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69
69화
이번 생에 정다현은 내게 있어 꽤 특별한 인물에 속한다.
혈종일 때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수준.
정다현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처음 과거로 돌아와 만났을 때도 별 생각은 없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정다현을 만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별생각 없이 공무원 헌터가 되려던 나를 강하게 이끌어 줬고 내가 다른 생각을 하지 않도록 큰 도움을 줬으니까.
저번 생에서 내 손에 죽을 때, 정다현은 끝까지 올곧은 자기 뜻을 꺾지 않았다.
나로서는 죽을 자리임에도 정의를 위해 자신을 불사른 꺾이지 않는 정의란 걸 처음 봤던 순간이다.
그래서 이번 생에 그녀가 추구하는 정의가 뻗어 나가는 걸 보고 싶었다.
굳이 내가 그녀를 레벨 7로 이끌기 위해 나선 것도 그 호기심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찰녀라는 이명을 얻었지만 괜찮겠지.
근데 날 상대하는 녀석의 표정이 이상했다.
“날 속이다니.”
“뭘 속여?”
나 이기면 살려 준다니깐? 그건 여전히 유효한 제안이다.
난 거짓말을 한 적 없는데 혼자 발광하고 난리였다.
“순순히 죽어 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좋은 각오야. 최선을 다해 줘.”
“흐아압!”
결연해진 녀석은 바로 앞에 있던 바위를 뽑아 들더니 내게 던졌다.
수 톤은 될 법도 한데 공 던지듯 하는 걸 보면 백인장사라는 이명이 어울리긴 했다.
콰과과광!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부서진 바위 파편이 비산했다.
그 틈을 타 거력이 담긴 녀석의 주먹이 내 얼굴을 노려 왔다.
부웅!
바람이 찢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강한 힘은 몸이 버텨 주지 못하기 마련인데, 충실히 단련한 육체가 그걸 버텨 내고 있었다.
기본와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한 각성자, 정다현에게 사실을 알려 주기 아주 좋은 교보재다.
난 녀석의 손을 옆으로 비껴 냈다.
“보통 다음 공격에 대비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변수까지 고려하는 게 좋아.”
반격으로 뻗은 내 손을 아라이는 어렵지 않게 피해 낸다. 그리고 매섭게 반격을 해 오지만 나는 가볍게 팔을 낚아채 튕겨 냈다. 평소라면 기뢰로 으스러졌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 중이니까.
“레벨 7 정도 수준이면 피하고 반격이 가능해. 하지만 간신히 피해서 이렇게 뻔한 공격을 해 오지. 어느 순간에도 자기 공격을 할 수 있는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
그리고 나는 직선으로 손을 뻗다가 궤도를 비틀기도 하고 속도를 조절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곧잘 막아내던 아라이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큽!”
“나는 안 속고 얘는 속는 이유는 공격의 형태만이 아닌, 의지까지 조절할 수 있어서야. 공격에 의지를 섞으면 동작이 크지 않아도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본능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하거든. 녀석이 속았으니 나는 한 수 먹고 들어가 우위를 점한 거지. 여기에서 속임수를 한 번 더 섞을 수 있어야 돼.”
직감을 가진 정다현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 공격을 추측하고 예측하며 통찰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인장사 이 녀석은 완숙한 레벨 7이라서 보여주기용으로 딱이었다. 기본기도 충실하고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내가 이끄는 방향대로 따라오니 정다현에게 조언을 해 주기도 좋았다.
정작 당하는 당사자는 아닌 듯했지만.
“그만 농락하고 죽여라!”
“아, 미안. 조금만 더 하고. 근데 한국 출신이었냐? 한국말 잘하네. 근데 왜 네 이름을 모르고 있었을까.”
“······.”
아라이의 입이 닫힌다.
근데 미안하다고 한 건 진짜였다. 난 원래 이렇게 농락하면서 죽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빌런이면 시간 끌 거 없이 최대한 빠르게 죽이는데, 정다현을 교육시켜야 해서 이렇게 시간을 끌었다.
“대신 고통 없이 죽여 줄게.”
“닥쳐!”
내가 베풀어 줄 수 있는 호의인데 거절하려고 하네.
녀석이 전력을 다 한 공격이 몇 번 막히자, 그때부터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리고 내 손에 벗어나서 도망칠 기회만 엿보기 시작했다.
소중한 교보재를 놓아줄 수 없지. 나는 아라이의 체력을 뺏기 위해 공격 속도를 높이자 결국 지친 녀석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음, 이 정도까지인가.
역시 거력을 쓰다 보니 지구력은 좋지 않군.
쥐어 짜낼 건 다 쥐어짜낸 것 같다.
콰드득!
“크아아악!”
팔이 부러진 아라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런 와중에도 주먹에 실린 힘은 여전했다.
괴력 관련 기프트는 딱히 탐이 나진 않는다. 포스 활용도만 높으면 육체 단련도에 따라 괴력 기프트에 준하는 힘은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
난 가볍게 녀석의 주먹을 튕겨 내고 팔뚝, 어깨를 차례대로 부숴 버렸다.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까지 부러뜨렸다.
