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하아!”
조금 전 최준호에게 소개시켜 줄 전문가를 본 이세희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었다.
이게 진짜 옳은 걸까?
하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맞는 선택인 것 같다.
끝도 없는 파격에 파격이었지만.
신성그룹의 두뇌들이 대단하다는 건 알았지만 오늘 새로운 면을 엿본 기분이다.
똑똑!
“네.”
이세희는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있다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노크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백군서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삼촌.”
“일어날 거 없다. 피곤해 보이는데.”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죠.”
“역시 우리 조카야.”
자리에서 일어난 이세희는 백군서가 가장 좋아하는 보이차를 우려냈다. 잠시 후, 백군서에게 차를 내민 이세희는 두 번째로 차를 마셨다. 조금 전까지 얹히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좀 나아지는 기분이다.
“앞에서 조금 특이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미지 전문가에요. 준호 씨한테 소개시키려고요.”
“아아, 대외적인 이미지를 관리하려는 건가. 하긴, 늦기는 했지.”
각성자들이 길드를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들은 대외 이미지 전문가를 통해 주력 헌터들의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관리했지만 정부 소속은 이 부분이 미흡했다.
“좀 더 빨랐어야 했는데 전문가를 고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인사가 만사니까 그런 법이지. 그나저나 최준호 일을 꽤 도와주는구나?”
“친해지면 좋은 게 가득하니까요. 빅뱅 시리즈도 준호 씨와 친해져서 얻은 성과물이고.”
빅뱅 시리즈 매출은 신성그룹 역사상 가장 큰 성공으로 불리는 성과였다.
오죽하면 이제껏 이세희가 거둔 성과를 모두 합쳐도 빅뱅 시리즈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그동안 이세희가 여러 건의 굵직한 성공으로 차세대 오너 후보 중 따를 자가 없음에도 말이다.
이미 그룹 내부에서도 장남인 이세찬보다 이세희가 낫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압도적인 기술과 성능에 기반한 빅뱅 시리즈는 기술 라이센스를 판매했음에도 대한민국 시장 점유율 95%를 장악했다. 그 5%마저도 빅뱅 시리즈 물량이 없어서 내어 준 수준이었다.
여기에 물밀 듯 밀려드는 해외 주문까지 합치면 신성그룹은 빅뱅 시리즈 전과 후가 다르다고 평가될 정도였다.
각성자 갤러리까지 성공했다고 평가받으니 신성그룹 내에서 이세희의 입지는 부회장을 능가할 만큼 상승했다.
“그걸로 그룹의 이익이 어마어마하니 이사 자리를 줘도 아깝지 않지. 잘했다. 다만, 요즘 최준호를 둘러싼 흐름이 심상치 않아서 빨리 움직여야 할 거다.”
“저도 느끼고 있어요. 준호 씨 손속이 과하긴 했어도 이 정도 비난 여론이 일어나는 건 인위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너도 그렇게 보나?”
“네. 부자연스러워요. 분명 예전에도 비슷한 일을 벌였는데.”
“하지만 최준호의 행동이 공개된 건 생방송이다.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 이번 건은 그들도 위협을 느끼게 했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리고 준호 씨를 정부와 떼어 내려는 세력도 있다고 보고요.”
“넌 리그라 보는구나.”
“리그의 사상은 독버섯처럼 퍼져 있고, 리그에서 준호 씨를 노리고 있으니까요. 둘의 이해관계는 일치하죠.”
범인을 찾을 때 가장 이익을 얻는 자가 누구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최준호가 사라지면 가장 이득을 얻는 건 리그다.
그 점에서 최준호는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작업을 치는 것도 어렵지 않고.
거침없는 손속과 정제되지 않은 언변, 사람을 가리지 않는 무분별함은 반감을 사기 쉽다.
곰곰이 되짚어 보던 백군서도 수긍했다.
“위태로운 느낌이 들긴 하지. 조금만 핀트가 벗어나면 빌런이 되어 버릴 것 같으니. 그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게 중요하겠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도울 거예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대중의 여론은 손바닥 뒤집듯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보니 쉽지 않은 일이다.
결연한 이세희를 보며 백군서가 툭 한 마디 던졌다.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이 있다만.”
“어떤 거죠?”
“매우 쉬운 방법이다.”
“그니까요. 알려 주세요.”
“이걸 말해야 하나.”
싱글벙글 웃으며 이세희의 애를 닳게 만들던 백군서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결혼이다.”
“···네?”
“결혼이라고.”
“······.”
