 들어왔다.
김종현의 이탈 소식을 접한 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추격대를 준비하겠습니다.”
“추격대는 예정대로 부산 방향을 주시하세요. 이들은 미끼에요. 요란하게 움직여 주세요.”
“예? 그들이 미끼라면······.”
“진짜 저승사자가 찾아갈 예정이거든요.”
최준호가 직접 나서기로 한 이상 김종현은 죽은 목숨이다.
* * *
이세희는 하트워커와 접촉한 곳이 중국 정부 측과 과거 다국적 기업이던 미국 출신 기업, 그리고 대리인을 내세운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기업 세 곳이라고 했다.
이 뒤에 뭐가 더 도사리고 있을지 그녀도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가공법을 원하는 곳은 수도 많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어느 곳이더라도 상관없다. 녀석은 내가 베푼 호의를 이용했고,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자료가 유출되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고 이세희는 말했지만 그것과 별개의 문제다.
이제 하트워커를 추적해야 한다.
“그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지.”
신성그룹에서는 하트워커가 도망칠 곳으로 부산을 꼽았지만 아닐 것이다. 녀석은 잔머리가 잘 돌아간다. 부산에 뭔가를 이뤄 놨다면 모르겠지만 협력하던 자갈치가 날아가면서 끈이 완전히 소멸했다.
확실한 동아줄이 아니면 도주 경로가 길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던 녀석이다. 부산으로 흔적을 남겼다면 오히려 반대 방향일 확률이 높다.
저번 생에서 녀석은 기회가 되면 인천을 통해서 외국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말해 왔다.
그 장소를 알고 있는 나는 하트워커의 흔적을 살핀 뒤 헬기를 요청했다.
“나라의 세금이 줄어들게 만드는 빌런이 있습니다.”
내가 벌 돈 줄어들게 만들기도 하고.
* * *
부산 쪽으로 도망쳤다고 알려 졌던 김종현은 서울 외곽에 숨어 옴짝달싹하지 않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도주하는 사람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범죄 현장에서 멀어지려 하지만 김종현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미리 남겨 놓은 흔적을 따라 신성길드는 부산 방향으로 추격대를 보냈다.
신성길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던 김종현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헤헤헤, 역시 낚여 버렸구만.”
큰 단체라는 곳들은 자기들의 시스템을 지나치게 확신하다 보니 유연하지 못하고 한 번 엇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방향까지 튀어 나가곤 했다.
이번에도 같은 경우다.
신성길드는 자기들이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만큼 멋지게 엇나간 모습을 보여 줬다.
“이 자료가 값어치를 얼마나 할지 모르지만 난 돈만 받고 넘기면 돼. 대우해 줄 거 같으면 몇 년 빨아먹고 튀면 그만이지.”
김종현은 손에 들린 USB를 애지중지 챙겼다.
애초에 이 USB에 담긴 자료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걸 들고 있는 것만으로 자료를 갖고 있는 확신을 줄 수 있다.
“진짜 중요한 건 내 머리에 든 거랑, 내 손이지.”
처음 가공법을 전수받을 때 경악했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처럼 손에 착 달라붙었던 것이다.
그 뒤로 전개 속도는 놀라웠다. 최준호의 이론 전수와 완성품 제공, 여기에 자신의 개선 물품에 맞춰 신성그룹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대기업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체계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빅뱅 시리즈가 탄생했다.
높은 연봉과 후한 대우가 곁들여졌기에 처음에는 이곳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부산에 있을 때 존재했던 자유가 서울에서는 없었다. 빅뱅 시리즈 정보가 중요하다고 해도 통제가 과했다. 출근은 물론, 퇴근할 때마다 물건을 검사하고, 개인시간에도 일정 경로를 이탈하면 어김없이 확인 전화가 들어왔다.
마치 새장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여기에 자유가 없다. 술도 마시고 싶고 여자도 만나고 싶은데 신성길드는 풀어 주기는커녕 모든 걸 통제하기 바빴다.
그만둘까 생각하니 계약 당시 신이 나서 작성했던 계약서가 걸렸다. 기밀유지, 동종업계 취업 금지 등등 모든 게 제약투성이다.
“내가 다 한 거 아닌가?”
