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62
62화
“헤드 브레이커가 맞나 보네.”
날 보던 여자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묘한 매력이다. 보고 있으면 눈을 뗄 수가 없다.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최고라 할 수도 없는 미모인데.
정신 계열인가? 가볍게 포스를 순환시켜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종류의 기프트인가 보다. 무색무취로 내게 영향을 끼칠 정도면 상당한 기프트일 테지.
이 여자가 하트워커가 말하던 벨루스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헤드 브레이커가 여기까지 온 건, 우리 종현이는 죽었겠네.”
“아쉽냐.”
“아무 생각 없어.”
하트워커가 지옥에서 통곡할 말이다. 죽기 전까지 벨루스가 자신에게 깊게 빠진 것 같다며 미련을 보였는데.
“죽은 사람에 미련을 갖지 않아. 대신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생기는데.”
은근한 눈길이 날 향했다.
다시 눈길을 잡아끄는 게 느껴졌다. 정신 계열은 아니지만 기프트가 발동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벨루스라, 저번 생에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다.
내가 모른다고 유명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조차도 눈길이 가게 만드는 저걸로 뒤에서 여러 공작을 벌이고 다녔겠지.
“너도 리그 소속인가.”
“직접 추측? 아니, 종
현이겠구나. 내가 몇 개 힌트를 줬으니. 멍청인 줄 알았는데 나름 머리 굴리고 있었구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은근한 감탄이 실렸다. 저 공백지에 자신의 것으로 감정을 채워 주고 싶다.
···보통 남자라면 그런 생각을 했을 테지.
난 벨루스에게 다가갔다. 바로 앞에 도착한 날 보며 눈이 커졌다.
“그래서.”
“응?”
“유언은 끝났냐.”
난 벨루스의 목을 틀어쥐었다. 손을 타고 차가운 피부의 감촉이 전해졌다.
호흡이 곤란해지는지 핏기가 가시는 얼굴. 그럼에도 표정은 평온했다.
“나도 죽이려고?”
목숨에 전혀 미련이 없는 얼굴이다.
내가 죽이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는 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의도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럴 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죽이고 보는 거다.
“죽어.”
“······!”
난 왼손으로 벨루스의 심장을 움켜쥐고 그대로 터뜨렸다. 경악한 그녀의 눈에 빛이 사라지더니 그대로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시체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왼손에 묻은 피를 핥았다.
혈중섭식이 발동하면서 벨루스의 기프트가 복사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벨루스의 기프트가 정체를 드러냈다.
[남자 절대매혹]···쓰레기군.
난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기프트를 삭제하고 항구로 걸음을 옮겼다.
*
**
어둠에 휩싸여 있어야 할 항구는 조명으로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그 속에서 다양한 외국어가 오가고 있었다. 영어도 들렸고, 러시아어도 들리고,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등 항구에 모여든 사람들의 국적이 다양하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리그의 잔당이다.
녀석들은 자기들이 사냥감이라는 자각도 없는 듯 웃고 떠들고 있었다.
“왜 죽는 건지 모르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난 조명이 밝혀 주지 않는 곳에서 검을 뽑았다. 야심한 새벽임에도 검신은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얼마 전 쇼케이스가 끝나고 이세희에게 받은 검이다.
누리의 뼈로 만들어진 본소드로 신성 길드 연구소의 모든 역량이 집중된 검이다.
압도적인 출력과 포스 전달 속도, 단단한 강도 등등 모든 부문에서 최고였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검이다. 특히 새하얀 검신은 내가 빌런으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더럽혀지지 않는 걸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죽어서도 아낌없이 모든 걸 제공해 준 누리를 기리는 의미로 이 검의 이름을 누리라 지었다.
“@%^$#*”
내가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녀석들은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느슨하게 대열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들은 스스로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외치고 다니지만 그래 봤자 실상은 반국가, 반정부 빌런에 불과하다.
내가 조명 범위 안에 들어가는 순간, 뒤늦게 녀석들이 내 존재를 인지했다. 이미 나는 칼날 폭풍을 사용하고 있었다.
포스가 빠져 나가면서 누리의 검신을 타고 소용돌이치며 포스 폭풍이 일어났다. 그것은 순식간에 범위를 확장하여 주위를 모조리 휩쓸어 버렸다.
사정거리 안에 있던 빌런 십수 명이 칼날 폭풍에 휘말렸다.
찢고 터지고 분해해 버리며 휘말린 빌런이 모조리 죽었다.
“&*^%$@!”
뒤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놀라며 무기를 뽑아들었지만 난 다시 한번 칼날 폭풍을 시전했다.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하고 후퇴시기를 가늠하는 것도 능력 중 하나다.
후두둑!
순식간에 서른 명이 넘는 빌런들을 죽였다. 예상보다 많이 못 죽인 거다.
항구에 모인 녀석들의 숫자는 약 오십여 명. 난 두 번의 칼날 폭풍으로 다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하는 움직임이 빨랐다.
나름 실력 있는 녀석들로 보냈군.
그래봤자 상관없다.