이세희는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나라는 결혼하면 어른으로 대접해 주는 경향이 있지. 대중이 불안해하는 건 최준호가 혼자라 수가 틀리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지. 하지만 결혼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져. 가정을 이뤄 사회에 뿌리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될 수 있지.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족쇄를 채운다고 해도 되려나?”
“화, 확실히······.”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 대상이 세희 너면 더 좋을 거 같고.”
“······.”
“한번 생각해 봐라. 네게도, 최준호에게도, 그룹에도 나쁜 일이 아닐 테니까.”
지금 이 삼촌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열이 올라오는 기분에 이세희가 소리쳤다.
“결혼 생각 없거든요? 제 나이가 몇인데.”
“그냥 생각만 해 보란 거다. 생각만.”
“없어요!”
“하지만 언제든 바뀌는 게 생각이니. 고민해 봐라. 질질 끌면 다른 여자가 채 갈 수도 있으니. 난 이만 가 보마.”
끝까지 웃음을 지우지 않은 백군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벗어났다.
“삼촌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앗 뜨거!”
무심코 차를 마시던 이세희는 깜짝 놀라 잔을 내려놨다. 흘린 차를 닦기 위해 휴지를 뽑다가 거울을 본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예상치 못한 말을 들어서인지 차가 뜨거워서인지 몰라도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 * *
집으로 돌아오니 윤희가 반찬을 덜어 놓고 식사를 차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슬쩍 식탁을 훑어보니 따로 만든 건 없었다. 자신의 저주받은 손맛을 잘 파악하고 있군. 다행이다.
“우리 영웅님 일찍 왔네?”
“웬 영웅 타령?”
“부산 소란 진압했으니 영웅이지. 오빠 없었으면 이렇게 스무스하게 제압이 가능했겠어? 대단하다, 어이구. 궁디팡팡이라도 해 줘?”
“뭐 갖고 싶은 거 생겼냐?”
“아니, 나라고 오빠 잘해 주지도 못 하냐? 그냥 잘해 주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 편히 받아들이셔.”
뭔가 이상한데.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윤희는 식사를 준비했다며 물까지 따라 줬다.
노림수를 알 수 없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이실직고했다.
“아니, TV에서 이상한 거 떠들고 있어서 상처받았나 싶어서. 괜찮은 거야?”
내가 모르는 뭔가가 또 나왔나?
의아한 마음에 리모컨으로 TV를 트니 뉴스 채널에서 한창 내가 부산시의원을 죽이던 장면이 나왔다.
칼날 폭풍에 휘말려 한 줌 육편으로 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뢰보다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래쉬와 결합된 누리의 칼날 폭풍은 사정거리가 늘어나서 참 좋다 싶었다.
요즘은 완전 제거를 위해 세척 같은 기프트를 얻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럼 빌런을 처리해도 들킬 일이 없어질 테니까.
시체가 발견되면 살인이지만 아예 사라지면 실종이다.
기자의 보도가 끝난 뒤, 아나운서가 원로 헌터를 초대해서 대담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내가 헌터계의 물을 흐리느니, 빌런보다 더 잔인한 손속이라느니 여러 비난의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윤희가 안절부절 못했다.
“왜 그래?”
“···아무렇지 않아?”
“무슨 반응을 해야 되나?”
“엥?”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 설마 저걸 보고 그랬던 건가. 그냥 정확한 정보 전달일 뿐이지 않나?
윤희가 설마설마하는 표정이었다.
“진짜로 아무렇지 않은 거였어?”
“어. 사실인데, 뭐. 딱히 이해받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 진짜.”
대단하면 대단한 거지 왜 혀를 차냐.
그러다가 다시 걱정 섞인 표정을 짓는다.
“근데 빌런은 되지 마, 진짜.”
“되겠냐?”
“걱정돼서 하는 말이잖아, 이 양반아.”
“될 생각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돼.”
세상이 날 빌런으로 취급하지 않는 한, 내가 빌런이 될 일은 없다.
저번 생에서 빌런 짓은 실컷 해 봤다.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그걸로 족했다. 부모님은 편하게 취미 생활을 즐기고 계시고, 윤희는 자기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 삶이 꽤 만족스럽기도 했고.
몇 번이고 내게 확답을 요구한 윤희가 만족했는지 안도하며 건들거렸다.
“이 정도면 안 되겠지, 뭐.”
“태세 전환이 너무 빠른데.”
“걱정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셔. 안 그래도 주변에서 난리라서 한번 확인해 본 거야. 착한 척 하기 힘들다.”
···그럼 그렇지.
걱정하는 기색을 지운 윤희는 나더러 화이트 빌런이니 다크 히어로니 하면서 여러 말이 오간다고 알려 줬다.
