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67
67화
이세희는 갑자기 연락하고 찾아온 정다현을 놀란 표정으로 맞이했다.
“이곳까지 무슨 일이래? 고민이라도 있어? 와인이라도 하나 가져올까?”
“아냐, 그냥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뭔데?”
잔뜩 굳은 정다현의 얼굴을 보며 이세희는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요즘 그쪽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지?”
“알고 있었어?”
“준호 씨가 말 안 해 줬나 보네? 나한테만 말해 줬구나. 이거 어쩌나.”
“······.”
순간, 귀신을 본 이세희가 황급히 사과했다.
“미, 미안. 그러니 그만 노려봐. 나 얼굴 뚫리겠다. 바로 말해 줄게. 응? 제발 말하게 해 줘.”
“얼른 말해.”
놀리던 맛이 넘쳐 나던 내 친구는 어디로 간 건지.
지금은 완전 귀신이 따로 없다. 나찰이 잘 어울린다고 하면 끝장이겠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쉰 이세희가 말했다.
“정부랑 부산시가 충돌하려 하고 있어.”
“···역시.”
“그쪽도 소문이 돌고 있었구나?”
“응.”
“정부는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아. 국가수호국에도 언급이 없던 건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겠다는 의미일 거야. 아마 준호 씨랑 청와대 극소수 인원만 나서겠지. 왠지는 알지?”
“알아.”
어떤 작전을 진행할 때 그나마 보안이 유지되는 건 청와대였다.
정말 신념을 갖고 일을 하는 공무원 헌터보다 길드에 끈을 대고 빨대 노릇을 하는 사람이 많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실 정다현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건 다른 생각이다.
왜 이세희에게는 말해 주고 자신에게는 말해 주지 않은 걸까.
“···라는 생각하고 있지?”
“······.”
예나 지금이나 이세희는 귀신이다. 정다현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한테만 몰래 알려 줬다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 특별 대우같은 건 아냐. 준호 씨는 우리 그룹이 부산시장하고 얽히지 않길 원해서 알려 준 거거든. 다현이 넌 그쪽으로 깨끗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던 거고. 이제 좀 풀렸어?”
“딱히 걱정했던 건 아냐.”
하지만 안도감이 들면서 표정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실컷 걱정해 놓고 아닌 척하긴.”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
“티나나?”
“응, 많이 쌓인 거 같아. 말에 뼈가 많이 실려 있어.”
“아아, 이거 아직도 이러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미간을 모은 이세희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일종의 버릇같은 거였는데, 오래 전부터 없애려고 했지만 좀처럼 안 없어지곤 했다.
과거에는 더 심해서 이세희의 촌철살인 모음집이라는 게 존재할 정도였다.
“빅뱅 시리즈 때문에 그래? 성능 엄청 좋아.”
“진짜? 아! 저번에 준호 씨가 국가수호국 가져다준다고 했었지. 온 김에 후기 좀 얘기해 줘.”
“응.”
이세희는 한동안 정다현이 얘기하는 빅뱅 시리즈 후기를 경청했다.
최전선에서 사용한 사람의 후기는 제품 개선에 큰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빅뱅 시리즈는 출력이 좋기 때문에 힘 조절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과 위력을 온전히 통제하기 위한 가이드가 필수였다.
“보완할 점에 올라와 있는데 한 번 더 짚어 볼게. 역시 친구 있는 게 좋다니까?”
“그 친구한테 빅뱅 시리즈 챙겨 주지 않은 게 신성 길드 총괄 팀장님이고.”
“에이, 준호 씨가 챙겨 준다고 해서 미뤘던 거지. 내가 설마 우리 정다현이를 잊었을까.”
“그래도 준호 오빠가 챙겨 줘서 다행이지.”
이번에는 이세희의 표정이 급변했다. 방금 헛것을 들었나 싶었지만 살짝 말려 올라간 정다현의 입매를 보니 헛것이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오빠?”
“이야기도 다 했고, 난 슬슬 가 볼게.”
“잠깐! 왜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 건데.”
“······.”
정다현은 대답 대신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세희가 보기에 그건 승자가 패자에게 보여 주는 웃음이었다.
“나 갈게.”
“야! 정다현!”