두 번 칼질할 걸 세 번할 뿐이니까. 그것이 네 번이 되고, 다섯 번이 되어도 상관없다.
결과는 다 죽는 거일 뿐.
사색이 된 빌런들이 외국어로 외쳐 대며 벌벌 떨다가 나와 거리를 벌리기 바빴다.
그때였다.
“Run away!”
그 말과 동시에 모든 빌런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의미 없는 일인데.
내가 누리를 죽이고 칼날 폭풍을 취한 건 다수의 적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어서다. 그건 도망치는 적에게도 적용되었다.
장쯔둥도 못 피한 것을 피라미들이 피해 낼 리 없지.
내가 본소드를 들 때였다.
도망치는 무리 사이에서 검은색 거대한 인영이 튀어나오더니 맹렬한 속도로 내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속도였다.
난 누리를 휘둘러 칼날 폭풍을 펼쳤다. 수십 개의 포스 블레이드가 검은 인영을 할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은 인영의 두 주먹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던 푸른 포스가 폭발적으로 발산되더니 그걸 휘둘러 칼날 폭풍의 기세를 모조리 부숴 버린 것이다.
장쯔둥마저 갈가리 찢어 버린 칼날 폭풍이 이렇게 쉽게 막히다니.
평범한 놈이 아니구나.
기어이 칼날 폭풍을 뚫고 다가온 녀석이 내게 주먹을 뻗었고 나도 누리를 휘둘렀다.
꽝!
검 끝을 타고 전해지는 거력을 해소하기 위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가끔 멍청한 녀석들은 물러나는 걸 자존심 상한다고 버텨 내는데 강한 힘에 순응하고 흘려 내는 게 나를 보호하고 적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다.
“······.”
그런데 꽤 놀랐다.
이렇게 밀려난 게 얼마 만이더라?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지만 오랜만의 경험이긴 했다.
방금 전 충돌은 비유하자면 거대 마물이 전력을 다해 몸으로 부딪쳐 온 느낌 같았다.
이런 녀석도 있구나.
멈춰 선 녀석도 놀랐는지 놀라움을 담아 날 보고 있었다. 2m에 달하는 큰 체구에 검은색 특수부대 제복을 입고 있는 흑인이었다.
“너 누구냐?”
“I’m Black Hound.”
하운드가 개였나? 그럼 까만 개?
“뭔 이명이 똥개같냐.”
차라리 헤드 브레이커가 낫지. 자꾸 곱씹다 보니 헤드 브레이커도 나쁜 것 같지 않다.
“······.”
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검을 갈무리 하자 살짝 긴장을 풀었다가 내 손에 기뢰가 서리는 걸 보고 긴장의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I’m messenger. I don’t want to fight.”
“외국놈들은 왜 자꾸 한국에 와서 외국어로 말하는 거야. 한국말 하라고.”
순간 치민 짜증이 살기의 발산으로 이어졌다.
“I’m messenger. I’m messenger. I’m messenger.”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한다. 메신저가 뭐? 내 톡 아이디 묻는 거냐?
“I’m messenger!”
“뭐래, 죽어.”
내가 손을 뻗자, 똥개 녀석이 가드를 두 손을 올려 가드를 취했다.
“복싱인가? 아니, 격투기로군.”
자세를 취하는 걸 보면 격투기가 베이스였다. 극한까지 단련한 육체와 견고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은 포스가 맞물려 최적의 효율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다.
이놈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군.
내 손을 스웨이로 피하더니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그걸 반대 손으로 튕겨 내니, 프런트 킥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위력이 범상치 않았다.
땅을 박차면서 함께 튄 흙먼지 하나하나에 포스가 실린 것이다. 뒤로 한 걸음 가서 킥을 피하고 쏟아지는 포스 폭풍을 포스막으로 방어했다. 하지만 신체만 보호하다 보니 옷 곳곳이 헤지고 찢어졌다.
꽤 아끼던 옷인데 엉망진창이 되었다.
녀석의 공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마치 복싱 경기를 하는 것처럼 나보다 긴 리치를 이용해서 연이어 주먹을 뻗어 왔다.
공격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에 동반되는 포스 폭풍이 지저분하게 할퀴어 왔다.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옷은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었다.
십여 번의 주먹과 발차기를 모두 피해 내고 마침내 녀석의 팔을 붙드는데 성공했다.
“잡았다.”
나는 아낌없이 기뢰를 밀어 넣어 손의 뼈를 산산조각 내기 시작······.
콰드드드!
“이걸 버텨 내?”
기뢰가 피부를 뚫고 지나가지 않았다. 갑옷처럼 근육이 촘촘히 쌓여 있고 여기에 포스가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곳이 마치 갑옷처럼 단단했다.
“······.”
팔이 부서지지 않았지만 상당한 고통이 느껴졌는지 녀석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황급히 빼내며 반격을 했다.
쾅!
그건 함정이다. 난 놓아주는 척하면서 반대팔을 붙잡았다.
“이래도 버틴다고?”