이런 빌런의 무력화 과정은 정다현도 잘해 내고 있어서 굳이 설명해 줄 게 없었다.
“끄으으!”
처절한 비명과 함께 바닥을 기어 다니는 녀석의 모습은 빌런의 최후다웠다.
역시 빌런은 저래야 어울린다. 저 모습을 봐야 빌런이 될 녀석들도 겁을 먹고 조심하게 되지.
굳이 필요하진 않지만 리그에 대한 정보나 더 쥐어짜낼까.
옆에서 지켜보던 정다현이 말했다.
“저, 고통 없이 보내 준다고······.”
“아, 맞다. 고통 없이 보내 준다고 했지.”
깜빡하고 있었다.
진짜로.
“내 기프트가 원래 좀 아픈 것들이라. 미안.”
난 그대로 손날을 휘둘러 아라이의 목을 날려 버렸다.
맥없이 쓰러지는 시체를 뒤로 하고 나는 정다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보고 좀 깨달은 게 있어야 할 텐데.
“느껴진 게 있어?”
“···네.”
“구체적으로 말해 볼 순 있고?”
“아니요. 죄송해요.”
미간을 모으며 생각해 보려 하던 정다현이 사과했다. 이해했다. 원래 깨달음이라는 것은 처음에 형언하기 힘든 법이다. 그걸 구체화해서 본인만의 명료한 형태로 나와야 완성되는 것이다.
“한 번에 느끼기 힘든 법이지. 그걸 구체화해서 네 걸로 만드는 게 중요해.”
“네.”
“그럼 이동하자.”
“네?”
“지금 부산에 죽일 놈들 넘쳐나는 거 몰라? 죽이면서 설명해 줄 테니까 눈에 새겨 둬.”
직접 상대해 보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승산이 거의 없으니까.
생각해 보면 지금 죽은 저 녀석도 왜 정다현하고 대결할 거라고 생각했지?
누가 봐도 정다현이 더 약한데.
설마 내가 강자와 대결을 부추겨서 극한에 몰린 상황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이런 걸 할 줄 알았던 건가.
아무래도 히어로 만화를 많이 봤나 보군.
다음 단계로 발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선 ‘안전’이 확보되고 난 후다. 죽어서 다음 레벨에 올라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내가 버서커를 불러서 안전을 확보한 다음 대련을 시킨 것도 그 연장선이다.
“가자.”
나와 정다현은 다른 죽일 놈을 찾아 이동했다.
* * *
부산은 지난 10년 동안 유성수가 뿌리를 깊게 내린 곳이다.
그동안 시민들이 속고 있었다고 하지만 부산 이권 곳곳에 유성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사방에 헌터의 탈을 쓴 빌런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부산시청 함락 소식에 몇몇 빌런 조직들이 일본으로 도망치거나 잠적했지만 도망치지 못한 잔존 세력이 훨씬 많았다.
“다 쓸어버려.”
국가수호국 정주호의 철두철미한 지휘 아래 유성수 세력이 빠르게 일소되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브레인워싱 덕분이다. 유성수는 욕망의 화신답게 브레인워싱에 당하고 제법 오래 버티는 저력을 보여 줬다.
여기에 살아남은 부하들도 모조리 브레인워싱으로 정보를 뽑아내니 줄줄이 나오는 고구마처럼 유성수 세력이 딸려 나왔다.
사상 최대 규모 숙청. 그리고 수십조 원의 돈을 환수하자 언론에서 경악하여 연일 뉴스로 내보냈다.
유성수 게이트라 불린 사건이 연일 TV를 타자 야당의 지지율이 폭락했다.
정치적 숙청이라 반발하던 야당은 여론의 십자포화에 납작 엎드려 사과만 하고 있어야 했다.
여기에 몇몇 이상한 뉴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데.
“다 우리 최준호 초인 덕분이지.”
반사효과로 지지율이 오른 대통령의 입에 함박 미소가 걸렸다. 지지율이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더니 사실인 듯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렇게 겸손하기까지. 그러니 안 예뻐할 수가 있나.”
굳이 예뻐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겸연쩍게 웃더니 화제를 돌렸다.
“아, 그리고 일본 측에서도 감사 인사를 보내왔네. 최준호 초인의 은혜에 감사한다더군.”
“양국의 우호증진에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일본 측 리그 소탕 제안은 거절당했네.”
“그렇군요.”
“그들로서는 타국의 초인이 작전 수행을 위해 건너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지. 이해하게.”
“예, 아무렇지 않습니다.”
보이는 족족 없애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대통령이 내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게 느껴졌다.
“하실 말씀이라도?”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편히 말씀하십시오.”
“좀 곤란한 걸 수도 있어서.”
“진짜 곤란하면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편히 물어볼 수 있겠어. 그러니까, 음.”
진짜 대답하기 곤란한 건가 보다. 이러니 오히려 내 쪽이 궁금해지는데. 대체 뭘 물어보려고 저러는 거지? 내가 빌런이냐고 물어보려는 건가.
그건 자신 있게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혹시, 기프트가 여러 개인가?”