화이트 빌런, 다크 히어로. 나쁘지 않은 어감이다. 근데 화이트 빌런이면 착한 빌런이란 건가. 빌런 중에 착한 녀석은 없는데.
다음 주제는 이사 이야기로 넘어갔다. 얼마 전 이사하기로 얘기가 된 뒤, 준비 중에 있었다.
부모님과 같은 아파트단지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인테리어는 윤희가 전담하기로 했고.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 될 무렵, 이세희에게 연락이 왔다.
[저번에 말했던 전문가 기억하시죠? 약속 잡기로 했는데 편한 시간 알려 주세요.]난 바로 답장을 보냈다.
* * *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걸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현상유지만 하면 다행 정도?
내 손에 죽는 사람들이 사람들이니 만큼 갈수록 여론이 나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이세희가 전문가라고 해서 나는 나이가 40대 전후에 세월의 관록이 느껴지는 남자 혹은 여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160cm도 되어 보이지 않는 작은 키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여인이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 얼굴이 작고 피부가 하얀데 안경까지 써서 실제로 더 어리게 보였다.
이 사람이 그 전문가?
“안녕하세요! 저는 비주얼 아트 디렉터 진세정이라고 해요! 최준호 초인님, 실제로 뵈니 정말 잘생기셨네요. 어떻게 피부에 이렇게 광이 날까? 혹시 따로 바르는 게 있으신가요? 보통 배우나 아이돌은 가까이서 보면 후광이 걷히는데 최준호 초인님은 완전 다르시네요!”
“······.”
“아! 길게 얘기 나눠야 되는데 제가 좀 호들갑을 떨었죠? 자자, 제 사무실은 아니지만 편히 앉으세요.”
“···예.”
나는 진세정의 안내를 받아 앉았다. 그리고 김이 나는 찻잔을 보다가 쉴 새 없이 떠드는 진세정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내 이미지 관리를 할 전문가라더니 비주얼 아트 디렉터? 아이돌? 갑자기 그쪽 전문가가 왜 온 거지?
의문을 풀기 위해 이세희를 바라봤지만 고개를 숙임으로써 내 시선을 피했다.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다시 한번 소개할게요. 비주얼 아트 디렉터 진세정이라고 합니다.”
“최준호입니다. 절 도와주신다고요, 감사합니다.”
“아니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 걸요. 오히려 절 고용해 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단 진세정에게 악의가 없다는 건 알겠다.
근데 이 사람이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게 맞나?
이세희, 왜 대답은 안하고 내 눈을 피하는 거냐.
···일단 전문가라고 하니 얘기를 나눠 봐야겠다.
“현재 저를 둘러싼 여론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네, 정확히 반반이죠. 그리고 부정적인 쪽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고요.”
“그렇다고 제가 손을 쓰는 것에 자비를 둘 생각이 없습니다.”
“일관성이 중요하죠. 그게 최준호 초인님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고요.”
“이 상태에서 여론을 좋은 쪽으로 유도하고 싶습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사실 말하면서 기대감이 없긴 했다. 양보는 하나도 안하면서 결과물은 개선해 달라고 하는 거니.
과연 전문가는 어떤 말을 할까.
내 말에 진세정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말했다.
“우선, 모두가 최준호 초인님을 좋아할 수 없어요. 이건 동의하시죠?”
“예.”
“그렇다면 간단해요. 가장 먼저 할 일은 최준호 초인님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팬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해요. 그리고 그들을 코어 삼아 숫자를 더 늘리는 방법을 써야죠.”
“어떻게 말입니까?”
“다행인 건 최준호 초인님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사람들이 ‘우려’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도 사안에 따라서 얼마든지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설 수 있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을 돌아서게 만들 요소로 저는 최준호 초인님에 대한 사연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테면 최준호 초인님의 세계관인 거죠.”
“세계관?”
난생 처음 듣는 단어다.
“아이돌에게 흔히 사용되는 건데 팬들을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에요. 저는 최준호 초인님에 대한 지지 그룹과 우려하고 있는 사람들을 세계관으로 설득시켜 지지 그룹으로 끌어들이려고 해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저기 부정적인 여론 중에는 초기에는 최준호 초인님의 행동을 지지했던 분들이 많아요. 이들은 최준호 초인님이 점점 선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갈까 우려를 해서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최준호 초인님의 반대 입장에 서 있지만 기본적으로 애정이 밑바탕 되어 있어요.”
세계관은 그런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했다.