빅뱅 시리즈는 자신의 존재로 인해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성과급도 적고 부각시켜 주는 것도 없는데 왜 계약서를 순순히 따라야 하지?
회사에 대한 불만은 자연스럽게 주변 인물과 마찰로 이어졌다. 그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마침내 사내 징계까지 받게 되자 폭발하고 말았다.
“개자식들.”
자신이 해 준 건 모르는 척 저버리다니.
차라리 내가 떠나고 만다!
하지만 그냥 떠나자니 너무 억울했다. 결국 뽑아 먹히기만 한 거 아닌가.
그런데 그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접근하는 곳이 있었다.
그들은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제안해 왔다. 직접 가공법을 전수해 준다면 현지 정착은 물론, 원하는 요구사항들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중 가장 끌렸던 건 미국 출신 다국적 기업의 제안이었다. 그들은 제안을 하기 위해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보냈다.
도회적이고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을 벨루스라 불러 달라 했고, 김종현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날마다 침대에서 속삭였다.
“당신은 더 큰 곳에서 재능을 발휘해야 해요.”
벨루스는 무너진 김종현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착취하는 신성그룹과 최준호를 비난했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을 비웃었다.
같이 웃고 떠들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오자 김종현은 숨이 턱 막혔다.
떠나자니 최준호의 모습이 아른거렸던 것이다.
“헤드 브레이커······.”
아직도 자갈치가 사라졌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빌런들이 피와 살점덩어리가 되어 사라졌던 그날의 기억은 깊은 공포로 각인되었다.
자신 또한 배신하면 그리 되는 게 아닐까 무서웠다.
그때마다 벨루스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려워마요. 최준호는 공사다망한 초인이에요. 당신이 사라진다고 해서 쫓아오지 않을 거예요. 신성길드 추격대만 뿌리치면 돼요.”
그 말에 김종현이 자신감을 얻었다.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머릿속에 최준호의 잔상을 지워 버렸다.
“그, 그치? 초인이 얼마나 바쁜데 설마 날 쫓아오겠어. 나 없어도 잘 돌아가잖아? 그치, 그럴 거야. 안 쫓아오겠지.”
생각해 보니 빅뱅 시리즈 개발 때도 최준호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쇼케이스 때 본 게 전부였다. 어쩌면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겁먹은 걸지도 모른다.
초인의 일정이 얼마나 바쁜데.
자신이 사라져도 아예 모를 수도 있다.
“맞아요. 이제 자신의 행복만 신경 써요. 당신은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더 큰 곳에서 능력을 발휘해야 해.”
벨루스의 격려에 김종현은 홀린 것처럼 떠날 준비를 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물론 평생 기업 얽매여 있을 생각은 없었다. 1~2년 정도 지극한 대우를 받다가 감시가 느슨해지면 쌓아 둔 돈을 들고 튈 생각이었다.
“그럼 가 볼까.”
신성길드는 자신의 목적지가 부산으로 알고 있지만 향할 곳은 인천이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회사 측이 준비해 둔 배를 타고 밀항할 계획이다.
마침 인천의 빌런 조직 상당수가 증발한 상태여서 경계는 느슨했다.
으슥한 밤이 되자 김종현은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인천으로 향했다. 그리고 약속 장소인 항구 근처에 도달했을 무렵 오토바이를 폐가 근처에 버렸다. 괜한 엔진 소리로 시선을 잡아끌지 않기 위해서다.
조금만 더 가면 벨루스와 만날 곳이 나오고, 그 다음은 대한민국과 이별이다.
“헤헤, 봐봐. 도망은 이렇게 치는 거라고. 헤드 브레이커니 뭐니 해도 날 못 잡는다고.”
최준호 개자식.
처음부터 자신한테 호의를 베푼 게 다 부려 먹기 위해서였다.
그래 놓고 자신을 위해 주는 척 하면서 과실은 본인이 다 챙겨 가고.
가공법을 더 개량해서 녀석의 밥그릇에 침을 뱉어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절대 손대지 못할 것 같은 녀석에게 엿을 먹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벨루스의 말이 다 맞았다.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개자식아.”
걸쭉한 가래침 한 번 뱉고 항구로 이동할 때였다.
“그 개자식이, 나냐?”
“어?”
항구로 향하는 방향에 서서 자신을 보는 최준호를 보고 김종현은 뇌가 정지하고 말았다.