* * *
천명국이 부산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
자칫하면 돌아올 수 없는 출장이란다.
굳이 목숨을 걸면서 가야 할까 싶었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놓치지 않으려는 점, 명분을 쌓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는 태도가 인상 깊긴 했다.
당연히 공감은 안 갔다.
“건강하게 돌아오는 게 최우선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인님.”
“근데 부산시장 그 사람은 남의 말을 들을 것 같지 않던데요.”
부산시장 유성수는 전형적인 제 잘난 맛에 사는 양반이다. 그동안 일한 걸 보면 각성자에 대한 이해도도 낮을 뿐만 아니라 야망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성격이 강했다.
성공했답시고 내세우는 걸 보면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천명국이 쓰게 웃었다.
“솔직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낮은 가능성에 걸어 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피를 안 보기 위한 노력입니다.”
왜 날 보면서 강조하시나.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
내가 볼 때 사람들 대부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보고 맛을 알더라. 주변 이야기 듣고 번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기어이 맛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번 일에 목숨을 건 것도 최대한 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란다.
“피를 안 보는 평화는 없습니다.”
각자 힘을 갖고 있고 생각이 다르면 해결되는 방법은 힘의 우위를 확인한 뒤 강제로 관철시키는 것뿐이다.
“최대한 적게 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가끔 과할 때가 있어서.”
“저 들으라고 하는 말 같네요.”
“제가 말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제 착각일 수도. 아무튼 가장 중요한 건 목숨입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마세요. 반지도 잘 챙기고요.”
천명국의 능력은 저번 생에서부터 검증된 것이니까. 괜히 가서 나대다가 죽기라도 하면 웬 이상한 녀석과 합을 맞춰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잘 맞아 왔던 궁합이 최악이 될지도?
그런 전개는 굳이 바라지 않았다.
“반지는 잘 챙기겠습니다. 그리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 실장님처럼 업무가 잘 맞는 분이 없거든요. 이런 걸 최애라고 한다죠? 제 최애가 천 실장님하고 정 국장님 두 분입니다.”
“······.”
“진짠데요?”
“···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확 처진다. 뭐야, 기껏 최애라고 띄워 줬건만.
“저는 준비 더할 게 있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설마, 최애가 둘이라고 해서 그런 건가. 천명국 실장, 의외로 욕심쟁이로군.
* * *
내 푸념을 들은 대통령이 폭소를 터뜨렸다.
“아마 천 실장한테는 부산에서 유성수를 설득하는 것보다 자네 상대하는 게 더 힘든 일일 걸.”
“에이, 설마요.”
“이건 천 실장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지.”
나랑 천명국이 얼마나 합이 잘 맞는데?
무심한 표정으로 하나씩 해결하는 천명국과 즉각 실행에 옮기는 나의 합은 상상 이상으로 훌륭했다.
정주호도 그렇고 천명국도 나랑 일할 때 얼마나 편안해하는데 이게 상사의 짓궂은 장난 같은 건가.
“그나저나 천 실장님은 위험할 텐데요.”
“위험하겠지. 내 측근 중 측근으로 분류되는데 유성수가 제 발로 걸어온 천 실장을 놓아주려 하지 않을 거야. 잘해도 구속이겠지.”
“함정인 걸 알면서 가는 겁니까?”
“그래서 말린 거야. 하지만 천 실장은 자기가 잡히면 그마저도 명분이 된다는 걸 알고 간 거고.”
“명분이라.”
이세희가 내게 전문가를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분류였다. 천 실장이 잡힘으로써 정부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과정이겠지.
하지만 함정임에도 제 발로 걸어가다니.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솔직히 개죽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입 밖으로 내뱉어서 천명국의 희생정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천 실장은 예전부터 궂은일은 솔선수범해서 나서곤 했지.”
“알겠습니다.”
“응?”
“천 실장님이 최대한 안 다치길 바라는 거 아닙니까? 신경 써 보죠.”
대통령이 두 손을 들어 항복 의사를 드러냈다.
“못 당하겠어. 정답이야. 천 실장은 아직 할 일이 많거든.”
“압니다. 저도 눈치가 있거든요.”
그런데 왜 자꾸 주변에서 눈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적진 한복판이라.
