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다소 과한 표현이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이 녀석도 독심술을 가졌나?
그 사이 녀석이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당신이 헌터보다 빌런에 한없이 가깝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르겠는데?”
헌터 그거, 의외로 취향에 잘 맞았다.
-그건 당신만의 생각입니다. 과연 당신의 손에 피해 입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생각 안 하면 자기들이 어쩌겠다는 거지?”
-당신과 충돌할 겁니다.
“그럼 다 죽겠지.”
파란 눈동자의 빛이 강렬해졌다.
-그럴수록 적은 늘어날 것입니다. 적들이 당신에게 저항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 주변을 건드릴 겁니다.
“주위 단속도 잘해야겠어.”
하지만 말과 달리 와닿는 게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해 온 것들의 연결선에 존재했다.
바로 적이 늘어나는 것만큼 내 우군을 늘리는 것이다.
-최준호 씨,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정의를 위해 움직였을 뿐인데 왜 세상은 최준호 씨를 악으로 몰아가려고 할까요?
“······.”
내 침묵이 동의라 생각했는지 아르고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건 세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틀에 맞지 않는 걸 오로지 세상에 끼워 맞추려는 위정자들의 오만이 지금의 불균형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세계는 한 번 뒤집어져야 합니다!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우리들뿐입니다!
“리그의 사상이로군.”
-지금 최준호 씨는 억지로 자신을 세상에 맞추고 있습니다. 이게 최선이라고 스스로 만족하고 계시죠. 하지만 세상은 그런 최준호 씨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더 많은 이해를 요구할 겁니다. 뭐든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제약하고, 억압하고, 짓누르고, 세계의 위정자들은 자기 권력 유지를 위해 각성자를 억누르고 있습니다. 최준호 씨도 그 피해자 중 한 사람입니다.
난 딱히 억누른 적 없는데.
죽일 놈 다 죽였고, 살릴 놈 다 살렸다.
“블랙하운드로 날 공격한 게 회유 공작이었다고?”
-그 부분은 사과드립니다. 하인즈도 평소 최준호 씨의 실력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이 정도면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기 마련인데.
아르고스 녀석의 마음은 진심이라는 걸 알겠다.
-리그는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합니다. 최준호 씨가 원한다면 리그를 이끄는 리더 자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강자와 피 튀기는 혈투도 가능합니다. 최준호 씨가 가진 힘으로 하고 싶은 모든 걸 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최준호 씨에게 그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힘은 곧 자격입니다.
“아쉽겠어. 네놈 몇 마디면 다들 껌뻑 넘어왔을 텐데.”
아르고스는 이제 전설이라 불리는 빌런이다. 그리고 빌런들에게 리그는 동경의 대상, 저 말 몇 마디에 다들 껌뻑 넘어갔을 거다.
근데 난 근데 너보다 더한 녀석이었거든.
-최준호 씨는 우리가 악이라 생각하시는군요.
“그럼 아닌 줄 알았냐?”
-그 악은 빌런만이 아닙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착취하는 위정자들이야 말로 진정한 악입니다. 최준호 씨, 우리와 함께 하시죠.
“됐고, 똥개 녀석이 안 나타나는 걸 보면 네놈이 수작을 부렸겠지.”
시간이 지나면 블랙하운드 녀석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낼 줄 알았는데 그 기미가 없었다.
공간 이동이던 바다 속에 은신처든 뭐든 수작을 부렸나보다.
저 개소리를 더 들어줄 이유가 없다.
-최준호 씨, 제발 우리 함께 세상을 바꿔 나가······.
“네놈이 멀리 있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나 본데.”
난 눈깔을 손으로 잡았다. 이 눈깔도 결국 인형술사가 인형을 조종하던 것과 비슷한 원리일 것이다.
눈깔에서 발산되는 파장을 기억하고 역추적을 시작했다. 파장의 형태를 기억하고 감각을 확장해서 파장이 이어지는 방향을 추적한다.
그러자 눈깔에서 다른 눈깔이, 그 눈깔이 또 다른 눈깔로 이어지는 걸 감지했다. 눈깔이 뭐 이리 많아? 이 방식으로 아르고스는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러시아로 이어지던 것이 태평양을 넘어가는 걸 보면······.
“징검다리도 아니고.”
희미하다 못해 존재 자체가 감지되지 않았지만 아르고스가 미국에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눈깔을 향해 기뢰를 퍼부었다. 위력을 견뎌 내지 못한 눈깔이 터지기 시작했고 파장이 이어진 눈깔들이 연이어 터져 나갔다.
퍽! 퍼벅! 퍽! 퍽!
열 개가 넘는 눈깔이 폭발하다가 어느 순간 힘의 흐름이 뚝 끊겼다. 아르고스가 인위적으로 연결을 끊어 버린 것이다.
인형술사와 달리 거리가 너무 멀어서 본체에 타격을 주기 힘들었다.
대신 녀석도 내게 허튼 짓을 못하는 거겠지.
빌런이 되기 위해 태어나기는 무슨.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사회에 녹아들 수 있다.