“대중은 최준호 초인님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그러니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거죠. 여기에 약간의 창작이 들어갈 수 있어요. 가령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준호 초인님이 빌런에게 보이는 적대감을 이해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사실 이게 가장 일반적이죠. 최준호 초인님이 빌런에게 당한 적이 없으니까요.”
내가 혈종일 때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수긍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해한다면?”
진세정이 씩 웃었다.
“전부 최준호 초인님의 지지자가 되겠죠. 이를 테면 세계관 속 최준호 초인님은 어느 날 전생을 떠올리게 된 거죠. 전생에서 최준호 초인님은 세상을 피로 물들인 빌런이었던 거예요. 나로 인해 죽은 사람들, 주변의 빌런들이 저지른 범죄들을 보면서 최준호 초인님은 맹세하는 거죠. ‘전생에 빌런이었던 내 죄를 속죄하기 위해 빌런을 제거한다.’ 이러면 사람들이 최준호 초인님의 적대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프트가 전생을 엿보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근데 이렇게 하는 걸로 사람들이 믿는다고?
“안 믿을 것 같은데.”
“개연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사람들이 최준호 초인님을 이해하기 위한 세계관이니까요. 믿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믿을 거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것만으로 최준호 초인님의 행동을 지지할 수 있거든요.”
이걸로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참 신기한 세계다, 싶었다.
혹시 사기는 아니겠지.
이세희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믿기로 했다.
“여기에 최준호 초인님의 일상을 곁들일 거예요.”
“그게 도움이 됩니까?”
“당연하죠! 엄청나게 돼요!”
진세정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같은 곳은 젊은 초인들 경우 대중과 소통을 하려고 해요. 그래서 상당히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죠. 어린 아이들도 헌터가 되겠다며 어릴 때부터 훈련을 해요.”
“한국에서는 못 본 거 같은데.”
“네. 한국에서 이런 시도를 안 한 이유는 초인들이 기본적으로 신비주의이기도 하고 나이가 많아서이기도 해요. 하지만 최준호 초인님은 세계 최연소 초인이시죠! 그러니 헌터 지망생부터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어요. 한국만 아니라 외국도 전부요! 그리고 최준호 초인님을 닮기 위해 호감을 보내올 거예요. 그 숫자는 힘이 되어 줄 거고요.”
나야 다른 사람들이랑 사는 게 다를 바가 없는데.
아, 내 일상이 빌런 죽이는 거니 그걸 공개하라는 건가? 그럼 오히려 논란이 더 거세질 거 같은데.
난 일단 진세정이 했던 말을 정리했다.
“나에 대해 오해를 풀고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그리고 대중이 궁금해하는 일상으로 지지층을 늘려 나간다, 이게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리고 세계관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 손을 거친 아이돌들 모두 세계관으로 호평을 받았거든요.”
그러면서 언급되는 아이돌들이 있는데, 미안하지만 난 관심이 없어서.
윤희에게 물어보면 확인이 되겠다 싶었다.
“이 정도면 여론에 반응하는 절반은 확실하게 지지할 거예요. 하지만 그걸로 모자라죠? 새로운 지지층을 끌어들여 확고한 지지층을 유입시킬 거예요.”
“그게 가능합니까?”
“네! 마침 최준호 초인님은 무척 훌륭한 조건을 갖고 계시거든요. 잠시 자리에 일어나 보시겠어요?”
난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일어난 진세정이 내 주위를 돌며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이길 반복했다.
“살짝 무례할 수 있지만 확인이 꼭 필요한 건데, 질문해도 될까요?”
“하십시오.”
“최준호 초인님은 헌터 중에서 최강자니 몸도 잘 단련되어 있으시죠?”
“당연히.”
누군가를 죽이는데 최고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근데 진세정은 그 말을 듣고 흐뭇하게 웃었다.
“우선 비율은 흠잡을 곳 없고, 옷 태도 무척 좋아요. 외모도 웬만한 배우, 아이돌보다 모자라지 않고. 여기에 최준호 초인님만 가진 위험한 느낌이 매력 포인트가 되거든요. 어떤 방향으로 잡아야 할지 알겠다.”
“뭘 말입니까?”
“매력이요. 저는 최준호 초인님의 위험한 매력을 살려서 팬들이 빠져들도록 스타일링을 해 볼 생각이에요.”
“스타일링?”
“네. 최준호 초인님의 매력과 세계관을 맞물리게 해서 여성 팬덤을 구축하는 거죠. 위험한 매력을 가진 다크 히어로! 남들이 모르는 그만의 고뇌와 사연. 와! 저라고 해도 빠져들 거 같아요. 그렇게 최준호 초인님의 매력에 빠진 팬들이 긍정적인 부분을 열심히 설파해 줄 거예요. 다행히! 최준호 초인님은 매우매우 훌륭한 비주얼과 비율을 갖고 계시고요.”