무사히 데려온다는 건 결코 쉽지 않긴 하다. 그래도 레벨 7이라니 제 몸만 간수할 수 있도록 하면 알아서 하겠지.
“그런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도 부산으로 가려고 합니다.”
“언제?”
“지금 당장입니다.”
난 천명국의 뒤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다.
* * *
부산에 도착한 천명국은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다운 규모였다. 하지만 통제된 활기가 느껴질 뿐, 도시 전체가 경직되어 있었다.
“전쟁 준비를 하고 있군.”
평범한 일상을 가장했지만 도시 곳곳에 전의가 깔려 있었다.
건물마다 돌아다니는 각성자들은 헌터인지 빌런인지 경계가 애매모호했고 시민들의 움직임은 위축되어 있었다.
‘좋지 않아.’
유성수는 스스로가 부산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고 하지만 천명국이 볼 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온갖 부정부패와 생색내기로 점철되어 잠깐 반짝이는 회광반조에 가까웠다. 좋든 싫든 유성수의 통치는 끝이 나야 한다.
그 사이 그가 탄 차는 부산시청에 가까워졌다. 그럴수록 점점 더 적의가 선명해지는 걸 느꼈다.
사신 길드를 떠나고 정부의 요직을 맡아서 일을 처리해 왔지만 이런 적의는 오랜만이었다.
최종 목표는 정권교체니 적당한 수준에 그칠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노골적일 줄이야.
그때 차량이 부산시청 입구에 도착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차에서 내린 천명국 주위로 헌터들이 둘러쌌다. 말이 안내였고 호위였지 실상을 보면 끌고 가는 거에 가까웠다.
“가지.”
시청 입구에 도착하자, 총기류와 도검을 소지한 헌터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소지품을 검사했다.
“무기나 아티팩트는 반납하시기 바랍니다.”
천명국은 품속에서 단검 하나와 회복제를 내밀었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헌터 하나가 천명국의 반지를 가리켰다.
“그 반지는 뭡니까? 포스가 느껴집니다만.”
“결혼반지일세. 이것도 반납해야 하나?”
“포스가 느껴지는 물건은 모두 반납해야 합니다.”
“멀리 간 아내의 반지일세.”
그 헌터는 갈등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멀리 간 아내는 미국에 있었다. 거짓말은 아니다.
몸수색을 마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시장실에 도착하자 청와대 못지않게 꾸며진 사무실 안에 유성수와 십여 명의 헌터들이 안에 있었다.
“이거, 우리 일 잘하기로 유명한 천 실장 아닌가? 아주 반가워.”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장님.”
“오랜만이지. 우리가 자주 안 봐야 좋은 관계긴 하고. 그런데 지금 흘러가는 걸 보면 좋은 관계가 되기 힘들어 보인단 말이지?”
“······.”
천명국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자, 그래서 이곳까지 온 이유를 들어볼까?”
“이 이상 반항은 무의미합니다. 지금이라도 의혹을 인정할 건 인정하시고 자수하길 권유드립니다. 최대한 선처해 드리겠습니다.”
듣고 있던 유성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천명국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담담이 지켜보았다.
“설마 그 말하러 이렇게 멀리 온 거야? 응? 날 설득하려고?”
“맞습니다.”
“자신감이 대단해. 진짜 대단해! 결국 하나도 양보하는 거 없이 다 받아간다는 거 아닌가?”
“좀 전에 말씀드렸지만 최대한 선처를······.”
“됐고, 그 자신감의 원천이 뭐야? 진짜 궁금해서 그래.”
“최준호입니다.”
“설마 초인 하나 믿고 그 자신감을 보인다고?”
그 말에 천명국은 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유성수는 초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레벨로 평가하다 보니 레벨 6에서 7이 되고, 7에서 8이 된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특히 최준호가 얼마나 큰 재앙 덩어리인지 더더욱 모르고 있다.
만약 자신이 부산시장이었다면 당장 납작 엎드려 있었을 것이다.
“···시장님은 초인의 힘을 간과하고 계시군요.”
“무섭긴 하지. 근데 그 녀석으로 뭘 할 건데? 당장 이 시청에만 천 명이 넘는 각성자가 있지. 초인이 아무리 강해 봤자 결국 인간이야.”