“내 눈에 걸리면 죽었다고 생각해라.”
* * *
가구 몇 개만 덩그러니 놓인 넓은 방에 두 남자가 있었다. 한 남자는 의자에 앉았고, 다른 남자는 옆에서 호위하듯 서 있었다.
의자에 앉은 금발의 백인 남자가 신비로운 눈동자를 빛내며 은은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신화에서 나오는 모습처럼 고결하고 아름다우며 성스러웠다.
그가 바로 리그의 설립자이자, 세계를 들여다본다고 알려진 아르고스(Argos)였다.
퍽!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아르고스의 두 눈에 피가 흘러내렸다. 잠시 후,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더니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를 참지 못하고 뱉어 내기 시작했다.
“웩!”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블랙하운드가 놀라 아르고스를 부축하고 나섰다.
“괜찮나, 알.”
“아니, 안 괜찮아. 아무래도 이 육체로 힘들겠어. 하인즈, 부탁 좀 해도 될까?”
“···알았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 끄덕인 블랙하운드가 가슴 위로 손을 뻗자, 아르고스가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새하얀 빛이 아르고스의 전신을 휘감더니 핏기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시체처럼 풀썩 쓰러졌다.
빠르게 식어가는 육체 위로 새하얀 구가 생성되더니 방 밖으로 이동했다.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조금 전 쓰러진 아르고스와 똑같이 생긴 외모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야, 대단하다고 듣기는 했는데 헤드 브레이커, 장난이 아니네.”
“미안하다, 내가 괜히 불이 붙어서.”
“실력이 궁금한 건 사실이잖아. 잘했어. 이제 괜찮아.”
“그렇게 메신저라고 말했는데, 개자식.”
“하하, 천하의 하인즈 입에서 욕이 나오게 만드는 거 보면 헤드 브레이커가 대단하긴 해. 윽!”
그때, 아르고스의 눈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알!”
“괜찮아. 후유증이야. 육체를 옮겨도 이러네. 프란츠랑 비슷한 거 같은데 엄청 독하다.”
아르고스는 눈가에 피를 훔치며 말했다.
“그래서 헤드 브레이커는 어땠어?”
“지독할 정도로 강했다.”
“그 정도로?”
“날 걱정해서 소환을 써 놓고 너스레는 떨지 마라.”
“그거야, 더 불이 붙을까봐 그랬던 거지. 설마 우리 하인즈가 졌겠어? 다른 누구도 아닌 블랙하운든데?”
한 번 불이 붙으면 끝을 볼 때까지 놓지 않는 것이 블랙하운드 로이 하인즈다.
그로 인해 무수히 많은 헌터가 목숨을 잃었고, 무(武)를 향한 그의 투쟁심은 인정받지 못하고 빌런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아르고스는 더 불이 붙기 전 떼어 놓은 것이다.
블랙하운드가 혀를 찼다.
“직접 상대해서 좋을 게 없는 녀석이다.”
“그런 거 같아. 진짜 빌런이 되기 위해 태어난 녀석인데 본인만 몰라.”
아르고스가 미련을 보였지만 블랙하운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전력을 다해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녀석의 기프트는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기 좋다. 한국은 얻을 거에 비해 난이도가 높아. 녀석의 마음이 바뀔 때까지 계획에 미뤄 두는 게 좋겠다.”
“······.”
아르고스는 생각에 잠겼다. 핏기가 가셔 하얗게 질려 있는 모습은 사람이 아닌 밀랍 인형을 연상케 했다.
“12궁이라면 어떨까?”
“어려울 거다.”
“그렇단 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하얗게 웃고 있는 아르고스의 모습은 무척 사악해 보였다.
“그냥, 12궁도 슬슬 물갈이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어설프게 건드릴 거면 그냥 두는 게 좋을 거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네가 말한 대로 최준호가 트러블 메이커라면 지켜보는 걸로 분란이 야기되겠지. 가만두면 알아서 세상이 녀석을 빌런으로 낙인 찍을 거다.”
세상은 최준호를 결코 헌터로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 손속, 그 심성, 그 살기.
모든 게 빌런으로 오해받기 좋은 것들이다.
순수한 투쟁심을 빌런의 살기로 치부하던 세상을 경험해 봤기에 블랙하운드는 누구보다 최준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널 빌런으로 만들 것이다.’
불현 듯 떠오른 과거를 회상하다 최준호의 운명을 점칠 때, 아르고스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붙어 보고 싶었던 게 아니고?”
“합류한 후에 붙어 보면 된다.”
“좋아. 지금 한국은 우리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니 하인즈 말대로 하자고. 대신, 약간 양념은 쳐 보자.”
“그래. 넌 이제 쉬어라. 부축하마.”
“괜찮다니까. 너무 걱정 마.”
“네가 아닌 리그를 위해서다.”
“어쩔 수 없네.”
아르고스는 블랙하운드의 부축을 받아 이동했다.
‘한국에서 미국에 있는 날 타격 입힐 정도라니, 재밌는 녀석이네.’