* * *
하트워커는 내가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왔다.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녀석이다.
아니, 녀석의 배신은 예상하지 못했으니 틀렸군.
그럼에도 배신감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이런 녀석인 걸 알고 있어서다.
저번 생에서도 여자를 그토록 찾다가 결국 떠났던 녀석이다. 실력에 비해 방탕했던 녀석을 한번 고쳐 써 보려고 했지만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괜히 이세희한테 폐만 끼친 셈이다. 내가 쓰레기를 데려와서 폐만 끼쳤으니 내 손으로 치워야겠지.
“하, 하하하! 여기서 만나다니 우연이네?”
“내 욕, 계속 해 봐.”
“그럴 리가. 다른 놈이었습니다. 다른 놈이고말고요. 연구소에 최준우라고 있어서 비슷하게 들렸던 겁니다. 절대 아닙니다.”
“······.”
내가 조용히 바라보자 녀석은 안절부절 못했다. 미약한 포스 파장이 느껴졌다. 그 사이 이렇게 실력이 발전했나 싶었는데 아니군, 저건 기프트나 약물의 흔적이다.
어지간히 물고 빨고 했나보다.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지 녀석은 변명하기 바빴다.
“저, 신성길드에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동안 통제가 너무 심했습니다. 제가 어떤 행동을 해도 간섭하고, 공채 출신이 아니라고 무시하고 사내 왕따에다가··· 제가 해 온 것들에 비해 인정을 못 받아도 너무 못 받았습니다.”
하트워커는 신성길드에 있었던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래서 참다못해서 잠깐 일탈을 한 겁니다. 진짭니다.”
그러면서 품속에서 붉은색 USB를 꺼내 들었다. 저거 가짜다.
“이세희한테 듣기로는 초록색이던데.”
“···하하, 헷갈렸습니다. 이게 진짭니다.”
그러면서 초록색 USB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고개를 박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잠깐 정신이 나갔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일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일만 하겠습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려 줄 생각 없는데.”
얘는 뭔가 착각하고 있었다.
“예?”
하트워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난 이미 녀석 앞에 서 있었다.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마음껏 떠들 수 있게 둔 거였다.
“유언은 끝났냐?”
“자, 잠깐.”
나는 녀석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발로 허벅지를 밟았다.
콰드득!
“끄아아악!”
바닥에 꿈틀거리는 녀석의 발목과 무릎을 차례대로 부숴 버렸다.
사람은 자기가 똑똑하다며 다른 사람의 불행이 자신에게 닥쳐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대부분 당한 다음 후회하지.
경고의 의미로 녀석의 앞에서 자갈치를 날려 버렸어도 결과가 이거다.
결국 자기 의지가 그쪽으로 작용했으니까 세뇌건 약물이건 당하는 거다.
“끄윽! 끄으읍!”
“이번 삶에 후회를 없애면 오종엽처럼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넌 아닌가 보다.”
“리, 리그입니다.”
“뭐가?”
“절 데려가려던 곳이요! 리그에 대해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
콰직!
리그에 대해 굳이 궁금하지 않아서 놈의 머리를 밟아 버렸다. 머리가 산산조각 나자 더 이상 꿈틀거리던 움직임이 완전히 멎어 버렸다.
나는 USB를 주워 들었다. 피범벅이 되어 쓰기 힘들게 되었다.
이걸 갖고 가 봤자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게 분명한데 좋은 기회를 저버리다니.
어차피 녀석은 시행착오 과정을 모르니 카피한 녀석들도 금방 한계에 봉착했을 것이다. 그럼 지금보다 더 비참한 꼴로 최후를 맞이했겠지.
“물건을 가져왔으니 가지러 온 놈들 얼굴도 봐야겠지.”
리그라, 버서커가 궤멸시킨 뒤 더 이상 들려오지 않던 이름이었는데 이렇게 얽히는군.
나는 녀석들이 만날 장소일 게 분명한 항구로 향했다.
가던 도중, 길 정중앙에 서 있는 여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도회적인 세련된 아름다움과 길쭉하게 잘 빠진 몸매를 가진 사람이다.
오른쪽 눈가 아래에 있는 눈물점이 묘하게 시선을 잡아끌었다.
여자가 날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헤드 브레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