“······.”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적 없지만 진세정의 태도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걸 살려 보죠. 최준호 초인님 공식 스케줄표를 보니 내일 행사 참여가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스타일링을 해 보려고 해요. 눈썹도 가다듬고,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아! 염색은 괜찮으시죠? 일단 이건 시간이 모자라니 내일 행사 끝나고 고민해 보면 되겠다.”
“오래 걸릴 거 같은데······.”
“금방 될 걸요?”
빨리 끝난다니 한번 해 볼까?
하지만 다음 말을 듣고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빠릿하게 움직이면 오늘 내로 끝나겠네요.”
지금 점심시간인데?
“그럼 동의하셨으니 움직여 볼까요?”
저 손길에 붙잡혔다간 꼼짝없이 당할 판이다. 난 도움을 구할 요량으로 이세희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불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도 옆에서 봐도 되죠?”
“그럼요!”
이세희, 너마저······.
* * *
이도연은 9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슈퍼원(Super One)의 팬클럽 슈퍼파워 1기 출신으로 슈퍼원의 홈마스터이자 네임드 팬이다.
아이돌 전문가이면서 비주얼 분석 전문가로 불리는 그녀는 오늘 있을 신성 백화점 행사에 참석하는 슈퍼원을 보기 위해 참석했다.
“우리 애들 언제 오나.”
슈퍼원의 스케줄 표를 보고 새벽부터 대기해서 가장 앞자리를 쟁취한 이도연은 곧 보게 될 슈퍼원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신인 때부터 덕통사고를 당해서 쫓아다니던 아이돌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느낀 감정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힘든 시대에 우리 애들밖에 없지.”
안팎으로 빌런이 활개 치는 종말의 시대에서 슈퍼원은 이도연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빨리 오면 좋겠다.”
슈퍼원은 현재 탑급 아이돌이기에 가끔 동선이 꼬여 행사에 늦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꼼짝없이 대기해야 했기에 이 추운 겨울 날씨에는 악몽이다.
이도연은 슈퍼원이 제 시간에 도착하길 기다리며 하나둘씩 등장하는 귀빈을 바라보았다.
초대받은 배우들도 있었고, 걸그룹도 있었다. 그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사회 유력 인사들이 등장했을 때는 호응이 저조했다.
이도연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우리 애들이 제일 빛나겠다.”
남자 배우도 있었지만 그들도 슈퍼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역시 우리 애들 최고!
그때였다. 웅성거림이 일어나더니 이내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꺄아아아악!
오빠!
뭐지? 슈퍼원인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에 이도연은 슈퍼원이 왔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가 레드 카펫 위를 걸어오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아홉 명이 아닌 혼자였다. 그런데 그 하나의 존재감이 레드 카펫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이도연은 슈퍼원의 극성팬이다. 슈퍼원이 아니니 카메라나 재정비하기 위해 시선을 떼어야 하는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포마드 스타일로 깔끔하게 올린 머리와 잘생긴 외모 사이로 알 수 없는 위험한 아우라가 존재했다.
뭐지? 왜 잘생겼는데 위험함이 풍기지? 몸도 좋다. 근데 저 위험함은 뭔데? 알고 싶다. 누구지?
이도연은 탄탄하게 단련된 몸을 감싼 검은 슈트에 눈을 떼지 못했다.
슈트 차림이 이렇게 섹시한 거였던가? 얄쌍하기만 한 남자 아이돌이 흉내 낼 수 없는 라인이다.
갑자기 슈퍼원이 소화했던 짐승 컨셉이 강아지 재롱 수준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진짜 위험한 짐승이 어떤 건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도연은 눈을 떼지 않은 채 누군지 검색했다.
“초인, 최준호.”
저렇게 잘생겼는데 대한민국을 위해 그 위험한 마물과 빌런을 목숨 걸고 상대한다고?
나라를 위한 헌신, 빌런을 향한 무자비함이 더없이 멋지게 느껴졌다.
충분히 편한 길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악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다니. 존경스럽고, 멋졌다.
뒤이어 슈퍼원이 입장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최준호에게만 시선이 고정되었다. 짧은 시간, 그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났고 기사에 악플을 다는 녀석들을 처단했다.
“···팬이에요, 오빠.”
그날, 슈퍼원은 최애를 잃고 최준호는 극성팬을 얻었다.
그 현상은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