최준호 앞에서 많아 봤자 시체만 늘어날 뿐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가려는 겁니까?”
“그럴 수는 없지. 난 자비로운 시장이니까. 그러니 네게 기회를 주도록 하지. 부산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
“기회라면······.”
“방송을 할 거야. 부산시장을 포함한 부산시의회와 청와대 특사인 각성자안보실장의 끝장토론, 어때?”
신나게 조리돌림 하겠다는 거로군.
천명국은 음습하게 빛나는 유성수의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아. 멋진 판단력이야.”
1시간 뒤, 천명국은 부산시의회에 앉아 있었다.
부산시의회에는 유성수와 그를 보좌하는 10인의 부산시의원이 자리했다.
본래 47명의 시의원은 유성수가 당선되면서 일방적으로 임명한 10인의 시의원이 자리를 대체했다. 이를 비꼬는 사람들은 유성수의 십상시(十常侍)라 칭하면서 멸시했다.
하지만 부산 내에서 유성수의 가장 강한 친위세력인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부터 청와대 각성자안보실장과 부산시의 끝장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토론이 시작되었다. 천명국은 방송용 카메라가 돌아가는 걸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상대 쪽도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갈등을 부각시켜 지지자를 결집시키겠다는 의도겠지. 알면서도 말려들 수밖에 없는 더러운 수작이었다.
발언권을 먼저 얻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거구에 머리를 바짝 깎은 험상궂은 중년인이었다.
부산시 최대 규모인 고래 길드 마스터의 동생이자 유성수의 오른팔인 곽도운이었다.
“부산시의장 곽도운입니다. 그동안 정부가 줄곧 부산시의 요청을 무시해 오다 이렇게 핍박해 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부는 부산시를 핍박한 적이 없습니다.”
“핍박한 적이 없어? 그동안 부산시가 줄곧 지원 요청을 해 왔지만 모두 거절한 게 정부 측 아니었나?”
“그건 사건 비율에 따라 배분한 걸로······.”
“그러니까! 그 비율 판단도 정부에서 임의대로 한다는 거잖수?”
곽도운의 말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러자 다른 시의원들도 목소리를 높이며 천명국을 압박했다.
“······.”
자료 공개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분위기에 천명국이 입을 닫았다. 여기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반박하면 과연 납득할까. 애초에 조리돌림을 위해 데려온 건데?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의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애초에 상대는 처음부터 끝을 보려고 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 참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걸까.
전자는 협상을 이어나갈 수 있지만 후자는 파국을 의미했다.
천명국이 고민하는 사이 시의원들은 아예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평소에 정부가 해 왔던 불공정한 대우, 일방적인 갈취, 차별 등에 소리를 높였다.
나중에는 아예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 답을 내렸다.
“대답이 없는 걸 보면 정부가 그동안 부산을 차별해 왔다는 걸 인정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한 천명국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손에 낀 반지에 빛이 반짝이더니, 빛의 입자로 인영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잠시 후, 빛이 완전히 가셨을 때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익숙한 얼굴이었다. 최준호의 기프트 전이(轉移)였다.
그제야 자신에게 반지를 건넨 이유를 알아차린 천명국의 눈이 크게 뜨였다.
“최준호 초인.”
“실장님, 차별이 없으면 없다고 왜 말을 못합니까.”
최준호는 피식 웃어 보였지만 천명국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끝이다. 이제 다 죽었다.
“네놈이 왜 여기에 있지?”
곽도운 저 미친놈은 왜 진짜 미친놈을 건드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최준호가 활짝 웃는다. 왜 곧 펼쳐질 광경이 눈에 보이는 걸까. 미래를 보는 기프트라도 얻은 건가.
“특히 저놈은 완전 재수없네요.”
“감히······.”
발끈하던 곽도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번개처럼 누리를 뽑아든 최준호가 칼날 폭풍을 시전한 것이다. 매섭게 휘몰아치는 포스 안에 갇힌 곽도운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갈가리 찢겨 나갔다.
후두둑.
사방에 튀어 나가는 피와 살점덩어리.
십상시에서 한 명 사라진 구상시와 시선이 마주친 최준호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 게임을 시작하자. 내 질문에 대답 못 하면 한 명씩 죽는, 나만 재밌는 게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