어디까지 버티나 해 보자. 나는 무제한으로 포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어마어마한 양의 기뢰가 파고들었다. 녀석도 밀리면 안 된다고 느꼈는지 포스를 끌어 모아 저항하기 시작했다. 난 개의치 않고 무한에 가까운 기뢰로 겹겹이 쌓인 근육과 포스 완충제를 강제로 뚫고 부숴 나가기 시작했다.
“······!”
녀석의 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일어났다. 미간이 모이더니 이를 꽉 물며 버텨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필사적으로 기뢰를 밀어내려는 녀석과 부숴 버리려는 나 사이에 힘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난 포스량으로 밀어붙이는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다.
내 기뢰가 파고든 것 자체가 공성전으로 치면 성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의미다. 승기를 잡았단 이야기다.
필사적으로 버텨 내던 똥개의 뼈가 마침내 부서지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굳건하게 버텨 내던 팔이 부서져 힘을 잃었다. 마지막까지 정신을 놓지 않은 똥개 녀석이 몸을 기울여 숄더 어택으로 날 밀어내더니 간신히 균형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반대 방향으로 부러졌던 팔을 원래 방향으로 되돌리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본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초재생이냐.”
웬만한 절단 부위마저도 가져다 대기만 하면 순식간에 회복하는 기프트다.
이런 실력, 이런 기프트를 가진 녀석을 내가 모른다고? 가만, 블랙하운드? 블랙하운드라고? 나는 정다현이 과거에 해 줬던 말이 떠올랐다.
리그를 처음 만든 세 명의 초인.
아르고스, 헬 마스터, 블랙하운드.
그중 하나가 저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기뢰를 튕겨 냈던 것도, 치명적일 부상도 어렵지 않게 회복해 낸 것도 이해가 되었다.
세계 최강의 빌런 중 하나라는 건가.
그래봤자 나한테는 세계 최강 똥개에 불과했다.
“I’m messenger.”
내 표정을 봤는지 녀석이 다시 말해 왔다. 자꾸 저 말 하던데 내 톡 아이디 알려 달라는 건가.
버서커 하나로도 골치 아픈데 미친놈 하나 추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
“시퐐, 개자쉭!”
잔뜩 굴린 발음의 욕설을 터뜨린 똥개놈이 품속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욱한 연기가 피어나는 걸 보는 순간, 녀석은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곧바로 포스막을 두르고 감각을 끌어올려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녀석은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연막 사이로 거대한 인영이 가까워지기는커녕 멀어지는 게 보였다.
최강의 빌런이라며? 근데 도망친다고?
빠르게 멀어지는 걸 보니 도망치는 건 세계 최강이다.
“만독불침만 있었으면.”
바로 똥개가 튀는 걸 보고 칼날 폭풍을 먹여 줬을 텐데.
녀석의 뒤를 쫓으니 바다로 뛰어들어 잠수하는 뒷모습과 도망쳤던 리그 잔당이 탄 배가 보였다.
나는 곧바로 똥개 녀석에게 칼날 폭풍을 시전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죽은 거냐, 산 거냐. 아무래도 놓친 것 같다.
꿩 대신 닭만 남았군.
나는 리그 잔당이 탄 배를 칼날 폭풍으로 격침시켰다.
“#$^%!@*”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녀석들의 숨통을 하나씩 끊어 주자 바다 위가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는지 해가 뜨고 있었다. 나는 바다 위에 서서 블랙하운드가 다시 올라오길 기다렸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잠수해서 뒤쫓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 넓은 바다에서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톡 아이디를 가르쳐 준다고 하고 유인했어야 했나. 다음부터는 영어랑 외국어를 배워서 녀석들을 죽이는데 써야겠다.
그건 그렇고.
난 아까 전부터 허공 위에 떠 있던 테니스공 크기의 안구 모양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블랙하운드를 뒤쫓을 때부터 자리에 있던 것이다.
“넌 뭐냐?”
내 말에 감겨 있던 안구가 부르르 떨리더니 감겨있던 눈이 뜨였다. 그리고 안광을 뿜어내며 파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치직! 치지직!
처음에는 괴상한 영어가 들려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반갑습니다, 최준호 씨. 저는 리그의 아르고스라고 합니다.
“리그 만든 그 빌런인가.”
-제가 그 아르고스입니다.
정다현이 말해 준 기억이 난다. 리그의 정점이라 불리는 빌런이다.
세계 전역에 눈이 깔려 있다고 하던가. 난 파란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래서 용건은?”
-하인즈를 보냈는데 전투가 벌어졌더군요. 사과드립니다. 저희는 최준호 씨를 적대할 생각이 없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톡 아이디를 원했던 게 아니었나.
그제야 블랙하운드가 끝까지 덤비지 않고 도망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 치고. 저 괴상한 눈알을 내 앞에 들이민 이유는?”
-역시 단도직입적이시군요.
“말이나 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리그에서 당신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왜?”
난 국가공인 초인이다. 리그에 있어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내 행적을 봐도 나라에 소속된 정의로운 헌터 코스를 밟고 있지 않나.
오히려 리그가 제거해야 할 1순위가 아닌가.
-최준호 씨 당신은 빌런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신종 시비 거는 방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