난 또 뭐라고.
이게 저렇게 고민하면서 물어볼 문젠가?
굳이 숨길 필요도 없어서 흔쾌히 대답했다.
“예.”
“···진짜로?”
“진짜 맞습니다.”
오히려 질문했던 대통령이나 잔뜩 긴장하고 있던 천명국이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보통 기프트가 여러 개면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전 다릅니다.”
전부 다른 사람들이 완성한 기프트를 뺏어 온 거니까.
근데 저렇게 조심스러울 이유가 있나.
“그, 그렇군.”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러고 싶은데 지금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허허, 기프트가 여러 개인가 물어보는 것도 보통 실례가 아니거든.”
“알겠습니다.”
“대신 기프트가 여러 개인 건 다른 사람한테 밝히지 말게. 중요한 정보니.”
“예.”
어차피 내 기프트가 여러 개인 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원래는 꽤 많았는데, 다 죽었으니까.
* * *
“휴우! 상대하기 어렵단 말이지.”
최준호가 돌아가고,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큰아버지뻘이지만 최준호를 상대하는 건 야당 대표를 설득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오늘만 해도 기프트를 물어보느라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유익한 정보를 얻었어.”
누리를 상대하고 유성수까지.
최준호와 계약은 자신의 업적 중 가장 성공한 거라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 최준호가 여러 기프트를 다루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가 강한 이유를 일부나마 엿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천명국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번 일로 생각이 좀 바뀌었나?”
“아주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야지.”
대통령은 비각성자고 천명국은 각성자였지만 둘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이번 유성수를 잡는 작전도 천명국의 주장대로 이루어졌고, 결과는 충돌로 인한 진압이었다.
“결국 정의를 관철하는 건 힘이야.”
“제가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 잊고 있던 감각이었습니다. 이번에 최준호 초인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옆에서 보니 어땠나?”
“두려웠습니다.”
아직도 최준호가 전이로 모습을 드러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전율이 일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이 자기 앞 적을 말살하던 모습. 얼핏 보면 시원하게 보일지 몰라도 만약 그 대상이 자신이 된다면? 대한민국이 된다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생각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대통령이 말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 힘으로 삼자고 했던 거야.”
“끝까지 그 힘을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
그게 가능한 일일까. 만약 몇 가지 사고로 모든 게 뒤집혀 버린다면?
한숨을 내쉰 천명국은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대통령님의 말씀은 옳지만 세상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당장 그런 의견이 나오고 있지.”
“지금 시급한 건 최준호 초인에 관한 여론입니다. 국내도, 세계도 그렇습니다.”
“쉽지가 않아.”
“뒤에서 부추기는 세력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리그로 단정 지을 수도 없어.”
최준호의 적은 도처에 깔려 있었다. 그의 행동을 횡포라 여기는 기자가 있을 수도 있고, 길드가 있을 수도 있다. 승진 속도가 너무나 빨라 질투를 느끼는 공무원 헌터가 있을 수 있고, 빅뱅 시리즈로 인해 큰 손해를 본 기업일 수도 있다.
“여기에 리그의 사상을 지원하는 자들도 섞여 있지.”
말 그대로 온갖 잡탕이 뒤섞여 있는 셈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
최준호가 대중의 ‘영웅’이 아닌 ‘빌런’으로 각인되게 하는 것이다.
부산시의회 난입은 그 전초전으로 삼기 아주 좋은 재료였다.
내전을 일으키려던 부신시장과 시의원을 잡는 공을 세웠어도 결국 제멋대로 집행해 버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런 과격함을 꼬집어 각성자에 대한 여론을 바꾸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건 비단 국내만이 아닌 해외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모임에 가면 골치 아파지겠어.”
“시비를 걸면 참지 않을 겁니다.”
“국제 초능력 연합에 가면 분명 사고가 날 텐데. 초대를 받았다지?”
“근래 가장 화제가 되는 초인이니까요.”
최준호의 존재는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누리를 홀로 사냥한 걸로 위명이 드높았다.
미국 등 여러 국가에 사냥 과정을 브리핑했음에도 여전히 홀로 사냥한 걸 믿지 않는 헌터들이 많았다.
“조만간 최준호 초인에게 알릴 예정입니다.”
“말릴 명분은··· 없지.”
“예.”
“······.”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최준호의 행동을 곱게 보지 않는 이들이 있는 만큼 그곳에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이걸 어떻게 막아야 하지?
천명국의 머리가 아파 오려던 차였다.
“그냥 넘겨 버리는 게 어떤가?”
“예?”
“우리가 걱정해 봤자 의미가 없잖나. 우리는 최준호를 국제 초능력 연합에 보내고 휴식이나 만끽하자고. 거기 높은 양반들이 알아서 감당하겠지. 최준호맛을 나 혼자 맛보기에는 너무 특별하지. 내 생각이 어떤가?”
“···현명하십니다.”
최준호가 잠깐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사라졌던 활기가 돌아오는 기분이다.
세계 곳곳이 최준호맛을 볼 건 덤이고.
둘의 표정이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