* * *
하트워커를 쫓기 위해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리그가 등장했기에 나는 국가수호국에 연락을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빌런전담팀이 파견되었다.
정다현이 이끄는 빌런전담팀은 육편이 흩어진 광경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리그 잔당 수색에 나선 것이다.
“······.”
현장을 지휘하며 지시를 내리던 정다현은 완전히 초토화 된 장소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와 블랙하운드가 충돌한 곳이다. 주변의 흔적과 흐름을 읽어내는 건가, 정다현이 가진 직감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아!”
아마 지금쯤 정다현은 나와 블랙하운드의 대결을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자극을 받아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는 게 중요하다. 포스의 운용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해서 자유로워질수록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할 단초를 제공한다.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 있던 정다현은 간신히 여운에 빠져나와 날 바라봤다.
“누구였던 거죠?”
“블랙하운드.”
“리그의 삼악(三惡).”
리그를 만든 세계 최악의 빌런을 달리 칭하는 말이란다.
정다현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왜 이곳에······.”
“그만큼 빅뱅 시리즈를 중요하게 봤다는 거지.”
난 굳이 모든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아르고스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녀석이 했던 말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
녀석은 내가 빌런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 왔다. 언제고 찾아올 수 있는 광기에 대항하기 위해 자제하고 또 자제했다.
만약 운명이라는 녀석이 날 집어삼키려 한다면.
그 운명도 죽여 버리면 된다.
나는 절대 미치지 않을 것이다.
“···네.”
아마 직감으로 내가 모든 걸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궁금할 부분이 있을 것임에도 정다현은 더 캐묻지 않았다.
무거운 주제라 생각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분은 오빠가 호의를 베풀었는데 배신했군요.”
“자기 욕심을 누르지 못했지.”
“너무 심려마세요.”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트워커가 저번 생에 인연으로 불렀고 그것뿐이다. 녀석의 가공법이기에 기회를 주려고 했기에 호의를 베풀었지만 배신했고 제거했다. 그게 끝이다.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애써 풀지는 않았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
“블랙하운드와 대결을 읽다 보니 흐름이 몇 군데 끊기는 게 있어서.”
“지금은 좀 곤란한데.”
“그런가요?”
시무룩해진 정다현의 표정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지금은 그렇다는 거야. 청와대로 바로 가야되거든. 조만간 자리를 마련하자.”
“네!”
정다현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 * *
“······.”
청와대로 복귀해서 새벽부터 출근해서 대기하고 있던 천명국에게 정다현에게 했던 설명을 반복했다.
“그럼 리그가 다시 들어올 일은 없겠습니까?”
“지켜봐야겠죠.”
“맞습니다. 제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나저나 블랙하운드라니, 최악의 빌런을 상대해보니 어떠셨습니까.”
“강하더군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난 내가 손을 섞어 봤던 레벨 8을 떠올리며 말했다.
“장쯔둥, 버서커보다 강합니다. 김영환보다 압도적으로 강하고요.”
셋 중 빌런인 버서커만 살아 있는 게 재미 포인트다. 나한테 심장이 두 번이나 박살 나고도 살아남은 질긴 목숨이지.
만독불침이나 빨리 개방했으면 좋겠다.
“허, 정말 큰일을 하신 겁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그에 대한 보고를 마치자, 천명국이 화제를 바꿨다.
“그, 빅뱅 시리즈를 국가수호국에 기증하실 생각이시라고.”
“맞습니다.”
빅뱅 시리즈가 완판을 거듭하는 가운데, 이세희는 내 몫으로 배정해 준 게 있다.
나는 1차로 받은 물량을 각성자안보실에 먼저 기증했다. 그래서 천명국이 감사 인사를 했었다. 그 다음 물량은 국가수호국에 기증할 생각이었다.
나 때문에 머리가 빠졌다니 보상 정도는 해 줘야지.
“혹시 정주호 국장에게 말씀하셨는지?”
“이제 해야죠.”
“그럼 청와대로 불러 얘기하는 건 어떻습니까?”
갑자기 청와대로 왜 부르자는 거지? 그렇게 할 이유가 있나?
“전화로 하면 간단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최준호 초인님이 기증하는 것이기도 하니 잘 포장하면 좋은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네요.”
유난일 수 있지만 좋은 일을 널리 알리면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는 법이니까. 자주 까먹는 편인데 이런 점을 일깨워 주는 건 좋은 일이다.
천명국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만. 이번에 정주호 국장을 새로 설립할 청의 장으로 승진시키려고 합니다. 차관급의 고위직이죠.”
“축하할 일이네요.”
“그런데 정주호 국장이 한사코 거절하는 중입니다.”
하긴, 정주호가 큰 욕심이 없긴 하다. 신중하기도 하고.
천명국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청와대에 오면 설득을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제가요?”
내가 말한다고 들으려나?
“예.”
“보탬이 될까요?”
“당연합니다. 최준호 초인님의 말씀이면 정주호 국장의 생각도 바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천명국의 표정이 활짝 폈다.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그나저나 정주호가 승진하다니. 앞으로 자주 보겠다.
정주호도 좋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